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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177화 (177/1,064)

<-- 2부 -->

군터는 퇴청한 후에 엉겨 붙는 보리스와 적당히 어울려 준 후에 집으로 돌아와 언제나처럼 땀으로 목욕을 했다. 그러다 벨리사가 돌아오자 그녀를 맞았는데, 돌아온 벨리사의 얼굴이 예상과는 달랐다.

군터는 벨리사가 웃으면서,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흥분하거나 조금은 얼이 빠진 얼굴을 한 채 돌아올 것이라 예상했었다. 보기만 해도 답답할 만큼 몸에 꽉 끼는 옷을 입고 시도 때도 없이 호호호 웃음을 나누며 춤을 추는 여인들의 놀이는 틀림없이 벨리사에게 생소한 경험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군터는 묘하게 기운이 빠진 것 같은 그녀의 기색에 바로 묻지 않고 있다가 침실에 함께 누웠을 때 넌지시 말을 꺼냈다.

“아뇨.”

벨리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내가 좀 한심해서요.”

“왜?”

그녀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군터는 굳이 추궁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그러니 곧 힘 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파티에 온 사람들. 전부 다 기품이 있더라고요. 나누는 이야기들도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들이 많고…막 계속 말을 하는데, 저는 끼어들지도 못했어요.”

“기품은 무슨.”

군터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그의 팔에 기댄 벨리사의 머리를 끌어안으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허영일 뿐이야. 아무것도 이룬 적 없고, 이룬 것 없는 여인네들이 그럴싸한 헛소리들을 지껄여대는 거지.”

“어떻게 알아요?”

“그런 인간들을 제법 알거든.”

그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류. 그런 이들과 화려한 조명 아래서 콧대를 치켜세운 여인네들이 뭐가 다르겠는가.

“그 인간들은 하루 종일 어떻게 하면 남보다 우월해보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자들이니, 마음 상할 필요 없어.”

벨리사가 피식 웃었다.

“저라고 다른가요 뭐.”

“음?”

“저야말로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하지만 오늘 간 파티에서 저는 당신의 아내라는 이유만으로도 떠받들어졌거든요. 그러니 제가 다른 부인들을 깔볼 수 있는 처지는 아닌 거죠.”

“뭐, 그도 그렇군.”

따스한 위로라도 바랐던 것인지 벨리사의 입이 비죽 튀어나왔다. 군터는 그녀의 앞으로 나온 입을 입술을 부딪쳐 도로 밀어 넣었다.

“그럼 당신도 하면 되잖아. 이제부터라도.”

“응?”

“오늘 당신이 본 여인네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잘 했을까? 그럴 리가 없잖아. 그들도 분명 처음에는 당신처럼, 아니 당신보다 더 헤맸을 걸.”

“…그럴까요?”

“물론.”

“하지만 당신은 그런 사람들을 안 좋아한다면서요.”

“맞아. 그렇지만 당신은 예외지.”

“왜요? 왜 난 예외인데요?”

짓궂은 웃음이 떠오른다. 얼굴에는 옅은 홍조가 떠올라 있다. 군터가 진하게 입을 맞춘 후에 은근슬쩍 손을 내려 그녀의 가슴을 괴롭히고 있던 탓이다.

“이제 알려줄게.”

말로 하는 대답은 이제 질렸다. 군터는 장난치듯 손을 놀리는 것을 끝내고 노골적인 괴롭힘에 들어갔다. 곧 후끈한 열기가 침대 위에 몰아쳤다.

*

군터는 곧 돌아올 막시밀리언을 위해 도시의 정비에 열중했다. 뭐, 열중이라고 해봐야 사실 밑에서 올라오는 보고서 및 제안들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는 것뿐이었지만 말이다.

“동원할 수 있는 바람잡이들은 모두 풀어뒀습니다.”

직접 돈으로 인원을 끌어 모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는 비용도 비용이고 현장의 분위기가 제대로 살지 않는다. 실 달린 인형처럼 규칙적인 박자로 박수나 치면서 대충 목소리를 내겠지.

그러니 직접적으로 돈을 뿌리는 것보다는 바람잡이들을 통해 분위기를 깔아두는 것이 더 낫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에게는 꽤 유능한 바람잡이들이 다수 있다. 미겔의 도적 출신 부하들 말이다. 도적질과 입담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미겔의 부하들은 바람잡이로서 선동실력이 상당했다. 이제껏 몇 번씩이나 그 솜씨 덕을 본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별 걱정은 없다.

‘계집 하나 때문에 이 난리라니.’

누가 듣는다면 경을 칠 소리지만 속으로야 뭔 생각을 못하겠는가. 군터는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들었지만 잊어먹은) 리에론의 아가씨를 떠올리며 내심 툴툴 거렸다.

“엿새 뒤다. 준비에 부족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옛.”

엿새는 금방 지나갔다. 마침내 막시밀리언의 귀환일이 되었다. 해도 제대로 뜨지 않은 새벽녘부터 병사들이 바삐 움직였다. 날이 밝았을 때는 성문에서부터 사령관저까지의 길이 완벽히 통제되었다. 눈을 비비며 집을 나선 시민들은 오늘이 그날임을 알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두커니 선 병사들 주변을 서성였다.

“무슨 일이야?”

“멍청이. 오늘 사령관께서 신부를 얻어 오시잖아.”

소식이 느렸던 이들도 곧 오늘 무슨 일이 있는지 알게 됐다. 오늘도 어김없이 총출동한 바람잡이들이 열심히 퍼뜨리기도 했고, 다른 시민들이 알려주기도 했다. 정오가 다 되어갈 무렵에는 길거리에 사람들이 넘쳐났다. 평소 같았으면 따가운 햇살을 피해 집 안에서 쉴 사람들도, 일터에 나갔을 사람들도 괜히 어슬렁거리며 분위기를 살피는 것이다.

“참 웃긴단 말이야. 자기들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데 뭐가 그리 좋다고.”

벌써부터 모인 인파를 보며 미겔이 클클 웃었다. 그러자 그의 수하 한 명이 말했다.

“그럴 만도 하죠. 이 심심한 도시에 이만한 행사가 언제 또 있겠습니까. 그리고 아랫것들은 높으신 분 얼굴이라도 한 번 보는 걸 특별한 경험으로 여기니까요.”

“뭐…그렇긴 하지.”

“그나저나 저 양반은 무슨 전쟁터 나가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차려 입었대요?”

“훔쳐보지 마라. 그러다 눈깔 파이는 수가 있다.”

“에이. 설마. 거리가 얼마인데.”

“부하가 일러바칠 수도 있지. 저기 봐라. 노려보고 있잖냐.”

“어헉!”

찔끔한 수하가 재빨리 시선을 돌리며 표정연기를 시도했다. 미겔은 클클 웃으면서 다시 한 번 인파를 내려 보았다. 족히 수천은 되어 보이는 인원이 거리에 득시글거리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이 모든 이들이 오직 두 사람을 보기 위해 모였음이다. 이 어찌 대단하지 않은가.

“왜 그러지?”

살라스의 물음에 날카롭게 눈을 치뜨고 있던 할렌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도적놈 하나가 대장님을 흘겨보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기분 탓이겠지. 두 눈이 뽑히고 싶지 않고서야 감히.”

“예. 중요한 날이라고 며칠 전부터 계속 신경을 썼더니 조금 과민해졌나 봅니다.”

“그럴 수도 있지. 어쨌든 오늘이 마지막이다.”

“예. 다행스럽게도 말이죠.”

굳은 표정을 금세 풀고 고개를 좌우로 꺾는다. 그 모습이 제법 여유로워 보였다. 그에 살라스는 자신만 긴장하고 있는 것인가 싶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언제부터였지.’

거칠고 성질 급하던 노예 꼬마를 기억한다. 자신을 보며 왠지 모를 호승심을 드러내던 녀석. 그 녀석이 면천이 되고, 십인장이 되더니, 백인장까지 됐다. 그리고는 부인까지 얻고 아이를 낳아 아버지가 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머리에 열이 차오르던 꼬마는 이제 없다.

‘가족이 생겼기 때문인가.’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된다는 건 사내를 더욱 자라게 하는 것인가. 한창 긴장이 되는 와중에 살라스는 전혀 뜬금없는 상념에 사로잡혔다. 군터가 다가와 말을 걸지 않았다면 한동안 정신을 빼놓고 있었으리라.

“병사들의 배치는?”

“…아, 예. 문제없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잠시 참아둬라.”

“송구합니다.”

군터는 살라스가 평소와는 달리 조금은 느슨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살라스야말로 요 며칠 동안 가장 고생한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말이다. 단련된 육체는 멀쩡하더라도 정신적으로 피로할 수 있다.

“보고! 사령관께서 곧 당도하십니다!”

“알겠다.”

벌써 몇 번째 왔다 갔다 하고 있는 병사가 숨을 헐떡이는 사이 군터는 활짝 열린 성문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확실히, 저 멀리서 희미한 점이 점점 커지는 게 보였다.

*

마차의 창문으로 말을 탄 미트라스가 보고하고 갔다.

“곧 도착하겠군.”

막시밀리언은 맞은편에 다소곳이 앉은 여인을 보고 말했다.

“조금만 더 참으시오.”

“괜찮습니다. 힘들지 않습니다.”

푹신하게 깔린 가죽이며 담요는 확실히 편해 보이지만,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한 번도 도시 밖으로 나온 적이 없는 아가씨에게는 최대한 느슨하게 짠 일정도 상당한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리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니, 막시밀리언은 그런 그녀의 노력과 마음 씀씀이가 가상하게 느껴졌다. 저 인내심이 무엇을 위한 인내심인지는 둘째 치고 말이다.

“사령관님. 도착했습니다.”

와아아아아!

마차 안을 울릴 만큼 큰 소리가 바깥에서 파고들었다. 막시밀리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맞춰 마차의 문이 열렸다.

“걸읍시다. 우리를 위해 모여 준 이들에게 인사나 건네면서 말이오.”

“예.”

마차에서 내려 손을 내미니 여인이 그 손을 잡았다. 부드러운 흰 장갑이 마차 밖으로 나오자 시민들의 함성이 더욱 커졌다. 여인, 카트리나 리에론은 순간 멈칫했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마차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아…….’

무표정한 얼굴로 나온 그녀였으나 시야를 가득 메우는 인파에는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천 쌍의 눈이 그녀를 향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지간한 강심장이라도 태연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와아아아아!

막시밀리언! 막시밀리언! 막시밀리언!

막시밀리언은 카트리나 리에론의 손을 붙든 채 천천히 걸으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가 웃으며 바라볼 때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의 시민들이 막시밀리언의 이름을 외쳤다. 평소라면 불경스러운 일이었겠지만, 지금만은 예외였다. 지금 시민들을 들끓게 하는 열기는 명백히 호의였으므로.

“시민들이 막시밀리언님을 좋아하는군요.”

“하하. 내가 내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랑거리 중 하나요.”

막시밀리언은 시민들을 수탈하지 않았다. 정확히 받을 만큼의 세금만을 받고 수시로 시민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간혹 있는 축제 때 간간이 얼굴을 비추기도 하고, 그의 이름으로 형편이 어려운 시민들에게 구휼식량을 베풀기도 했다. 바람잡이들을 통해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물론이다. 이러니 어찌 시민들이 그를 좋아하지 않겠는가.

다른 권력자들이 시민들로부터 재물을 긁어모을 때, 막시밀리언은 그들의 환심을 긁어모았다. 그 효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참. 저 친구는 오늘 같은 날에도…….”

카트리나 리에론은 막시밀리언이 보는 곳을 따라 보았다. 그곳엔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드는 사내가 중무장을 한 채 동상처럼 흔들림 없이 서 있었다.

========== 작품 후기 ==========

개인적으로 ntr은 좋아하지 않는지라...

컴퓨터 관련 지식은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쉽지가 않네요. 어쩌면 이번 일이 기회(?)가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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