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터-159화 (159/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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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식은 엿새 축제의 마지막 날로 예정되었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그 의식은 되도록 많은 위글로우의 시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더 없이 성대하게 치러질 계획이었다. 막시밀리언은 이번 세례식을 통해 위글로우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공고히 쌓고자 했다. 단순히 성직자 한 명을 불러 세례를 받는 것뿐이지만, 여명 교단의 주교라는 지위는 그것을 가능케 할 만한 힘이 있었다.

“하하. 평소 에르몬드님의 명성을 익히 들어 왔습니다. 비록 직접 뵌 적은 없었으나 마음 속 깊이 주교님의 인품을 흠모해왔던 바. 오늘날 이리 기회가 되어 뵙게 되었으니 제 마음이 얼마나 들떴는지 주교님께서는 짐작도 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허허허. 사령관께서 이 보잘 것 없는 노구에게 너무 금칠을 하시는군요.”

처음으로 대면한 자리에서의 대화 분위기는 제법 훈훈했다. 주교 정도 되는 자가 이런 벽지까지 불려 다니는 것이 불쾌할 수도 있으련만, 사전에 막시밀리언이 부족함 없이 성의를 표한 덕인지 불편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허나 문제는 순조로웠던 대면일 이후에 생겼다.

“끄응.”

사실 딱히 대단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막시밀리언이 에르몬드와 친목을 도모하려 했는데 그런 시도가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것뿐이었으니. 특별히 둘의 사이가 틀어진 것도 아니었고, 세례식도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막시밀리언은 이 문제를 상당히 중하게 여겼다. 그는 이번 세례식을 통해 위글로우 내에서 자신의 위상을 올림과 동시에 여명 교단의 주교인 에르몬드와 연을 맺고 싶어 했다. 하긴, 어느 누가 그렇지 않을까?

“정말 까다로운 노인네로군.”

막시밀리언은 사전에 에르몬드에 대해 조사할 만큼 조사한 상태였다. 그가 재물에 그다지 관심이 없으며, 유일하게 밝히는 것이 예쁘장하게 생긴 어린 소년들. 즉, 미동이라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하여 한 달 전부터 은밀히 노예상인들을 통해 미동을 사 모아왔다. 오직 에르몬드의 환심을 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눈이 너무 높군. 역시 주교라 이건가.”

나름대로 열심히 모으고 선별한 미동들이 에르몬드의 눈에는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막시밀리언이 연회 후 은밀히 보낸 선물들은 정중한 사양의 말과 함께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이러다 괜히 미운털만 박히는 것 아닌지 모르겠군.”

미동을 밝힌다는 것쯤이야 온갖 은밀하고 지저분한 취미가 넘쳐나는 고위층의 세계에서는 딱히 흠 잡힐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세간에 드러내놓기에는 부끄러운 부분임이 분명하다. 한 두 번이면 모를까 마음에 차지도 않는 선물을 계속해서 보내면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상할 수 있다. 하여 막시밀리언은 고심에 차 있었다.

그냥 이대로 없던 일인 셈 치고 넘어가도 문제는 없다. 세례식은 문제없이 치러질 테고, 그러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막시밀리언은 자그마한 성과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어떻게든 에르몬드와 친분을 쌓을 생각이었다.

“거 참. 평범하게 금붙이나 좋아할 일이지…….”

준비해둔 노예들이 퇴짜를 맞았으니 당장 에르몬드의 마음에 들 만한 미동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그렇게 막시밀리언의 미간에 잡힌 주름은 시시각각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

군터 역시 막시밀리언의 고민에 대해 알았다. 막시밀리언은 군터에게 그의 은밀한 고민을 가감 없이 터놓았다. 군터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군터는 그가 자신이 그런 추잡한 것들에도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느꼈다.

‘짜증나는군.’

대체 군인인 자신이 늙은 사제의 변태적인 취미를 신경 써야 하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지위가 높을수록, 더 권력에 다가갈수록 더 많은 원치 않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막시밀리언은 자신이 이런 것들에 차차 익숙해지리라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익숙해지기는커녕 회의감만 늘어나고 있었다.

‘차라리 카리비온 하야신 공을 따라갈 것을 그랬던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막시밀리언에 대한 불충이고,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자꾸만 머릿속에 아쉬움이 맴돌았다. 만일 그때 눈 딱 감고 카리비온 하야신을 따랐더라면, 그랬다면 이런 지저분한 꼴을 보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뭐, 처음부터 몰랐던 건 아니지만.’

막시밀리언이 군인답지 않다는 것은 진즉부터 알았다. 그럼에도 그를 따랐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가 베푼 은혜? 물론 그것도 있지만 그를 따라가면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다는, 출세욕도 한 몫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어느덧 천인장이다. 더 올라가고픈 마음이야 당연히 있지만, 십인장으로 구를 때처럼 갈급하지는 않다.

‘어쩌면 배부른 투정일지도 모르지.’

그렇게 조금은 불퉁하게, 조금은 울적하게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차였다.

“대장님. 살라스입니다.”

“들어와라.”

무장한 채 발소리를 죽이며 들어온 살라스가 오늘 하루의 일들을 간략히 보고했다. 여기까지는 매일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살라스는 보고를 끝나고 나서도 무언가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보고를 듣는 내내, 끝난 후에도 묵묵히 술잔을 기울이던 군터가 살라스의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냐.”

“수하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일전의 그 미겔이라는 자가 사령관님을 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후에 사령관께서 크게 기뻐하시면서 그 자와 따로 술자리를 가지셨다고 하더군요.”

“…….”

“어찌 하시겠습니까. 명을 내리시면 은밀히 알아보겠습니다.”

군터는 대답 대신 들고 있던 술을 벌컥 들이켰다.

“알아봐라.”

화가 나거나, 시기심이 들지는 않았다. 일개 도적놈에게 그런 감정은 가당치도 않다. 단지 막시밀리언에게 실망을 느꼈을 뿐이다.

‘아무리 쓸모가 있으면 쓴다지만, 그 따위 저열한 도적놈을.’

군터는 살라스에게 명을 내리고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일의 전모를 들을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미동의 수급에 대한 일이었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미겔이 미동을 몇 구해왔고, 그에 에르몬드가 크게 흡족해 했다는 것이었다. 그에 막시밀리언도 덩달아 기뻐했고 말이다.

“사령관께서 그 자에게 주연을 베푸실 때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하니, 상당히 기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랬겠지.”

군터는 막시밀리언이 에르몬드의 환심을 사는 일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고 있었다. 그 곤란한 문제를 해결해준 도적놈이 얼마나 예뻐 보였겠는가.

“그 자가 신경 쓰이십니까.”

“아니라면 거짓말이지.”

“줄곧 주시하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내버려둬라.”

“예? 허나…….”

“지켜본다고 해서 딱히 뭘 할 수 있겠느냐. 사령관께서 직접 그 녀석을 거두셨다. 괜한 곳에 힘쓰지 말고 세례식에 대한 준비나 철저히 해라. 그것이 우리의 일이다.”

“…예.”

살라스는 슬쩍 군터의 기색을 살폈다.

씁쓸한 표정으로 또 다른 술병을 집어 드는 그의 모습은 이전에는 본 적 없던 것이었다. 전에 없이 낯선, 조금은 무기력해보이기까지 한 모습에 살라스는 얼굴도 본 적 없는 미겔이란 자에게 분노를 느꼈다.

‘도적놈 따위가.’

살던 마을을, 가족을, 지인들을 모두 도적들에 의해 잃어버린 살라스였다. 그렇기에 본래부터 도적들에 대해 증오를 품고 있었는데, 비록 이제는 손을 뗐다 해도 도적 출신인 자가 존경하는 상관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있으니 냉정한 마음에도 절로 적개심이 끓어올랐다.

“날랜 녀석들로 붙여라.”

그래서였다. 처음으로 군터의 명에 거스른 것은.

“솜씨가 뛰어난 자라 하니 발각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고, 수상한 행동을 보이면 즉시 보고하도록.”

“옛.”

*

세인들이 모르는 사이 은밀한 곳에서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시간을 착실하게 흘렀고, 마침내 세례식의 날이 밝았다.

최대한 화려하게 의식을 치르길 원하는 막시밀리언 덕분에 다른 누구보다 바빠지는 것은 바로 병사들이었다.

최대한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 예정인 만큼 그들을 통제하기 위한 병사들의 노력도 커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무대 위로 오르는 이들이 도시의 통치자인 사령관과 바크렌 주 전체에 단 둘 뿐인 여명 교단의 주교가 아니던가. 지휘관들의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덩달아 병사들도 같은 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오부터 시작이다. 의식이 다 끝날 때까지 모두 긴장을 풀지 않도록.”

군터는 아침부터 직접 중무장을 하고 나와 현장 통제 임무를 수행했다. 사실 이런 일은 살라스나 혹은 다른 휘하 백인장 중 하나에게 시켜도 되는 일이지만 그는 솔선하여 땡볕 아래 나섰다.

“군터님이야.”

“어이, 어이. 밀지 말라고.”

“조용히 해. 괜히 소란 피우면 잡혀갈지도 몰라.”

전장에 나갈 때와 다를 바 없이 완전무장을 하고 칸젤을 든 채 단상 위에 서 있는 군터의 모습은 그가 딱히 기세를 드러내지 않아도 상당한 위압감을 자아냈다. 시민들이 절로 입조심을 하게 되는 이유였다.

데엥-!

정오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이미 광장에는 무수한 인파가 몰려 있었다. 자발적으로 온 이들이 반이라면 미리 풀어둔 몰이꾼들의 선동 아닌 선동에 이끌려 모여든 이들이 또 반이었다. 거의 모든 위글로우의 시민이 이 자리에 모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그 수는 광장이 발 디딜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가득 찰 정도로 많았다.

와아아아-!

정오의 종소리가 길게 울려 퍼진 후. 곧이어 막시밀리언이 얇은 천 옷 한 장만을 걸친 채 단상 위로 올랐다. 그리고 미리 그를 기다리고 있던 주교 에르몬드의 앞에 천천히 무릎 꿇었다.

고귀한 자리에 있는 이가 평민들이나 입을 법한 수수한 옷차림을 했다는 것은 신 앞에 미천한 종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 했던가.’

군터는 단상 아래서 의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부러 입소문까지 퍼뜨리며 거창하게 준비를 한 것에 비해 아직까지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여명 교단의 높으신 분이 직접 세례식을 주도한다고 해도 무지렁이 시민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그들을 환호케 하는 것은 당장 눈에 보이는 무언가다.

그렇게 심드렁해 있을 때였다.

에르몬드가 손에 들고 있던 자그마한 병의 뚜껑을 열더니 그 안에 들었던 것을 막시밀리언의 머리에 부었다. 투명하고 매끄럽게 흘러내리는 것이 물처럼 보였다.

물방울이 막시밀리언의 머리를 적시고 뚝뚝 흘러내렸다. 그러자 에르몬드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그저 읊조리듯 또박또박 소리를 내었으나 그 알 수 없는 언어는 모든 이들의 귀에 또렷하게 박혀들었다. 귀를 넘어 머릿속에까지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에르몬드의 손끝에서 빛이 피어올랐다. 마치 피어나는 한 송이 꽃처럼 점차 크기를 키워간 빛은 그의 손끝에서 막시밀리언의 머리로, 몸으로 옮겨갔다.

장엄하고도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일순 빛의 인간이 된 것 같은 막시밀리언을 광장의 모든 이들이 홀린 듯 바라보았다.

‘훌륭하군.’

군터의 눈에 에르몬드가 펼친 술수는 일전에 오테론에서 보았던, 카락시아를 해방하던 의식에 비하면 그저 눈속임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위글로우의 시민들은 그런 이적을 목도한 일이 없으니, 이만한 신비만 해도 눈이 뒤집힐 것이다. 실망스럽지만, 본래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다 할 수 있지 않겠는가.

========== 작품 후기 ==========

오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후기를 끝내려다가, 문득 너무 심심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라인 연재의 가장 큰 이점이 독자분들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연재를 하면서도 그런 이점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몇 작가분들이 하시는 것처럼 리리플을 하자니 딱히 말주변이 좋은 편도 아니고, 또 독자분들에게 부담을 드리는 것 같기도 해서...

그래서 생각한 것이, 혹 독자분들께서 제 글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어 이에 대해 질문해주신다면 스포가 되지 않는 한에서 답변을 해드리는 것이 어떨까... 즉, QnA지요.

물론 딱히 궁금한 점이 없다고 하신다면 할 말은 없지만서도. 혹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있다 하시면 댓글로 물어주시기 바랍니다. 설실히(?) 답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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