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터-181화 (181/1,064)

<-- 2부 -->

암상은 굉장히 포괄적인 명칭이다. 사소한 뒷골목의 허가받지 않은 잡상인부터 국가에서 금한 품목을 숨어 거래하거나, 목숨을 걸고 은밀하게 국경을 넘어 다니는 밀수업자들에 이르기까지.

암상이라고 통틀어 묶어 부르기는 하지만, 정확히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에 대해 아는 이들은 드물다. 암상이 들여온 물건에 돈을 내면서조차 말이다.

군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암상이라는 자들에 대해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암상이란, 돈에 미친 쥐새끼들에 지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막시밀리언이 암상들과 손을 잡겠다는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암상은 어떤 놈들이지? 놈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나?”

“갑자기 암상은 어째서……?”

모페이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 군터는 고민했다. 여기서 대충 얼버무릴 수도 있다. 그래도 모페이브는 알고 있는 것을 말해줄 것이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지만, 극비로 취급해야 할 일을 떠벌리지 않고 그냥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모페이브를 믿는다면, 이야기를 해주는 편이 낫다. 모페이브는 아는 것이 많고 머리도 좋다. 막시밀리언의 꾀주머니가 위벨이라면, 군터에게 있어 꾀주머니라 할 수 있는 이는 모페이브다. 살라스도 있기는 하지만, 살라스는 특유의 성미 때문에 다소 사고가 경직되어 있다. 반면 모페이브는 유연하다. 그래서 그런지 종종 유익하다 싶은 조언을 해줄 때가 있다.

‘괜찮겠지.’

한때는 사교의 무리였고, 그에게 원한을 가질 동기도 충분히 있었던 모페이브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렀다. 그간 모페이브를 가까이 두며 은밀히 관찰했으나 이상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모페이브는 술법 선생으로서 때때로 군터 본인보다도 더 열성적으로 달려들었다. 그 기저에 그를 위한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탐구욕이 있었더라도, 이만하면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신뢰할 것인가 불신할 것인가. 이제는 결정을 내려도 될 때다.

“사령관은 암상과 거래를 틀 생각을 갖고 계시다.”

“암상과 거래를……?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군터는 의아해 하는 모페이브에게 막시밀리언의 구상에 대해서 들은 대로 이야기해주었다. 위글로우에 사병을 확충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위글로우 인근을 완벽히 통제하며 암상들을 위한 교역로와 거래소를 제공하며 그에 대한 대가를 챙기겠다는 계획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모른다. 사령관은 자신이 있으신 모양이더군.”

“흠. 그렇습니까.”

생각을 정리하는 듯 잠시 조용해졌던 모페이브는 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험은 둘째 치고, 그 계획이 생각처럼 잘 될지는 의문이군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왜냐하면 제가 알기로 암상이란 이들은 굉장히 조심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래를 트기 어려울 거란 얘기인가?”

“예. 게다가 그들은 일반적인 장사치들처럼 크게 상단을 이루는 일이 잘 없기 때문에 어떻게 접선을 한다고 쳐도 큰 규모로 거래를 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물론 제가 암상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 역시 그저 어찌 어찌 들어 아는 것에 불과합니다만…사실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움직임이 드러나면 극형을 면치 못하는 이들인데 그 행사가 어찌 암살자의 그것처럼 은밀하고 조심스럽지 않겠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다. 확실히 모페이브의 말은 그럴듯했다. 장사를 하다 걸리면 죽거나, 죽는 것만큼 심한 꼴을 볼 수밖에 없는 이들이 어찌 몸을 사리지 않겠는가. 또한 아무리 좋은 제안이 들어온다고 한들 어찌 쉬이 믿고 응하겠는가.

하지만…그렇게 모페이브의 말에 설득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모페이브도 이리 짐작하는 것을 막시밀리언이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

“끝내 할 생각이냐.”

“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말입니다.”

대꾸하는 막시밀리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평소보다 다소 차가웠다. 누구를 앞에 두고서도 부드러운 예의를 잊지 않는 그였지만 지금 눈앞에 앉은 노인을 상대로는 그렇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그만큼 막시밀리언은 그의 부친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했다.

“위험한 판이 될 게다. 지금처럼은 아니었지만, 암상은 늘 권력자들의 좋은 돈벌이 수단이었다. 겉으로는 쓸어버려야 한다, 뿌리를 뽑아야 한다 하면서도 뒤로는 암상들이 제공하는 향응을 원 없이 누리곤 했지.”

“굳이 또 설명하지 않으셔도 잘 압니다.”

암상은 제국법에 의해 처벌받는 존재다. 따라서 지방관들이 대놓고 그들을 비호하거나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뒤로는 이야기가 다르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암상들이 제아무리 은밀하게 움직인다한들 관리들이 눈을 부릅뜨고, 관병들이 철통같이 순찰을 돈다면 어찌 그들이 뒷골목에 숨을 수 있었을 것이며 또 어찌 국경을 넘나들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그리 할 수 있었던 것은 관이 그리 할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고, 관이 의지가 없었던 것은 관리들이 할 마음을 품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왜 그랬겠는가? 암상들의 존재가 그들에겐 이득이기 때문이다.

아는 이만 아는 사실이지만, 암상과 관의 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그 관계라는 것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까닭은 관리들과 암상의 관계가 서로 얽히지 않고 넓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암상들에 좀처럼 큰 무리가 없기에 생겨난 현상이었다. 일반적인 상인이라면 상단이 생겨나고, 상단 중에서도 큰 상단이 생겨나 많은 거래를 할 수 있겠으나 암상은 태생적으로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 관리들이 비호를 한다고 해도 서로 비호하는 무리가 다르고, 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은밀해지기가 힘들기 때문에 정적들에게 빌미를 줄 수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암상이 관리들에게 제공하는 향응이라는 것도 즐거울 정도는 되지만 그렇다고 눈이 돌아갈 만큼 크지는 않은 탓도 있었다. 암상으로 얻는 이익이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일을 크게 벌일 만큼 크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녹지 않는 땅의 귀한 물자들이 암상의 손에 들어오게 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진 것이다. 이제는 암상들이 주무르는 돈의 액수가 전쟁 전보다 크게 뛰어올랐으니, 자연 그들과 연을 맺은 관리들이 취할 과실도 더 탐스러워졌다. 욕심을 부릴 만한 명분이 어느 정도 생겼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못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기 바쁜 판국에 금덩이 하나 더 쥐겠다고 팔을 뻗지는 못할 겁니다. 그랬다가는 당장에 눈앞에 칼을 들고 서 있는 적에게 손목을 베일 테니까 말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마냥 확신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만큼 위험한 일이야.”

“큰 것을 노린다면, 어느 정도의 위험부담은 당연히 지고 가는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너는 무관이면서 네 형보다도 더 장사꾼처럼 구는구나.”

그 말에 막시밀리언이 처음으로 웃었다. 비록 그 웃음이라는 것이 조소에 가까운, 차가운 것이었지만 말이다.

“피가 어디 가겠습니까. 그리고…관리의 삶이라는 것도 결국 상인의 그것과 별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인간은 이득을 찾아 움직이니까요. 권력이건, 금전이건, 아니면 다른 무엇이건.”

막시밀리언은 소위 일컫는 권력자라는 자들이 우스웠다. 그들이 가진 힘은 물론 두렵지만, 경치 좋은 윗자리에 앉아 체면이나 차리는 그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명문가, 특히 긴 이름을 가진 귀족이라는 작자들은 명예나 위신 같은 것을 끔찍이 여겼다. 그러면서 돈벌이가 될 만한 일들을 헛기침하며 밀어냈다. 더 웃긴 건, 앞에서는 그래놓고 뒤로는 그들에게 잘 보이려 하는 이들의 온갖 ‘성의’들을 게걸스레 먹어치운다는 것이다.

‘웃기는 짓거리지. 직접 나서서 취하면 될 것이 아닌가.’

무슨 체면이라는 이름의 목줄이라도 찬 것 같다. 뭐 그리 따질 게 많단 말인가. 땅에 떨어진 돈은 먼저 줍는 놈이 임자다. 권력을 유지하고 더 키우는 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으면서도 돈에 집착하는 것을 천하다 여기는 그들의 꼬인 심리를 막시밀리언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힘이 있으면 재물을 취할 수 있고, 재물이 있으면 힘을 취할 수 있다.’

돈을 버는 행위가 권력을 키우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당장에 그만 해도 금덩이를 꾸준히 바쳐 리에론의 사위가 되고 위글로우의 온전한 지배자가 되지 않았던가.

“아버지께서 가지신 인맥을 모두 동원해 주십시오. 한 다리를 건너도 좋고, 두 다리를 건너도 좋습니다. 이번 일이야말로 아버지께서 제게 주실 처음이자 마지막 도움일 테니까요.”

“…….”

노인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반면, 막시밀리언은 후련한 얼굴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시밀리언이 자리를 떠나고 제법 시간이 지난 후에도, 노인은 다 식은 차를 들지 못했다.

*

처음엔 기껏해야 열 무리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들이 내는 보호비와, 거래를 하며 내는 이익의 일부도 적지는 않았지만 기대했던 것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뒷세계에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면서 위글로우를 찾는 암상들이 점차 늘어났다. 막시밀리언은 그들을 환대했고, 그들을 지켜주었다. 암상들은 막시밀리언의 호언장담대로, 적어도 위글로우에 있는 동안에는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위글로우에는 암시장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평범한 상점일 뿐이지만, 지하와 숨겨진 방에서는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전문적인 상점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곳에서는 국법으로 사사로운 거래가 금지된 물건들도 다수 취급되었다.

암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 늘고, 거래되는 물자가 늘어날수록 막시밀리언은 더 큰 이득을 취했다. 그는 그 돈으로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챙겼다. 사병들을 육성했고, 그의 수족과 같은 관병들에게도 아낌없이 베풀었다. 그러는 한편 주도의 친분 있는 관리들에게도 부지런히 선물을 돌렸다. 모르는 이들과도 소개를 통해 안면을 트고, 성의를 보이며 친분을 다졌다. 그러한 투자들은 모두 그의 정치적 입지로 돌아왔다.

물론 모든 것이 그저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끄어어…….”

가슴을 꿰뚫린 사내가 눈을 까뒤집은 채 벌레처럼 흐느적거렸다. 그의 속살에 파고든 칸젤의 창날은 거침없이 그의 피를 탐했다.

“으아아악!”

기합인지 비명인지 모를 것을 내지르며 또 한 명이 달려든다. 군터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칼날을 붙잡았다. 건틀렛도 착용하지 않은 맨손이었지만 베어내리는 칼을 멈추는 데는 검지와 중지, 손가락 두 개면 충분했다.

“무, 무슨……!”

군터는 칸젤을 놓고 기겁하는 적의 목을 붙들었다. 힘 한 번 목뼈가 뚝! 하고 부러졌다. 그러고서 목을 붙든 손을 놓으니 축 늘어진 몸뚱이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푹!

한창 피를 탐닉하던 칸젤을 뽑아내고 싱싱한 육신에 다시 찔러 넣었다.“대장님. 저희 쪽도 끝났습니다.”

얼굴에 피를 묻힌 수하가 다가왔다.

“수고했다. 뒷정리는 맡기마.”

“옛.”

위글로우의 암시장이 커질수록, 그곳에서 오가는 돈이 늘수록 도시 바깥에서 날파리들이 꼬여들었다. 그 중에는 정말 어중이떠중이들도 있었고, 은밀하게 숨어들어 앙큼한 짓거리를 계획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미겔이 이끄는 감찰대와 새로 꾸려진 사병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도시 곳곳에 깔린 눈을 통해 날파리들을 성공적으로 퇴치해냈다. 그리고 그 솜씨는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일수록 더 늘어갔다.

‘그래. 안다. 부족하겠지. 하지만 참아라.’

칸젤이 아쉬움을 토로한다. 칸젤의 아쉬움은 곧 그의 아쉬움이었다. 둘의 감정은 따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가 분노하면 칸젤도 분노하고, 칸젤이 갈망하면 그 또한 갈망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감정의 흐름은 일방향이다. 오직 지금과 같은 경우에만 칸젤의 아쉬움이 그에게로 거꾸로 밀려들어온다. 그의 신체 능력 향상이 정체에 접어들면서부터 생긴 변화였다.

‘따분하군.’

위글로우의 도적들은 이제 씨가 말랐다. 이따금씩 순찰을 위해 도시 밖으로 나가도 정말 바람을 쐬는 것 외에는 달리 할 것이 없다. 그나마 지금처럼 일이 생겼을 때 몸을 풀러 나오는 것이 전부다.

‘또 쓸데없는.’

밤공기를 맞으며 반성한다. 지금 집에서 자고 있을 아내와 아이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생각을.

그러나 세상을 굽어보던 원신이 군터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았음인가.

“부사령관님! 속히 사령관저로!”

다음날 이른 아침. 사령관저로 급히 오라는 전갈이 왔다. 사령관저로부터 그의 집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듯, 말을 전하는 병사의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내일(목)부터 이번 주말을 통으로 여행을 갑니다. 일요일 낮에 집에 돌아올 예정인데, 이렇게 되면 최소 금, 토의 연재가 빵꾸가 나는 상황입니다. 하여 달랑 하나 있는 비축분을 금요일에서 토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예약연재를 걸어두고 가겠습니다. 토요일 연재가 되겠네요. 일요일은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가 봐야 알 것 같네요.

란지에르님 쿠폰 감사합니다. 다른 익명의 독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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