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터-98화 (98/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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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의 이름은 ‘갈색말발굽’이었다. 대충 지은 티가 물씬 풍기는 이름만큼이나 술집은 외관서부터 볼품없었다. 너덜너덜한 간판이며 먼지와 때 묻은 자국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문까지. 이런 곳에서 술을 마실 바에야 길바닥에서 마시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사실 가진 것 없는 가난한 백성들이 찾는 술집들은 대개 이런 곳이었다.

‘이상하군.’

백인장이나 되는 자가 굳이 이런 곳까지 술을 마신다는 것부터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만약 그가 더할 나위 없이 청렴한 군관이라 사치를 싫어한다면 말이 되기는 하나, 그런 자가 다달이 군수보급품을 그런 식으로 터무니없이 요구할 리 없지 않은가. 그 자가 그걸로 다른 주머니를 채우지 않았다면, 정말로 역심이라도 품었다는 뜻이 된다.

살라스는 문을 밀고 들어갔다. 추레한 몰골을 한 그가 추레한 술집으로 들어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였다.

“어서오쇼.”

보통 계집이 있는 술집이면 문을 열고 들어설 때부터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반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들린 목소리는 굵고 걸쭉하기 짝이 없었다. 술맛을 돋우는 목소리는 결코 아니었다.

“아무데나 앉으쇼. 술은 한 종류밖에 없고, 안주는 저쪽에서 아무 거나 시키면 되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로 옆에 한 인상 하는 사내가 감시하듯 앉아 있었다. 조금 전의 목소리는 그의 것이었는데, 그는 귀찮다는 듯 대강 설명하고는 턱짓으로 벽 중간에 걸린 나무판을 가리켰다. 그 나무판에는 몇 가지 간단한 안주들과 그 가격이 적혀 있었다.

“안주는 도우즈(닭고기와 감자에 양념을 한 요리)로.”

“도우즈 하나!”

주문을 받은 사내가 주방 쪽에 외쳤다. 살라스는 손을 내미는 사내에게 동전 몇 닢으로 값을 치렀다. 그러자 사내는 술 한 병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서 문 옆의 자리로 돌아갔다. 보아하니 정말로 문 옆에서 지키고 선 모양이었다. 돈까지 미리 받아놓고도 말이다.

‘과한데.’

의자에 앉는 사내의 모습 자체가 익숙한 듯 자연스럽고, 몇 없는 손님들도 입구 옆에 앉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있었다. 실제로 술집을 비롯한 가게에서는 거지들이나 잡스러운 자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입구 쪽에다 사람을 세워놓기도 했으니 사내의 행동이 전혀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단련한 자다.’

하지만 살라스는 금방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우선 겉으로는 하릴없는 놈팡이처럼 보이는 사내는 제법 무술을 익힌 자였다. 거침없는 듯 규칙적인 걸음걸이에서부터 티가 났다. 게다가 의자에 앉은 자세도 얼핏 보기에는 구부정한 것 같았지만 실상은 언제든 튀어나갈 수 있도록 느슨하면서도 긴장감이 있었다. 아마 저 너풀거리는 소매 안쪽에는 짧은 칼 한 자루 정도가 숨어 있을 것이다.

“…….”

살라스는 일부러 허술한 자세를 취한 채 싼 값을 톡톡히 하는 술을 들이켰다. 시선은 뜨끈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안주에 고정했다.

‘둘…아니, 셋인가?’

은밀한 시선이 느껴졌다. 나이는 어린 편이나 어지간히 나이 먹은 군인들보다도 더 많은 실전 경험을 갖춘 그였기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무래도…제대로 짚은 모양이군.’

살라스는 무방비인 상태로 느긋하게 고기를 씹었다. 그리고 빈 술병을 들며 자연스럽게 시선을 움직였다.

“여기 한 병 더!”

술집은 2층으로 된 구조였다. 1층은 식당이었고 2층은 투숙객들을 위한 방들이 있는 모양인데, 현재 1층 식당에 있는 인원은 모두 열하나. 살라스 본인은 제외하면 열이고, 문 옆의 사내도 제외하면 아홉이다. 그 중 셋은 혼자 앉아 있었고, 여섯은 각기 둘과 넷으로 나뉘어 자리하고 있었다.

“정말! 여기서 이러면 안 돼요.”

“뭐 어때? 조금은 어울려달라고. 어차피 이런 것도 우리가 내는 술값에 다 포함 된 거 아닌가? 응?”

그리고 넷이 앉은 테이블에는 남자와 여자가 각기 둘씩 있었다. 여자 둘은 진한 화장과 야시시한 옷차림으로 보아 이곳에서 일하는 여인들인 듯했다.

은밀한 시선의 주인들 중 둘은 그녀들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문 옆에 앉은 사내였고. 공통점은 모두 이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얼굴에 험한 자국이 난 젊은 사내가 신기했다면 차라리 대놓고 쳐다보는 것이 정상적이다. 설령 저들이 예의를 알았다 해도, 이런 암살자와도 같은 은밀함은 터무니없이 과하다.

‘호혈(虎穴)이 따로 없군.’

이곳에 무언가 있음을 확신했다. 이제 문제는 어찌 의심을 사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곳을 나가는가이다. 최대한 의심을 덜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쪽을 향하는 시선은 조금도 옅어지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살라스는 내심 한숨을 쉬며 일부러 거친 목소리를 냈다.

“한 병 더!”

그리고 세 병째 받아든 술을 들이키며 여인들이 앉은 테이블을 흘깃거리며 쳐다보기 시작했다. 음흉한 표정은 덤이다. 이런 것은 익숙지 않지만, 지겹게 어울리는 동료들의 모습을 투영하니 제법 자연스럽게 모양새가 나왔다. 지금의 그는 여자에 눈이 팔린 영락없는 놈팡이 그 자체였다.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자 그에게 향하던 은밀한 시선들이 사라졌다. 대신 위층에서 한 여인이 걸어 내려왔다. 앞선 두 여인과 마찬가지로 진한 화장에 몸 이곳저곳이 드러나는 옷을 걸친 여인이었다.

그녀는 내려오자마자 살라스가 앉은 자리로 다가왔다. 그리고 은근슬쩍 맞은편의 의자를 빼고 앉았다.

“어머. 오빠는 처음 보네? 혼자 온 거야?”

“그럼. 혼자 왔지.”

“헤에……. 신기하네.”

“뭐가?”

“우리 가게는 오는 사람만 오거든. 보다시피 가게가 좀…후미진 곳에 있잖아?”

사실은 꼭 후미진 곳에 있지 않더라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은 가게였다. 내부도 그렇지만, 겉보기부터 후줄근한데다 술맛도 별로였으니.

“싼 값에 마실 수 있다고 해서. 가진 돈이 얼마 없거든.”

“흐응. 보통 그런 말은 쪽팔려서라도 잘 안 하던데.”

“솔직해야지. 괜히 있는 척했다가 값도 못 치르면 정말로 쪽팔릴 테니까.”

“킥킥! 그래. 오빠가 맞네.”

여인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화장으로도 다 안 가려지는 눈가의 흐릿한 주름을 보고 살라스는 그녀가 자신보다 연상임을 확신했다.

“함부로 앉지 마.”

“왜 그렇게 까칠하게 굴어? 내가 마음에 안 들어?”

“너를 앉히고 술을 마시면 분 냄새까지 값을 치러야 할 거 아니야.”

“그렇게 안 비싸.”

“입으로는 무슨 말을 못해. 나중에 계산할 때가 되면 안면몰수하는 년놈들을 숱하게 봐 왔어.”

“제법 시달렸나 보네.”

“눈덩이가 부푼 적도 많고, 이빨이 흔들린 적도 적지 않지.”

“걱정 마. 여기는 그렇게 무서운 곳은 아니니까.”

“둘러서 말하지 말고 값으로 이야기 해.”

“오빠 정말 철저하네. 나이는 그렇게 안 많아 보이는데.”

“나이는 상관없어. 무슨 경험을 얼마나 했느냐가 중요하지.”

“그건 그래.”

여인이 피식 웃으며 살라스가 쥐려던 술병을 낚아챘다.

“좋아. 일곱 닢. 정말 이건 오빠가 마음에 들어서 특별대우 해주는 거야. 어디 가서 소문내거나 하면 안 된다?”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괜찮군. 다른 데다가는 이야기 할 곳도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시시한, 되는 대로 막 뱉는 말들의 연속이었으나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고 얼굴이 달아올랐을 즈음부터는 제법 진지한 이야기들도 오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래봐야 사는 게 쉽지 않느니 세상이 뭐 같다니 하는 식의, 세상살이 투정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런 이야기 속에서 간간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가 있었다. 살라스는 스쳐지나가는 그런 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정신을 붙들었다.

* * *

“기가 쭉 빨린 얼굴이군. 즐거웠나?”

묘하게 얼굴이 핼쑥해진 것 같은 살라스를 보고 군터가 이죽거렸다. 살라스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나 목소리와는 달리, 그의 귀는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의 종업원들 모두가 예사롭지 않더군요. 문지기로 보이는 자는 상당히 훈련받은 자로 보였고, 여종업원들도 묘하게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낯선 얼굴이 보이면 곧장 은밀히 감시하더군요.”

“흠. 수상하군. 허름한 술집에 그런 이들이 몰릴 이유가 없을 터인데. 무슨 암살자 소굴이라도 되는 것인가?”

돈을 받고 살인을 해주는 암살자들의 이야기는 어디에나 돌았다. 다만 그들의 행사가 워낙에 은밀하다보니 도는 이야기들도 신빙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괴담 수준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살라스의 말대로라면, 그 허름한 술집이 괴담 속 암살자들의 소굴일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일단은 그럴 확률은 적습니다. 한 성의 최고 무관이 암살자들의 소굴 따위를 정기적으로 들락거릴 이유는 없으니까요. 아마도 다른 무엇이겠지요.”

“다른 무엇?”

“그건 이제부터 알아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흐음.”

일단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상황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보기는 했다. 이제는 이게 제대로 된 꼬리인지를 확인해야 했다. 또한 어떻게 확인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제일 쉬운 건 들이치는 것이겠지.”

“말씀처럼 가장 간단하지만, 뒤가 없다는 것이 단점이지요.”

만약 그 술집을 들이쳤다가 제대로 된 것을 건지지 못한다면 그 순간 바로 디파르그와 전면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 사흘에 한 번씩 들르던 곳에 이상이 생긴다면 디파르그는 즉시 자신을 노리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고, 가장 먼저 성주를 의심하게 될 테니까.

“그럴 수는 없지.”

전면전을 벌일 것이라면 이렇게 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다. 바로 칼을 뽑았으면 될 일이다. 그러므로 제일 쉬운 방법은 제일 먼저 기각되었다.

“무슨 수가 있느냐?”

“다시금 인내심을 가져야겠지요.”

“음?”

“이번에도 감시를 붙이는 겁니다. 그 술집의 종업원 모두에게. ”

“호오.”

어찌 보면 간단한 것이나, 군터로서는 생각할 수 없던 방법이었다. 그는 새삼스레 살라스의 명석함에 감탄했다.

“또 하나. 그 술집도 감시해야 합니다.”

“술집을?”

“그들은 외부인을 경계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명석한 부대장님 덕에 밑에 녀석들이 바빠지겠군. 네 뜻대로 해라.”

군터는 이 일에 대한 전권을 살라스에게 위임했다. 살라스가 일일이 자신에게 와 허락을 구하는 것보다 그때그때 곧장 뜻대로 움직이는 편이 더 나으리라 봤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엊그제 너무 오래 의자에 앉았었나 봅니다.

허리가 너무 아파 쉬다 보니 기어이 날을 못 맞췄네요. 되도록 오늘 한 편을 더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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