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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214화 (214/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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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끈하고 투명한 유리잔에 노르스름한 액체가 차오른다. 얇은 줄기가 빈 잔을 채워가는 소리는 맑으면서도 매혹적. 흔히 말하는 술맛을 잘 모르는 군터가 보기에도 지금 막시밀리언이 따라주는 술은 왠지 맛이 좋을 것 같았다.

“이 녀석은 가득 채우지 않아. 반도 많고, 3분지 1 정도가 적당하지. 자, 들게. 내가 주는 나름의 위로 겸 치하주일세.”

“감사히 들겠습니다.”

군터는 약간 아쉬움이 들 정도로 찬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매혹적인 귀부인처럼 아름다운 외향과는 달리 그 맛은 뜨겁기 그지없었다. 다만 그 뜨거움은 독하기만 한 싸구려 술과 달랐다. 정열적이라고 해야 할까? 매끄럽게 목을 지나고 속에 안착한 그것은 속으로 들어가고서야 그 열기를 거침없이 풀어냈다.

“걱정이 많았네. 괜히 보냈나 싶기도 했지. 어차피 구색만 맞추는 거라면 대충 머릿수만 채워 보내도 문제없었을 텐데 말이야. 그랬다면 자네가 이렇게 고생하고 돌아오지 않아도 되었을 테고.”

“송구합니다.”

“내 서신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던 모양이야. 너무 늦었던가? 아니면 받지 못했나?”

“받았습니다.”

“그럼 너무 늦었던 모양이군. 내 나름대로는 서두른다고 했는데 말이지.”

“늦지 않았습니다. 사령관의 서신은 제때 제게 도착했습니다.”

“…….”

막시밀리언이 표정을 지웠다. 그는 조금 앞으로 뺐던 몸을 의자의 등받이에 기댔다.

“허면?”

“제가 사령관의 지시에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항명을 했다는 말인가?”

“예.”

“…자네는.”

막시밀리언은 들고 있던 잔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술은 잔속에서 영롱한 빛깔을 비쳤다.

“나를 참 당황스럽게 하는군. 아니, 솔직한 심정으로는…당혹스러워. 내가 지금 그 말을 어찌 이해하면 되는 거지?”

“모르겠습니다. 저 또한 답을 듣고자 왔으니, 사령관께서 알려주십시오.”

“답을 듣고자 왔다……?”

막시밀리언의 표정 없던 얼굴에 금이 갔다. 자그맣게 시작된 균열은 조금씩 그 크기를 넓혀가더니, 곧 폭소에 가까운 웃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하하하하핫! 정말 할 말이 없군, 할 말이 없어. 자네는 정말 특이해. 아마 이 바크렌 땅을 죄다 뒤져본들 자네와 같은 자는 없을 것이야. 스스로 당당히 항명했노라 말을 했으면서 변명 한 마디가 없지. 그리고 뭐라? 답을 듣고자 왔다? 하하하하핫!”

막시밀리언의 웃음은 금방 그치지 않았다. 그는 정말 우습거나, 아니면 유쾌한 듯했다. 군터는 막시밀리언이 그의 어떤 말에서 즐거움을 느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조용히 막시밀리언이 웃음을 그치기를 기다렸다.

“하하하하. 그래. 답을 듣고자 왔다 했지? 그럼 들은 후엔 어찌할 텐가?”

“어떤 답이냐에 다르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면?”

“떠나라 하시면 떠날 것이고, 따르라 하시면 따를 것입니다.”

“처벌하겠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자네가 입 발린 소리를 하지 않는…아니, 못 하는 자라는 걸 잘 알아. 자네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야. 그렇지만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어리석을 정도로 우직하지.”

막시밀리언이 다시 잔을 들었다.

“군터. 자네가 바라는 답을 하기 전에 내 하나만 묻고 싶네. 이것에 대해서는 내가 자네에게 꼭 답을 듣고 싶어. 내 물음에 답해주겠는가?”

“예. 무엇이든.”“자네는 어째서 나를 따랐는가?”

“…….”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이 살마드에서였지. 그때 자네는 천덕꾸러기 신참 십인장이었고, 나는 군문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은 풋내기 백인장이었어.”

“그랬지요.”

“당시 초원으로 가기로 마음 먹은 나는 유능한 수하가 절실했지. 그래서 열심히 눈을 굴리고 있었고, 그렇게 해서 눈에 띤 것이 자네였네. 생색을 내려는 건 아니지만, 내게 출신 성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어. 그저 유능하고, 내 명령을 잘 따를 수 있는 자라면 아무리 비천한 신분이라고 해도 받아들일 마음이었으니까.”

“그때의 일은 아직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내가 자네에게 준 것 이상으로, 자네는 공으로써 내게 보답했으니. 감사를 한다면 나도 자네에게 만만치 않게 해야겠지.”

“…….”

“말이 조금 샜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지. 내가 묻고 싶은 건 다른 게 아니야. 군터. 자네는 왜 나를 따랐나? 다시 말하자면, 그때 내가 건넨 제의를 어째서 받아들였나?”

“다시 오기 힘든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회? 어떤 기회 말인가?”

“출세의 기회입니다.”

“그래. 출세. 바로 그거야. 자네도 원했고, 나도 원했던 것. 내가 지금도 더없이 간절히 열망하고 있는 바로 그것.”

막시밀리언이 들고 있던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조금 전 군터가 그랬던 것처럼 안에 든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삼킨 술 때문일까? 잔을 내려놓는 막시밀리언으로부터 후끈한 열기가 이는 듯했다.

“군터. 나는 말일세. 처음 군문에 들어서기 전부터 출세하고자 마음먹었네. 자네도 알겠지만, 나는 부족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났어. 마음 편히, 몸 편히 먹고 살려 했다면 굳이 갑옷을 입고 검을 들지 않아도 되었단 말이지. 높은 곳까지 다다를 수 있을지는 몰랐겠지만, 펜을 드는 관리가 될 수도 있었어. 하지만 그럼에도 난 굳이 군인이 되었지. 왜? 그곳에 출세의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나는 늘 야망을 가슴에 품고 있었지. 거창하게 이야기해서 야망이지만 사실은 뭐라고 해도 좋아. 저열한 욕망이라고 해도 괜찮아. 어쨌거나 나는 늘 고개를 뒤로 꺾고 있었다네. 눈앞을 본 적도 없어. 아래를 본 적은 더더욱 없지. 내 시선은 언제나 내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을 향해 있었다. 현실의 나는 땀내 나는 막사 안에서 찬바람을 견디며 떨고 있을지언정 내가 그리는 나는 늘 비단 옷을 걸치고, 수많은 사람들의 떠받듦을 받으며 누구보다 높은 곳에서 걷고 있었단 말이야. 백인장이 되기 전에도 그랬고, 된 후에도 그랬으며,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야. 단언하건대, 나는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을 것이란 말이지.”

막시밀리언이 술병으로 손을 뻗었다. 그는 군터의 잔을 채웠고, 자신의 잔도 채웠다.

“이런 내 열망이 허황되다거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네. 풋내기 백인장이었던 시절, 수 년 후의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을 거라고 그 누가 예상했겠는가. 고백하자면 나조차도 몰랐다네. 그저 내가 있는 자리에서 발버둥을 치다보니 어느 순간 이 자리에 오르게 된 것뿐이야. 앞으로라고 다를 것 같은가? 아니. 아니야. 다르지 않아. 전혀 다르지 않단 말일세.”

또 한 번 잔을 비웠다. 열기가 더 강해진 듯했다.

“살마드에 남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자들이 있다네. 그 자들이 말하기를, 위글로우의 사령관 막시밀리언은 지닌 재주에 비해 야심이 큰 자라 하더군. 능력도 없으면서 욕심만 많다는 이야기지. 흐흐. 솔직히 당사자 입장에서 그리 듣기 기분 좋은 말은 아니지만 난 그들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아. 내가 품은 야망에 비해 내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은 인정하네. 나는 아란딜 페레모어처럼 군략에 밝지도 않고, 아그니스 체스퍼처럼 무력이 출중하지도 않아. 심지어 그런 대단한 자들 말고, 범부라고 평가받는 다른 자들과 비교해 봐도 내가 특별히 뛰어나다 싶은 점이 뭔지 모르겠어.”

“…….”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지? 능력이 부족하다면 키우면 되는 거야. 내게 없는 능력을 가진 자들을 부리면 되는 것이야. 자네가 그렇고, 위벨이 그러하며, 다른 자들이 그렇지. 부족하다면 어떻게든 채우면 돼. 그 어떤 것도 야심을 꺼뜨려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해. 나는 그것을 일찍부터 알았지. 그렇기에 나는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군터. 나는 자네와 처음 만났던 날 이후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열변을 토하는 막시밀리언을 앞두고, 군터는 적잖이 동요했다.

막시밀리언과 둘이서 술을 마신 적은 꽤 있었다.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 또한 적지 않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막시밀리언이라는 한 인간에 대해 이렇게 직접적으로 느껴본 적은 없었다. 군터는 비로소 자신이 막시밀리언이라는 사내를 온전히 알게 되었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군터. 자네는 어떤가? 자네는 변했나? 처음 날 따른 것이 출세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였다면, 자네 안에도 열망이 있었다는 이야기겠지. 부정하지 말게. 나는 알아. 가슴 속에 불 하나 가지지 않은 자는 없어. 단지 배짱이 없기에 그것을 키우지 못할 뿐이지. 하지만 자네는 그런 범부가 아니지 않은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마음이 없었다면 사령관을 따르지 않았겠지요.”

“그래. 그런 면에서 자네와 나는 다르지 않아.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로 돌아가 보세나. 나는 자네가 필요했고, 자네는 내가 필요했지.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우리는 여기에 마주보며 앉아있군.”

생각해보면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다. 근 10년에 가까운 세월이었으니까 말이다. 사람이 변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해도, 그 사람을 둘러싼 상황이 변하면 사람은 변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숨어있었기에 드러나지 않았던 본질이 비로소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해보지. 나는 여전히 자네가 필요하네. 능력도 능력이지만, 나는 자네라는 사내가 인간적으로 마음에 들어. 자네는 나와 달라. 자네는 명예를 알고, 신의를 알지.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 가치를 그저 마음이 일기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고서도 지켜내곤 해. 자네에게는 당연한 행위일지 몰라도, 이 세상에 자네처럼 할 수 있는 자들은 몇 없다네. 드물고, 희귀하지. 자네는 이해관계를 떠나,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야.”

“과분한 말씀입니다. 저는 그렇게 대단한 자가 아닙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아닐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나는 자네가 필요하네. 그렇기에 자네가 이끌고 간 정병 대부분을 잃었어도 탓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아. 내 명령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했어도 책임을 묻고 싶지가 않아. 그런 자잘한 것들보다, 자네가 나를 떠나지 않아줬으면 하는 마음만이 가득하다네.”

“…사령관.”

“하지만 떠난 사람의 마음을 억지로 붙들 수도 없는 노릇. 허니 묻겠네. 자네의 마음을 알려주게. 처음 나와 함께 하기로 결심했던 그 마음이 아직도 여전한가? 자네는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는가?”

군터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앞에 놓인 잔을 비우고,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저는 더 높이 오르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사령관의 수하로서 회의를 느낀 것도 사실입니다.”

“이해하네.”

“사령관께서는…그저 올라갈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으신 겁니까? 반역을 하면서까지…….”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이 땅의 주인은 베이고르였네. 하지만 제국이 베이고르를 멸망시켰고 새로이 바크렌의 주인이 되었지. 베이고르의 백성이었던 자들은 제국인이 되었어. 그리고 이제 다시 또 한 번 바뀌는 것뿐이야. 되돌아가는 거라고 해도 좋겠지.”

“변명이라는 걸 아실 겁니다.”

“물론. 모든 것이 다 변명이야. 제 아무리 거창한 대의명분이라고 해도 누군가에게는 변명일 수밖에 없지. 내가 반역자다? 맞는 말이야. 난 내 행동에 대해 한 점 부끄러움도 없네. 내가 제국군이 된 것도, 지금에 와서 제국을 등지고 베이고르에 붙는 것도 모두 가치판단에 따른 행위일 뿐이야. 제국군이 되는 것이 내게 좋다 생각했기에 되었고, 베이고르에 붙는 것이 내게 좋다 생각했기에 붙는 것이네.”

“…….”

“군터. 난 제국인이고, 제국군이며, 이 도시의 사령관이네. 하지만 그 이전에 나는 막시밀리언이야. 나는 나란 밀이지. 나란 자는 나의 이로움을 제일로 여긴다네. 명예도, 신의도, 그 무엇도 그 다음이야.”

“으음.”

“물론 나도 충성을 알고, 신의를 안다네. 하지만 여기서 변명 하나 하지. 군터. 제국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바크렌이 제국 37주 가운데 하나라고는 하지만, 실상 변방에 불과하네. 황도에 머무는 자들에게 있어 우리는 그들과 같은 제국인이 아니야. 그저 변방 야만인들보다 조금은 더 나은 자들에 불과하지. 더 심하게 말하자면, 그들에게 있어 우리는 식민지의 백성들에 불과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제국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아. 그저 최소한의 보여주기 식 조치만 취할 뿐이지.”

“…….”

“이곳의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을 제국도 알고 있네. 그렇지 않은가? 수 년 전, 처음 전쟁이 벌어졌을 때도 바크렌 지방정부는 속절없이 밀렸어. 아란딜 페레모어와 그의 말레이드군이 버티고 있었음에도 살마드 함락 직전까지 몰렸지.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군주의 참전이 아니었더라면 정전이나마 이끌어낼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전력을 증강한 적들이 다시금 전쟁을 일으켰건만 제국 조정은 정쟁에만 열중하고 있지. 물론 그 정쟁이라는 것이 황위를 둔 다툼인 만큼 더없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는 건 알아. 그렇지만 한 개 주의 명운이 바람 앞의 등불인데도 그저 손 놓고 방관한다는 건 그들이 이 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증명이 아니겠는가?”

막시밀리언의 말은 듣기에 설득력이 있었다. 다만 아직까지도 속에서 온전히 수긍한 것은 아니었기에, 군터는 이어지는 그의 말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끝까지 제국에 충성을 다할 수도 있었겠지. 밀려드는 적들에 맞서 수없이 패퇴하면서 종국에는 살마드나, 어떤 남쪽의 성벽 위에 올라 다가오는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었을 거야.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그렇게 제국에 목숨을 바친들, 제국이 알아주기나 할 것 같은가? 그건 그저 개죽음일 뿐이야. 내 기준에서 그건 멍청한 짓이란 말이네. 나는 멍청이가 되고 싶지 않았어. 고개를 돌리면 위기가 아닌 기회가 있거늘, 그걸 마다하고 멍청이가 될 이유가 무엇인가? 자네는 이런 내가, 내 선택이 잘못 되었다 이야기할 수 있는가?”

군터는 작게 탄식했다.

그는 여전히 막시밀리언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개죽음이라는 말과 멍청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쉼 없이 맴돌았다.

“자네가 내 명을 거역한 이유를 알아. 불명예스럽고 비겁한 행동이라 여겼겠지. 이해하네. 자네라는 사람에게 있어서 함께 싸우고 있는 아군을 사지에 버려두고 몸을 뺀다는 건…확실히 명예롭지 못한 일이었겠지. 허나 군터. 명예를 아는 자는 세상에 흔치 않다네. 높은 곳에 오를수록 더욱 드물지. 고지식하기만 한 명예란 높은 자들이 낮은 자들을 부리기 위한 수단이고 명분일 뿐이야. 지금의 자네처럼.”

“제가 고지식하기만 하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자네가 뭐라도 된 것 같은가? 착각이야. 아주 큰 착각이지. 지금의 자네는 일개 천인장에 불과해. 고개를 들어보게. 위를 보란 말이야. 너무도 까마득해서 눈으로 다 확인할 수도 없는 길고 긴 길이 놓여있다는 걸 알게 될 걸세. 적어도 그 중턱 정도에는 올라놓고서 한 번쯤 아래를 봐도 보란 말이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나 역시 일개 자그마한 도시의 사령관에 불과하네. 그러나 지금 그렇다고 해서 나중까지 그러라는 법은 없어. 군터. 나는 더 높이 오를 걸세. 물론 자네 역시 그리 될 수 있어. 자네가 진정 힘을 가진다면, 그때서 명예를 말한다한들 누가 함부로 넘볼 수 있겠는가?”

빈 잔이 찬다. 두 개의 잔에 따르고 나니 병은 마침내 깔끔하게 비었다.

“나는 여전히 자네가 필요하네. 자네는 어떤가?”

“…….”

잠깐의 침묵 후. 군터는 잔을 들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흑포장군은 중앙정부의 장군입니다. 나름 전국구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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