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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201화 (201/1,064)

<-- 2부 -->

딱! 딱!

장난감 목검과 진짜 목검이 나름 그럴싸한 소리를 내며 튕긴다. 꼬마 아이는 얼굴이 벌개져서 열심히 좌우로 휘두르지만 큼지막한 목검은 별로 움직이지도 않고서 여유롭게 막아낸다. 몇 번이나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결국 꼬마 아이는 벌러덩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씨익! 씨익!”잔뜩 심통이 난 얼굴이다. 살라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굽혔다.

“그만 하시겠습니까 도련님.”

“…아니. 조금만 더 할래.”

꼬마 아이, 보리스가 끙! 하며 일어나자 살라스도 다시 허리를 폈다. 그리고 꼬마 도련님께서 휘두르는 목검을 최대한 힘을 빼고 받아내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서 받아내는 게 아니라 간간이 한 발자국씩 물러나기도 해주었다.

되지도 않게 장난감 목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댄다. 어린아이의 치기, 화풀이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이 어린 아이는 나름대로 필사적이다. 답답한 마음을 이렇게라도 풀어보고자 함이다. 아이는 이렇게 한 번이라도 더 검을 휘두르면 더 일찍 어른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살라스는 보리스가 자신을 따로 불러 건넸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도 아버지를 돕고 싶어.”

“도련님은 아직 어리십니다.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보리스는 불퉁하게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어디서 구해온 장난감 목검을 들이밀며 무술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살라스는 그 우스운 제안에 기꺼이 응해주었다. 하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린 도련님의 뜨끈한 마음이 하루 이틀 가고 말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예상을 깨고, 보리스는 손에 물집이 잡히고, 또 터지면서도 계속해서 그를 불러냈다. 이제는 살라스도 어린 도련님의 결심을 어느 정도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물론 그렇다고 진지하게 상대를 해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적당히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휘하 병사들에게 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대하기에 보리스는 너무 어리며, 또한 너무 고귀했다. 자칫 보리스의 몸에 생채기 하나라도 나게 되면 상관인 군터는 물론이고, 그 부인인 벨리사의 얼굴을 어찌 보겠는가.

“도련님. 무리하시면 좋지 않습니다. 무리하시다가 몸이라도 상하시면 내일의 훈련에 지장이 가니까요.”

“나도 알아.”

“예?”

“어차피 해도 소용없는 거 알아. 난 어리니까. 어떻게 해도 어른처럼은 안 돼. 알아. 안다고. 그래도…….”

“…….”

묘한 기시감이 든다. 어렸을 적, 저 비슷한 얼굴을 한 아이가 있었다. 비록 그 아이는 지금의 보리스보다 몇 살이 더 많았지만, 보리스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무력감에 시달렸었고, 몸부림쳤었다. 그리고 역시, 아무것도 하지 못했었다.

“도련님.”

“응.”

“도련님의 아버님께서는 강한 분이십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는 가장 강한 분이시죠. 그분께서는 어지간해서는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치 않은 분이십니다. 이번 일도 그렇지요.”

“하지만.”

“물론 언젠가 그분께도 정말 어려운 일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그분께서 홀로 감당하시기 벅찬 일이 일어난다면, 저는 온몸을 다 바쳐 그분을 도울 겁니다. 도련님께서도 그러시겠지요.”

“당연하지!”

“그러니 준비하십시오. 다만 조급함은 독입니다. 천천히, 하지만 부지런히 쉬지 않고 노력하셔야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달콤한 말로 어린아이를 구슬리려는 마음 따위는 없다. 그는 보리스에게서 어렸을 적 무력감에 몸부림치던 또 다른 아이를 보았다. 그러니 상관의 자식이라는 점이 아니더라도 진심으로 대할 밖에.

“다만, 제 훈련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괜찮다며 당돌하게 대꾸하는 보리스. 살라스는 그런 보리스와 시선을 마주한 채 싱긋 웃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지요.”

“더 할 수 있는데.”

“몸 상하십니다. 제게 훈련을 받으시려면 제 말에 따라주셔야 합니다.”

“…으응.”

살라스는 보리스의 손을 잡고 일으켜주었다. 그리고 멀찍이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을 시켜 보리스를 데려가게 했다.

그가 보리스에게 이만하자고 한 것은 아이의 몸에 무리가 갈 것을 염려한 탓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제 슬슬 일을 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마님께서는?”

“사령관 부인과 함께 계십니다. 곧 나오실 것 같더군요.”

“그러시겠지. 가자.”

살라스는 목검을 거치대에 걸어놓고 휘하 병사와 함께 벨리사와 사령관 부인이 있는 안채로 향했다.

*

“부인. 근심이 많아 보이세요.”

“후훗. 그런가요?”

카트리나 리에론은 웃었다. 아름답지만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마음이 울적해지는, 씁쓸한 웃음이다. 어렵사리 말을 꺼낸 벨리사의 마음도 그녀의 웃음처럼 어두워졌다.

“제가 근심하고 있음은 온 도시의 사람들이 다 알겠지요. 제가 무엇 때문에 근심하는지 또한.”

“아니에요. 어찌…….”

말로는 부정하지만 진심으로 아니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말처럼 온 도시 사람들이 다 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사교계의 부인들 사이에는 카트리나 리에론의 근심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아이라도 생겼으면 좋으련만. 내 피를 이어받은, 보리스처럼 건강한 사내아이가 한 명 있었다면 제가 지금처럼 마음 쓸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지요.”

“부인…….”

벨리사는 안쓰러운 감정을 숨기지 않고 카트리나 리에론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사령관과 결혼하고 벌써 수년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녀는 아이를 갖지 못했다. 들어보면 사령관이 밤일을 뜸하게 한 것도 아닌 듯했다. 그녀가 아이를 갖지 못한 것은, 순전히 불운했기 때문이다. 아니면…생각하기도 싫은 다른 이유가 있거나.

“요즘은 정말 몇몇 사람들이 수군대는 것처럼, 내게 뭔가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가 싶기도 하고.”

“그런 말씀 마세요. 곧 아이를 가지실 겁니다. 신께서 부인의 마음을 알아주실 거예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군요.”

카트리나 리에론이 싱긋 웃었다. 걱정을 떨쳐낸 것일까. 우울함이 보이지 않는 잔잔한 웃음에 벨리사도 따라서 배시시 미소를 그렸다.

온화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바깥에서 살라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인. 시간이 다 됐습니다.”

“그래요. 곧 나가겠습니다.”

벨리사가 몸을 일으켰다. 카트리나 리에론도 따라 일어섰다.

그녀들은 옷매무새를 만진 뒤 시녀가 열어준 문을 통해 밖으로 나섰다. 바깥에는 살라스와 병사들이 도열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다시 보는군요 살라스.”

“예 부인. 모시겠습니다.”

이미 몇 번이나 얼굴을 본 사이. 살라스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녀들을 수행했다. 향한 장소는 시내의 사원과 붙어 있는 예배당이었다. 그녀들은 근 보름 전부터 매일 예배당으로 가 기도를 해왔다. 벨리사는 전장으로 떠난 군터를 위해, 그리고 카트리나 리에론은…아마도 그녀의 개인적인 문제를 위해.

‘정략혼으로 맺어진 사이에서 불임이라.’

정확히는 불임이지 않을까 하는 꺼림칙스런 이야기가 조금씩 도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젊은 부부가 몇 년 째 아이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큰 문제다. 거기에 그들이 보통 부부가 아닌, 각자의 이해관계로 맺어진 정략혼의 당사자들임에야.

‘게다가…소문이 사실이라면.’

사령관에게 정부가 있다는 소문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사령관이 결혼을 하기 전부터 돌던 이야기다. 그리고 살라스는 그 소문의, 아마도 주인공일 확률이 높은 여인을 이미 알고 있었다.

‘대장님께서 사령관에게 바치신 그 초원의 무녀.’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얼핏 미색이 보통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듯했다. 듣자하니 사령관은 그 초원의 여인을 버리지 않고 계속 옆에 두었던 듯했다. 세월이 흘러도 모습이 변하지 않는 신비한 여인이라던가. 정말 조심스럽게 떠도는 말들 중에는 그 초원의 무녀가 요사스런 술수를 써서 사령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것들도 있었다. 물론 살라스는 그따위 헛소문은 믿지 않았다. 하지만 사령관의 마음이 그의 부인에게 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불편하군.’

상관없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모시는 상관의 부인이 그녀와 가까운 사이가 되어버리면서 자연스럽게 조금은 그 불편한 이야기에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상관, 군터가 떠나기 전 살라스에게 그의 가족들을 맡겼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제넘은 걱정일 수도 있다. 아니,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살라스는 벨리사와 보리스의 모든 것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것이 전장에 나가 있을 군터를 위한 헌신이며, 할렌처럼 그와 함께 전장을 누비지 못한 데 대한 한풀이였다.

*

예상 외로, 비스링을 점령한 타칸연합군은 별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제국군에게 있어 더없이 다행스런 일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군. 기세를 탔을 때 몰아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말이야.”

“비스링을 함락하면서 입은 피해가 큰 것일까요.”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면 다른 것을 노리는 것일지도 모르고.”

“다른 것이라 하시면?”

“그걸 알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겠나.”

아그니스 체스퍼가 씩 웃으며 양 팔을 반쯤 들어올렸다. 덕분에 그의 뒤에서 상처를 살피던 군의가 쩔쩔매며 그의 한쪽 팔을 조심스레 다시 붙들었다.

그 모습이 퍽 재미있어 군터는 한동안 아그니스 체스퍼가 아니라 진땀을 흘리는 군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다른 천인장들과 아그니스 체스퍼 간에 계속 이야기가 오갔다.

“장군. 적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먼저 움직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음? 치자는 이야기인가?”

“아니. 진지를 옮기자는 이야기입니다.”

“진지를?”

말을 꺼낸 것은 나이가 가장 많은 편에 속하는 천인장이었다. 본래 회의에서 말 수가 없는 자였는데, 그런 자가 제법 파격적인 의견을 냈다.

“보아하니, 적은 우리를 놔두고 움직일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지금은 잠잠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결착은 보게 될 터.”

“음. 그래서?”

“야밤에 공병 삼백 정도를 뒤로 빼시지요. 그들로 하여금 후방에 진지를 세우게 하십시오. 녹각 정도가 아니라 번듯이 목책을 세우고, 수성을 하듯 준비를 하는 겁니다. 준비가 완료되었을 즈음에는 전군을 뒤로 물려 새로운 진지에서 적을 맞는다면…적들의 기세가 강맹한들 능히 버텨 싸워낼 수 있을 것입니다.”

“흠.”

적이 잠잠할 때 발 빠르게 움직여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자. 듣기에 썩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그가 가리킨 지도위 지점은 현재 위치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었고, 물줄기도 흐르고 있으며, 무엇보다 주변에 목재를 조달할 만한 적당한 크기의 수림이 있었다.

“좋아. 그리 하지.”

아그니스 체스퍼는 늙은 천인장의 헌책을 받아들였다. 그는 바로 그날 밤, 어둠이 가장 짙게 깔렸을 때 삼백 공병들을 나누어 후방으로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뿌우우우우-!

서쪽 구릉에서 웅장한 뿔 나팔 소리가 울렸다.

나팔 소리가 잦아듦과 동시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제국기. 그리고 카리비온 하야신의 장군기였다.

========== 작품 후기 ==========

*QnA*

므므겡 - "총 몇화까지 스토리 완결 구상중이신지요?" / 처음 글을 쓰기 전에 구상한 바로 망하면 4-500화. 그럭저럭 상황이 나오면 1000화+a정도로 잡았었습니다.

슈퍼테크닉 - "술법이라는거 뭐...마법같은 느낌인가요???" / 보통 다른 판타지에서 보이는 마법들에 비하면 조금 약한 느낌이지요. 다만 조건만 맞으면 그에 못지않은 위력을 낼 수 있다는 설정입니다. 단지 타 판타지에 등장하는 마법에 비해서는 대가가 강합니다. 강한 위력 = 큰 대가. 이런 식입니다.

탐험가2 - "보아하니 나는 군단이다 처럼 끝없는 전쟁씬으로 가나요. 영지물이 들어갈 자리는 없겠지요?" / 나는 군단이다 라는 글을 안 봐서 모르겠습니다. 시종일관 전쟁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Guaaaaak - "제국에는 바크렌 같은 주가 총 몇개나 있나요? 또 바크렌과 제국의 영토는 대충 어느정도의 크기를 갖고있는거죠?" / 바크렌 포함 37개 주입니다. 바크렌은 영토 크기만 놓고 보면 평균적인 주 이상입니다. 평균 주 크기의 1.3배 정도? 다만 영토 크기에 비해 인구수는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고요.

칠프 - "글 호흡이 너무 느린편인데 조금 빠르게 갈순 없을려나요" / 노력해보겠습니다.

한강물따뜻하냐 - "혹시 지금까지 진행이 대략 어느정도 온건가요?" / 20퍼센트 조금 넘었습니다.

사고뭉치00 - "문체 스타일유지를 어떻게 하시는지요?" / 유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항상 어떻게 하면 더 괜찮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보기엔 늘 들쭉날쭉한 느낌입니다...

a2c222 - "주문각인을 할 예정인가요??" / 각인은 굉장히 비쌉니다. 돈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overlord123 - "지금입고있는 팬티색깔머임?" / ....

사탕수수158 - "누군가 팬티색을 물어봐서...어제입은 팬티색은 뭐죠?" / .........

dudem45 - "군터가 프리미엄전환계획있으시나요?" / 없습니다. 처음부터 노블로 시작한 글이기도 하고... 지금도 사실 인기 없지만 프리미엄 가면 더 망할 거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nerostail / 저도 할렌 좋아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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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회 축하해주신 모든 독자분들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쭉 힘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쿠폰, 추천남겨주신 독자분들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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