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터-67화 (67/1,064)

<-- 성숙. 유명세. -->

이전까지 군터 기병대는 막시밀리언 천인대 내에서도 다소 따로 노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은 바깥의 일부가 그들을 아쿼러즈 기병대라 부르는 까닭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들은 같은 초원 출신이라는 데서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꼈고 그를 바탕으로 강하게 결속했다. 그 결속은 백인대를 단단히 뭉치게 해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을 ‘바깥’의 다른 이들과 격리시켰다.

그들은 이제껏 그게 문제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군터는 그것을 문제라 규정했고, 바뀔 것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 자신부터 투스바이언을 찾아가 사과를 하거나, 천인대 내의 다른 백인장들과 교류를 활발히 하는 등을 통해 솔선수범했다. 그러니 자연히 그 휘하의 십인장들과 병졸들까지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제껏 전혀 안 하던 일을 갑자기 하려니 하는 쪽이나 받아들이는 쪽이나 어색하기도 했다. 그나마 같은 천인대의 소속이고, 함께 전장을 누빈 경험도 있어 어색하지만 꾸준히 관계는 나아져갔다. 군터가 십인장들을 모아서 이야기하고 한 달이 지났을 즈음에는 간간이 타 백인대의 병사들과 어우러져 술자리를 갖는 모습도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대장님이 말씀하신 뜻에 공감은 하면서도 쉽게 될까, 잘 될까 싶었는데 어떻게든 되기는 하는군.”

프레드릭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살라스가 말을 받았다.“어쨌든 전우니까요. 그리고 바깥에서 워낙 시끄럽게 두들기는 이들이 있으니까 말입니다.”투스바이언 천인대는 한결같이 막시밀리언 천인대에 날을 세웠다. 그나마 요즘 들어서 군터 기병대를 두고 따로 시비를 걸지는 않으니 다행이었지만, 천인장들끼리의 사이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소문에 의하면 이번 군무회의 때도 두 사람은 첨예하게 날을 세웠다고 했다.

“한풍(寒風)이 불면 몸이 굳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그게 맞는 얘기냐?”“글쎄요?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살라스가 작게 웃었다. 프레드릭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는 아주 능구렁이가 다 됐어. 착하고 순진했던 우리 막내는 어디로 갔는지…….”

“또 한 살을 더 먹었으니까요. 이제는 저도 마냥 어리지만은 않습니다.”

“아, 그러세요? 몰라 뵈었구만요.”

하늘에서 눈이 쏟아졌다. 어젯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아직까지도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었다. 한 해를 보낼 수 없다는 듯, 무자비하게 퍼부어댔다. 덕분에 세월은 지나가고 애꿎은 사람들만 발이 묶였다. 도시를 나서려던 상단들도 모조리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었다.

“설마 내일까지 내리지는 않겠지?”

“설마 그러겠습니까.”

프레드릭은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다. 살라스 역시 희망사항을 말한 것일 뿐,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들은 나란히 고개를 들어 눈을 쏟아내는 하늘을 올려 보았다. 구름이 자욱한 회색 하늘은 아무리 봐도 쉬이 진정될 것 같지 않았다.

*

“큰일이군.”

사흘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발이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기세가 많이 죽어 첫날과 같은 폭설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내리는 눈은 지금도 꾸준히 땅에 쌓이고 있었다. 당연히 그동안 도시를 오가는 물류와 사람의 흐름이 뚝 끊겨버렸다. 눈이 단순히 오테론 인근에만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전역에 걸쳐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커다란 문제였다. 오테론은 태생적으로 자생할 수 없는 군사도시였다. 1년 내내 찬바람이 부는 오테론에는 하다못해 제대로 된 농토도 얼마 없는 실정이었는지라,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 많은 부분을 살마드와 인근 도시들에 의존하고 있었다. 오테론이 도시로서 계속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갈색초원과 맞닿은 방벽 도시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그리 심각한 것입니까? 이럴 때를 대비하여 비축해둔 물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막시밀리언이 영 심각한 얼굴이자 코르넬이 슬그머니 말했다.

“그것은 전시(戰時)용이야. 물론 쓰고자 하면 못 쓸 것도 없지만, 사령관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군. 그 노인네는 이런 쪽에서는 완고한 부분이 있거든. 투스바이언이야 말할 것도 없이 반대할 테고.”

물론 당장 열흘 정도, 혹은 그 이상 동안 길이 막힌다하여 오테론에 큰 일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는다. 자생할 수 없는 도시라 해도 일단은 도시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쯤 되면 눈이 그쳐도 문제다.

“그대로 얼어버리겠지.”

길에 쌓인 눈이 얼기 시작할 거다. 이미 밑에 쌓인 것은 얼어버렸겠지. 그렇다면 당장 눈이 그쳐도 움직이기가 힘들다. 사람도, 물자도.

“하지만 달리 수가 없지 않습니까. 날이 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는…….”

“그렇지. 그런데 사령관이나 투스바이언은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야.”

오테론이라는 도시가 군사도시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 이례로 이런 폭설은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런 상황에 대한 지침도 마땅히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처는 전적으로 사령관의 재량이었다. 가만히 앉아 날이 개기를 기다리든, 아니면 다른 수를 강구하든.

“오늘 당장 눈이 그치더라도, 이 추위가 한동안 이어진다면 본격적인 물류의 이동은 빨라봐야 두어 달 뒤에나 이루어지겠지. 물론 그때쯤이 되어야 간신히 출발할 수 있다는 뜻이고, 살마드의 물자가 도착하려면 거기에 최소 두 달 이상은 더해야 한다. 그러면 근 반 년이야. 사령관과 투스바이언은 이를 굉장히 큰 위험이라 생각한다.”

물류의 이동이 막힌다는 것은 보급 없이 지내야한다는 뜻이며, 최소 두어 달 가량 동안 비축해둔 물자를 계속 소모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알 카빌라이드는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그렇다면 어찌 하겠다는 겁니까? 설마하니 이 날씨에 살마드에서 물자를 실어오겠다는……?”

“그건 당연히 아니지. 듣자하니 살마드에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법보(法寶)가 있다고 하더군. 그것과 술사들을 데리고 오자는 이야기야.”

“술법으로 상황을 타개하겠다니, 생소하군요.”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노련한 사령관의 말이니 믿어볼 밖에. 아무튼 그래서 기병대를 급파하려는 모양이다. 중요한 임무라 두 개 부대는 움직이게 될 것 같다.”

그러면서 막시밀리언의 시선이 군터에게 향했다. 그 움직이게 될 두 개 부대 중에 군터 기병대가 속해 있다는 뜻.

군터가 주먹을 가슴께로 올리며 살짝 몸을 숙였다.

“맡겨주십시오.”

“그래. 아무래도 일의 중요성이 있다 보니 격을 맞추고자 그라메인이 움직이게 됐네. 그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 마뜩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일이니만큼 잘 해주길 바라네.”

“예.”

군터는 그 뒤로 이번 임무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다.

“이곳의 소식이 제대로 전해진 적이 없으니 지원 요청임과 동시에 전령 역일세. 따라서 모든 상황은 살마드에 당도하고서야 명확해지겠지.”

사령관의 서신을 전하는 것도, 이야기를 하는 것도 모두 그라메인의 몫이었다. 군터는 부대장 자격으로 따라붙는 것이었으니 실상 그가 신경 쓰게 될 것은 술사들의 호위가 전부였다.

“내가 겪은 바로 의하면, 술사라는 이들 중에는 유달리 까다로운 이들이 있네. 특히 주술사가 그래. 그러니 만약 살마드에서 지원 오는 술사 중에 주술사가 껴 있거든,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을 게야.”

“그리하겠습니다.”

그 뒤로도 몇 가지 자잘한 당부사항 같은 것들을 들은 군터는 막시밀리언의 자택을 나서자마자 휘하 십인장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이번에 맡게 된 임무에 대해 알려주었다.

“어쩐지 불길하더라니……. 이 날씨에 밖으로 나서려면 준비 단단히 해야겠군요.”

“얼어 죽지 않으려면 그리 해야겠지.”

이 날씨에 밖으로 나가려면 갑옷 안에 모피 옷을 받쳐 입는 정도로는 부족할 것이다. 게다가 말까지 달려야 한다면 더더욱.

“그나저나 술사라니. 저는 살면서 술사들을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나도 그래.”

“나도.”

술사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동화에 나오는 요정과 같은 이들이었다. 그들이 다루는 힘만큼이나 그들의 존재는 희귀하고 신비로웠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문으로만 접하곤 했다.

“주술사라는 이들은 조심하라 하시더군.”

“술사도 여러 갈래가 있나보지요?”

누구도 답할 수 없는 물음이 떨어졌다. 그러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두 명에게 향했다. 한 명은 프레드릭, 한 명은 살라스. 그 중에서도 살라스를 향한 시선이 더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프레드릭은 왜 나를 보냐는 듯 고개를 저었고 살라스는 입을 열었다.

“저도 정확히 아는 건 아닙니다. 그냥 책에서 본 것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말은 살라스가 무언가를 설명할 때의 전형적인 버릇이었다. 이젠 누구도 이런 살라스의 겸양(?)에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 같은 모르는 사람들이야 술사라고 하면 다 같은 줄 알지만, 실은 술사도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말씀하신 주술사(呪術士)이고, 또 하나는 법술사(法術士)입니다. 이들이 사용하는 술법도 주술과 법술로, 그 종류가 다릅니다. 어떤 술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술사 역시 앞서 말한 두 가지로 갈리는 것입니다.”

역시 만물박사 살라사는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군터를 포함한 모두는 순식간에 살라스 선생의 강의에 빠져들었다.

“제가 본 책에서는 주술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라 표현했고 법술을 ‘빌려와 사용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게 뭔 뜻이야? 뭘 만들고 뭘 빌려와?”

“에…그러니까 주술이라는 것은 술사가 직접 수양하는 힘입니다. 따라서 약할 수도 있고 번거로울 수도 있지만 꾸준한 수양으로 그 힘을 기를 수 있지요. 반면에 법술이라는 것은, 엄밀히 따지면 술사의 힘이 아닌 겁니다. 내 힘이 아닌 다른 힘을 빌려와서 그걸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더 강합니다. 기왕 빌려와 쓸 것이라면 약한 힘을 빌려올 이유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힘은 술사 본인의 힘이 아니기 때문에 수양으로 힘을 늘릴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기껏 길게 설명을 했건만 이해 못한 얼굴을 한 이들이 반이 넘었다. 짧게 한숨을 쉰 살라스는 마땅한 비유를 찾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아! 이리 생각하십시오. 주술이라는 건 이를테면, 우리의 몸입니다. 우리의 몸이란 건 단련하면 할수록 강해지지 않습니까?”

“그렇지.”

“법술이라는 것은…이 검 같은 겁니다. 우리는 장인이 만든 검을 가져와 쓰고 있는 게 아닙니까? 술법으로 비유하면 빌려온 힘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망치를 들고 이 검을 두드린다고 해서 검이 더 강해지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러니 있는 그대로 사용하게 되지요. 이게 바로 법술입니다.”

“왜? 망치질을 배워서 두들기면 검이 더 날카로워질 수도 있잖아.”

따악!

어느 멍청한 십인장이 눈을 껌뻑거리며 반문하자 즉각 그의 이마에 불벼락이 떨어졌다. 뭔가 힘이 잔뜩 빠진 것 같은 살라스를 대신한 통렬한 가르침이었다.

“그래. 넌 열심히 망치질이나 배워라. 올 때 명검 한 자루 잊지 말고.”

우매한 자를 응징한 프레드릭이 달아오른 손가락을 털며 쯔쯔하고 혀를 찼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몸이 안 좋습니다. 글 쓰기가 힘듭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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