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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113화 (113/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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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레토는 그리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요충지에 자리한 곳이었다. 대 반군 전선의 최북단이라 할 수 있는 말레이드를 직접적으로 지원이 가능한 유일한 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티레토가 함락 당했다?

‘말레이드가 고립이라.’

고립도 문제지만, 더 문제는 티레토를 함락한 사교가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일개 성을 함락할 정도의 전력이라면 그 자리에 버티고만 있어도 말레이드에게는 심대한 위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특히 아란딜 페레모어와 오천의 군세가 빠져나가 전력이 뭉텅이로 줄어든 말레이드라면 더더욱,.

“현재 말레이드의 병력이…….”

“3개 천인대가 머물고 있지. 하지만 그 전력도 온존하리라 보기는 힘드오.”

말레이드군이 그간 가만히 성벽 안에서 웅크리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주변에서 일어난 도적무리를 소탕하는 한편, 전선이 형성되기 전 북쪽의 백성들을 이주시키며 자잘한 피해들을 보았을 테니까 말이다.

“정말 큰일이군. 혹 지금 시점에 반군이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평소의 말레이드였다면, 하다못해 오천 병력은 없어도 아란딜 페레모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걱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둘 모두 없는 상황이다. 지원을 가려고 해도 길목이 틀어 막혀 뚫고 가거나 우회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상당한 시일을 소비해야 한다.

정말 만에 하나, 말레이드가 함락이라도 되는 날에는 정말 전황은 걷잡을 수 없게 흘러갈지도 모른다. 말레이드가 떨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대 반군전선의 북쪽이 완전히 뚫린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도 엄청난 위협이지만, 말레이드가 갖는 상징성에 비할 수는 없다.

말레이드는 단순히 성 하나가 아니었다. 아란딜 페레모어와 그가 이끄는 중앙군의 둥지였다. 그곳이 함락 당한다는 것은 바크렌을 지탱하는 기둥이 무너진다는 것을 뜻한다. 아란딜 페레모어와 그가 이끌고 간 오천 병력이 건재하다해도 마찬가지다. 말레이드의 함락 소식이 알려지는 순간 바크렌군의 사기는 크게 떨어질 것이고, 백성들은 두려움에 젖을 것이다. 반면 적의 사기는 하늘을 뚫을 듯 치솟겠지.

“너무 걱정이 앞서는 것은 아니오? 아직 반군은 호르빈켈에 멈춰 있고, 말레이드는 멀쩡하오.”

말레이드는 티레토가 아니고, 오테론도 아니다. 말레이드의 성벽은 살마드에 비하면 모자라지만, 다른 북부의 도시와 성들에 비하면 견고하다. 거기에 군량도 충분히 비축되어 있다. 분명, 티레토가 무너졌다고 해서 당장 함락이니 뭐니 걱정할 단계는 아니었다.

“모르는 일이오. 그 누가 티레토의 함락을 예상했겠소? 하물며 그것이 사교의 준동으로 인한 것일 줄은 아무도 몰랐지. 이제 보니 사교의 움직임은 조직적인 것 같소. 아니 그렇소이까? 디파르그의 난이 성공했다면 이 시오도크가 지금 티레토의 꼴이 되었을 수도 있소.”

“으음.”

과민반응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꺼냈던 백인장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일찍이 디파르그와 친하게 어울렸던 이였다.

“이제는 방심할 수 없소.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이미 한 번 일어났으니 앞으로 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소?”

초원의 대군이 남하한 시점에 맞추어 반군이 발호했고, 사교와 도적의 무리가 창궐했다. 허나 이제껏 마지막 두 무리들에 대한 경계는 앞선 둘에 비해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별 위협이 안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여 근처에 있다면 토벌하는 식으로만 대처해 왔는데, 이번에 하가록의 신도로 보이는 사교도들은 그런 기존의 인식을 완벽히 깨버렸다. 앞으로 또 그런 무리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무관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만 있던 성주가 여전히 좋지 않은 안색으로 입을 떼었다.

“허면 어찌 해야겠소? 우선은…티레토를 탈환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그래야 말레이드도 숨통이 트일 것이 아니오.”

“우선은 티레토의 상황에 대한 좀 더 확실한 정보가 당도할 때까지는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병력이 자리를 비우면 도리어 이곳 시오도크나 병력을 차출한 다른 곳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티레토로 출병을 한다면 공성전을 치르게 되지 않겠습니까. 확실한 준비 없이 나섰다가는 낭패를 볼 수가 있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 늑장을 부리다가 말레이드에 변고라도 생긴다면 어찌하려 하오? 우리가 신중하게 움직이리라는 것을 적들이 예상하고 대범하게 나온다면? 그때는 출병을 할지 말지도 고민할 수 없소이다.”

군터는 성주를 비롯한 무관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사실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즉시 티레토를 탈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반대하는 측의 이유를 들으니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 여겼다.

‘어렵군.’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쪽의 말도 옳은 것 같고, 저쪽의 말도 옳은 것 같았다. 하여 함부로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 그저 점점 목소리가 높아져가는 양측의 논쟁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오늘은 이쯤 합시다. 더 확실한 정보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오. 군을 움직일 때는 움직이더라도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체 무작정 나설 수는 없소이다. 곧 더 구체적인 소식이 들어올 테니 그때 다시 논의하기로 하지.”

설전이 끝도 없이 격화되어가자 결국 성주가 나서서 중재했다. 어찌나 악을 써댔는지 얼굴까지 붉어졌던 무관들도 성주가 자리를 파하자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 * *

시간을 두고 더 소식이 들어올 때까지 지켜보자고 한지 이틀이 채 되지 않아 더 기다릴 수 없게 만드는 급보가 당도했다.

“호르빈켈의 반군이 움직였습니다! 상당한 대병력으로, 1만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향하는 방향은 북동쪽……!”

거기까지면 충분했다.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신중론을 주장했던 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즉각적인 출병을 주장했던 이들은 기세가 살아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성주님! 말레이드로 당장 원군을 보내야 합니다!”

“진정하시오. 정확한 적의 규모는 파악되지 않았으나, 말레이드는 그리 쉽게 무너질 곳이 아니오.”

“아직도 그런 한가한 소리를! 티레토를 점령하고 있는 사교의 무리가 반군과 합세라도 한다고 생각해 보시오!”

끝까지 신중론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지만 반군의 출정 소식이 도착한 순간 이미 대세는 기울어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힘을 얻지 못했고 곧 파병은 결정 되었으며, 회의의 주제는 그 규모와 편성에 대한 의논으로 접어들었다.

“오백 정도면 적당하오. 어차피 다른 곳에서도 원군을 보낼 테고, 그 이상을 내었다가는 이곳이 위태로워질 터이니.”

“음. 그 정도면 적당하겠군.”

규모까지는 순탄하게 넘어갔다. 이제는 편성. 여기서부터는 활발히 오가던 말들이 다소 줄어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여기서부터는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는 날선 반응이 돌아오기 쉬웠기 때문이다. 스스로 나서는 것이라면 모를까, 남이 자기를 전장에 밀어넣는 것에 좋게 반응할 이가 누가 있겠는가.

‘쯧.’

공성전이 벌어질 것이라느니, 이래야 한다느니, 저래야 한다느니 하는 쓸모없는 이야기들만이 오갔다. 누구도 자원하는 이가 없었다. 군인이라면 전공에 눈이 벌개져야 하건만, 말레이드에서의 전투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하고 몸을 사리는 것이다.

‘어쩔 수 없나.’

이러다가는 빙빙 신나게 말만 돌려대다가 마지막에 가 제비뽑기라도 할 판이다. 멜루니악에 있는 벨리사가 신경 쓰였지만, 어차피 이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멜루니악에 돌아가는 것은 지난할 듯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 하릴없는 곳에서 시간만 보내느니 전장에 나가는 편이 낫다.

“제가 가도록 하지요.”

“군터 대장…….”

서로 눈치만 보던 다른 백인장들이 놀라 입을 벌렸다. 성주 역시 꽤 놀란 얼굴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군터는 한심한 백인장들에겐 시선도 주지 않고 성주만 보며 말을 이었다.

“누가 가도 좋지만 되도록 빨리 결정해 주십시오. 우리가 여기서 허비하고 있는 이 시간에도 반군은 꾸준히 말레이드로 향하고 있을 겁니다. 그럼 성주님. 소관은 여기서 물러가도 되겠습니까. 제가 이끌고 있는 것이 기병대이다 보니 준비하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해서 말입니다.”

“으음. 그리 하시오.”

“예. 그럼.”

군터는 회의장을 나오자마자 수하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현 상황을 알렸다.

갑작스레 출병소식을 접한 휘하 십인장들은 조금 놀란 듯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부하들은 상관을 닮는다 했던가, 전황이 좋지 않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음에도 그들에게서 두려워하는 기색은 일절 비치지 않았다.

“그럼…언제 출발하게 되는 겁니까?”

“이르면 내일. 늦으면 모레다. 일이 있다면 그 전까지는 모두 마치도록.”

물론 할 일이라고 해봐야 뻔했다. 주머니에 있는 몇 안 되는 돈푼을 흥청망청 써 재끼면서 값싼 쾌락에 함몰되는 것이 그들이 누릴 수 있는 향락의 전부가 아니겠는가. 아마 오늘 시오도크의 유흥가는 외지인들로 인해 시끌벅적하게 붐빌 것으로 보였다.

“운이 없군. 부대에 들어오자마자 전장에 투입이라니.”

군터의 말에 모페이브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쩔 수 없지요. 어차피 전쟁 중인 것을 알고도 대장님의 밑으로 들어간 것이니, 제 선택에 대한 결과입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그의 안색은 썩 좋지 않았다.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 눈으로도 딱 보일 정도였다. 조금 있으면 손톱이라도 물어뜯을 기세라, 군터는 그의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걱정 마라. 어차피 반군이라는 놈들은 죄다 오합지졸이니. 말레이드의 성벽이 있다면 너덧 배의 병력차라도 두렵지 않다.”

“대장님만 믿겠습니다.”

“그래. 믿어라. 최소한 네 목이 날아가는 일은 없을 거다.”

모페이브의 얼굴이 슬쩍 밝아졌다. 그때 군터가 표정변화 없이 한 마디를 더 툭 던졌다.

“팔이나 다리 정도는 한 두 짝 쯤 날아갈지도 모르겠다만.”

“…….”

젊은 술사의 얼굴이 이전보다도 더 창백하게 변했다. 군터는 껄껄 웃으며 힘 있게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한 번 그의 손이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마다 모페이브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 * *

그리고 다음날 정오 무렵. 전날 밤이 되어서야 정해진 군의 편성대로 오백의 병력이 시오도크의 성문을 나섰다. 선두에는 군터가 있었고, 그의 좌우로는 멜루니악의 백인장 한 명과 시오도크의 백인장 한 명이 있었다. 백인장이 세 명 뿐인 이유는 나머지 이백의 병력이 디파르그의 사건 때 목이 날아간 이들의 휘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아직 백인장이 없었으므로, 그들에 대한 지휘는 이번 원군의 대장으로 임명된 군터에게 맡겨졌다.

“내 밑으로 삼백이라니. 나도 꽤 출세했군.”

군터의 웃음은 몇 년 사이 놀라울 정도로 바뀐 그의 처지가 아니라 눈에 훤히 보이는 얄팍한 수작을 부린 시오도크의 성주 이하 무관들을 향한 것이었다.

그들의 속내는 뻔했다. 예비 반란군이었던 놈들을 가뜩이나 병력도 빠지는 판에 성내에 두기는 싫다는 거다. 그러니 머릿수를 채운다는 구실도 세울 겸 그에게 떠맡기듯 내보낸 것이다. 정말이지 그들이 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이어진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재미있게 봐주신 분들, 추천 해주신 분들, 쿠폰을 쏴주신 분들 모두 다 감사드립니다. 꾸준하게 열심히 써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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