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터-104화 (104/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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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페이브는 아주 바람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심심한 심문 대상이었다.

그는 묻는 말에 술술 답했다. 그야말로 모범적인 태도였다. 너무 모범적이어서 심문하는 ‘맛’이 전혀 나지 않을 만큼. 심문을 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기꺼울 수밖에 없었지만, 또 묘하게 섭섭하기도 했다. 특히 고문 기구를 양 손에 하나씩 들고 있는 부하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의 그런 태도는 고스란히 모페이브의 눈에 들어와, 그가 더 열성적으로 혀를 놀리게 만들었다.

“산채에 있던 놈들이 전부는 아니겠지?”

“예.”

“성내에도 있나?”

“예.”

“대라. 당연히 더 많이 댈수록 네가 살 확률이 높아질 거다.”

모페이브는 기다렸다는 듯 성내에 잠입해 있는 사교도들을 읊었다. 총 열 하나였다. 너무도 빠르게 죄다 불어버린 모페이브를 군터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목숨이 어지간히도 아까운가보군?”

“죽으면 끝입니다. 당연히 아깝지요. 세상 그 무엇보다 귀중하고 아깝습니다.”

“신을 믿는다고 하지 않았나?”

“믿습니다. 하지만 사후의 구원은 믿지 않습니다.”

“웃긴 놈이군.”

여러모로 특이한 놈인 것 같았다. 다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가 지독한 보신주의자라는 것.

“들었겠지? 모두 잡아와라.”

군터는 부하들을 시켜 모페이브가 알려준 사교도들을 잡아오게 했다.

“신을 믿으십니까?”

갑작스레 모페이브가 물었다. 심문을 시작한 이후로, 그러니까 심문을 시작하면서 “살려주시는 겁니까?”라고 물었던 이후로 그가 처음 던지는 질문이었다.

어차피 성내에 있는 사교도들에 대한 모페이브의 진술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되기 전까지는 심문을 멈출 생각이었기에, 군터는 모페이브의 물음에 답해주기로 했다.

“믿는다. 허나 섬기지는 않는다.”

“저와 비슷하군요.”

“아니. 다르지. 난 내 목숨 하나 건지자고 추해지지는 않거든.”

“그렇습니까?”

군터는 마지막 말에서 모페이브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린 것을 놓치지 않았다.

사실 심문을 하면서 이런 말은 하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궁금했다. 모페이브라는 놈은 정말 자기 목숨 하나 건지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은 놈인지.

‘놈도 똑같다. 다만 목숨에 대한 집착이 다른 모든 것을 누를 정도로 강할 뿐.’

이것으로 확신했다. 모페이브라는 놈은 자기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할 것이다. 놈의 명줄을 쥐고 있다면 놈이 가진 모든 것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

얼마 후. 명을 받고 나갔던 부하들이 귀환했다. 상당히 상한 몰골인 11명과 함께였다. 군터는 그들을 모페이브와 다른 곳에 가둬두게 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심문을 살라스에게 맡겼다.

“축하한다.”

“예?”

모페이브의 얼굴에 희망이 피어났다. 어쩌면 이제 풀어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를 하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내일까지는 살려두마. 다음날도 살려둘지는 내일 결정하지.”

딱딱하게 굳어 우거지상이 된 모페이브가 고개를 떨궜다.

*

모페이브의 진술에 힘입어 사로잡은 사교도들은 상당한 독종들이었다고 고문을 한 부하가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입을 못 연 것은 아니어서, 그들 열 한 명의 진술과 전날 모페이브가 했던 진술을 비교해봤다. 결과는 대부분 일치했다. 일치하지 않은 일부는 사로잡은 사교도가 고문에도 불구하고 거짓진술을 할 만큼 독종 중에서도 지독한 독종이었던 경우였다.

“얼굴이 좋지 않군.”

단 하루지만 지하의 좁은 공간에 갇혀 빛도 보지 못했으니 얼굴이 좋을 수가 없다. 목숨이 위태로워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좋은 소식을 알려주지.”

“……”

전날 한 번 당한 것이 있어서인지 모페이브는 초췌한 얼굴을 무표정하게 유지했다.

“이제 가책을 느낄 만한 것은 묻지 않겠다.”

사교도에 대한 것은 이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제 밤새도록 이어진 심문을 통해 ‘벌판의 파수꾼’을 섬기는 사교도들이 더 이상 그 어떤 시도도 획책할 수 없을 만큼 무너졌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산채에 있던 사교도들의 가족이 모여 산다는 사교도들의 마을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그곳에 있는 이들은 죄다 나이 먹은 노인들이나 여인, 혹은 아이들뿐이라니 거기까지 손대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확인을 위해 할렌을 대장으로 해 십여 명의 부하를 보내기는 했다. 만약 그 마을의 상황이 진술한 내용과 일치한다면 아무 일 없을 것이다. 군터는 부디 아무 일도 없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지 않다면 어쩔 수 없이 어떤 일이 생길 수밖에 없을 테니.

“주술사라고 했지?”

“예.”

“주술은 네 스승으로부터 배운 건가?”

“그렇습니다.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주술적 소양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사제가 되는 데 주술적 역량이 필요한가?”

“사제란 단순히 신을 위해 제례를 주관하는 자를 이름이 아닙니다. 벌판의 파수꾼을 섬기는 사제가 된다는 것은 그의 신언(神言)을 내려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언? 그게 뭐지?”

“법술을 발휘하기 위한 자격이자 조건입니다. 신언을 내려 받아야만 법술로서 신의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전날 제 스승이 당신께 사용했던 술법 역시 신언을 이용한 법술이었습니다.”

군터는 전날 그를 들이받았던 빛의 짐승을 떠올렸다. 확실히 그것은 무시무시했었다. 등에 매고 있던 창에서 흘러나온 알 수 없는 기운이 그를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절명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십중팔구는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법술이란 것은 다른 존재에게서 힘을 빌려오는 거라 알고 있다. 그런데 네 스승은 그 법술을 한 번 사용하고 거의 쓰러질 듯 굴던데, 그건 왜지?”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힘을 빌려오는 것은 맞으나, 그 힘을 발휘하는 것은 온전히 술자의 몫입니다. 큰 힘을 사용한다면 그 부담은 온전히 술자가 져야 합니다.”

비유하면 칼을 빌려주는 것은 맞으나, 그 무거운 칼을 휘두르는 것은 칼을 빌린 자의 몫이라는 거다. 칼을 빌려 든 자의 힘이 모자란다면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하고 휘청거릴 것이고, 힘이 충분하다면 날카로운 칼을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 것이다.

“사제가 되기 위해 주술을 수련하는 것은 신언을 통해 얻는 법술을 제대로 쓰기 위함이다?”

“그것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본디 술사는 부지런히 자신을 수양해야 합니다.”

“주술사와 법술사의 차이가 뭔가?”

그가 알고 있던 개념은 일전에 살라스로부터 들은 것이 전부였다. 헌데 그런 얕은 개념이 조금 전에 깨져버렸다.

“주술사는 큰 범위입니다. 법술사는 그 안에 포함되지요. 간단히 말해, 법술을 사용하는 주술사가 법술사입니다. 법술사는 법술사이며, 또한 주술사이지만 법술을 사용하지 못하는 주술사는 법술사가 될 수 없습니다.”

이 또한 그가 알던 것과 달랐다. 그는 이제껏 주술사는 스스로 수양하는 자이고 법술사는 다른 존재에게서 힘을 빌려와 사용하는 이로 알고 있었다.

그것을 이야기하자 모페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닙니다. 주술사는 빌릴 힘이 없으니 스스로를 갈고 닦는 것 외에는 길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고, 법술사는 강력한 법술의 힘에 매몰되어 스스로의 수양을 등한시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해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런 거군.”

모페이브는 말이 막히는 법이 없었다. 무엇을 묻는 그는 척척 답했다. 나이는 그와 비슷한 것 같았는데 머릿속에 든 지식의 양은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술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누구나 주술사가 될 수 있는 건가?”

“아닙니다. 소질이 있어야 합니다. 더 정확하게는 배우고자 하는 술법에 대한 재능이 있어야 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에를 들어, 저는 흙을 이용한 술법을 사용할 줄 압니다. 그 외에 자잘한 술법도 사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제가 사용한다고 말할 수 있는 술법은 흙을 이용한 술법들입니다. 반면에, 저는 불을 이용한 술법은 간단한 것 하나도 사용하지 못합니다. 제가 그런 종류의 술법에 재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술법은 흙, 불…뭐 그런 식으로 종류가 나뉘는 건가?”

“훨씬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흙을 이용한 술법을 사용할 줄 안다 말씀드렸지만, 저는 흙에다가 생기를 불어넣는다던지 하는 술법은 사용할 줄 모릅니다. 반면에 형체를 변화시켜 송곳처럼 만든다던가, 움직인다던가 하는 식의 술법은 사용할 수 있지요. 말씀드린 불이니 흙이니 하는 것은 큰 분류이고, 작은 분류로 내려가면 설명하기도 힘들 정도로 다양하게 나뉩니다. 당연히 그에 대해 필요한 소질도 제각각이지요.”

“복잡하군.”

“본래 술법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너무나 방대하고 복잡하지요.”

대충 겉핥기식으로만 들었는데도 벌써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내가 술법을 익힐 수 있겠는가?”

“진심이십니까?”

“반쯤은?”

모페이브는 살짝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칼밥이나 먹고 사는 무부가 술법을 가벼이 본다고 생각한 것일까.

사실 가볍게 생각한 것이 맞았다. 배울 수 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가벼운 물음이었다.

술사의 입장에서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상하면 뭐 어쩔 것인가? 모페이브의의 목숨은 여전히 그의 손에 있었다.그것을 잘 알고 있는 모페이브는 애써 불쾌한 감정을 갈무리하며 입을 열었다.

“음…재능이 있다면 가능합니다.”

“재능이라면?”

“우선 인지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술법이란 나와 내가 아닌 것을 연결하여 다루는 것. 따라서 먼저 나를 의식할 수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내가 아닌 것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세상만물에는 기(氣)가 있습니다. 제게도 있고, 당신에게도 있으며,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땅과 흙에도 있지요. 하늘에도 있고, 구름에도 있으며, 비와 바람에도 기가 있습니다. 술법이란 나의 기, 즉 술력(術力)을 이용해 이러한 다른 기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당신은 당신의 손을 이용해 무기를 쥐고 휘두르지만 저와 같은 술사는 술력을 이용해 다른 기를 움직입니다.”

“기는 뭐고 술력은 뭔가? 뭐가 다르지?”

“술력이란 술사가 수양을 통해 정제한 기를 의미합니다. 기는 그 자체로는 본래의 자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구속력이 약하기 때문이지요. 물과 얼음으로 비유하면 쉽습니다. 얼지 않은 물은 한 손 가득 퍼도 금방 흘러내려버리지요. 하지만 딱딱하게 얼은 물은 흘러내리지도 않고, 오랫동안 그 형체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얼음처럼 정제한 기만이 술력이 되어 술법에 쓰일 수 있습니다.”

모페이브는 좋은 스승이었다. 그는 자신이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목숨이 걸려있음을 알기 때문인지, 설명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군터가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든 쉬운 말로 이해시켜 주었다. 덕분에 군터는 점차 술사니 술법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을 얻어갈 수 있었다.

“좋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기감이란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지?”

“사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단계입니다만, 당신은 강한 무인이니 아마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음?”

“강한 적을 상대해본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적을 앞에 두고 있을 때, 상대의 기세를 느끼지는 않았는지요. 저는 무인이 아니라 직접 경험한 적은 없지만, 그런 것 역시 기감이 발휘된 경우 중 하나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경험은 꽤 있지. 그렇다면 나는 술법을 익힐 수 있는 건가?”

“아닙니다. 술사가 되려면 그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눈앞에 맞닥뜨린 강한 적뿐만이 아니라 약한 적, 더 나아가 적이 아닌 이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생명이 아닌 것의 기까지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어야만 술법을 익힐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자격을 얻었다 할 수 있습니다.”

“말만 들어도 아찔하군.”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건 듣는 순간부터 절로 한숨이 나올 정도로 지난해 보였다. 가볍게 생각하고 슬쩍 들여다보았는데 알고 보니 천 길 낭떠러지였다고 할까?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술사가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새삼 술사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볼품없는 모습으로 묶여있는 모페이브 역시 조금은 달라 보였다.

“흠.”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이봐.”

“예?”

군터는 옆에 세워 두었던 검창을 그의 앞에 꽂았다. 창대를 휘감은 붉은 문양이 은은한 빛을 토했다.

“이게 뭔지 알겠나?”

========== 작품 후기 ==========

제목을 생각해봤습니다.

1. 이모탈 2. 신인전기 3. 영원의 비가

위 제목 중 괜찮아 뵈는 하나를 댓글로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만약 셋 다 별로라면 별로라고 의견 적어주셔도 됩니다..

상품...이랄 건 없고, 만약 열 분 이상 댓글을 달아주시면 내일(토) 연참을. 그 이후로는 다섯 분마다 연참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재미있게 봐 주시는 분들 모두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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