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효하는 맹수 -->
일합을 나누고 알았다. 손아귀에 전해지는 충격. 밀려나면서도 곧장 손목을 틀어 공격을 이어가는 기교. 거리를 내주지 않기 위해 지근거리까지 붙이는 기마술.
단기로 달려들 때부터 직감했지만, 역시나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신체능력이 향상되기 전의 그였다면 필시 고전했으리라.
하지만.
“꺼져라!”
머리 위에서 한 바퀴 휘돌린 거칠게 내리 찍었다. 적의 칼날이 부러지고 말이 주저앉았다. 독기에 찬 시선을 무시하고 모커스를 재촉했다. 그는 선두였다. 부하들을 이끌어야 할 그가 발이 묶이면 부대 전체가 위험에 빠진다. 적의 목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절대 지체할 수는 없는 이유다.
“전력으로 달려! 추격을 벗겨낸다!”
적의 추격대는 거의 뒤꽁무니까지 따라붙은 상태였다. 이쪽은 휴식을 충분히 취했다지만, 경무장을 한 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장이 무거운 탓인지 점점 거리가 좁혀들고 있었다.
‘안 돼. 이대로라면 후미가 따라잡힌다.’
계속 달린다면 어떻게든 떨쳐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후미의 부하들은 내어줘야 한다.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듯이. 그것은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프레드릭! 이제부터 네가 선두다! 알겠느냐!”
“예?!”
당황한 프레드릭이 뭐라 답하기도 전에 군터는 말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눈을 부릅뜬 프레드릭을 스쳐지나가며 또 한 번 외쳤다.
“계속 달려라! 절대 멈추지 마!”
“그게 뭔 소립니까! 대장니임!”
홀로 거꾸로 말을 달린 군터는 순식간에 후미에 닿았다.
“대장님! 이 무슨!”
후미를 맡아 달리고 있던 살라스가 경악한 얼굴로 부르짖었지만 군터는 무시한 채 미리 빼든 활시위를 당겼다.
피잉!순식간에 세 발의 화살이 날아갔다. 날아간 화살들은 정확히 말의 앞 다리. 정확히는 무릎 아래에 꽂혔다. 실력이 좋은 전사라도 걷어내기 힘든 부위였다. 앞쪽에 있던 세 명의 전사가 말과 함께 땅을 굴렀다. 한 순간에 장애물이 된 아군을 피하느라 적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그 틈을 타 군터도 다시 방향을 돌렸다.
하지만 바로 그때.
크허엉!
시커먼 그림자가 뒤에서 날아들었다. 등골이 오싹해진 군터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머리통만한 짐승의 앞발이 뚝 떨어지는 중이었다.
콰직!
히히히힝!
본래는 군터의 뒷머리를 노렸을 앞발은 그 사이 앞으로 내달린 모커스로 인해 원래의 목표를 맞추지 못하고 모커스의 허리 뒷부분을 찍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허리 뒤에서 엉덩이까지를 거칠게 갈라 베었다. 모커스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쓰러졌다.
“크윽!”
군터는 재빨리 옆으로 몸을 던져 모커스와 엉켜 구르는 것을 피했다. 그리고 그를 덮친 그림자의 주인을 확인했다.
“qebu zorguraradepoi(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가래가 끓는 듯한, 짐승이 으르렁대는 것 같은 소리.
군터는 그를 알아볼 수 없었으나, 누구인지는 알 것 같았다.
피부 대신 드러난 시커먼 갑각. 손가락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한 갈고리 같은 발톱. 약간 앞으로 굽은 상체.
실로 기괴한 저 모습을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조금 전에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괴물이군.’
떨쳐 낸 후에는 전속력으로 말을 달렸다. 그런데도 쫓아왔다는 것은 저 괴인이 말과 비슷하게, 혹은 말보다도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생긴 것처럼 정말 짐승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briuqek(이 놈은 내거다)! vuebyufew(너희는 계속 쫓아라)!”
주춤했던 적들이 다시 추격을 재개했다. 군터는 그들을 막고 싶었지만 쉽게 몸을 뺄 수가 없었다. 그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는 괴인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인다면 그대로 저 발톱에 갈기갈기 찢길 거라고 그의 본능이 강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와라. 지저분한 녀석.”
일부러 초원어가 아닌 제국어를 썼다. 역겨운 괴물과 쓸 데 없이 말을 섞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발 아닌 도발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애초에 괴인은 그다지 인내심이 없어 보였다.
크아아아!
괴인이 한 차례 울부짖더니 네 발로 뛰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들어왔다.
군터가 즉시 창을 내질렀다. 찌르기의 정석과도 같은 깔끔한 공격. 하지만 괴인은 달리는 와중에 거짓말처럼 옆으로 몸을 틀며 곰처럼 앞발을 휘둘렀다.
“큭!”
군터도 순순히 당하지는 않았다. 치고 들어오는 앞발을 창대 끝으로 쳐내며 괴인의 머리통을 냅다 걷어찼다. 제법 힘이 실린 발차기에 괴인도 휘청거리며 바닥을 굴렀다. 애초 급하게 몸을 틀며 균형이 불안했기에 버텨낼 수 없었다.
‘정말 짐승 같은 움직임이군.’
거리를 벌리며 숨을 골랐다. 동시에 방금 전 괴인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수 년 전 상대했던 괴인도 여러모로 인간을 초월한 몸뚱이를 지니고 있었지만, 지금 상대하는 괴인은 그보다도 한 단계 더 괴물 같았다. 방금 전의 회피만 해도 그렇다. 그런 몸놀림은 날랜 짐승들도 보이기 힘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저런 육중한 몸뚱이로 구사하다니. 군터는 이제껏 그가 가지고 있던 싸움에 대한 기본 상식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시간을 끌면 내가 불리하다.’
저번의 괴인을 상대할 때와는 사정이 다르다. 이번에는 그가 시간에 쫓기는 입장이었다. 추격대가 따라붙었다지만 시간이 지나면 적의 본대도 움직일 것이고, 어쩌면 그보다 더 일찍 앞서간 추격대가 돌아올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다.’
괴인이 머리를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군터는 그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창을 짧게 고쳐 쥐고 달려들었다.
좀처럼 익숙지 않은 부류의 적이다. 군터는 곰과 싸운다고 생각했다. 다만 곰보다 더 빠르고 더 강할 뿐이라고 여겼다. 신경 써야 할 것은 결국 저 흉악한 양 발톱과, 아직까지 한 번도 쓰지는 않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는 지저분한 주둥이 뿐.
군터가 거리를 좁히며 근접전을 시도하자 괴인은 흥분하며 발톱을 휘둘렀다. 군터는 그의 눈이 조금 전보다도 더 번들거리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역시!’
수 년 전 처음 상대한 괴인을 생각해보면, 그는 처음 괴기한 형태로 변신했을 때 이성을 잃었었다. 이 괴인은 조금 다른지 처음부터 이성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과할 정도로 난폭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저 괴인의 본래 성정이 난폭한 것일 수도 있지만, 본래 저 정도라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 짐승 수준인 만큼 어느 정도는 저 변이가 성정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보는 편이 더 타당했다.
크허엉!
군터는 창의 중간 부분을 잡고 괴인과 맞붙었다. 괴인의 힘은 괴력이라 할 만큼 엄청났지만 자세를 낮추고 맞받아치는 식으로 일관하면 전혀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괴인은 말할 것도 없는 괴물이었지만, 신물의 힘으로 신체능력이 상승한 군터 역시 평범한 인간의 수준은 한참 전에 뛰어넘었으니까 말이다.
‘정타 한 번이면 끝장이다.’
몸에 걸친 갑옷 따위, 저 발톱에 한 번 걸리는 순간 살가죽과 함께 갈가리 찢겨나갈 것이다. 괴인과 붙어 싸우는 매 순간마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크아아아아아!
괴인이 신경질적으로 발톱을 휘둘렀다. 군터가 생각처럼 쉽게 쓰러지지 않고 버티니 신경질이 난 것 같았다. 그의 눈에 서린 광기가 더 짙어지는 것을 확인한 군터는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결국 이놈도 전에 그놈과 같군.’
강력한 힘을 얻지만 이성이 옅어진다. 더 정확하게는 인내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투에서 인내심은 침착함과 동의어였다. 싸우면서 침착함을 잃는다는 것은 성급해진다는 뜻.
‘자, 와라.’
군터는 또 한 번 괴인의 공격을 받아내고 슬쩍 자세를 바꿨다. 그러자 창대로 방어하던 가슴이 열렸다. 그것을 본 괴인이 섬뜩한 눈빛을 드러내며 흐트러진 자세에서 득달같이 발톱을 휘둘렀다.
촤악!흉갑이 종잇장처럼 찢겨져 나갔다. 굵은 핏줄기가 솟아났다.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의 고통을 이를 악 물며 참아낸 군터는 즉각 아래로 향했던 창두를 차 올렸다.
괴인의 발톱이 갑옷을 쉬이 잘라낼 수 있을 만큼 날카롭지만, 그것은 군터의 창검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먹이 주술이 걸린 그의 창검은 제국에서 이르는 법구와 다르지 않았다. 그 예기는 괴인의 두터운 갑각을 능히 베어가르고도 남았다.
발로 힘껏 차올린 창검을 혼신의 힘을 다해 위로 그어 올렸다. 괴인의 사타구니에서부터 뱃가죽을 지나 턱 끝까지, 창검은 조금도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베어나갔다.
“끄하아아아아아!”
바람이 새는 것 같은 특이한 비명소리. 다만 그 안에 담긴 고통은 진짜였다. 괴인이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군터는 즉각 따라붙어 괴상한 비명이 흘러나오는 괴인의 입에 창을 쑤셔 박고 몸을 실어 찍어 눌렀다.
괴인의 몸뚱이가 땅에 처박히고, 군터는 버둥거리는 그의 가슴을 밟고 올라섰다. 그리고 괴인과 눈을 마주쳤다.
잔뜩 일그러진 그의 눈에서 조금 전과 같은 번들거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고통과 두려움이 광기를 쫓아내버린 모양이었다.
“아까처럼 웃어보지 그러나.”
“하아아아아…….”
괴인의 눈매가 비틀렸다. 동시에 군터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괴인은 웃고 있었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을지언정, 두려움에 잡아먹히지는 않은 것이다. 그는 내려다보는 군터를 비웃듯 이빨을 드러냈다. 그것을 확인한 군터는 즉각 괴인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크윽!”
적을 죽였다는 안도감에 순간 긴장이 풀어졌다. 그러자 잊고 있던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가슴에서 흐르는 핏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격통이 밀려와 온몸이 벌벌 떨릴 정도였다.
‘아직 끝이 아니다. 움직여야…….’
군터는 몇 발자국 움직이지 않아 멈춰 섰다. 그리고 방향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곳엔 희미하게 숨 쉬고 있는 모커스가 있었다.
“…….”
모커스의 몰골은 끔찍했다. 엉덩이부분은 완전히 세 갈래로 찢겨져 있었고, 피를 얼마나 흘린 것인지 쓰러진 곳 주변에는 아예 피 웅덩이가 생겨져 있었다.
모커스는 흐릿한 눈으로 군터를 보았다. 주인을 알아본 것인지 작게 울었다. 끊길 듯 말 듯한 희미한 울음소리에 평소의 용맹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미안하다.”
군터는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커스의 목을 단번에 베어주었다. 이렇게 고통을 덜어주는 것만이 그가 오랜 전우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미안하다.”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돌렸다.
퍼억!
“큭!”
무방비 상태에서 가해진 등 쪽의 충격. 군터는 앞으로 밀려 나뒹구는 와중에도 바싹 몸을 낮췄다.
“yufew(쫓아라)!”
우려하던 상황이었다. 시간을 너무 끌린 나머지 2차 추격대가 따라붙은 것이다.
굳으려는 몸에 억지로 힘을 주며 달렸다. 뒤에서 말발굽 소리와 살기어린 외침이 섞여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무리 힘껏 땅을 차고 달려도 소리는 점점 커지기만 했다.
‘틀렸나.’
점점 무거워지는 다리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소리들을 느끼며 군터는 체념했다. 그는 달리기를 멈추고 몸을 돌렸다.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는 적들이 보였다. 그 수가 족히 수백. 그 모든 이들이 오직 그만을 노려보며 쫓아오고 있었다.
‘벨리사.’
오테론을 떠나기 전에 보았던 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언제나처럼 걱정 어린 얼굴을 하던 그녀에게 그는 아무 일 없을 거라고 달랬었다. 말이 길어지면 그녀의 걱정이 깊어질까 싶어 하고픈 말도 아끼고 집을 나섰었다.
‘많이 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럴 리 없다는 것을 그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았다. 그녀는 슬퍼할 것이다. 그게 가장 미안했다. 세상에 나와 아비 얼굴 한 번 보지 못할 아이에게도 미안했고.
‘슬픈 것이로군. 전사의 삶이란.’
예전 같았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생각이다. 하지만 자신으로 인해 슬퍼할, 남겨질 이들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착잡해졌다. 칼날 위에 살아가는 삶이 위태로운 것이야 당연하지만, 이기적인 한 사내로 인해 덩달아 불행해져야 하는 이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그들이야말로 칼날 위에 걸린 가장 큰 담보가 아닐까.
“화가 나는구나.”
피하지 못한 운명과 무력감. 그런 자괴감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그것은 어쩌면 점점 치미는, 생명으로서 응당 지니는 두려움에 대한 저항이었다.
‘최대한 많이, 길동무로 데려가주마.’
마지막 각오를 다지며 창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땅을 박차려던 차.
“대장님!”
뒤쪽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군터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프레드릭과 몇 부하들이 전력으로 질주해오고 있었다. 어떻게 그들이 다가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인가 같은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군터는 프레드릭이 내뻗은 손을 움켜잡았다. 프레드릭의 힘을 빌려 뛰어오른 그는 프레드릭의 앞에, 안기듯 앉았다.
“어찌 된 일이냐!”
“그냥 가라고 하면 그냥 갈 것 같았습니까? 걱정 마십쇼. 애들은 살라스에게 맡기고 왔으니까요. 아마…추격대는 어떻게든 벗겨냈을 겁니다.”
“바보 같은 짓을…….”
“에게? 그게 목숨 구해준 부하한테 할 소리입니까? 지금 눈물 나게 고마워하시는 거 다 알거든요. 혹시 지금 울고 계시는 거 아니죠?”
“헛소리는 그쯤해라.”
“헤헤! 이따 가서 봅시다. 눈물 자국이 있는지 없는…….”
퍼억!
프레드릭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군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복부 한복판을 관통한, 무지막지하게 큰 화살 한 대.
“으…으윽!”
화살은 그들의 몸을 꿰뚫은 채로 박혀 있었다. 군터는 삐죽 튀어나온 화살촉을 보며 크게 피를 토했다. 그는 참기 힘든 고통에 몸을 떠는 한편, 퍼뜩 뒤편의 프레드릭이 생각나 간신히 입을 떼었다.
“프…레드…….”
퍼퍼퍽!등에 전달되는 육중한, 다발의 충격. 동시에 등에 쏟아지는 뜨끈한 감촉. 군터는 그것의 정체를 직감하고 바짝 몸이 굳었다.
잠시 후, 잔뜩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쉬지…말고…….”
“너……!”
“계…속…달…려…….”
어깨를 밀쳐내는 손길. 복부를 강타하는, 타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
등을 닿던 무게감이 사라졌을 때, 군터는 간신히 고개를 돌려 뒤를 볼 수 있었다. 시체처럼 땅을 나뒹구는 프레드릭을.
“아…안……!”
속에서 치미는 감정을 토하려는 순간. 그의 몸이 더 버티지 못하고 의식을 끊어버렸다.
*
“…놓쳤는가.”
아득히 먼 점을 응시하던 포라칸이 읊조렸다. 그는 혀를 차며, 들고 있던 활을 부하 전사에게 던졌다.
“한 명이 낙마한 것 같습니다만.”
활을 받아든 전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는 조금 전 자그마한 점 하나가 큰 점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확인한 차였다.
“노린 건 그놈이 아니다. 그놈이 지키려던 다른 놈이지.”
아마도 적의 지휘관일 것이다. 거리가 너무 멀어 화살에 힘이 달린 것이 문제였던가. 아니면 제대로 머리를 노리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던가. 뭐가 되었든, 목표물을 잡지 못했으니 화살 한 대를 날린 보람은 없는 셈이다.
“직접 쫓는 편이 나았을 뻔했군.”
그는 꽂아둔 창을 뽑아 들었다. 오래 전에 숨이 끊어진 시체가 크게 몸을 들썩였다.
“머리는 잡았지만 꼬리는 놓쳐버린 셈인가.”
도망치던 놈에 비해서도 화려한 갑옷이다. 이 시체가 야습을 가해온 제국군의 우두머리임은 틀림없었다. 다만 우두머리는 잡았어도 적을 모두 섬멸하지는 못했으니 승리는 승리이되 다소 아쉬움이 남는 승리라 할 수 있었다.
“추격대를 불러들여라.”
“벌써 말입니까?”
“잔챙이 몇을 더 잡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대족장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
“옛!”
포라칸은 피 묻은 창을 천천히 닦아냈다. 몸속에서 들끓는 열기가 당장 적들을 쫓으라 요구했지만 그는 무거운 의지로 그것을 가볍게 짓눌렀다.
‘좋긴 하지만, 역시 성가신 힘이로군.’
젊고 미숙한 많은 전사들이 이 힘에 휘둘리는 까닭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이 힘의 유혹은 너무나 강렬했다. 강한 만큼 위험한 힘. 그것이 이 ‘선물’에 대한 포라칸의 정의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