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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153화 (153/1,064)

<-- 2부 -->

하이글렉은 탐욕스런 자였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욕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으며 자랐다. 보통 집안의 보통 사람이라면 욕심이 많다는 말은 타이르는 것이었겠으나 그의 집안, 트라벤 가문에서는 욕심 많다는 말은 곧 칭찬이었다.

“저…가주님.”

하이글렉은 위글로우의 민정총관이라는 공직을 맡고 있었다. 허나 그는 다른 그런 감투보다는 그저 트라벤 가의 가주로 불리길 원했다. 때문에 그의 수하들은 모두 그를 가주라 불렀다.

“응?”하이글렉의 자그마한 눈이 움직였다. 그러자 수하가 말을 이었다.

“난민들도 어쨌든 관청에 인적이 등록되지 않습니까. 너무 갑자기 수가 줄어버리면…….”

“쯔쯔.”

하이글렉은 그저 혀를 찼다. 그럴싸한 이유를 말하지만, 그 속을 모르겠는가. 아랫것들의 마음이야 손 안에 두고 보는 것처럼 훤하다.

“권세를 쥔다는 게 무엇인 줄 아느냐?”

“…어인 말씀이신지.”

“재물을 번다는 건 또 무엇이냐?”

“속하는 가주님의 크신 뜻을 이해치 못하겠나이다.”

뭔지는 몰라도 바짝 엎드려야 한다는 것만큼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일까. 수하의 태도가 한층 더 공손해져 비굴한 수준까지 내려갔다. 그것이 불쾌해졌던 하이글렉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다.

“권세를 쥔다는 것은 남을 내 아래로 둔다는 것. 즉, 남을 밟고 올라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재물을 번다는 것은 무엇이냐. 남의 것을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지. 합법적으로 말이다.”

불법적으로 그리 하면 그건 도적이지만, 합법적으로 하는 것은 그저 돈벌이일 뿐이다. 그러나 이 합법이라는 것은 사실 굉장히 재미있는 것이었다.

똑같은 일을 두고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은 정당과 부당을 가르는 경계를 힘 있는 자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글렉은 그 미묘한 이치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말이다.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는 법은 아주 간단해. 나 아닌 다른 놈을 거지로 만들어버리면 되는 것이야. 너무 쉽지 않나? 그저 욕심만 내면 돼. 인간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이 욕심이라는 놈을 조금만 더 키워주면 된단 말이야. 이 쉬운 걸 왜 안 하려고 하지? 응?”

답은 알고 있다. 단지 이해를 못할 뿐이지.

‘체면? 그딴 건 나중에 챙겨도 돼.’

만약에 걸린다고 해도 문제없다. 적당히 성의를 표하면 유야무야 넘어갈 것이다. 이제껏 그래왔듯이 말이다. 이런 코딱지만 한 도시에서의 평판 따위, 알게 뭐란 말인가? 재물을 모으고 또 모아 훗날 황도의 권력가에게 천금을 안겨주고 가문의 신분을 되찾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체면이 서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몰드도, 올리네이스도…말은 그럴듯하게 해도 결국 만족해버린 게지.’

유론이나 히링이나, 적당히 안전하게 돈을 모으고 사람을 모으면 언젠가 귀족 신분이 떡하니 눈앞에 떨어질 거라고 기대하는 게 분명하다. 허나 하이글렉이 보기에 그것은 현실에 안주한 멍청이들의 아주 우스운 착각이었다.

‘욕망하는 자만이 더 존귀해질 수 있는 것이야.’

그걸 모르는 놈들은 그저 바닥이나 기면 된다. 올라가고자 하는 이의 발판이 되어서 말이다.

“조만간에 도적놈이 다음 물량을 가져올 것이다. 전에 사갔던 놈들 말고, 새로 사려 하는 놈들에게 뿌려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대놓고 하면 안 되고, 적절히 분배를 해야 하겠지.”

“하오나…지금도 물건을 찾는 자들이 많습니다. 거의 매일 찾아와 들어온 게 없느냐 묻고 있다 하던데, 물량이 있음에도 팔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래도 안 돼. 배고픈 놈이 목 막히는 줄 모르고 급하게 처먹는 법이다.”

키시아는 소량을 복용했을 때는 약이다. 원기를 북돋아주고 지친 몸에 활력을 가져다준다. 전쟁에 휘말려 낯선 도시로 스며든 난민들이 할 일이라고는 힘을 많이 쓰는 고된 일밖에는 없고, 그런 일을 하다 보면 지치고 다치기 마련이다. 그런 이들에게 싼 값에 구할 수 있는 키시아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말이다.

한 번 단물에 맛을 들인 이들은 계속해서 그것을 찾게 된다. 몸이 고단하고 삶이 고단할수록 더더욱. 하지만 그들은 점점 싼 값에 맛볼 수 있었던 단물이 더 이상 저렴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그리고 그것을 완전히 깨닫게 되었을 때는 이미 키시아의 독성에 깊이 중독되어 있겠지. 그때가 되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벗어나려 하겠지만…그렇게 쉽게 빠져나갈 수 있으면 마약이라 불리겠는가.

“시킨 일에만 충실해라. 어차피 난민 따위, 지금도 밖에 나가면 유리걸식 하고 있는 놈들이 지천에 깔렸다. 그것들은 사람이 아니다. 쓰레기지. 네가 하는 일은 위글로우의 시민들을 위해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좀 낫겠지. 응?”

이렇게 좋게 얘기를 해줘도 쓸 데 없는 가책을 느낄 것을 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다. 욕망하지 못하기에 남의 욕망에 묻어갈 수밖에 없는, 그럼으로 인해 위에서 흘러내리는 과즙을 몇 방울 받아먹는 이들.

‘멍청한 놈들이지.’

며칠 뒤가 기다려진다. 늦어도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수백의 노예가 손에 들어올 것이다. 그 다음에 또 다시 수백이. 그리고 그 다음은……

우적우적

흥분이 이니 과자를 가져가는 손이 절로 빨라졌다. 살집에 묻힌 가느다란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

‘빌어먹을.’

안 된다. 아무리 용을 쓰고 기를 써도 도저히 안 된다. 군터는 기어이 문턱을 넘지 못하는 기운을 느끼며 탄식을 내뱉었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솟아올랐던 술력이 바람을 맞은 안개처럼 흩어져버렸다.

‘재능의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모페이브는 분명 그리 말했다. 하지만 아무런 진전도 없이 계속해서 벽에 부딪치고만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짜증이 치밀었다.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면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될 듯 말 듯, 사람을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습니다. 저도 연구를 해보겠습니다.”

이유를 알아내겠다고 하지 않고 연구를 해보겠다고 했다. 이는 모페이브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속이 끓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사령술 습득이 그렇게 난관에 봉착한 반면에, 무술 수련은 나날이 즐거웠다. 하루하루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는 놀라운 일이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 성취를 얻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무공(武功)이라는 것은 결국 신(身)과 기(技)의 합이라 할 수 있는데, 둘 모두 사람인 이상 한계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정 경지 이상에 오르면 실력이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그때부터의 실력 향상이라 함은 경륜과 정신력에 의존하는 바가 거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군터는 얼마 전 신물이 사라진 순간을 기점으로 신체능력이 또 한 번 상승했다. 과장 조금 보태자면 처음 무술 훈련을 하던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성장의 때였는데, 지금 느끼고 있는 감각도 그와 비슷했다.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신물이 힘을 다해 사라진 이상, 더 이상의 급격한 성장은 기대하기 힘들 터다. 어쩌면 지금의 성장이 끝나고 나면 더 이상 육신의 힘을 기르는 것은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실컷 즐겨둘 생각이었다. 이 순간의 참기 힘든 희열을.

쿵!

가볍게 내딛은 발이 심상치 않은 소리를 내며 땅을 흔들었다. 손 안에서 노니는 칸젤은 긴 창검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정교한 움직임을 보였다.

‘가볍다. 너무나 가볍구나.’

이전에도 칸젤과 일체감을 느끼긴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몸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손에 쥐고 있으면 팔이 늘어난 것 같은 느낌이었고, 떨어뜨려놓아도 칸젤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알 수 있었다.

기묘한 변화였으나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마치 원래 그랬다는 듯,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살라스인가.’

연무장 바깥에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생각에 잠겨 있는 와중에도 멀리서 들리는 발걸음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따로 의식하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제는 그저 감각이 좋다 정도로 여길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살라스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도 몇 번 정도 길게 숨을 쉰 다음에야 시야에 살라스의 모습이 들어왔다. 눈에 보이기도 전에 존재를 인지한다는 건 뛰어난 청각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오히려 술법과 같은 이능에 가깝다.

이 또한 신물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선물인 것일까.

“대장님.”

“무슨 일이냐.”

“사람이 왔습니다. 사령관께서 찾으신다고 하는군요.”

“급한 일이라더냐?”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날이 지기 전에 들리라는 말만 전했습니다.”

날이 지기 전까지만 오면 된다고 하지만, 부름을 받았으면 되도록 빨리 움직여주는 것이 상관의 부름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하여 군터는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깔끔하게 씻어내고 무장을 한 채 관청으로 향했다.

“부르셨습니까.”

“아. 왔는가.”

막시밀리언이 부른 것은 딱히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가볍게 술이나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함이었다. 말하자면 상관이 아끼는 수하를 챙겨주는 것이랄까. 종종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따로 자리를 갖음으로 해서 군터가 자신의 총애를 받고 있음을 바깥에 알리려는 의도였다. 또한 이는 평소에 관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이 드문 군터를 위한 일종의 배려이기도 했다.

“앞으로 한 달 정도 후에 살마드에서 사제단이 올 것일세.”

“사제단이라 하심은.”

“여명 교단. 그것도 주교가 직접 이끄는 사제단이지.”

여명의 교단이라 함은 제국이 창조신으로 추앙하는, 원신을 섬기는 교단의 이름이었다. 그곳은 제국의 문화 전반은 물론, 신앙 같은 것에는 더더욱 관심 없는 군터조차도 알고 있을 만큼 교세가 대단한 곳이었다.

“잘은 모릅니다만, 여명 교단의 주교라 하면 굉장히 높은 지위가 아닙니까.”

순박한 물음에 막시밀리언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높다마다. 바크렌 전역에 단 두 명뿐인 주교일세. 그 위로는 바크렌 교구를 책임지는 대주교만이 있을 뿐이지.”

실상 바크렌에 있는 여명 교단의 2인자라는 소리다. 그런 자가 살마드에나 박혀 있을 것이지 뭐 하러 이런 볼품없는 도시까지 온단 말인가.

그런 의문을 읽었음인지, 막시밀리언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내가 불렀다네. 내게 세례를 해달라고 했지.”

“세례…말씀입니까.”

“주교라는 이는 참으로 비싼 몸이시더군. 그래도 돈 값은 확실히 할 게야.”

군터는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막시밀리언이 비싼 대가를 주고 불렀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 터. 군터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례 때문인지 막시밀리언은 기분이 상당히 좋아보였다. 군터는 적당히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묵묵히 잔을 비워갔다.

가볍게 마련한 자리가 끝을 향해 갈 무렵, 막시밀리언이 말했다.

“좋은 구경이 될 게야. 세례식은 광장에서 할 생각이네. 그때 자네가 호위를 책임져주게.”

“옛. 기꺼이.”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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