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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151화 (151/1,064)

<-- 2부 -->

눈을 감고 귀를 닫는다는 것은 의외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의욕을 버리고 조금 느슨해지니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회의 때마다 마주치는 호족들의 면상이 보기 싫은 것은 여전했지만 본 채 만 채 하고 넘어가면 그렇게 거슬릴 일도 없었다.

주어진 업무도 소홀하지 않게 처리했다. 다만 대충 넘기거나 하지는 않아도 전과 같이 최선을 다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의욕이 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공무에 대해서는 관심을 거두고 적당히 처리하는 대신, 군터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과 일신의 단련에 더 신경을 썼다. 벨리사와 함께 보리스를 돌보는 일이 최우선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무술 훈련과 술법 수련에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특히 술법의 경우에는 들인 노력에 비해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사령술은 사기를 다룹니다. 하지만 죽음의 기운이라는 것이 생명을 지닌 존재가 다루기에는 워낙에 위험한 것이어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시켜 사용하곤 하지요.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체를 이용한 술법입니다. 모든 생명은 죽을 때 육신에서 혼이 떠나지만, 잔념(殘念)이나 혹은 사념이라 부르는 혼의 잔재가 남습니다. 이 술법은 바로 그 혼의 잔재에 사기를 불어넣어 망령(亡靈)화 시켜 시체에 깃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술자의 통제에 따르게 하는 것이지요.”

모페이브는 땅의 술법을 주로 사용하는 술사로서, 사령술에는 조예가 없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사령술사들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술법 몇 개 정도와 대략적인 원리에 대한 것이 전부였다. 그랬던 그는 군터를 위해서 사령술에 관한 서책을 몇날 동안 탐독하고 연구하여 대략적으로 알고 있던 원리를 나름 논리적으로 재구성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군터는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는 처형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죄수의 시체를 앞에 두고 온갖 용을 써보았지만 도무지 소용이 없었다.

“끄응!”

본래라면 첫째, 그의 기를 이용해 시신에 남아있는 사기를 자극하고. 둘째, 죄수의 잔혼을 망령화 시키며. 셋째, 일어난 망령을 시신에 집어넣어 시신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둘째와 셋째는커녕, 첫 번째 단계에서부터 콱 틀어 막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몸에 깃든 기운, 술력이라 부르는 힘은 충만하게 이는 것이 느껴지는데 그것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지를 못했다. 아무리 뻗어내려고 해도 단단한 벽에 막힌 것마냥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에이잇!”

하다하다 안 되어 열이 받은 군터가 신경질적으로 발을 굴렀다. 그러자 시신에 얽매여 있던 잔혼이 힘없이 사라져버렸다.

“이런. 그러시면 안 됩니다.”

모페이브가 혀를 찼다. 잔혼이 날아가 버렸으니 이제 저 죄수의 시신은 효용가치가 완전히 상실되어 버렸다.

시체를 일으키려 할 때는 반드시 원 주인의 잔재가 필요하다. 그것은 마치 정교한 도구를 분리한 것과 같다. 본래 하나였던 것을 분리하여 나눈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다시 조립하려 할 때는 본래의 자리에 맞는 부품을 써야 한다. 육신과 혼의 관계가 그와 다르지 않으니 육신을 움직이려 한다면 반드시 본래의 혼이 필요한 것이다.

“혼이라는 것이 이리도 쉽게 날아가는 것이었더냐?”

군터가 살짝 당황하여 물었다. 그는 그저 하도 답답하여 성질을 부렸을 뿐, 잔혼을 날려버릴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니, 그는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한지도 알지 못했다.

“육신에 깃든 온전한 혼은 당연히 굳건하여 어지간한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지요. 하지만 시신에 남은 잔혼이라는 것은 결국 알맹이는 빠져나간 찌꺼기로서, 불완전한 것입니다. 따라서 위태롭지요. 그런 것이 술력의 바람 앞에 노출되었으니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대장님의 술력이 너무 강했던 것도 이유겠지만…그 강한 술력을 가지고도 왜 표출을 하지 못하시는지…….”

군터만큼은 아니지만 모페이브도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의 눈에 비친 군터는 문턱을 바로 앞에 두고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냥 딱 한 걸음만 앞으로 나오면 되는데 그걸 못해서 헤매고 있다. 그러니 지켜보는 입장에서 답답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재능의 문제인가?’

그럴 수 있다. 사실은 그 외에 다른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단 한 걸음이지만 그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술사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갈린다. 그 벽의 이름이 바로 재능이다.

‘하지만…뭔가 이상한데.’

술력을 이끌어내는 데는 문제가 없다. 능숙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뜻한 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술력의 총량도 넉넉하다. 사실 초심자 치고는 대단하다 할 정도로 충만하다. 가벼운 술법이라면 당장에 몇 번 정도 쓴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발출의 문제이지만, 보통의 경우와는 모양새가 다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름이지만 모페이브는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군터의 몸에서 이글거리는 기운이 어찌 흘러나오고, 또 어찌 나아가지 못한 채 막히는지 말이다.

‘벽에 막힌 것 같군. 정상적이지 않아.’

술력의 발출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대개 몸에서 뻗어 나온 기운이 몸에서 멀어지며 점점 옅어지다가 끝내 힘을 잃는 모양이 된다. 모페이브 자신을 비롯하여 그가 이제껏 본 모든 술사들이 그러했다. 그런데도 ‘모두’가 아니라 ‘대개’라는 표현을 쓴 까닭은, 바로 오늘 처음으로 그 ‘모두’에서 벗어나는 예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즉, 군터와 같은 경우는 처음 본다는 뜻이었다.

‘벽에 막히기 전까지의 흐름은 부드럽지는 않지만 강맹하다. 결코 힘이 부족한 것은 아니야.’

몇 번의 고민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보통 사람에게는 짜증을 유발하지만, 술사들에게는 흥미를 일게 했다. 이는 술사라는 이들이 대개 탐구자의 기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모페이브 역시 그 대개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군터가 술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강한 흥미를 느꼈다.

“아무래도 대장님이 술력의 발출에 애를 먹고 계시는 데는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특별한 이유? 그게 뭐지?”

“그것은 저도 잘 모르겠군요. 허나 연구해보겠습니다. 대장님께서도 당장은 안 되더라도 꾸준히 발출의 수련을 해보십시오.”

“당연히 그럴 생각이다.”

술법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던 군터는 생각지도 못한 암초에 짜증이 난 상태였다. 몸으로 하는 것에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던 그였기에(술법이라는 것이 몸으로 하는 것인지는 다소 모호하지만) 이런 지지부진함이 영 낯설었다.

‘될 때까지 한다.’

짜증이 이는 이상으로 오기가 치밀었다. 군터는 그이 손에 넘실대는 기운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

모페이브가 기현상에 대한 연구를 하는 동안 군터는 꾸준히 술력의 발출을 수련했다. 덕분에 몸 안에 잠들어 있는 기운을 끌어내는 데는 익숙해졌지만, 역시나 몸 밖으로 일정 부분 이상 끌어내는 데는 여지없이 실패를 거듭했다. 그것이 수련을 하기 전과 다르지 않아, 결과적으로는 나아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빌어먹을!”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짜증은 더더욱 높이 쌓여만 갔다. 그럴수록 군터는 무술 수련에 거칠게 몰두했다. 차오르는 답답함과 짜증을 풀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녹초가 될 때까지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는 매일 새벽과 밤에 미친 사람처럼 검과 창을 들고 춤을 추었다. 살을 따갑게 하는 광풍이 연무장을 휩쓸었다.

‘더 빠르게!’

상상 속에 그를 포위한 오십 네 번째 병사가 목이 베였다. 동시에 얼굴 없는 병사가 내지른 창이 그의 등을 찔렀다. 하지만 몸을 앞으로 빼며 최대한 옅게 맞았기에 바로 대응할 수 있다.

‘더 강하게!’

크게 휘두른 칸젤이 세 명의 병사를 날려버렸다. 전력을 다한 일격의 후폭풍이 밀려왔다. 뼈가, 몸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무리하지 말라는 뜻이다.

‘아직. 아직이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움직일 수 있다. 몸이 내지르는 비명은 안주하고픈 나약함의 발악이다. 한계라고 여기는 거대한 벽은 실상 무릎 높이에도 미치지 못하는 계단 한 칸에 불과하다.

그 한 칸을 오른다면!

콰앙!

검처럼 내리친 칸젤이 연무장 바닥에 거친 상흔을 남겼다. 단단한 바닥을 내리친 반동은 창신을 타고 고스란히 창대를 쥔 팔에 전해졌다. 뿌득! 하는 섬뜩한 소리가, 몸이 내지르는 비명이 거친 숨소리에 묻혔다.

‘한 번 더!’

더 이상 못 하겠다 외치는 비명을 무시한 채, 다시 한 번 힘을 불어넣어 칸젤을 내질렀다.

군더더기 없는 찌르기. 나아가는 창에 맞춰 위태로운 팔이 쭉 펴진다. 힘이 들어가는 것은 팔 뿐이 아니었다. 땅을 딛은 두 발. 지탱하는 두 다리. 이어지는 허리. 호응하는 상반신까지. 전신의 힘이 한 점의 찌르기에 모조리 녹아들었다.

우드득!이번의 비명은 컸다. 힘을 다한 전신이 일제히 내지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군터의 입가에서 굵은 선혈이 예고도 없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내렸다.

군터가 크게 비틀거리는 찰나, 가슴 한복판에서 피어오른 청량감이 경련하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찬물을 뒤집어 쓴 불씨처럼, 급격하게 퍼지던 고통은 청량감에 뒤덮였다. 비틀대던 군터도 중심을 잡고 고쳐 섰다.

‘뭐지?’

반사적으로 손이 청량감의 근원, 가슴 중앙을 더듬었다. 손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목걸이처럼 차고 다니던 신물. 바로 그것이었다.

‘이게 무슨…….’

그러나 옷을 헤치고 빼든 목걸이 끝에 응당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남은 거라곤 헐렁하게 늘어진 줄 뿐이었다. 거기에 묶여 있어야 할 자그마한 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혹 떨어뜨린 것인가 싶어 두리번거렸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급한 마음에 다시 목걸이를 살펴보니 신물을 묶고 있던 끈의 매듭이 튼튼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매듭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 묶여 있던 돌만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사라진 건가? 왜지?’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겉보기에는 볼품없는 돌멩이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그에게 실로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지금 그가 보유하고 있는 인간을 뛰어넘은 신체 능력 역시 신물 덕분에 얻게 된 것이라 군터는 짐작하고 있었다.

“…….”

칸젤이 연무장을 때리며 튄 돌조각 중 큼직한 것을 손에 쥐고 힘을 주었다. 단단한 돌이 힘을 주자마자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흘러내렸다.

‘힘은 그대로다. 아니, 오히려 더…….’

착각일 수도 있지만 몸이 훈련을 시작하기 전보다 더 가벼워진 것 같았다. 온 몸에는 힘이 넘쳤다. 방금 전까지 혹사에 시달렸던 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또 다시 일어났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혼자서 끙끙 앓다시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에게는 이럴 때를 대비한(?) 스승이 있지 않던가.

‘늙은이.’

군터는 알맹이가 사라져버린 목걸이를 풀어 손에 쥐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신물은 그의 외조모가 그에게 준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었다. 덕분에 괜히 주름진 노파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전히 떠올리기 싫은 불쾌한 얼굴이지만, 사라져버린 신물에 이제는 이 세상에 없을 그 얼굴이 겹쳐 떠오르니 뭔가 가슴 한구석에 묘한 느낌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오천을 넘겼습니다. 감격이네요. 감사합니다.

소개글을 써 주시는 분들이 계시군요. 감사드립니다.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오늘도 함께해주신 독자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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