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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47화 (47/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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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스바이언의 뜨거운 일갈을 뒤로 한 채 막시밀리언이 물었다.

“원군을 이끌고 오는 이는 누구라고 합니까?”

“파비우스 리에론이네.”

“예? 파비우스 리에론……?”

막시밀리언의 눈이 커졌다.

* * *

막시밀리언은 자신의 자택에서 자리를 마련하고 휘하들을 불러 모았다. 초원 쪽의 요새에 원군으로 나가 있는 이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자리했다.

맛 좋은 음식과 비싼 술들이 상에 가득 차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것에 손을 대거나,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방금 막시밀리언이 꺼낸 이야기가 식욕마저 앗아갈 만큼 상당히 놀라웠기 때문이다.

“파비우스 리에론이라면…리에론 가문의 직계 아닙니까?”

“직계가 문제가 아니지. 가문의 장자 아닌가. 10년. 아니지, 한 20년 안에는 그가 바크렌 군부의 수장이 될 거라고.”

파비우스 리에론.

그는 바크렌의 군부를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는 리에론 가문의 장자였다. 리에론 가문의 가주가 현재 바크렌 군부를 이끄는 수장이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장차 파비우스 리에론이 그 자리를 이어받게 되리란 것은 쉬이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대체 그 자…가 아니고, 그 분이 왜 오테론으로?”

그러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바크렌 최고 명문 무가의 후계자가, 그것도 본인 스스로 3급 장군씩이나 되는 이가 무엇 때문에 직접 병력을 이끌고 오테론까지 온단 말인가?

“대장님께서는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십니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군.”

막시밀리언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거짓말이군.’

군터는 확신했다. 왜냐하면, 그는 막시밀리언이 울벤트 리에론과 긴밀한 사이라는 것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막시밀리언이 천인대장에 오르는 데 울벤트 리에론의 영향이 컸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물론 그에 관련한 사실을 정확히 아는 것은 이 자리에서 그 하나뿐이었다. 또 다른 한 명인 코르넬이 초원의 요새로 나가 있기 때문이다.

‘분명 들은 이야기는 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지 않은 이야기라는 건가?’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짐작 가는 바 정도는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모르는 체 하는 것은 둘 중 하나다. 아는 사람이 많아서 좋을 일이 없는 것이거나,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을 믿지 못하거나. 어쩌면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말이 밖으로 새어나가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니.

“뭐, 그거야 나중이 되면 다 알게 되지 않겠는가? 오늘은 일단 다른 생각은 다 접어두고 즐기세. 오늘의 주인공은 우리들이니까. 하하하! 자, 들여보내라!”

막시밀리언이 소리치자 문이 열리며 젊은 여인들이 들어왔다. 하나같이 젊고 예쁜 여인들이었는데, 안에 있는 사람들과 딱 맞춘 인원이었다.

“각자 마음에 드는 녀석들로 고르게. 물론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네. 한 사람당 하나씩이야. 알겠는가?”

“하하하하! 예! 욕심 부리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혹여 선수를 빼앗길까 걱정 되었는지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날듯 들썩거리면서도 끝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상관인 막시밀리언이 먼저 고르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똥마려운 강아지들 같은 부하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막시밀리언은 여인 중 한 명을 택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나마 가장 미모가 처지는 여인이었다.

“그럼 나는 이쪽을 고르지.”

“그럼 나는 이쪽!”

“하하. 너는 이리 오너라.”

군터는 동료들이 호들갑을 떠는 사이에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들이 한 명씩 옆에 끼고 나자 마지막까지 선택을 받지 못했던 여인 한 명이 슬그머니 그의 옆으로 와 앉았다.

“아무 것도 하지 마라.”

나직하게 말하자 여인이 토끼눈이 되었다.

“예?”

“너에게 손 댈 생각 없으니, 가만히 있다가 가라는 말이다.”

“하하하! 군터! 자네 정말 공처가 다 됐구만!”

“정말로 생각이 없다면 내게 보내게! 내 손이 두 개니까 두 명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이!”

“팔 두 개 달린 이가 어디 자네뿐인가? 그건 나도 마찬가진데?!”

“하하하!”

동료들이 놀려대도 군터는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있었다. 옆에 앉은 여인이 술을 따라주려 했지만 그마저 제지하고 스스로 술을 따라 마셨다. 막시밀리언이 그를 신기한 것을 보듯 보며 킥킥 웃었다.

“하여간 군터 자네는 참 신기하군. 뭇 사내라면 가는 여자는 다리를 부러뜨려도 오는 여자는 막지 않는 법인데, 생긴 것은 이 중에 가장 사내다운 자네가 어찌 굴러들어온 여인을 마다하는가?”

“음…송구합니다.”

“송구해? 하하하! 무엇이 송구한가? 송구하려면 자네 물건에게 송구해야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하하하핫!”

졸지에 모두의 놀림거리가 된 군터는 머쓱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래도 여인에게 손을 대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는 술자리가 이어지는 내내 여인이 있는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으며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빈 술병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점점 얼굴이 붉어지는 이가 늘어났다. 술자리의 흥이 절정을 찍고 점차 사그라질 무렵. 막시밀리언은 자리를 파하고 부하들을 돌려보냈다.

“아! 군터. 자네는 좀 남게나.”

군터는 일부러 다른 이들이 다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처럼 막시밀리언이 부를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예.”

군터는 앉았던 의자에 다시 앉았다.

“참. 자네도 대단하네, 대단해. 끝끝내 눈 한 번 마주치지 않더군. 그래도 꽤 고왔는데 말이야. 매력적이지 않던가? 괜찮은 것들로만 골라오라 내 신신당부를 했으니, 나름대로 고르고 고른 아이들이었을 터인데.”

널찍했던 자리에 단 둘 만이 남았다. 군터는 이럴 때마다 자신이 막시밀리언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좋은 계집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내키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래. 내키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 자네 혼인은 언제쯤 할 생각인가?”

“…그것이,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 언제 할지는 아직.”

“하기는 할 거란 말이구만. 하하하! 나쁘지 않지. 나쁘지 않아. 사내가 큰일을 하려면 집안이 든든해야 하는 법이거든. 뭐, 이렇게 말하는 나도 아직은 혼자지만. 그 때문에 내 아버님께서 틈만 나면 나를 아주 달달 볶으신다네. 그 때문에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아는가? 말도 못한다네. 집안의 대는 형님이 이을 텐데 왜 나를 가지고 그리 야단이신지, 참.”

“…….”

“잔이 비었군. 받게.”

막시밀리언이 몸을 기울이자 군터는 벌떡 일어나 잔을 내밀었다. 느릿하게 잔에 술이 차올랐다.

“실은 이번 일에 대해 들은 바가 있다네. 자네도 짐작했겠지?”

“…예. 조금은.”

“군터. 내 자네를 거둔 후로 군인으로서 위험한 일은 한 두 번 정도 했을지 몰라도, 더러운 일은 하지 않았네. 동의하는가?”

“예.”

“그런데 말이야…….”

술이 다 찼다. 막시밀리언이 몸을 바로 했고, 군터도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는 더러운 일을 할 것 같네. 아니, 할 것 같은 게 아니라…하게 되었다네.”

“…….”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무슨 일을 하게 되든,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나를 믿고 따라줄 수 있겠나?”

이것은 물음인 동시에 시험이었다. 전에도 이런 문답이 있던 것 같았다. 그때의 물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지. 본디 의심이 많은 분이다.’

솔직히 지금의 이 물음조차도 얼마만큼 진심인지는 모른다. 어떤 대답을 해도 얼마나 만족할지 역시 모른다. 그는 이 끝을 모르는 의심이야말로 막시밀리언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그는 사람을 잘 믿지 못하고, 믿는다 해도 전적으로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물음은, 그의 온전한 진심이 담긴 것 같았다. 이는 군터의 느낌이었다.

그는 수족을 원한다. 수족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의심을 품지도 않는다. 그저 머리가 뜻하는 대로 움직일 뿐.

이런 수족은 아무리 의심이 많은 머리라고 해도 신뢰한다. 왜냐하면 한 몸이기 때문이다.

막시밀리언은 앞으로 그가 자신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옳은 일이든 그른 일이든, 무조건적인 복종. 이는 심복의 수준을 넘어, 그야말로 수족이 되어 줄 수 있겠느냐는 뜻.

그 물음이 나오고 찰나의 순간. 군터는 많은 생각을 했다. 이 물음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 것인지. 자신의 마음은 무엇인지.

‘어차피 각오 했던 일이었지. 언젠가는 올 일이었고, 오히려 다소 늦게 온 것이다.’

막시밀리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지금의 자리에 이를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살마드에서 막시밀리언의 권유에 응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따르겠습니다.”

막시밀리언이 진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자신의 술을 한 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술병을 군터에게 넘겼다. 공손히 그것을 받아든 군터가 그의 잔을 채웠다.

“세상에 사람은 많지만 믿고 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지. 이제껏 내게는 그런 사람이 코르넬 하나였는데, 이제는 둘이 되었군. 오늘 성문을 들어서며 받았던 모든 환호나 치사보다 방금 전 자네의 한 마디가 더 달콤했다네. 자네가 그리 말해주니 기쁘군. 그런 의미에서 내 자네에게 약속하지.”

술기운이 올라온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형형한 눈빛이었다.

“앞으로 내가 몇 번이나 자네를 실망시키게 될지도 몰라. 자네도 어렴풋이 짐작했겠지만 난 명예로운 군인은 못 되는 사람이야. 난 내게 득이 된다면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네. 위로 올라갈 수 있다면 울벤트 리에론이 아니라 그가 기르는 개의 발이라도 핥을 수 있어.”

탁!

다시 한 번 빈 잔이 탁자를 때렸다.

“부를 원했다면 가업을 이으려 했을 거야. 물론 그랬다면 내 형제와 다퉜겠지만, 원하는 것이 부였다면 난 내 형제라도 얼마든지 쳐낼 수 있었을 것이야. 하지만 내 형제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내가 원하는 건 금화 쪼가리가 아니라 금화로도 살 수 없는 권세였지. 어설픈 권세가 아니라 진짜 권세.”

군터가 미처 일어설 틈도 없이 막시밀리언이 스스로 잔을 채웠다.

“살마드에서 내 자네를 받아들이면서 했던 말. 기억나는가?”

“…….”

“고락을 함께하겠다고 했어. 고락을 말이야.”

“예. 그리 말씀하셨었습니다.”

“내가 얻은 권세를 자네와 나누겠네. 내가 옆을 내어준다면 그것은 자네의 자리일 것이고, 내가 뒤를 내어준다면 그 역시 자네일 것이야. 자네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이는 내 진심일세.”

그가 가득 찬 자신의 술잔을 들어 군터에게 건넸다. 군터는 그 잔을 받아 단번에 털어 넣었다.

* * *

집에 돌아온 군터는 반가이 그를 맞는 벨리사를 안았다.

“으으! 술냄새!”

“싫은가?”

“싫죠! 그리고 이거…여자 분 냄새 아니에요?”

벨리사의 눈이 샐쭉해졌다.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렸다. 군터는 빠져나가려는 그녀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막시밀리언님께서 한 사람당 한 명씩 옆에 앉게 하시더군. 어쩔 수 없었어. 하지만 그 여자에겐 술도 따르지 못하게 했어. 입도 뻥긋 못하게 했고,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어. 왜일 것 같아?”

“흐응. 모르겠는데요.”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군. 날 놀리고 싶은 건가?”

“글쎄요? 그것도 모르겠는데…….”

장난스레 대꾸하는 얼굴에 우울함은 가셔 있었다. 군터는 그녀의 능청스러움이 즐거웠다.

“정말 몰라?”

“알 것도 같고…모를 것도 같고…….”

“짓궂게 구는군. 놀려먹으려고 했을 때는 각오는 되어 있는 거겠지?”

그녀를 번쩍 들고 침실로 걸음을 옮겼다.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꺄악!” 하고 소리를 지른 벨리사는 군터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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