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부 -->
위글로우의 병력은 천오백이다.
이상하게 여길 수 있다. 천인장만 해도 둘인데 어찌 병력이 천오백 밖에 되지 않는가 하고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상비군이 천오백이다. 그 중 천은 군터 천인대의 병사들이고, 나머지 오백은 위글로우에서 나고 자란 이들로 꾸려졌다. 그들은 마찬가지로 위글로우 출신이며, 천인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한 번도 위글로우를 벗어난 적이 없는 미트라스의 휘하였다. 미트라스가 지휘하는 것은 그들 오백에 유사시 동원할 수 있는 예비군 오백을 더한 천이었다. 그러니 상시 주둔하는 정규군으로만 따지면 위글로우의 병력은 천오백이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위글로우가 그리 큰 도시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 도시를 다스리는 데 있어 천오백이라는 수는 그리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본래 위글로우는 살마드 내에서 그리 알려진 도시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냐면, 제법 발품 좀 팔아봤다는 상인들에게 위글로우라는 도시를 아느냐 물어보면 열 중 여섯 정도는 들어본 적도 없다 할 정도로 말이다.
그만큼 위글로우는 내세울 것 없는 도시였다. 특산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시의 규모가 큰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교통의 요충지에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저 사냥이나 하고 고랭지 작물을 수확하여 생계를 꾸리는 이들이 모여 사는 자그마한 도시에 불과했다.
그랬던 위글로우에, 이번 전쟁의 여파로 대량 발생한 난민이 일부 흘러들어왔다. 일부라고는 하지만 살마드 북부의 도시에서 흘러들어온 난민의 수가 엄청난 수준이었기에 위글로우에 들어온 난민의 수도 상당했다. 그 수가 기존 위글로우 인구의 삼분지 이에 달할 정도였다.
가진 것이라고는 맨몸뚱이 하나 뿐인 이들이 정착을 위해 마구잡이로 밀고 들어왔으니 도시가 혼란에 빠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나마 위글로우가 군사도시로 지정되면서 천 명의 정예 군대가 들어서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위글로우는 완전히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버렸을 것이다.그러나 최악의 상황만 피했다 뿐이지, 도시의 질서가 정갈하게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한 도시를 감당하기에 상비군 천오백은 충분하지 않다. 하물며 난민으로 인해 갑작스레 인구가 폭등한 도시임에야.
“도둑이야!”
물건을 팔던 상인이 가판대까지 버려두고 헐레벌떡 달려 나왔다. 하지만 그가 목청껏 외치는 사이 조그마한 도둑고양이는 인파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사라진 후였다. 상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울상을 지었다.
상인이 가판에서 떨어져 나와 도둑고양이가 사라진 방향을 보고 있는 사이, 빈 가판 옆으로 또 다른 작은 그림자가 슬그머니 들어섰다.
덥석!
“아앗!”
거무튀튀한 빵에 손을 뻗으려던 꼬마는 뒷덜미를 휘어잡는 손길에 그대로 허공에 떠올랐다. 기겁하며 비명을 지르던 찰나, 크고 작은 흉터가 있는 험상궂은 얼굴을 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도둑은 손목을 자르지. 네 손목을 자르는 데는 큰 칼이 필요 없겠구나.”
“…딸국!”
나직한 목소리는 딱히 크지도, 사납지도 않았건만 뒷덜미가 들린 꼬마는 새파랗게 질려 딸꾹질을 해댔다. 손목을 자른다는 말 때문이 아니었다. 마주친 눈이 너무도 섬뜩했기 때문이었다. 맹수 앞에 발가벗고 선 것 마냥 몸이 덜덜 떨렸다. 때가 잔뜩 탄 가랑이 사이로 누런 물이 줄줄 새어나왔다.
군터는 그 가느다란 물줄기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러자 그와 함께 나왔던 수하 백인장 데로이가 말했다.
“달아난 놈도 그렇고, 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걸 보니 시킨 놈이 있을 겁니다.”
“잘 아는군.”
“한때는 저도 거리를 전전했었습니다. 먹고 살려면 도둑질 정도야 예사였지요.”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하는 것은 어린 꼬마 녀석의 손목이 날아가는 것이 안쓰러워서겠지. 군터는 수하의 은근한 수작질을 모르는 척 넘어가 주었다. 어차피 그도 삐쩍 마른 꼬마의 손목 따위는 별로 자르고 싶지 않았다.
“꼬마. 손목이 잘리고 싶지 않다면 두목에게 안내해라.”
“히끅! 히끅!”
눈을 응시하며 한 마디 하자 줄어들던 물줄기가 다시 굵어졌다. 군터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서 꼬마의 뒷덜미를 쥔 손을 슬쩍 멀리 뺐다.
*
“뭐야? 너희 뭐하는 새끼들이야?!”
오줌싸개 꼬마가 안내한 곳은 의외로 제법 그럴 듯한 집이었다. 물론 외진 곳에 있는데다 반쯤 썩은 것처럼 허름하여 밤에 오면 꽤 음산할 것 같은 곳이긴 했지만, 내심 예상했던 빈민촌보다는 훨씬 나은 곳이었다.
그곳에는 험악하게 생긴 사내들이 여럿 있었다. 비가 오면 물이 샐 것 같은 집에 사내놈들 여럿이 싸구려 술과 여자를 즐기고 있었다. 당연히 척 보기에도 건전한 시민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갈 곳 없는 꼬마들을 힘으로 찍어 눌러 노예처럼 부리지요. 그리고 자기들은 편히 먹고 즐깁니다. 전형적인 양아치들이라 할 수 있지요.”
데로이의 친절한 설명이 아니어도 군터 역시 대충 상황파악을 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이놈들은 구더기인 것이다. 살아 있어봐야 하등 쓸모없고, 더러운 냄새만 피우는.
이런 놈들은 청소해야 한다.
군터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무장을 하지 않고 평상복을 입은 터라 군인이라는 티는 전혀 나지 않았지만, 그의 체구만으로도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거기에 의식적으로 기세를 억누르던 것을 풀어버리면.
“으, 으으…….”
어린 애들이나 부려먹는 버러지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대장님. 여기서 죽여 버리시면 곤란합니다.”
“죽일 생각은 없다.”
군터는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맨몸으로 나섰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짧은 검은 아예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데로이에게 던져 주었다. 가볍게 움켜쥔 주먹에서 우득 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죽어버리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으아아아!”
그나마 가장 대가 세 보이는 한 놈이 지저분한 몽둥이를 들고 덤벼들었다. 군터는 가볍게 파고들어 손을 털듯 휘둘렀다. 몽둥이를 쥔 손이 튕겨나가고, 동시에 뻗은 주먹이 놈의 턱을 후려쳤다. 뼈가 박살나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리며 놈의 몸이 크게 나가떨어졌다.
“허억!”
나머지 놈들이 기함을 하며 뒷걸음질 쳤다. 오지 않겠다면 이쪽에서 갈 뿐.
군터는 빠른 걸음으로 놈들에게 다가갔다.
“끄어어어어…….”
열 명 남짓한 버러지들이 정리되는 데는 숨 몇 번 쉴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군터의 주먹이 움직일 때마다 꼭 한 명이 나가 떨어졌고, 발에 복부를 차인 녀석은 그대로 쓰러져 꿈쩍도 하지 못했다.
“이 녀석이랑 저 녀석. 죽었습니다.”
데로이가 쓰러져 미동도 않는 놈 하나를 살피더니 말했다.
한 방씩이었다. 그러나 군터의 주먹은 철퇴와 같았다. 머리를 맞은 놈들 중에 두 놈이 그대로 죽어버렸다. 군터는 개의치 않고 구석에 쪼그려 앉아 덜덜 떨고 있는 계집들에게로 돌렸다.
“창녀가 아니군. 이놈들과 한패야.”
차림새나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다. 돈을 받고 몸 팔러 온 창녀라기에는 너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마치 나도 저 꼴이 나지 않을까 우려하듯이 말이다. 그것은 쓰러진 버러지들을 한 식구로 보기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병사들을 불러 모두 끌고 가라.”
“죽은 놈은 어찌 합니까?”
“목은 베어서 내다 걸고, 몸뚱이는 도시 바깥에다 내다 버려라.”
명을 내린 군터는 이번엔 창백해진 얼굴로 딱딱하게 굳어 있는 꼬마에게 눈길을 주었다.
“가 봐라. 하지만 봐주는 것은 한 번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꼬마는 이번엔 오줌을 지리지 않았다. 군터는 쥐새끼처럼 내달려 사라지는 꼬마를 보다가 곧 몸을 돌렸다.
*
바람도 쐴 겸해서 변덕으로 결정한 시찰은 찝찝함만을 남겼다. 물론 버러지들을 두들겨 팰 때는 그럭저럭 기분이 풀리기도 했지만, 그 뒤로 꼬리를 문 생각은 좋아졌던 기분을 다시 시궁창으로 이끌었다.
‘군사를 동원하여 무력을 행사하면 시민들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
오늘 있었던 회의에서 도시의 그늘에 숨어있는 버러지들을 소탕하고자 이야기를 꺼내니 나온 말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군터는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하지만 달리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저 개소리를 길게도 늘어놓는 올리네이스 가문의 가주, 히링을 지그시 바라보았을 뿐.
회의가 끝난 후. 군터는 분을 삭이는 데 꽤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다. 그리고 뜨끈한 감정이 다 가라앉고 나서야 부하들을 물러 모아 이에 대해 이야기 했다.
“위글로우의 호족 가문은 다양한 사업에 손을 대고 있다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떳떳한 것들도 있겠지만, 음성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도 있겠지요.”
살라스의 말이었다. 군터는 그 말에 흥미를 느꼈다.
“호족 가문들이 왈패들을 밑에 두고 부린다는 이야기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겠습니까? 권세 있는 자들은 다 비슷하니까 말입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가지고도 도무지 만족할 줄을 모르지요.”
확실히 밝은 곳에서 하는 장사보다는 어두운 곳에서 하는 장사가 더 이문을 남기기 쉽다. 가장 쉽게 예를 들면, 당장 이 도시에 집도 없이 헤매는 이들을 잡아다 노예로 판다면 그게 얼마나 크게 남는 장사이겠는가.
허나 최고 명문이라 불리는 3대 가문을 비롯한 호족들은 이미 수백에 달하는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다. 권력과 금력을 지닌 이들이 무력까지 쥔 것이다. 헌데 그러고도 부족함을 느꼈단 말인가.
“…….”
군터는 말없이 의자 팔걸이를 두들겼다. 수하 백인장들이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아꼈다.
“알아보리까?”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날랜 수하들을 동원한다면 발각될 일은 없을 거라 생각됐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면 하지 않는다. 할 거라면 나중에, 막시밀리언이 돌아온 다음에 그에게 허락을 구하고 해도 늦지 않는다. 호족들과의 대립은 군터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였다.
“참. 그리몰드 가문의 초청은 어찌 하실 생각이십니까?”
오늘 회의가 끝나고 그리몰드 가문의 가주인 유론이 찾아왔다. 그의 예순 여덟 번째 생일을 맞아 잔치를 여는데 참석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가야겠지.”
내키지는 않으나 당사자에게 초대까지 받은 마당에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달리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듣자하니 열흘 전부터 준비했다고 하더군요. 엄청나게 성대하게 열릴 모양입니다.”
“그렇겠지요. 위글로우 최고 명문가라 자부하는 곳이 아닙니까. 온갖 진미는 기본에, 솜씨 좋은 악단이며 극단이며 죄다 불러 모았을 겁니다. 그자들은 그렇게 해야만 자기들 체면이 산다고 생각하는 이들입니다.”
그의 수하들은 기대가 된다는 듯 말을 했지만, 군터로서는 그런 이야기만 들어도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 또한 그가 져야 하는 의무인 것을.
========== 작품 후기 ==========
군터 정도면 귀족, 뒷배 있는 이들 제외하면 굉장히 빠른 편입니다. 겉늙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20대니까요. 뿌리 없는 천인장이라고 해도 대단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 거지요.
오늘도 재미있게 봐 주신 독자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