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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168화 (168/1,064)

<-- 2부 -->

리에론의 혼담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이후, 막시밀리언은 곧장 살마드로 사람을 보냈다. 군터는 이번에도 자신이 가야 하는가 싶어 살짝 꺼려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우려와는 달리 이번에 움직인 것은 위벨이었다.

“이번에는 위벨, 자네가 가주게. 이번 일에 적임자는 자네라는 생각이 드는군.”

“예.”이번의 일은 뚝심보다는 매끄러운 혀와 빠른 눈치가 필요했다. 혼담이 그대로 진행될 경우 막시밀리언의 장인이 될 사키드 리에론과도 여러 이야기를 나눠야 하고, 무엇보다 파비우스 리에론과의 협상도 있다. 전자도 중요하고, 후자의 경우는 핵심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다. 말 안 해도 알고 있겠지?”

“감찰관의 인사권이 아니겠습니까.”

위벨이 담담히 답하니 막시밀리언이 씩 웃었다.

“맞아.”

군사도시에서 사령관은 전권에 가까운 막강한 권력을 지니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마음 내키는 대로 다 해치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타국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지만 적어도 제국의 관료체계에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살마드의 성주가 총독의 견제를 받는 것처럼 도시의 사령관에게도 견제를 위한 존재가 있다. 그것이 바로 감찰관이다.

이 감찰관이라는 직책은 위글로우가 아니라 주도 소속의 관리로, 정확히는 총독부 휘하다. 도시를 다스리는 사령관이 실정하거나 혹은 역심을 품지는 않는지 감시하며 총독에게 보고를 올리는 게 감찰관의 역할이다. 사령관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상대.

그나마 막시밀리언은 다른 지역의 사령관들에 비해서는 감찰관과 사이가 나쁘지 않은 편이다. 딱히 트집잡힐 일을 하지도 않았고, 종종 섭섭지 않게 감찰관의 비위를 맞춰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사령관과 감찰관은 태생적으로 어우러지기 힘든 관계.

하지만 만약 뜻대로 되어 감찰관의 인사권을 쥐게 된다면, 예를 들어 이 자리에 있는 수하들 중 하나를 감찰관으로 앉히기라도 한다면 막시밀리언은 위글로우에서 더 이상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어진다. 막말로 대놓고 병사들을 동원해 지금도 도시 곳곳을 서성이고 있을 염탐꾼들을 도적의 하수인으로 몰아 처형한다 해도 누구 하나 그에게 뭐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사령관의 실정을 꼬집고 비판하며, 지방정부에 상소를 올릴 수 있는 이는 해당 도시의 감찰관뿐이다. 그런데 그 감찰관이 사령관과 완벽한 한통속이 되어 눈을 감는다면, 누가 사령관의 비행을 끄집어낼 수 있겠는가. 이는 곧 도시의 사령관이 타국의 영주와 같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됨을 의미한다.

“내가 감찰관의 인사권을 손에 넣게 되면 그리몰드와 올리네이스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몰드와 올리네이스는 트라벤이 처절히 몰락한 뒤로 온순한 동업자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일 리에론과의 혼담이 스멀스멀 퍼지기 시작하면, 그리고 막시밀리언이 기어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나면 그들은 더 이상 그런 어정쩡한 태도를 고수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들은 선택의 순간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고, 무얼 선택하게 될 지는 자명하다. 그들은 결코 어리석지 않으니까 말이다.

“미겔.”

“예.”

“늙은이를 잘 감시해라. 얌전한 노인네지만 내가 자기를 치워버리려 한다는 걸 알게 되면 어찌 나올지 모른다.”

“붙여둔 눈을 더 늘리겠습니다.”

이야기가 오가는 중에 군터는 말석의 미겔을 무심히 쳐다봤다.

본래 이런 은밀한, 혹은 지저분한 일은 코르넬의 몫이었다. 그러다 코르넬이 막시밀리언의 부관 겸 호위 역할을 하게 되면서 그의 일이 군터에게 돌아왔고, 그 뒤로는 줄곧 변함이 없었다. 저 미겔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미겔은 도적 출신답게 수완이, 그러니까 어두운 일의 처리에 아주 능숙했다. 그의 수하들도 그런 일에 전혀 거부감이 없으며, 뒤탈을 남기지 않는 깔끔한 일처리를 선보였다.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 음지의 일은 온전히 그의 몫으로 넘어간 상태.

어떻게 보면 본래 자신이 맡던 일을 빼앗긴 셈이니 마음이 편치 않을 법도 하지만, 군터는 딱히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애초 원해서 한 일도 아니었다. 필요했고, 해야 했으니 한 일일 뿐. 깔끔하게 있을 수 있다면 그럴 일이지, 누가 자기 손을 일부러 나서서 더럽히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그는 미겔이라는 사내에 대해 아직까지 확신을 갖지 못했다. 반신반의하고 있다는 말이 적당하리라.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만.’

미겔을 믿는 것도 막시밀리언이고, 쓰는 것도 막시밀리언이다. 만약 미겔이 사고를 친다면 그 뒷감당을 할 사람도 막시밀리언이다.

“맡겨 주십시오.”

막시밀리언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이는 미겔을 일별하고 군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군터는 집에 돌아와 아비에게 엉겨 붙는 보리스와 놀아주고, 여전히 잠이 많은 실비아를 조용히 바라본 뒤에 벨리사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늘 그랬던 것처럼 연무장에서 땀을 흘렸다.

“어떠십니까?”

군터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모페이브가 물었다.

“이젠 거의 느껴지지 않는군.”

아무리 집중해서 느껴보려고 해도 몸의 이상은 감지되지 않는다. 정확히는 신체 능력의 향상이 말이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근 한 달째 매한가지니 이제는 확실하다 볼 수 있다.

모페이브가 주장한, 칸젤이 군터가 이끌어낸 술력을 알 수 없는 술법에 가져다 쓴다는 가설은 이제껏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이지?”

모페이브의 가설을 거꾸로 뒤집으면, 신체 능력의 향상이 그쳤다는 것은 칸젤의 술법이 그쳤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여전히 술법을 사용하지 못하는가.

“신체 능력의 향상은 술법이 발현되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인가?”

“증거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거지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게 있다, 이건가?”

“그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게 아니고서는 가설 자체가 틀렸음을 인정해야 하는 꼴이고 말입니다.”

“그렇군.”

또 다시 미지의 한복판에 놓이게 되었지만 전과 같은 답답함은 없었다. 어차피 모페이브면 몰라도 그가 고민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닐뿐더러, 칸젤이 그에게 나쁜 작용을 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엿한 집사로군. 전혀 어색함이 없어.”

모페이브가 씩 웃었다.

“다행이군요.”

“지금의 생활이 마음에 드나?”

“예. 좋습니다. 여유도 있고, 하고픈 연구도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요.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모페이브는 집사 일을 하면서 주어지는 개인시간에 술법 연구를 했다. 술법이라는 것이 돈 잡아먹는 귀신이라 평범한 집사의 봉급으로는 감당하기가 불가능하지만, 그는 보통의 집사가 아니니 가능했다. 군터가 그에게 술사를 부리는 돈으로는 싸지만, 집사를 부리는 돈으로는 차고 넘치는 봉급을 주었기 때문이다.

“…….”

군터는 잔잔히 웃는 모페이브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진심인 것 같지만, 딱히 저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상관은 없다. 어느 쪽이든 간에 어차피 지금도 은밀히 그를 감시하고 있는 수하들은 계속 할 일을 할 테니까.

과민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군터로서는 이게 당연한 일이다. 그는 가족들과 가까이 있는 이들 중 누구 하나라도 위험요소가 있다면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에 하나라도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다면,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안 계시는 동안 찾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쯧! 꼭 만나야 하나?”

“추리고 추린 겁니다.”

“…하는 수 없지.”

사령관의 최측근이자 부사령관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은 위글로우 권력의 최상부에 위치해 있다는 뜻. 자고로 세상 어디든, 인간이 사는 곳에서는 권력 주변에 사람이 꼬이기 마련이다. 그런 일종의 진리는, 제아무리 군터라 해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그가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만 지킨다 해도, 세인들은 어떻게든 눈도장을 찍으려들기 마련이니까.

“참으로 귀찮은 자리군. 차라리 그때 거절할 걸 그랬나.”

그냥 하는 푸념일 뿐이다. 그가 아니라면 누가 부사령관 직을 맡았겠는가. 다만 그는 이런 실없는 소리를 입 밖에 낼 정도로 권력의 향을 쫓는 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너무도 피로하고 귀찮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호를 닫아걸고 그들을 마냥 멀리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선물을 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만나 얼굴만 익히는 것이 아닙니까. 좋게 생각하시지요.”

“의도가 뻔히 보이는 작자들이 아닌가.”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지요. 다들 그런다면 모르는 척 따라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나보다 낫군.”

군터가 쓰게 웃자 조금 망설이던 모페이브가 입을 떼었다.

“익숙하지 않아 그러신 것일 뿐입니다. 맞지 않는다고 하여 자꾸만 피해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군터의 입가에 걸린 웃음이 진해졌다.

“좋은 조언이다. 조금 아프긴 하지만.”

“주제넘었습니다.”

“아니야. 그 말이 맞다. 내가 너무 소극적이었던 것이 사실이지. 하지만 어쩌겠나.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것을. 그래도 나름 노력하고 있으니 너무 타박은 하지 말지.”

“타박이라니요. 제가 어찌…….”

당황했는지 모페이브의 말이 빨라졌다. 그를 보며 군터는 모페이브에 대한 신뢰도가 조금 더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만일 그가 속에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면 지금처럼 거슬릴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 어렸을 적, 그의 어미는 그를 앉혀놓고 여러 가지를 가르쳤었다. 가르침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중 하나가 바로 달콤한 말을 하는 자를 경계하고 쓴 말을 하는 자를 곁에 두라는 것이었다. 그 가르침에 따르면, 모페이브는 가까이에 둬도 될 자가 아니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믿을 수 있다는 건 아니지만, 전보다는 보는 시선이 부드러워졌다.

*

“이랴!”

군터는 간만에 직접 기병 백여 기를 이끌고 도시 주변을 돌았다. 기수가 들고 있는 깃발은 그를 상징하는 문장기다. 검이라기에는 너무 긴, 칸젤과 같은 검창이 방패와 맞물린 모양. 그가 천인대를 이끌게 되면서 직접 고안한 문장이었다.

그의 깃발 아래, 백여 기마는 힘차게 내달렸다. 종종 상행을 나선 것으로 보이는 무리들이 보였다. 멀찍이서 먼지구름을 피어내는 기병들을 발견한 그들은 하나 같이 가던 길을 멈추고 시선을 던졌다.

“이제 대충 한 바퀴 다 돈 것 같습니다만.”“아직 날이 저물려면 멀지 않았느냐. 조금 더 둘러보자.”

수하가 말했지만 군터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순찰은 핑계에 불과했다. 그저 바람을 쐬고 싶었을 뿐.

쿠센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다시금 배를 차니 신명나게 울어재끼며 내달렸다.

========== 작품 후기 ==========

먼저 늦어서 죄송합니다. 며칠 동안 거의 글을 못 썼더니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잘 안 움직이네요. 차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리고 전편에 사나운 댓글이 있어 불량이웃 등록 후 삭제를 하였습니다.

먼저 말씀드리면 저는 독자분들의 댓글을 단순히 비판조라 하여 삭제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일리가 있고 없고를 떠나 그 어조에 최소한의 예의만 있다면 놔두는 편입니다.

하지만 대뜸 반말조로, 제가 느끼기에 그저 시비성 댓글이라면 삭제합니다. 이는 제 멘탈 유지를 위한 것입니다. 그런 몇몇 분들의 욕받이 노릇을 하고픈 마음도 없을뿐더러, 그런 분들 때문에 제 페이스가 흐려진다면 평범히 함께 해주시는 다른 독자분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댓글을 삭제하고, 나아가 불량이웃 등록까지 하는 경우는 단 한 가지입니다. 제가 보기에 시비를 위한 댓글일 경우입니다. 잣대가 너무 주관적이라 하실 수 있지만, 저는 바보가 아니라 그냥 하는 말과 시비는 구분이 가능합니다. 부디 작가와 독자라는 관계를 떠나,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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