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터-51화 (51/1,064)

<-- 노예 사냥 -->

군대가 출진했다. 도합 1300여 명이었다. 막시밀리언 천인대에서 오백. 투스바이언 천인대에서 팔백. 사실상 두 요새로 나가 있는 병력을 빼면 도시의 치안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병력을 제한 전부가 나서는 셈이었다.

“가자! 모조리 쓸어버리자! 무도한 야만인 놈들이 다시는 아국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지 못하도록 만들어주자!”

패기 넘치는 투스바이언 천인대에 비해 막시밀리언 천인대는. 정확히 말하자면 군터 백인대는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았다. 누가 보면 이미 전장에서 패하고 돌아온 패잔병이라 생각할 만큼.

“이기기 위한 전투가 아니라 포획을 위한 전투라니. 뭐랄까…사냥감이 된 기분인데요.”

이번에 군터 기병대가 맡은 역할은 말하자면 몰이꾼이었다. 적들을 겁에 질리게 하여 보병 부대가 진을 치고 있는 쪽으로 몰아넣는 역할.

“높으신 분들한테는 이 전투가 돈벌이로 보이는가 봅니다.”

여느 때와 비슷한 프레드릭의 농담. 하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날이 서 있었다. 그걸 알기에 군터는 그를 타박하지 않았다. 사실 어떻게 타박할 수 있겠는가. 당장에 그조차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한다.”

“그 명령이 얼토당토않은 것이라고 해도 말입니까?”

“…….”

군터가 프레드릭과 눈을 마주쳤다. 프레드릭은 그의 무거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입술만 깨물 뿐, 고개를 돌리거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를 따라라.”

“예?”

군터의 시선이 옮겨갔다. 살라스에게로, 베본에게로, 십인장들을 지나 병사들에게로.

“언제나 선봉은 나다. 내가 너희의 앞에서 말을 달리겠다. 그러니 불합리한 명령이 아니라 나를 따라라.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다. 변하는 것도 없다. 그러니 이제까지처럼 나를 믿고 따라와라. 그러면 된다.”

그는 부하들 한 명 한 명과 시선을 맞췄다. 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부하들은 살짝 씩 고개를 숙였다. 모두와 눈을 맞추고 또 다시 차례대로 거슬러 올라와, 마지막으로 프레드릭과 눈을 마주쳤다.

“크으! 여기서 농담하면 때리실 겁니까?”

“일단 한 번 해봐라. 판단은 내 주먹이 내리겠지.”

“뭐…따르겠습니다. 다른 윗대가리들은 못 믿어도, 대장님은 믿으니까.”

그 말에 군터는 조금 가슴이 뭉클해졌다. 하지만 곧 뒤따르는 쓸데없는 말에 따스했던 감동은 싸늘한 얼음이 되어버렸다.

“근데 솔직히 좀 오글거린 거 아시죠? 요즘에 무슨 영웅소설이라도 읽으셨습니까?”

따악!

*

군터가 이끄는 기병대를 제외하고도 막시밀리언이 이끄는 보군(步軍)에서 탐마를 몇 부리기는 했다. 하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은 만큼, 실질적인 탐색 임무는 군터 기병대에게 일임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영 뜸한데요? 듣기로는 거의 1만 가까운 수가 밀려오고 있다고 하던데 어째 코빼기도 안 보인답니까?”

“1만이라고 해도 이 넓은 초원에서 1만이다. 또 저쪽은 저쪽 나름대로 필사적이고. 어떻게든 안 들키려고 애쓰고 있을 테니 그리 쉽게 발견될 리 없지.”

“끄응! 그래서 그 장군 나리는 얼마나 모아오라십니까? 투스바이언 천인장 쪽이야 포로는 없다고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나갔으니까 할당량은 죄다 우리가 채워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글쎄. 그런 것까지는 모르겠군.”

“예? 대장님 막시밀리언님하고 친하시잖아요?”

“친하다고 입을 함부로 놀리면 아프게 한 대 쥐어 박히기 마련이다. 너처럼.”

“…조용히 있겠습니다.”

군터가 피식 웃었다.

“과연 얼마나 가나 보지.”

그때였다. 정찰을 나갔던 부하들 중 하나가 다급히 말을 달려왔다.

“찾았습니다! 수는 대략 이백 정도입니다! 무장한 이들은 십여 명 정도입니다!”

“소소하게 시작하는군요.”

“본대에 알려라.”

“바로 갑니까?”

군터가 비껴들고 있던 창검을 고쳐 쥐었다.

“당연하다.”

*

무장한 이들은 보고대로 10여 명에 불과했지만 말을 탄 이들은 그 배 이상이었다. 군터는 고지를 선점한 채 그들이 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아직 이쪽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셋으로 나눈다. 내가 정면에서 적들과 교전할 때 후방과 우측 측면을 쳐라.”

“왼쪽으로 모는군요. 본대는 준비가 됐을까요?”

“곧 신호를 주겠지.”

효시나 연기 같은 것은 적들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쓰지 못한다. 오직 전령으로만 의사나 신호를 주고받아야 했다. 번거롭기 짝이 없었으나 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시작하라 하십니다!”

오늘만 몇 번째 열심히 두 진영을 오가고 있는 부하가 멀리서 목이 터져라 외쳤다. 군터는 부하 20명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스무 명으로 괜찮겠습니까?”

“설마 날 걱정하나.”

“아니, 그게 아니라…수가 적으면 오히려 정면으로 빠져나가려 할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럴 일은 없다.”

프레드릭의 우려를 일축한 군터는 작전을 개시하게 했다.

후방에서는 살라스. 우측에서는 프레드릭이 각기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각기 적당한 곳에 매복하고 있었다. 군터가 신호를 내기만 하면 그들은 일제히 뛰쳐나올 것이고, 몰이는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가자.”

최대한 넓게 벌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군터는 중심에서 가장 앞으로 나와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말을 몰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적들도 그들을 발견했다.

“weqarbubue!(적이다!)”

전사로 보이는 이들이 달려들었다. 그 와중에도 전부가 덤벼들지는 않고 몇 명은 남아 있었다. 신중하다고 볼 수 있겠으나, 군터가 보기에는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하아!”

섬전처럼 찔러간 창끝이 적의 목을 꿰뚫었다. 목을 뚫자마자 창을 휘돌려 뺀 군터는 피바람을 일으키며 좌측 적의 허리를 반쯤 갈라버렸다.

“으아악!”

비명소리는 초원인이나 제국인이나 매한가지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명이 당해버리자 나머지는 삽시간에 긴장과 두려움에 짓눌렸다. 그들은 사방에서 군터를 에워싸고 덤벼들었다. 허나 그들의 창칼은 하나도 군터의 몸에 닿지 못했다.

찔러오던 창대가 부러지고 베어오던 칼날이 튕겨나갔다. 군터는 기다란 창검을 짧게 잡고 길게 잡고하며 공수를 함께 했다. 삽시간에 네 명이 더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멍청한 놈들!”

“qwdubqwuieb!(편히 가거라!)”

마무리는 뒤따라 붙은 병사들의 몫이었다.

앞으로 나섰던 전사들이 모두 시체가 되어 땅을 구르자 적들이 혼란에 빠졌다.

“멍청한 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발을 디뎠느냐!”

군터가 크게 일갈했다. 그것이 신호였다.

“자, 가자!”

“덤비면 벤다! 덤비지 않으면 베지 않는다!”

프레드릭과 살라스가 각기 병사들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삽시간에 3면에서 적들이 맞이하게 되자 적들의 두려움과 혼란은 극에 달했다.

“webruiw!(도망쳐!)”

그들은 일제히 적이 보이지 않는 좌측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왜 좌측만 비었을까에 대해서는 누구도 생각지 못하는 듯 보였다. 하긴, 설령 저들 중 누군가가 그것을 의심했더라도 앞뒤옆 사람이 죄다 달리는데 혼자 멈춰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흩어지지 못하게 해라!”

도망치는 적들에게 즉각 따라붙었다. 병사들이 적절히 붙으면서 말을 달리자 적들은 울부짖으면서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젠장.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이미 이럴 줄 알고 있었고, 또 각오했던 일이지만 역시 기분은 더러웠다. 이건 전투가 아니다. 사냥이다. 그것도 필요해서 하는 사냥도 아닌, 그저 욕심을 채우기 위한 지저분한 사냥이다.

와아아아!

적들을 얼마간 몰았을 때, 미리 대기하고 있던 막시밀리언의 보군이 등장했다. 그들은 이미 초승달처럼 포위진을 짜놓은 상태였다. 앞만 보고 달리던 적들은 고스란히 포위진 안으로 들어갔고, 창칼을 내민 수백의 병사들 앞에서 힘없이 주저앉았다.

“qwrbo eqowbeoi! wetbwuibr! qwuer ewitbwiubetuib!(더 이상 갈 곳은 없다! 항복하라! 항복하면 살려주겠다!)”

막시밀리언이 유창한 초원어로 외쳤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항복하면 살 것이다. 그렇게 살아서 노예가 되어 살마드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 그 이후는 어찌 될지 모르지만.

“wetbwuibr!(항복하라!)”

막시밀리언이 다시 외쳤다. 하나둘씩, 무릎을 꿇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었다.

*

병사들이 포로들을 포박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때, 군터는 말 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목을 축였다.

“깔끔하게 성공했군요.”

살라스가 와 말했다. 군터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꾸했다.

“그래.”

“특별히 사상자도 없고, 포로만 수백이니 승리도 이런 승리가 없는데…왜 이리 마음이 착잡한지 모르겠습니다.”

“네가 명예를 아는 군인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까? 듣기 좋군요. 그럼 대장님은 어떠십니까?”

“어떤 것 같은가.”

“대장님은 명예를 아는 군인이십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아부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살라스는 아부라는 것과는 태생적으로 거리가 있는 녀석이다. 오히려 너무 입 바른 말을 해서 삐뚤어진 상관 밑에 있었다면 고생 좀 했을 유형이다.

“명예가 뭔지 알긴 하지. 하지만 그것에 매달리지는 않아. 있으면 좋고, 없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으음.”

의기소침한 얼굴이다. 납득 못하겠다는 기색도 얼핏 보인다.

“나 역시 되도록이면 명예로운 군인이고 싶다. 하지만 내가 가는 길에 그것이 걸림돌이 된다면, 난 얼마든지 망설이지 않고 그것을 밟거나 뛰어넘어 갈 수 있다.”

이번 일을 맡게 되면서 가장 반감을 드러냈던 것이 살라스였다. 그는 부대의 누구보다 올곧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일로 가장 힘들어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그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살라스의 눈에는 분노가 어려 있었다.

“내가 너에게 달라지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건 이번뿐이다. 적응을 하건, 불응하여 떠나건 그건 네 자유다. 전출을 가고 싶다면 언제든지 말해라. 되도록 좋은 곳에 갈 수 있도록 힘써주마.”

살라스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그로부터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살라스는 떠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온전히 납득한 것 같은 기색도 아니었다.

‘알아서 하겠지.’

얼굴은 아직 앳된 모습이 남아있지만 살라스 역시 엄연한 사내였다. 그리고 사내라면 마땅히 스스로의 앞길 정도는 스스로 택할 줄 알아야 한다. 군터는 그리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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