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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61화 (61/1,064)

<-- 갈등 -->

선공은 투스바이언이 날렸다. 그의 큼지막한 주먹이 콧잔등을 노리고 뻗어왔다. 군터는 그것을 고개를 젖혀 피해내고 투스바이언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흥!”

투스바이언은 몸을 틀며 주먹을 흘리는 한편 팔과 허리 사이에 빗나간 군터의 주먹을 끼웠다. 그리고는 다른 한 팔로 멱살을 잡아 그대로 거꾸로 메쳤다. 주먹을 흘림과 동시에 이어진, 깔끔하기 이를 데 없는 역공의 한 수였다.

“큭!”

순식간에 땅에 등을 메쳐진 군터가 잔기침을 토했다.

퍼억!

하지만 그 역시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등이 땅에 부딪치자마자 아직까지도 멱살을 잡고 있는 투스바이언의 가슴팍을 힘껏 걷어차 밀어내고 손으로 땅을 밀치며 한 번 더 다리를 칼처럼 휘둘렀다. 투스바이언은 황급히 손을 들어 옆머리가 차이는 것은 막았지만 강한 충격에 비틀거렸다. 군터가 그 사이 잽싸게 몸을 일으켰다.

잠시 거리를 두고 서로를 탐색하던 둘.

이번에 먼저 움직인 것은 군터였다. 한달음에 거리를 좁히며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몸의 모든 힘을 실은 발차기가 다시 한 번 옆머리를 노렸다. 그 몸놀림이 한 마리 표범처럼 날렵했다.

퍽!

하지만 투스바이언도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았다. 그는 가까스로 팔을 들어 막으면서 군터의 발목을 붙잡고 패대기를 치려했다.

그 순간, 군터가 땅을 딛고 있던 발까지 차 올렸다. 투스바이언이 한 쪽 발을 붙든 것을 축으로 삼아 반대쪽 머리를 노렸다.

“컥!”

투스바이언이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다리가 불안하게 휘청거렸고 발을 붙들던 손에서도 힘이 빠져나갔다. 군터는 불안정하게 착지하면서도 그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꽂아 넣었다.

턱!

하지만 그것이 과욕이었을까. 힘껏 뻗은 주먹은 복부 바로 앞에서 두툼한 손에 막혔다. 퍼뜩 고개를 든 군터에게 돌덩이 같은 이마가 떨어져 내렸다.

빠악!

세상이 뒤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아찔한 충격에 비명조차 나지 않았다. 군터는 끊어지려는 정신을 간신히 붙들었다.

“하아앗!”

이번엔 턱이 흔들렸다. 충격에 그대로 밀려 뒤로 나가떨어지고 나서야 턱에 주먹을 허용했다는 것을 알았다.

‘온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느낌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군터는 떨어진 고개를 세우지도 않은 채로 정면을 향해 힘껏 주먹을 날렸다. 주먹 끝에 묵직한 느낌이 들더니 외마디 신음이 귓전을 때렸다.

“으윽!”

그는 쫓아가는 대신 정신을 추스르는 쪽을 택했다. 살짝 흐릿해졌던 시야가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정면을 보니 비슷한 자세로 숨을 고르는 투스바이언이 보였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시건방진 야만인 놈이 그래도 믿는 구석은 있었던 모양이구나!”

투스바이언의 목소리는 여전히 걸걸했지만 마냥 분노로 이글거리던 눈은 오히려 차분해져 있었다. 경시하는 마음을 완전히 버렸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것은 군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테론 제일의 용사라더니. 허명은 아니었던 모양이오.”

“다른 소속이라 하나 내 네놈의 상관이다. 혓바닥이 반 토막이구나.”

“목을 내놓고 붙자고 할 때부터 상관 대접은 포기한 것 아니었소?”

“흥! 맞다! 곧 죽을 놈한테 상관 대접을 받아 무엇 할까!”

투스바이언이 한 마리 멧돼지처럼 저돌적으로 땅을 박차고 달렸다. 군터 역시 정면으로 마주 달려 나갔다. 가운데서 사이좋게 주먹 한 대 씩을 주고받은 두 사람이 물러섬 없이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퍼억!

발과 발이 부딪쳤다. 서로를 밀어내지 못하고 동시에 뚝 떨어진 두 발이 땅을 찍고, 이어진 다리들이 서로 맞물렸다.

“흡!”

수도(手刀)가 주먹을 튕기고 팔뚝이 방패처럼 틀어막았다. 서로의 숨결마저 느껴지는 지근거리에서 두 사람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치열하게 맞붙었다. 마치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순간 패배가 확정되기라도 하듯, 서로를 타격하고 밀어내기 위한 움직임은 신속하게 끊임없이 이어졌다.

퍼억!

무릎이 복부를 올려 쳤다. 숨이 턱 막히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섬전 같이 뻗은 주먹이 목울대를 쳤다. 끝없이 공방을 주고받던 두 사내가 목과 복부를 움켜쥐고 주춤주춤 물러섰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그 와중에도 서로를 죽일 듯 노려보는 사나운 눈.

끊겼던 호흡이 돌아오자마자 맹수 같은 두 사내는 다시금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

쾅!

또 한 번의 박치기.

온 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오기로 버텨냈다. 그리고 목에 힘을 있는 대로 주고, 받은 것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쾅!

이번에는 투스바이언이 억눌린 신음을 토하며 위태로이 흔들렸다.

“으아아아!”

누가 내지른 고함인지 모른다. 두 사람 다 마지막 힘을 쥐어 짜냈고, 입은 둘 다 열려 있었다. 잔뜩 힘 빠진 기합성은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으면서 뚝 끊겼다.

“으…으으윽!”

시원하게 팔 다리 다 펴고 뻗어버린 군터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팔이며 다리며,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힘이 넘쳐나는 것은 오직 머리뿐이었다. 뜨거운 투쟁심은 시체처럼 늘어진 팔다리와 혼미한 정신 가운데서도 활활 타오르는데, 그의 몸뚱이는 그것을 받쳐주지 못했다.

“하아…하아…….”

용을 써도 요지부동인 몸뚱이에 군터는 일어나기를 포기했다.

시원한 공기가 코를 타고 머리까지 적시자 뜨겁던 머리가 차차 식기 시작했다.

‘진 건가? 내가?’

믿기지 않았다. 투스바이언의 개소리에 흥분하여 나선 것이었지만 그가 생사투를 제안할 때도 진다는 생각 같은 것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오테론 제일의 용사니 뭐니 해도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후에 박투로 이야기가 바뀌었지만 물러서지 않았던 것은 스스로의 무력에 대한 자신감이 그만큼 확실했기 때문이다.

‘바보 같은 놈이…세상 넓은 줄을 몰랐구나.’

바크렌 제일도 아니고 고작 오테론 제일이다. 세상을 우습게 봐도 너무 우습게 본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당장은 목숨부터 걱정해야 할 처지군.’

참으로 믿기지 않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군터는 앞으로에 대한 걱정도 잊은 채 시원하게 자조했다. 그리고 투스바이언이 이 싸움을 끝내러 오기를 기다렸다.

‘늦는군.’

하지만 스스로를 비웃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도 투스바이언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쯤 되자 군터도 슬슬 상황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쇼!”

그때 희미하게,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다급한 감정은 느껴지는데 들려오는 소리는 뭐라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을 정도로 작았다.

그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작았던 소리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커져갔다.

*

투스바이언과 군터. 그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고 섰을 때, 주변을 둘러싸고 선 병사들은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웠다. 그라메인의 기지 덕에 칼부림에서 박투가 되었지만, 그렇다 해서 심각한 분위기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아……!”

“으으!”

군터 기병대를 제외한 대다수의 병사들은 두 사람의 싸움이 금방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군터라는 젊은 백인장이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었지만, 그 상대가 투스바이언이라면 승부는 볼 것도 없다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 외로 싸움은 치열했다. 투스바이언은 군터를 압도하지 못했고, 간간이 일격을 당할 때는 병사들 사이에서 ‘설마 지는 것 아닌가?’하는 말들마저 돌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는 무겁기만 하던 분위기가 달라졌다. 상관의 폭주에 안절부절 못하던 병사들이 아니라 투기장의 관중처럼 두 사람의 싸움에 몰입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는 그라메인도 중간 중간에 투스바이언과 군터가 정타를 허용할 때마다 자기가 맞는 것처럼 몸을 들썩거렸다. 그는 싸움이 시작되기 전까지 가장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어, 어엇!”

“안 돼!”

투스바이언 천인대 소속 병사들은 투스바이언이 위태로울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군터 기병대 소속 병사들은 군터가 휘청거릴 때마다 세상이 무너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병사들은 제각기 마음이 쏠리는 쪽을 응원하며 시도 때도 없이 탄성과 비명을 섞어 질렀다.

“도대체 이거…끝나긴 하는 거야?”

“둘 다…사람이 아니야.”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시작된 싸움은 오후가 지나고, 서서히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할 무렵까지 계속 됐다. 두 사람의 얼굴은 이미 피투성이였고, 얼룩덜룩한 멍이 생겨나 있었다. 다리에 힘도 풀려 가는 것인지 이따금씩 혼자 휘청거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계속해서 싸웠다.

그렇게 혈투에 혈투를 이어가길 한참.

마침내 해가 저물고 저녁이 되었다. 서늘했던 바람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와중에도 투스바이언과 군터는 지칠 줄 모르고 타올랐다.

“…….”

이제는 모든 이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굳게 닫힌 입에서는 환호, 비명 등, 그 어떤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이 긴 싸움의 승패가 어떻게 날지 초조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랬던 무거운 적막이 깨어진 것은, 마지막으로 주먹을 주고받은 투스바이언과 군터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틀거리며 쓰러지면서였다.

“이거다.”

쓰러진 두 사람은 좀처럼 일어서지 못했다.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그제야 이 긴 싸움의 끝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누구든 지금 먼저 일어서는 사람이 승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런 젠장! 대장님! 일어나쇼!”

적막이 깨졌다.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에게 향했다.

프레드릭은 다른 이들의 시선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 듯, 뻗어 있는 군터에게 연신 악을 썼다. 그러자 주변의 다른 병사들도 목청껏 소리치기 시작했다.

“대장! 일어나십쇼!”

“투스바이언 대장님! 일어나셔야 합니다!”

투스바이언과 군터. 군터와 투스 바이언. 이 두 이름이 어둠에 잠기기 시작한 초원을 시끄럽게 울렸다.

하지만 그렇게 수백 명이 목 놓아 부름에도 두 사람은 일어나지 못했다. 이따금씩 팔에 힘을 주는 것 같은 모습이 보이기는 했으나 몸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끝끝내 누구 하나 일어서지 못하자 보다 못한 그라메인이 앞으로 나섰다.

“이 싸움은 무승부다!”

그라메인의 한 마디 선언으로 길고 길었던 싸움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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