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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50화 (50/1,064)

<-- 노예 사냥 -->

군터는 막시밀리언의 자택에 와 있었다. 평소처럼 막시밀리언의 뒤편에 석상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막시밀리언이 상석이 아닌 그 밑자리에 앉아 있다는 점이었다. 상석에는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갑옷을 입은 사내가 앉아 있었다.

‘장군이라.’

군터는 시선은 정면으로 향한 채, 지금 상석에 앉은 자에 대해 생각했다.

파비우스 리에론.

바크렌의 3급 장군이자 장차 리에론 가문을 이끌어가게 될 바크렌 군부의 차세대 수장.

적어도 바크렌 내에서라면 왕의 권세가 부럽지 않은 자였다. 그런 자가 지금 자신과 같은 공간의 몇 발자국 거리 안에 있다는 것이 솔직히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울벤트 형님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능력 있는 친구라고 칭찬이 자자하더군.”

“울벤트님께서 이 부족한 몸을 좋게 봐주신 덕분이지요.”

“기대가 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번 사업은 전적으로 자네에게 달린 셈 아닌가. 자네가 얼마나 잘해주느냐에 따라서 내가 기뻐질 수도, 슬퍼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것이고…잘해주어야 하네. 푼돈이나 벌자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니까 말이야.”

“예.”

낯을 굳히며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는 파비우스 리에론을 상대로 막시밀리언은 희미한 미소만을 보였다.

파비우스 리에론은 한동안 막시밀리언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한순간 굳은 표정을 풀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크게 웃었다.

“솔직히 울벤트 형님이 시끄럽게 굴 때는 그러려니 했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보니 확실히 남다르군. 기대하겠네. 내 명예를 걸고, 자네가 이번 일을 멋지게 해준다면 필히 그에 상응하는, 아니 그 이상의 보답을 할 것을 약속하지. 하하하!”

“반드시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 내 자네를 믿지. 자, 드세나!”시원한 웃음과 덕담이 오가며 술자리가 무르익어갔다.

*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파비우스 리에론이 어여쁜 여인 둘을 양 팔에 끼고 사라진 후. 막시밀리언은 홀로 자리에 남아 자작하고 있었다.

“그러고 가만히 서 있으면 힘들지 않은가?”

“괜찮습니다.”

“저 쪽에 가서 앉게. 나랑 술이나 한 잔 하지. 조금 전까지는 술을 마셔도 마시는 것 같지가 않았거든. 이게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목구멍 아래서 계속 얹히는 느낌이었단 말이야. 자네랑 마음 편히 마시면서 쓸어내 버려야겠어. 어서 가서 앉게나.”

“예. 그럼.”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말없이 두어 잔 정도 술을 마셨다.

막시밀리언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재미없는 이야기였어. 더러운 이야기였고. 그렇지 않나?”

“…….”

곤란한 질문이다. 긍정하자니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당사자의 앞에서 할 말은 아니고, 그렇다고 부정하자니 거짓말을 하는 셈이 되니까 말이다.

군터가 말을 아끼자 막시밀리언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내가 더러운 짓을 맡게 되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으니. 내가 이리 내 입으로 말하고 있지 않는가? 더러운 일이라고 말이야. 군인으로서도, 사내로서도 별로 떳떳하지 못한 짓이야. 말 그대로 노예 사냥꾼이나 할 짓을 하게 된 거 아닌가. 노예사냥 말이야. 노예사냥. 아무리 좋게 포장을 해도 결국에는 노예사냥인 것이야.”

막시밀리언의 말이 맞았다. 파비우스 리에론이 막시밀리언에게 지시한 것은 노예사냥이었다. 초원을 넘어 내려오는 초원인들을 최대한 사로잡으라는 것이다.

“투스바이언 그 멍청한 자는 공적을 빼앗길 것을 걱정하지만, 사실 그런 공적 따위가 파비우스 리에론에게 무에 그리 중요하겠나? 그 자는 공적이 필요가 없는 사람이야. 가만히 시간만 보내도 자연스럽게 군부의 수장 자리가 굴러들어올 텐데 무엇 하러 공적 따위에 욕심을 내겠나?”

투스바이언. 오테론의 천인대장 중 한 사람이다. 그와 막시밀리언은 평소에도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이번 일을 두고도 뭔가 언쟁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오테론의 전력으로 처리가 가능한 평소 같았으면 사령관의 주도 하에 노예상인들과 거래하고 끝냈겠지만, 살마드에서 지원군까지 받아놓고서 그리 할 수는 없겠지. 어쩔 수 없이 노예는 살마드로 보내야 하는데, 그리 보내는 노예를 파비우스 리에론이 나서서 사겠다고 하면 누가 막을 수 있겠나. 직접 참전한 장군이 사겠다는데 누가 값을 크게 부를 수 있겠느냐 말이야. 멀쩡한 가격도 반 아래로 깎아야겠지.”

이것이야말로 파비우스 리에론이 이번에 오테론까지 직접 온 이유였다. 노예. 더 직접적으로는 돈.

“문제는 말일세. 이런 것은 장군이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 자네가 보기에도 굉장히 천박해 보이지 않는가?”

“…….”

“정상이네. 정상이야. 내 눈에도 그리 보이는데 자네도 그리 보이겠지. 나는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상인으로 살기 싫어 군인이 되었는데, 결국은 또 장사치를 위해 일하게 되는군. 흐흐.”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뭐가 말인가?”

“바크렌 최고의 장군가에서 장자로 태어나 스스로 장군씩이나 된 자가, 무엇 때문에 저열한 노예사냥까지 사주하며 돈을 챙기려 하는지 말입니다.”

“그건 자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라네.”

“예?”

“재물을 탐하지 않는 자들이 있지. 왜 그럴 것 같나? 탐할 수 없기 때문에 탐하지 않는 것이야. 탐할 수 있는 자들은 어김없이 재물을 탐한다네.”

그 이야기를 하는 막시밀리언은 묘하게 즐거워 보였다. 그는 술을 홀짝이면서 말을 이었다.

“욕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하는 게 두 가지가 있네. 하나는 권세고, 하나는 재물이지. 재물만 가진 자는 권세를 탐하고, 권세만 가진 자는 재물을 탐하지. 두 가지를 다 가진 자는? 더 많은 권세와 재물을 탐한다네. 이 두 가지는 아무리 많이 가져도 부족한 것이거든. 아! 황도에 계시는 황제 폐하 정도가 되면 어떨지 모르겠군. 허나 그분은 사람이 아니시니까 예외로 친다면,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네. 나 역시 그렇고, 자네 역시 그럴 것이야. 흐흐흐. 인정하기 싫다는 얼굴이군. 부인할 텐가?”

“아닙니다. 부인하기는 힘들겠군요.”

권세와 재물이라.

재물은 모르겠지만 권세에 대한 욕심만큼은 분명 있다. 그것이 있었기에 지금 막시밀리언의 밑에서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재물에 대한 욕심이라는 것도 언젠가는 생길지도 모르지.

“군터. 자네도 알겠지만 이번 일은 큰 기회라네. 파비우스 리에론은 울벤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물이야. 솔직히 말해서, 이번에 그가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기뻤다네. 그와의 연이라는 건 금화 천 개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것이거든. 어쨌거나 그는 장차 바크렌의 군부를 이끌어가게 될 자이니까 말이지.”

파비우스 리에론이라면 현재 바크렌 내에서 권세로는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언젠가 부친의 자리를 이어받는다면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연을 튼다면 그 이상의 상대를 떠올릴 수 없을 정도가 아닌가.

“자네와 자네 부하들이 불만이 많을 것을 짐작하네. 가장 막중한 책임을 떠맡을 것이고, 또 자네들은 아쿼러즈가 아닌가. 아무래도 반감이 있겠지.”

“그런 말씀은 거두어 주십시오. 저희는 이미 오래 전에 고향을 등졌고, 지금은 제국인이며 제국군입니다. 군인은 명령이 떨어지면 따를 뿐, 다른 생각 같은 것은 갖지 않습니다.”

“그래, 그래. 내 실언을 했군. 결코 자네들의 충성을 폄하하거나 하려던 것은 아니었어. 미안하네. 사과의 의미로 내 술 한 잔 따르지. 받게.”

그 뒤로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주로 뒷담화였는데, 대상은 주로 투스바이언이었다.

“그 무식한 작자는 머릿속에 온통 싸움 밖에 들어있지 않은 것 같아. 얼마 전에는 뭐라 했는지 아는가? 초원인들이 아국으로 밀려오는 것이 아국이 너무 물렁하게 대했기 때문이라더군. 그러면서 장대에다가 초원인들의 머리통을 끼워서 국경 쪽에다가 일정 간격으로 박아 두자는 것이야. 그게 멀쩡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올 만한 생각인가?”

“초원에서는 간혹 있는 일입니다.”

“어엉?”

막시밀리언이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보는 듯했다. 그는 초원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알면서 정작 초원의 문화는 잘 모르는 듯했다.

“초원에서 한 부족의 영역이라는 것은 짐승들이 영역을 나누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주 예민하지요. 다른 부족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가 부족 간의 전쟁으로 번지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몇몇 부족은 그들이 상대한 적들의 머리를 창 같은 것에 꽂아 영역의 경계에 경고의 의미로 세워두기도 합니다. 아마도 투스바이언 천인장은 그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허어. 내 그런 것은 전혀 몰랐군.”

“제국의 사람들이 초원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이상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오테론에 거주하는 시민들이나 병사들에게야 초원인들이 생사대적이지만, 바크렌만 놓고 보아도 갈색초원에 대해 그리 크게 신경 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심지어는 오테론에서조차 초원으로 탐마를 띄우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단지 국경에 요새를 지어놓고 초소를 통해 넘어오지 못하도록 감시할 뿐. 그만큼 갈색초원의 민족들은 제국인들에게 있어 관심 밖이었다. 분명 어느 정도는 위험하고 그래서 껄끄럽다는 것 정도는 알지만, 그럼에도 신경이 쓰이지는 않는 존재랄까. 말이 조금 이상하지만 딱 이 정도가 초원인에 대한 제국민의 인식이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정말 효과가 있나?”

“뭐…그런 것을 보면 아무래도 껄끄럽기는 하겠습니다만, 애초에 발을 디디려는 이들이 움직이지도 않는 머리 몇 개를 보고 발걸음을 돌리지는 않지요.”

“크크크. 하긴, 그도 그렇겠군.”

투스바이언의 강경책이 별 효과가 없으리라는 것을 말해주자 막시밀리언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연달아 술을 두어 잔씩 들이켰다.

“그 멍청한 근육덩어리는 싸울 생각 밖에 없는 것 같아. 군비라던가, 복잡한 사정 같은 것은 전혀 고려를 안 한다는 말이지. 어떻게 그런 자가 천인장까지 올랐는지 의문이야. 언제고 내 그 자가 그리 자신하는 힘에서 꺾이는 꼴을 보고 싶구만.”

투스바이언은 오테론 제일의 용사였다. 그가 이제껏 한 자루 대부로 박살낸 머리통만 수백 개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 자와 자네가 한 번 붙으면 어찌 될지 궁금하다네. 내 생각으로는 그 자가 아무리 용맹해도 자네만큼 강할 것 같지는 않거든. 자네 생각은 어떤가?”

“…잘 모르겠습니다.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은…….”

“어차피 이곳에는 우리 밖에 없으니 이럴 때는 큰 소리 한 번 칠 법도 한데 말이지. 자네는 역시 진중하군. 막상 전장에 나가면 누구보다 사납게 날뛰면서 말이야. 하하!”

“…….”

“뭐, 내가 그래서 자네를 좋아하지. 보통 용력이 출중한 자는 경솔하기가 쉬운데 자네는 그런 것이 없거든. 그래서 내 자네를 얻은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여기고 있어.”

“과찬이십니다.”

군터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막시밀리언의 술 상대를 해줘야 했다. 평소 어느 정도 이상 취기가 오르면 알아서 자제하는 그였는데, 이번에는 걸을 때 다리가 휘청일 정도로 과음을 했다. 군터는 그것이 그의 편치 않은 심기로 인한 것이라 짐작했다.

========== 작품 후기 ==========

별 것 아니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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