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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74화 (74/1,064)

<-- 포효하는 맹수 -->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막아! 물러서지 마라!”

보통 사람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검은 괴인들이 갈고리 같은 발톱을 휘두르며 사납게 날뛰었다. 창칼은 그들의 전신을 감싼 두터운 갑각을 제대로 뚫지 못했고, 근거리에서 날아드는 화살 역시 움직임을 멈추지 못했다.

“크아악!”

날카로운 발톱이 무자비하게 살과 뼈를 찢었다. 어설프게 유지되던 진형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느닷없는 전투에 대한 당황, 생전 처음 보는 괴생물에 대한 두려움 등이 군기를 갉아먹었다.

“한심한 놈들! 비켜라!”

일방적으로 흘러가던 전세가 주춤한 것은 우렁찬 고함소리가 터져 나오면서였다. 투스바이언이 중무장한 병력을 대동하고 괴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생전 처음 보는 괴물이군. 네놈들은 모조리 박제해서 내 집에 전시해주마.”

커다란 철추(鐵椎)가 괴인들을 가리켰다.

“모조리 쓸어버려라!”

명령을 내리며 투스바이언은 가장 먼저 땅을 박찼다. 묵직한 철추가 뚝 떨어져 내렸다. 목표가 된 괴인이 팔을 들어 막았으나 우직! 하는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공격을 막은 팔이 기이한 방향으로 뒤틀렸다. 괴인이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일으키려할 때 재차 떨어진 철추가 괴인의 머리통을 박살냈다.

“흥! 별 거 없군! 우아앗!”

괴인들이 빈틈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투스바이언도 이를 악 물고 철추를 휘두르며 맞서 나갔다. 대장의 분전을 본 병사들도 용기백배하여 응전했다.

“크아아아!”

“이 괴물 새끼들!”

괴물과 인간이 뒤엉킨 살육전. 그 혼란스런 전장의 한복판에서 투스바이언은 단연 눈에 띄었다. 그의 철추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꼭 한 명의 괴인이 비명을 질렀다.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철추를 휘두르는 그는 검은 괴인들보다도 더 괴물 같았다.

“으하압!”

콰직!

또 한 명의 괴인을 머리 없는 송장으로 만들어준 투스바이언이 눈을 부릅떴다. 사나운 괴인들이 길을 트고 있었다. 갈라진 괴인의 틈 사이에서 다른 괴인들보다도 더욱 큰 덩치의 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놈들과는 좀 다르군. 네놈이 이 잡것들의 대장인가?”

새로 모습을 드러낸 괴인은 덩치만 큰 것이 아니라 외관상으로도 뚜렷하게 다른 괴인들과는 달랐다. 일단 눈부터가 샛노란 색이 아니라 칙칙함이 도는 푸른색이었다. 그래서인지 풍기는 분위기 또한 다른 괴인들처럼 마냥 사납지 않고 조금은 차분한 느낌이었다.

“qwuerbiuqbsdfnio…eroitbiowbt.(흔치 않은 강함…용맹한 전사군)”

“뭐라고 지껄이는 게냐. 사람에게 말을 붙일 땐 사람의 말로 하거라.”

투스바이언은 철추를 고쳐 쥐었다. 오랜 세월 전장을 누비며 잔뼈가 굵은 그였다. 그 경험이, 등골을 긁는 서늘한 감각이 눈앞의 괴인이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werubiuqbiwqwribo.(전력으로 상대하지 못함이 아쉽군)”

푸른 눈의 괴인이 좌우로 목을 꺾었다. 칼날 같은 발톱이 몸의 움직임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투스바이언의 턱 끝에 걸려 있던 땀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철추와 발톱이 부딪쳤다.

*

“커헉! 흐윽!”

입가에서 핏물이 줄기차게 흘렀다. 갑옷채로 꿰뚫린 노구는 그의 가슴 한복판을 뚫은 거무튀튀한 팔이 움직일 때마다 위태로이 흔들렸다.

눈이 감길 만하면 밀려오는 격통에 무알 카빌라이드는 의식을 잃을 수조차 없었다. 그는 떨리는 눈을 부릅뜨고 괴인을 노려보았다.

“죽…여라…괴물…노옴……!”

[그럴 수는 없지.]

자주색 안광이 노장의 눈을 향했다.

그는 노회한 군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필사적으로 억누르려 하지만 그래봐야 한낱 평범한 인간일 뿐. 그 모든 노력은 그의 입장에서는 그저 가소로운 것이었다.

[카락시아는 어디에 있지? 알려주면 편히 죽여주겠다.]

그의 말은 초원어가 아니었다. 또한 제국어도 아니었다. 그 소리는 목구멍을 타고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사는 그대로 상대의 마음을 두드렸다.

“노리…는…것이…카…락시아…더냐.”

[어설픈 연기는 그쯤 해두지 그러나. 너의 두려움이 생생히 느껴진다.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만큼 우스운 것도 없지.]

“쿨럭! 커흐으……!”

무알 카빌라이드는 눈을 굴려 주변을 보았다.

수십 명의 부하들이 끔찍한 주검이 되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모두 적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을 함께 한 이들이었다. 그는 그들의 얼굴, 이름, 모든 것을 기억했다.

“…죽여라.”

[그냥 죽이는 건 너무 쉽지.]

큼직한 손이 무알 카빌라이드의 머리를 쥐었다. 그는 가슴을 꿰뚫은 손을 거칠게 뽑아냈다. 노장의 몸이 고통으로 떨렸다.

[수고롭게 만든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나.]

머리를 쥔 손에서 자주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는 곧 무알 카빌라이드의 머리로 파고들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눈과 입, 코, 귀에서 핏물이 줄줄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아랫도리에서도 피가 떨어졌다. 그러다 피부에서도 피가 땀방울처럼 맺히기 시작하더니 뚝뚝 흘러내렸다. 살가죽이 쪼그라들어갔다. 그 즈음에서는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곧 숨을 거둘 노인이 헉헉대는 것처럼 쉰 소리만이 흘러나왔다.

툭!

머리를 쥔 손이 힘을 뺐을 때는 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걸치고 있던 갑옷만이 둔탁한 소리를 낼 뿐, 빼빼 마른 가죽과 뼈는 땅에 닿자마자 가루가 되어 퍼졌다.

[멍청한 죽음이군. 조금 더 귀찮아졌을 뿐이다.]

싸늘한 조소에 구멍 뚫린 갑옷만 남은 노장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

적습을 뜻하는 종이 울렸을 때, 할렌은 일단 심호흡부터 했다. 자꾸만 뜨거워지려는 머리를 식히기 위함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라니?”

유리아가 불안한 얼굴로 서성였다. 한때 여느 사내 못지않은 굳센 여인이었던 그녀는 이제 도시생활에 익숙해져 초원에서 살 때의 기질을 잃어버렸다.

“아무 일 없을 겁니다. 그래도 일단은 집에 들어가 마님과 함께 계세요. 제가 나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참! 마님께서 놀라시지 않도록 별 일 아니라고 말해주시고요.”

“그래. 알겠다.”

유리아와 루시가 벨리사가 있는 본채로 들어갔다. 그들을 들여보낸 후, 할렌은 즉시 움직였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검 한 자루를 패용하고 길거리로 나서니 거리는 이미 소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일반 시민들은 모두 허둥대며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고, 무장한 병사들이 어디론가 바삐 움직였다.

‘확실히 적이 쳐들어왔구나!’

병사들에게서 풍기는 긴장감이 그에게까지 전해졌다. 할렌은 마름침을 꿀꺽 삼키고 병사들이 향하는 성벽 쪽을 보았다. 까마득하게 멀어 보이는 성벽 위에서 작은 점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틀림없이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이었다.

‘적이 성벽 위에 있다?’

어떻게? 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적이 성벽 위에 있다는 것은 언제든 성벽 아래로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적이 도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들어와 있을지도 모른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꽉 쥔 손아귀가 땀으로 축축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판단을 내려야 했다. 가장 좋은 것은 적이 무사히 격퇴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믿고 가만히 있다가, 만에 하나라도 적이 도시 내까지 들어온다면?

‘적이 성벽에까지 올랐다면, 이미 도시 내의 모든 군대가 움직이고 있을 거야. 막시밀리언 천인대 쪽으로 간다고 해도 이리저리 치일 가능성이 높아.’

혼란에 빠진 도시에서 군대가 수호자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적의 격퇴가 우선이지, 시민의 보호는 둘째다. 그리고 전시에 둘째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서둘러라!”

그때 할렌의 눈에 일단의 무리가 눈에 띄었다. 그들 역시 군대였는데, 이전에 본 군대와 달리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과 정반대로 이동하고 있었다.

‘낯이 익은데.’

할렌은 그들 중 낯이 익은 이들 몇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병사인데 낯이 익다면, 그건 그들이 막시밀리언 천인대 소속이라는 것을 뜻했다. 소속 백인대는 다르지만, 종자로 오가며 몇 번 볼 일이 있었다.

‘남쪽으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북쪽 성벽이다. 그리고 저들은 그 정반대인 남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할렌은 그들을 쫓아갈까 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비켜! 모두 비켜!”

할렌을 검을 빼들고 시민들을 위협해 물리치며 달렸다. 그가 향하는 곳은 군터의 자택이었다.

*

“남쪽의 전황이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찌 된 일인지 사령관께 보낸 전령도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합니다.”

막시밀리언이 말했다. 말하는 그나, 듣는 그라니나 모두 중무장한 상태였다. 그들 주변에는 병사들이 수백 명이나 집결해 있었다.

“그럼 할 일은 두 가지군. 사령관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는 것과 투스바이언 쪽을 지원하는 것.”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음?”

그라니스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법보입니다.”

“법보?”

“이 습격은 범상치 않습니다. 현 상황을 추정해보면 지금 도시를 공격하고 있는 것은 일전에 보고 받은 약탈자 이백 여일 것입니다.”

말도 안 되지만 실제로 상황을 헤아려보면 그것이 답이었다.

“고작 이백. 하지만 그 정도 수의 적에 아군이 고전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놈들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애초에 성문을 두고 성벽에 오른 것부터 그렇지요. 놈들은 최정예입니다. 그런 최정예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움직일 리 만무하지요.”

“놈들이…법보를 노리고 있다는 말인가?”

“이백으로 도시를 점령한다는 것보다는 그쪽이 더 그럴듯한 추론 아니겠습니까.”

“정말 최악을 가정한다면, 도시를 내어주는 한이 있어도 법보는 지켜야 합니다.”

“설마 그런 일이…….”

“터무니없는 가정이지요. 허나 법보는 그만큼 중요합니다. 이 도시 전체보다도 더.”

“으음!”

“따라서 사령관님의 수색과 남쪽의 지원. 그보다는 법보를 지키는 일이 더 중합니다.”

“그래서 어찌하자는 얘기인가?”

“법보를 살마드까지 호송해야 합니다. 그라니스님께서 맡아주시지요. 사령관의 수색과 투스바이언님 쪽의 지원은 제가 맡겠습니다.”

“자네가? 괜찮겠나?”

그라니스는 내심 막시밀리언이 몸을 빼고 싶어 법보 이야기를 꺼낸 것인가 싶어 마뜩찮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위험한 임무를 자처하니 그가 정말 법보를 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술사들은 이미 내성을 빠져나와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움직이십시오. 다만 휘하의 병력 일부의 지휘권을 위임해주셨으면 합니다. 두 군데에 병력을 운용하려면 아무래도…….”

“기꺼이 그리 하겠네. 하지만 정말 혼자서 괜찮겠는가? 차라리 자네와 내가 각기 움직이고, 휘하의 병력을 시켜 호송을 시키는 편이.”

“백인장 몇을 붙여 보낸다 한들 술사들에게 휘둘리기만 할 것입니다. 샌님 같은 이들이 호송대를 지휘한다면 자칫 일을 그르칠 수도 있으니, 천인장급이 나서야 합니다.”

“알겠네. 그럼…무운을 빌지. 원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라니스님도 보중하십시오. 원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라니스와 헤어지고 그의 병력 일부를 이양 받은 막시밀리언은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그라니스의 병력 일부를 사령관의 처소 쪽으로 보냈고, 본인은 병력을 모두 이끌고 그의 자택 쪽으로 향했다.

“막시밀리언님. 어찌 바로 지원을 가지 않으시는지…….”

남아있던 그라니스군의 백인장 한 명이 전장과는 정 반대로 움직이는 데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러자 막시밀리언이 그를 향해 몸을 돌렸는데, 함께 나온 것은 말이 아닌 검이었다.

푸욱!

목이 찔린 백인장이 눈을 부릅떴다.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을 벙긋했지만 검날에 막힌 목구멍에서는 피 끓는 소리 외에 다른 것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미안하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라니스 천인대 소속의 병사 수십 명도 백인장과 같은 상황이었다. 갑작스레 돌변한 막시밀리언의 병사들이 그들의 목을 친 것이다.

“서둘러 움직인다.”

“옛.”

막시밀리언의 그늘진 얼굴에 초조함이 감돌았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조아라가 욕을 많이 먹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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