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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반군의 동태에 관한 별 다른 보고는 들어오고 있지 않습니다.”
“으음. 무슨 속셈인 것인지 모르겠군. 체시콘 강을 넘어 북상했을 때는 말레이드를 노리는 줄 알았는데.”
정찰병들이 들고 온 소식을 주제로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는 백인장 이상의 지휘관들은 모두 참석했는데, 당연히 군터도 자리했다. 그는 성주를 중심으로 모디레스에 이은 두 번째 상석에 앉아 방금 전 이야기를 꺼낸 사내를 보았다.
꺼칠한 턱수염을 기른 날카로운 인상의 장년인. 그가 바로 디파르그였다. 시오도크에 오고 며칠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질리도록 들은 이름의 주인.
“우리뿐만 아니라 각 도시와 성에서도 꾸준히 정찰병을 보내고 있으니 곧 소식이 들어올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방비를 튼튼히 하며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아란딜 페레모어 장군께서 토벌군을 조직해주셨으면 이리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될 터인데…….”
의외였다. 군터는 성주와 디파르그가 마주치면 서로 죽일 듯 노려보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뭔가 냉랭한 분위기는 풍길 줄 알았는데 의외로 회의는 정상적으로 대화도 주고받으며 별 잡음 없이 진행됐다. 둘 다 공사는 구분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표정 뒤에 칼을 숨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회의는 그 뒤로도 특별한 것 없이 흘러갔다.
그렇게 회의가 끝난 후. 마지막에 자리에서 일어서며 성주에게 군례를 올리고, 백인장들은 그들끼리 인사를 주고받았다. 군터도 맞은편에 앉아 있던 디파르그를 비롯한 시오도크의 백인장들과 인사를 나눴다.
“술이라도 한 잔 해야 하는데 말이오. 언제 한 번 자리를 마련하겠소.”
“기대하겠소.”
군터는 디파르그의 눈매가 미약하게 꿈틀거린 것을 눈치 챘다. 아마 나이도 어린놈이 평대를 쓰니 심사가 뒤틀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평대는 기분이 나쁠 수는 있어도 딱히 트집잡힐 일은 아니었다. 그가 선임 백인장이라고는 해도 그게 시오도크 안에서나 통하는 자리지, 멜루니악에서 온 외부인에게까지 해당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표정을 잘 숨기는군.’
군터의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어서 눈치 챘을 뿐, 디파르그의 표정관리는 굉장히 능숙한 편이었다. 그런 능력은 군인이 갖기는 힘든 것이었는데, 나름대로 한 칼 쓸 것 같은 디파르그가 이런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뱀 같은 녀석.’
만만치 않은 자다. 차라리 직접 싸워서 목을 치라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겠으나, 그를 상대로 빌미를 잡아 명분을 세우며 처리하는 일은 영 쉽지 않아 보였다. 다년간에 걸친 과도한 물자 요구도 정치적으로는 잡고 휘두를 무기는 될 수 있지만 무부들 사이에서는 잡아떼면 그만인, 별 것 아닌 트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디파르그가 시오도크의 군부를 꽉 움켜잡고 있으니 더욱 그러기 쉽다.
‘결정적인 것이 필요하다.’
하나만 잡으면 된다. 제대로 된 것 하나만 있으면 단번에 몰아칠 수 있다. 반대로, 만약 제대로 된 증좌 없이 디파르그를 쳤다가는 시오도크의 군졸들이 들고 일어날 수가 있다. 언제 반군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전시에 내란이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할 일이었다. 반드시.
*
“나온 게 없다?”
“예. 성 밖으로 나가는 일도 없고, 평범합니다. 기껏해야 허름한 주점에 가서 하루 묵은 것 정도 외에는…….”
감시 임무를 맡겼던 부하들이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군터는 생각에 잠겼다.
전시라서 그런 것일까? 디파르그는 병영과 집을 왔다 갔다 하는, 아주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사내인 이상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계집을 끼고 하룻밤을 보냈다는 것도 흠이 아니다. 그렇게 쉽게 꼬리를 잡히리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실망이었다.
“그래. 수고했다. 교대해가면서 앞으로도 계속 지켜보도록. 절대 눈치 채지 못하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예.”
부하들을 돌려보내고 답답한 마음을 한숨으로 풀었다.
쉬우리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생각 이상으로 꽉 막힌 느낌이었다. 디파르그의 뒤를 캐는 것도 지지부진하고, 모디레스가 맡고 있는 부분도 영 진도가 안 나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같은 군인이라 해도 멜루니악군은 외부인이다 보니 의심을 받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칩니다.”
군터는 살라스의 말에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봤다.
“아무 말도 안 했다만.”
“금방이라도 칼을 뽑아들고 달려가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게 빠르긴 하지. 그러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그렇게 무모해 보였더냐?”
마음 가는 대로만 하려고 했으면 이제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진즉에 칼을 뽑아들고 디파르그를 추궁했겠지.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되도록 느긋하게 마음먹고 기다릴 거다.”
그렇게 기다렸는데도 수확이 없을 경우에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 일이다. 그때는 아마 무모한 방법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반군 놈들이 문제군.”
가장 큰 문제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반군들이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투 때문에 전력의 보존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렇게 조심스럽게, 최소한의 희생을 내는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반군이 아니었더라면 성주가 당초의 계획대로 일을 진행했을 것이므로 그에게 제안을 하는 일도 없었겠지만.
*
군터는 마침내 결과물을 들고 온 모디레스와 만났다.
“확실하게 디파르그 쪽이라 할 수 있는 백인장은 둘이오.”
“둘? 생각보다는 적군.”
“그리고 그에게 호의적이라 할 수 있는 백인장이 다시 둘이고.”“호의적이라 함은?”
“만약 성주님이 그럴 듯한 증좌를 가지고 디파르그와 대치했을 때 디파르그의 쪽에 설 자들이란 뜻이지.”
디파르그 쪽이 넷이라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시오도크의 일곱 백인장 중 다섯이 한 패거리라는 뜻.
“나머지 둘은?”
“일단 같이 어울리기는 하는 모양이오. 하지만 다른 넷처럼 디파르그와 가깝지는 않다는군. 상대적으로 거리가 조금 있는 편인 것 같소.”
“일이 터졌을 때는 성주 쪽에 설 수 있다는 뜻인가?”
“확실한 명분이 있다면. 가능성은 충분하오.”
“확실히 디파르그 쪽이라 할 수 있는 두 명과, 호의적인 두 명의 차이는 뭐요?”
“전자는 혈족이오. 한 명은 디파르그의 동생이고, 또 한 명은 매제지.”
“허! 그럴 수가 있는 건가?”
“모르긴 몰라도 디파르그가 힘을 써 둘을 끌어준 모양이오. 시오도크의 군졸들은 이 부근 마을 태생이 많다고 하니 그리 크게 놀랄 일은 아니외다.”
골치 아프게 됐다. 이래서야 디파르그에게 손을 쓰고자 한다면 필히 그 두 명도 같이 쳐내야 할 상황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모디레스의 표정도 어두웠다.
“성주는 알면서도 말을 하지 않았군.”
“…….”
괘씸하지만 이제와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손가락이 의자의 팔걸이를 규칙적으로 두들겼다.
“다음 계획은 뭐요?”
“일단은 두 백인장을 포섭해 볼 작정이오.”
“괜찮겠소?”
“조심해야겠지. 하지만 일단 그 두 명을 끌어들인다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해도 우리가 유리하오.”
현재는 대략 700대 600이다. 하지만 두 명의 백인장을 설득할 수 있다면 500대 800이 된다. 객관적인 세에서 디파르그 쪽을 억누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칼부림을 하고자 한다면 회의 자리에서 놈의 목을 치는 것이 가장 간단하오만.”
“할 수 있는 작업이 다 이루어진 후라면 그 방법도 나쁘지 않소.”
군터는 모디레스가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외였다. 소심하고 생각만 많은 자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대범한 면도 있었다. 하긴, 그런 배짱도 없다면 백인장 자리까지 오르기는 힘들다.
“디파르그의 뒤를 파는 일은 어떻소? 무슨 성과가 있소?”
“아니. 아직이오. 계속 미행을 붙이고는 있는데…별 성과가 없군. 전시라서 그런 것인지, 우리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몸을 사리는 느낌이오.”
“그렇겠지……. 아무튼, 계속 수고해 주시오. 나는 나대로 일을 진행해보겠소.”
모디레스와의 회동을 마친 군터는 마음이 급해졌다. 자신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반면에 모디레스는 정보와 더불어 차후의 계획까지 착착 세우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아직도냐?”
“…예. 송구합니다.”
디파르그를 미행했던 부하들이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벌써 보름이 되도록 그들은 그 어떤 성과도 들고 오지 못했다.
“되었다. 너희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부하들을 다독인 군터는 슬쩍 옆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살라스가 오늘을 포함해 보름여 간의 기록들을 찬찬히 훑어보고 있었다.
“뭐 눈에 들어오는 거라도 있나?”
“희한하군요.”
“어떤 것이?”
“사흘에 한 번씩 꼬박꼬박 싸구려 술집에 들르는 것이 이상합니다.”
“그게 뭐가 이상하단 말이냐. 술 좋아하는 놈들은 매일도 들른다.”
순간 기대하여 눈을 빛냈던 군터는 금세 김이 샌다는 듯 심드렁하게 답했다. 그러자 살라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술을 마시러 가는 게 아닙니다. 이 기록을 보면 꼭 하루를 묵고 있습니다.”
“계집을 끼면 하루쯤 자고 오는 경우가 많지 않으냐.”
“그렇다면 꽤나 문란한 자들이군요.”
“음?”
“디파르그가 항시 그의 동생과 매제를 데리고 그곳을 찾는다 하니, 상당한 호색한이 아닙니까. 어지간하면 그런 곳에 갈 때는 적어도 매제와는 같이 가고 싶지 않을 터인데 말이지요.”
“…….”
군터는 가만히 턱을 쓸었다.
호색한이라? 디파르그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얼굴을 마주했을 때는 그런 자처럼 보이지 않았었다.
“거기다 사흘에 한 번 찾는 술집이 다 같은 곳입니다. 좋지도 않은 곳을 그리 자주 들락거린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애인이라도 있는 건가?”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싸구려 술집에 있는 계집이라면 거기서 거기 아니겠습니까?”
“그곳이 수상하다 이건가?”
“수상하지 않으십니까?”
군터는 대답 대신 입매를 비틀었다.
========== 작품 후기 ==========
7연참. 끝입니다.
기대했던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한계까지 해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재미있게 봐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