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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42화 (42/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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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는 오테론에서 대기하는 동안에는 종종 부하들과 함께 훈련을 했다. 대련을 포함한 백병전 훈련이 주였다. 물론 기병대의 특성상 말에서 내려 전투를 하는 일은 드물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인 무술 훈련은 중요하다. 군터는 군인이라면 항상 언제든 싸울 수 있게 스스로를 준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련 같은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훈련은 최고의 훈련이라 할 수 있었다. 힘들게 몸을 굴리면 느슨해질 수 있는 정신까지 같이 단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크악!”

배를 걷어차인 프레드릭이 요란한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군터의 발이 움직인 틈을 타 살라스가 달려들었지만 크게 휘두른 창대 끝에 걸려 맥없이 뒤로 물러났다.

‘빈틈!’

환히 열린 등을 노리고 할렌이 덤벼들었다. 이번에야말로 한 방 맞출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목검을 휘두르던 그는 어느새 그의 옆머리를 강타한 손등에 돌 맞은 개구리처럼 철푸덕 쓰러졌다.

“무르다! 확실하게 승부를 볼 수 없을 것 같으면 차라리 시간이라도 끌라고 하지 않았나!”

군터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할렌뿐 아니라 프레드릭, 살라스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나마 이들 중 가장 선전한 살라스마저도 허탈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다수의 이점을 살리지 못한 채 뭐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밀렸으니 할 말이 있을 리가 없다.

“너희들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근성 없는 것들 같으니!”

이번에는 불똥이 일찌감치 쓰러져 구경하고 있던 다른 병사들에게 향했다. 그들은 진즉부터 쓰러져서 눈만 멀뚱멀뚱하게 뜨고 있었다. 프레드릭을 비롯한 세 명은 그나마 끝까지 덤벼들기라도 했지,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어디 한 군데씩 얻어맞은 후에 포기하고 떨어져 있었다. 군터는 그런 나약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실전 같은 훈련을 강조했고, 그렇다면 어디 설령 한 군데가 부러졌더라도 계속 덤볐어야 한다 생각했다. 실전에서 갈비뼈가 하나 두 개 정도 부러졌다고 얌전히 적에게 목을 내밀어줄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윽……!”

군터가 병사들을 나무라는 사이, 할렌은 지독하게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리셨나.’

완벽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군터는 마치 뒤에서 달려드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돌아보지도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렇게 휘두른 주먹의 손등은 정확히 옆머리를 강타했다. 할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게 아니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하아. 난 대체 언제쯤…….’

할렌은 속상한 얼굴로 살라스를 보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군터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모두 형편없는 몰골로 누워 있는 반면에 살라스는 비교적 멀쩡하게 서 있었다. 군터를 제외하면 서 있는 것은 그가 유일했다.

‘나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다른 이들을 보면서는 이런 생각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살라스는 달랐다. 그는 자신과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데 벌써 십인장이었고, 군터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말단 병사는커녕 노예에 불과한 자신과는 너무나 차이가 났다.

‘하지만 나도 언젠가는…….’

군터는 한낱 잡일하는 노예에 불과한 자신에게 이런 훈련을 시켜주었다. 할렌은 그것에 희망을 가졌다. 언젠가는, 그것이 ‘곧’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분명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기회가 생길 것이라 믿었다. 충분한 실력을 갖추게 된다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 * *

‘흐음.’

무기를 들지 않은 채 진행하는 박투 훈련까지 마치고서 군터는 홀로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는 어린 아이의 머리통만한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변했다.’

물론 주먹의 크기가 변했다거나, 피부에 돌기 같은 것이 돋아났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내적인 변화를 이름이다.

단순하게는 기본적인 근력, 순발력 등에 변화가 있었다. 자각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강하고 날래졌다. 훈련으로 인한 것이라 하기에는 너무 갑작스러운 성장이었다.

‘조금 전 할렌의 공격을 눈치 챘던 것도 그렇지.’

사실 할렌이 거기에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군터는 할렌이 뒤에서 달려들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할렌보다도 더 빠르게 팔을 휘둘러 그를 쳐낼 수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전이었다면 과연 할 수 있었을까 싶은 기민한 반응이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유 없는 변화는 있을 수 없다. 군터는 이런 비정상적인 변화의 원인에 대해 쉬이 짐작해볼 수 있었다. 근래에 그가 겪은 비정상은 단 두 가지뿐이었으니까.

‘바칼. 아니면 늙은이가 준 신물.’

둘 중에 하나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유력한 것은 후자였다. 사교도 마을의 일이 있었던 것은 두 달 이상 전인 반면, 이 급작스러운 변화는 요 며칠 사이에 일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군터는 신물을 꺼내 손안에서 굴렸다. 자그마한 돌은 매끈하기 그지없어 가볍게 움직이면 미는 대로 돌아갔다.

‘이것 때문일까?’

신물에 그런 능력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가 신물에 대해 아는 것은 무녀의 능력을 더욱 강화시켜 준다는 것 하나였다. 군터는 무녀의 능력이라는 것이 뭔지도 잘 알지 못했고, 이 신물이 그것을 어떻게 강화시켜준다는 것인지도 역시 알지 못했다. 그렇게 보면, 이것이 그 어떤 신비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다.

‘한 번 알아보기는 해야지.’

늙은이에게 이것을 받은 뒤로는 늘 몸에 품고 다녔다. 만약 몸의 변화가 이 돌멩이로 인한 것이라면, 그것이 정확히 어떻게 작용하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이유 모르게 생긴 힘은 언제든 이유 모르게 사라질 수가 있으니까.

자신에게 생긴 변화를 확실히 인지한 후 군터는 신물을 가지고 여러 가지를 실험해 보았다. 몸에서 떨어뜨려놔 보기도 하고, 아예 집을 나설 때 두고 나오기도 해봤다. 한 번은 며칠씩 아예 다른 곳에 놔두기도 해봤다. 물론 잃어버리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면서.

그런 몇 가지 시험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신물을 몸에서 떨어뜨려놓음으로서 변하는 것은 이따금씩 꾸는 악몽의 강도뿐이라는 것이다. 신물 없이 잠에 들었을 때는 그 전에 그랬던 것처럼 땀으로 목욕을 한 채 깨어났다. 물론 꿈의 내용 같은 것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면 그날 하루는 종일 피곤한 몸으로 보내야 했다.

‘일단…계속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할 이유가 적어도 하나는 확인된 셈인가.’

신물을 떨어뜨려 놨다고 해서 힘이 약해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신비라는 것은 인간의 상상에서 벗어나 있기에 신비인 것이니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좋은 건 그냥 좋게 받아들이면 되는 거겠지.’

머리 아픈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실험도 거기서 끝났다.

“오늘은 좀 괜찮아요?”

“응? 어, 그래.”

아침에 눈을 뜨고 가볍게 뒤척이면서 벨리사가 깬 모양이었다. 그녀는 걱정스런 얼굴이었다. 요 며칠 동안 이것저것 실험을 한답시고 땀범벅이 되거나 하는 모습들을 보고서(특히 신물을 떼어놓고 자면서 악몽에 시달렸을 때) 그녀는 종종 염려를 드러냈었다.

“정말요?”

벨리사가 혹여 땀에 젖지는 않았는지 손으로 군터의 이마를 쓸었다. 기분 탓이겠지만 그녀의 손길이 살결에 닿으니 여전히 두근거리던 가슴이 흥분을 멈추고 안정을 찾는 듯했다.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그가 이제껏 상상하지 못했던 안정감을 주었다. 이제껏 혼자라는 것이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집에 들어갔을 때 누군가 기다려주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힘을 주는 것인지 몰랐었다.

“당신은 어때? 힘들지 않아?”

“춥기는 한데…그 외에는 괜찮아요. 살마드에 있을 때보다 훨씬 좋은 걸요.”

“다행이군. 괜히 데려와 고생시키는 건 아닌가 했는데.”

군터는 이제는 놈팡이 같은 말도 자연스럽게 입에 담았다. 벨리사와 함께 하면서 그는 제법 (부하들의 표현에 따르면)능청스러워졌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하건 모두 다 웃으며 받아주는 벨리사 덕분인지도 몰랐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그의 품에 안겼다.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뭐가 다행이지?”

“당신을 만난 거요.”

두 사람의 얼굴에 비슷한 웃음이 걸렸다.

* * *

해가 뜨지도 않은 이른 새벽. 군터는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군터 백인장님! 막시밀리언 대장님께서 소집령을 내리셨습니다! 속히 사령부로!”

“알겠다!”

다급한 병사의 목소리에 군터는 급히 옷을 챙겨 입었다. 그 사이 벨리사도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녀는 한껏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글쎄. 가서 들어봐야지. 별 일 아닐 테니까 걱정 말고 마저 자.”

부드럽게 입을 맞추고 그녀를 안심시킨 군터는 침대 옆에 둔 창검을 집어 들고 집을 나섰다.

“아침 댓바람부터 불러모아 미안하군.”

휘하 백인대장들을 모두 모인 자리서 막시밀리언이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컬젠이 습격당했다고 한다.”

“컬젠이라면…….”

“어처구니가 없군. 요새의 경계병들은 뭘 했단 말인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뜨거운 반응이 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컬젠 마을은 오테론의 동남쪽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개척촌이라고는 하지만 실상 초원의 약탈자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말하자면 안전지역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거다. 그런 곳이 습격당했다는 것은 오테론의 두 요새를 기점으로 하는 방어감시체계가 뚫렸다는 뜻.

“자, 자. 다들 조용.”

달아오른 분위기는 막시밀리언의 말 한 마디에 찬물을 뒤집어쓴 듯 가라앉았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두 개 요새의 25개 초소가 오테론에 맞닿은 초원의 모든 곳을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약탈자들에게 컬젠이 습격을 당했고, 그 무도한 무리에 대한 처분이 우리의 몫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초원의 야만인 놈들은 모두 기마이지 않습니까? 천인대 단위로 움직인다 해도 놈들을 쫓는 것은 기병의 몫이 될 것이고 보병은…….”

“내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절주절 떠들던 이가 즉각 입을 다물었다. 막시밀리언이 말을 이었다.

“이번의 약탈자 놈들은 전과 다르다. 모두 기병이 아니고, 심지어는 무리에 여인과 아이들까지 끼어 있다더군.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놈들은 일반적인 약탈자와는 다른 것 같다.”

“으음.”

쾅!

막시밀리언이 거칠게 탁자를 내리쳤다. 그의 얼굴은 전에 없이 냉철했다.

“무도한 야만인 놈들이 제국의 옥토에 흙발을 디뎠다. 실로 치욕적인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반드시 놈들에게 제국을 욕보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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