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약하는 자들 -->
살라스는 매일 부하들의 보고를 받았다. 거의 스무 명에 달하는 이들이 교대로 감시 임무에 투입되어 있었다. 일부는 계속해서 디파르그를 쫓아다니고 있었고, 나머지는 각기 ‘갈색 말발굽’과 그곳의 종업원들에게 붙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감시 임무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살라스는 간과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한 사실을 포착했다.
“오늘도 말이냐?”
“예. 3교대로 종일 지키고 있었으니 분명합니다.”
“으음.”
벌써 사흘째. 그가 지켜보라고 했던 종업원들은 ‘갈색말발굽’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칩거생활이라고 해야 할 수준이었다. 물론 바깥출입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로부터 이틀 뒤. 살라스는 마침내 지켜보라고 했던 이들 중 하나, 문 옆을 지키던 사내가 밖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하지만 그는 별 다른 일 없이 식료품들만 잔뜩 사서 술집으로 돌아갔다. 그가 산 것은 척 보기에도 모두 술집에서 쓸 안주의 재료들이었다.
‘이상하군.’
본래부터 수상하기 짝이 없는 술집이었지만 들여다볼수록 이상한 점투성이였다. 감옥에 갇힌 죄수도 아니고, 사람이 한 건물 안에 계속 박혀 있을 수 있을까? 그것도 한 명만이 아니라 종업원 모두가? 좀이 쑤셔서라도 그러기는 쉽지 않을 터.
‘그러고 보면 디파르그도 그곳에 가면 꼭 하루씩은 머문다고 했었지.’
직접 확인했던 ‘갈색 말발굽’의 객실은 그냥 하는 말로도 괜찮다고는 못할 정도로 허름하고 지저분했다. 백인장 씩이나 되는 이가 그런 곳에서 잠을 잘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술집 건물 안에…무언가가 있다.’
며칠을 더 지켜보고, 역시 밖으로 나오는 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살라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군터를 찾아가 생각한 것을 이야기했다.
“갈색 말발굽을 치시지요.”
“그게 네가 생각한 답이냐?”
살라스가 이야기를 꺼냈을 때, 군터는 왜 그래야 하느냐 묻지 않았다. 살라스의 눈에 서린 확신을 보았으니, 그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답이었다.
“예.”
“날은?”
“내일 밤. 디파르그가 그곳을 찾는 날입니다.”
“전면전을 벌이자는 것이냐?”
“그때 꼬리를 잡을 수 없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신중히 지켜본들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좋아.”
길고 길었던 인내의 끝이 마침내 다가왔다. 군터는 살짝 들뜬 마음으로 결행의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다음날 밤.
군터는 살라스와 함께 그의 휘하 중 가장 실력이 출중한 스물을 추려 ‘갈색 말발굽’으로 향했다.
“내가 먼저 들어가지. 너희들은 내가 신호를 보내면 들어오도록.”
군터가 성큼성큼 앞으로 나서자 부하들이 일제히 만류했다.
“위험합니다.”
“대장님. 굳이…….”
“시끄럽다.”
부하들을 냉정히 뿌리치고 기어이 홀로 나섰다.
한동안 줄곧 익숙하지도 않은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했던 군터였다. 그런 그에게 있어 이것은 간만에 찾아온 기회였다. 익숙한 창검은 등에 짊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칼도 괜찮았다. 창술이 더 좋지만, 검술 역시 달인의 수준에 이른 그였으니까.
끼익!
“어서오…….”
허름하기 짝이 없는 문을 밀고 들어가자 즉시 뾰족한 기세가 느껴졌다. 군터는 소리 없이 찔러온 단검에 상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러자 연달아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흥!”
발이 채 목 높이로 날아들기도 전에 재빠르게 손목을 붙든 팔을 휘둘렀다. 발을 뻗던 사내의 몸이 거칠게 바닥에 내리 꽂혔다.
“뭐, 뭐야?!”
식당에 있던 몇 안 되는 이들이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군터는 신속하게 그들을 훑어보며 발을 내리 찍었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려던 사내의 머리통이 바닥을 뚫고 박혀 들어갔다.
“웬 놈이냐!”
고함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주방 쪽에서 나오는 한 사내가 보였다. 사내는 그를 보자마자 흠칫 몸을 떨더니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명백히, 음식을 할 때 사용하는 칼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군터는 씩 웃으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허리춤의 검을 칼집 채로 집어 들었다. 어느 정도 다가갔을 때, 사내가 이를 악 물고 달려들었다. 흡사 월도처럼 보이는 완만하게 휜 칼날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카앙!
칼집과 부딪친 칼날이 부서질 듯 울리며 튕겨나갔다. 사내는 부딪친 즉시 칼을 놓고 더욱 가까이 달라붙었다. 그의 꽉 쥔 왼 주먹에는 어느새 얇은 바늘 같은 것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 순간. 군터의 발이 번개처럼 사내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쾅!
“커헉!”
사내의 몸이 화살처럼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그의 왼손가락 마디마디에 끼워져 있던 바늘들이 바닥을 굴렀다.
“희한한 수를 쓰는군. 정말 암살자라도 되는 거냐.”
군터는 다소 들뜬 상태였다. 흥분했다고 봐도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쓰러뜨린 둘은 그가 이제껏 상대해왔던 모든 이들과 달랐다.
분명히 죽이고자 하는 마음으로 달려드는데도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일부러 그런 부분을 거세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재밌군.’
기세가 느껴지지 않으니 오로지 눈만으로 움직임을 쫓아야 했다. 그런데다 싸우는 방식도 음험하기가 짝이 없었다. 저들의 무기에는 독 같은 것이 발려 있을지도 모른다. 자그마한 바늘 같은 것을 찔러 넣으려 했던 것으로 보아 거의 확실하다.
“대장님! 신호를 보낸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바닥에 떨어진 바늘들을 살펴보려던 찰나. 살라스가 문을 걷어차며 들이닥쳤다. 그 뒤로 부하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성격들 참 급하군. 이제 보내려고 했다.”
“그게 무슨…….”
“됐다. 시작해라.”
“저들은 어찌 할까요?”
부하 중 한 명이 넋이 나가 있는 몇 사람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값싼 술에 싸구려 안주를 즐기던 애꿎은 시민들이었다.
“얼마간은 조용해야 한다. 기절시키든가, 어디 구석에 묶어두어라.”
“예.”
“샅샅이 뒤져라. 어디에 숨어있을지 모르니 긴장을 늦추지 말도록.”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후, 군터는 계단을 올라가 부하들과 함께 객실을 뒤졌다. 하지만 아홉 개의 객실은 모두 비어 있었다.
쾅!
마지막 객실 문을 걷어차고 텅 빈 방을 확인한 군터는 와락 인상을 구겼다.
“이 쥐새끼 같은 놈들이…대체 어디에 숨은 것이냐.”
살라스에게 들은 계집들은 고사하고, 적어도 얼마 전 여기에 들어온 디파르그와 나머지 둘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분명 이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까지 했건만, 대체 그들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그때 부하 한 명이 빠르게 달려왔다.
“대장님. 찾은 것 같습니다.”
*
주방의 가장 안쪽.
술통으로 보이는 나무통들을 모두 들어내자 나무로 된 바닥이 드러났다. 여기까지는 평범해 보였으나, 자세히 보면 그 바닥은 옆의 다른 바닥보다 색이 옅었다. 불을 들고 밝게 보면 그 차이는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
“문입니다. 지하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상당히 본격적이군.”
지하 창고는 술집이라면 흔히 가지고 있는 것이나, 이런 식으로 은밀히 숨겨 두지는 않는다. 게다가 창고에 둬야 할 술이며 식자재들은 이 넓은 주방에 다 쌓여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문 너머에 있을 지하에는 과연 무엇이 있다는 건가.
“역모 운운할 때는 가당치도 않은 소리라 여겼는데, 이렇게까지 수상하니 슬슬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어찌 할까요?”
“바깥에 있는 셋을 불러 이곳을 지키게 해라. 그리고 너는 모디레스에게 가 이곳의 사정을 알려라.”
묵묵히 듣고만 있던 살라스가 물었다.
“바로 들어갈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군터는 냅다 칼집을 휘둘렀다. 바닥의 문짝이 대번에 박살이 나고 그 너머의 어둠을 비췄다.
“여기까지 와서 손가락이나 빨 수는 없지 않겠느냐.”
너덜너덜한 문짝을 걷어차 마저 박살내자 큼직한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입구서부터 보이지도 않는 아래까지 이어져 있었다. 군터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짧게 한숨을 쉰 살라스가 횃불을 든 채 그 뒤를 따르고, 나머지 병사들이 또 그 뒤를 따랐다.
‘생각보다 넓진 않군.’
조금 걸으니 계단은 끝이 났다. 그 다음부터는 딱 계단 너비만큼의 길이 이어졌다. 적어도 위층만큼의 널찍한 공간이 있을 줄 알았던 군터는 의아하게 여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다.
‘어디까지 이어지는 거지?’
그리 넓지 않은 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느 정도 걸었을 때 이 정도면 슬슬 뭔가 나와야 하지 않나 싶었지만 슬슬 나와야 할 무언가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고, 같은 너비의 길만이 끝도 없이 계속됐다.
“이건 너무 깁니다.”
“나도 안다.”
“이 정도면…어쩌면 저희는 지금 성 밖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살라스의 그 말에 거침없던 군터의 걸음이 뚝 멈췄다.
“성 밖이라고?”
충분히 그럴듯했다. 도무지 끝이 안 나는 지루한 길에 살짝 짜증이 난 상태였던 군터는 찬물을 뒤집어 쓴 것 마냥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정말 이 길이 성 밖으로 이어진다면…….’
스물만 대동했던 것은 술집에 모여 있을 인원이 최대로 잡아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파르그가 성 밖에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성 밖의 어딘가에 그가 있다면, 그 패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일단은 여기서 돌아가고, 더 병력을 충원해 다시 움직이시지요.”
모디레스와 합류하라는 뜻이다. 안전하게 가고자 한다면 분명 살라스의 말대로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군터는 그 제안에 거부감을 느꼈다.
‘공을 세워야 대가를 바랄 수 있다.’
물론 디파르그의 꼬리를 잡고 여기까지 파헤친 것만 해도 상당한 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군터는 갈증을 느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뱀의 꼬리가 아닌 머리통을 내리 누를 수 있다면, 그때는 더 당당하게.
“대장님.”
살라스의 냉철한 목소리가 상념을 깼다. 군터는 뜨끈한 숨을 내뱉었다.
“그래. 일단은 여기서 대기한다. 속히 모디레스에게 지원군을 요청해라.”
부하를 보낸 후. 군터는 차가운 벽에 기대어 앉아 숨을 골랐다. 자꾸만 치솟는, 그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욕망을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나답지 않다. 나답지 않아.’
높이 올라가고픈 야망은 있다. 하지만 그를 위해 성급해질 수는 없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는 코앞의 돌부리도 못 보고 넘어질 수 있다.
‘냉정해라. 냉정해.’
차가운 지하의 공기가 뜨끈한 머리를 식혔다. 그에 따라 열기 가득하던 숨결도 평온을 찾았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