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흉조 -->
말을 달린지 얼마 되지 않아 흔적은 사라졌다.
“놈들이 머리를 써서 우회했을 가능성은?”
“별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았길 바라는 수밖에요.”
그때부터는 끝없는 수색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도적떼의 규모가 상당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자잘한 곳은 배제하였음에도 영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대장님. 아무래도 이거 헛짚은 것 같은데요.”
수색이 이틀째에 접어들었을 때는 슬슬 포기 분위기였다. 이런 식으로 계속 하다간 바크렌 전역을 돌게 생겼으므로.
“…….”
군터 역시 성과 없는 수색작업에 지쳐가던 차였다.
“하루. 내일 하루만 더 해본다. 내일도 허탕을 친다면 돌아간다.”
질긴 육포를 뜯은 지도 벌써 닷새가 넘어갔다. 군터는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수색작업을 재개했다.
“응?”
울퉁불퉁한 구릉지를 지나던 중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 소리 안 들리나.”
“예?”
되묻는 부하를 무시한 채, 군터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아주 미세한, 그러나 귀 기울이면 뚜렷이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
“바람소리다.”
하지만 일반 바람소리가 아니다. 무언가에 부딪치고, 갈리는 바람의 소리다. 보통 이런 소리는 나무와 바위 등이 많은 험한 산지나.
‘동굴에서 많이 나지.’
“이쪽이다.”
어리둥절해하는 부하들을 이끌고 조심스레 말을 몰았다. 그마저도 소리가 가까워진다 싶어질 즈음에는 말에서 내려 몸을 낮추고 걸었다.
‘저기군.’
비교적 가파르게 꺾이는 지형에 몇 그루 나무와 긴 풀이 자란 곳. 바람 소리는 그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숨소리도 죽여라.”
“…예.”
이제야 부하들도 무언가 낌새를 챘는지 살짝 긴장한 기색을 비췄다.
살금살금, 먹잇감을 향해 가는 고양이처럼 발소리를 줄이며 조금씩 앞으로 걸었다. 그렇게 얼마간 이동하자 풀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이 살짝 보였다.
‘동굴.’
역시 예상한대로 우거진 풀숲 뒤에는 동굴의 입구로 추정되는 것이 있었다. 조금 더 이동하니 완전한 입구의 형태가 보였다.
“찾았다.”
은밀한 동굴 자체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동굴 입구 양 옆에 걸린, 쇠로 된 횃불걸이는 결코 자연적일 수 없다.
“신호를 보내서 모두 불러와라. 되도록 조용히.”
뒤에 있던 부하에게 명을 내렸다.
“옛.”
속삭이듯 답한 부하가 조심스럽게 자리를 떴다.
*
얼마 후. 흩어져서 수색하던 병사들이 모두 모였다.
“나는 반을 데리고 들어가겠다. 프레드릭은 나머지 반을 데리고 입구를 지켜라. 무슨 일이 있으면 뿔 나팔로 신호를 보내도록.”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쇼.”
동굴 입구를 지키는 병력은 없었다. 군터는 선두에서 병사들을 이끌고 동굴에 들어섰다.
입구부터 그랬지만, 안쪽 통로도 그다지 넓지 않았다. 기껏해야 사람 셋 정도가 나란히 서면 다 찰 정도였다.
‘제대로 짚었군.’
간간이 동굴 벽에 걸린 횃불들은 상당수의 사람이 이 동굴에 거주하거나, 이용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불이 켜진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동하던 어느 순간부터는 군터조차도 발걸음이 느려질 정도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깊군요.”
입구에서부터 상당히 이동한 상태였다. 하지만 좁은 통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살라스가 말했다.
안 그래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경사가 어느 정도 완만한지는 모르겠지만, 바깥에서 봤을 때는 도저히 이 정도의 길이는 나올 수 없었다. 이 동굴은 분명 지하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이어진다면…신호를 보내도 들리지 않을지 모릅니다.”
위험하다는 의미이며, 또한 이쯤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계속 내려갈 것인지, 아니면 일단 도로 올라갈 것인지.
군터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계속 간다.”
아직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다만, 프레드릭 쪽에게도 이쪽의 사정을 알려야겠지.”
군터는 부하 한 명을 올려 보내고 동굴 벽에 걸린 횃불 몇 개를 빼내어 부싯돌로 불을 붙였다. 어두컴컴하던 시야가 다시 밝아졌다.
“모두 긴장을 늦추지 마라.”
불을 밝힌 이상 은신의 의미는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 했다. 군터의 나직한 말에 모두 무기를 고쳐 쥐었다.
통로는 계속 이어졌다. 일정한 너비의 통로를 계속 걷고 있자니 흡사 거대한 뱀의 몸통 안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내려갈수록 심해지는 음습함은 그런 찝찝한 기분을 더 부채질했다.
‘길기도 하군.’
얼마나 걸었을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통로가 드디어 끝을 보였다.
“…….”
군터는 통로의 끝으로 다가가며 혀로 입술을 훑었다. 동굴 안은 습하기 그지없었는데 입술은 가뭄이라도 온 것 마냥 바싹 말라있었다.
통로 끝에서 바람이 밀려들어왔다.
일행은 벽에 바싹 붙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일부는 활을 들었고, 일부는 칼을 들었다. 모두 군터의 신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신호는 떨어지지 않았다. 힐끗 통로 밖을 살핀 군터는 잠시간 상황도 잊고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영문을 모르는 병사들은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무슨!’
통로 바깥의 광경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마을이 있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있는 그대로. 널따란 광장에 목조 건물이 수십 채는 들어서 있었다. 고개를 위로 꺾어야만 보이는 천장에서는 구멍이 있는지 빛줄기가 여러 개 내려왔고, 때문에 횃불이 없어도 광장 주변은 환했다.
‘이상하군.’
이런 지하 깊숙한 곳에 마을이 있다는 것이 사실은 가장 이상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도 이 큼직한 마을에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더 이상했다.
‘반대쪽에도 통로가 있는 건가.’
지금 그들이 있는 곳과 마주보는 반대쪽에도 통로 같아 보이는 것이 있었다.
‘매복을 할 만한 공간은…없군.’
광장은 탁 트여 있었다. 숨을 만한 공간이라면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광장 중앙 쪽 외에는 없었다.
“와아.”
“이게 뭐야?”
지하의 동굴 마을에 대한 감상은 모두 비슷했다. 감탄, 혹은 경악.
하지만 놀라운 것은 놀라운 것이고, 병사들은 놀라는 와중에도 소리는 최대한 죽이면서 무기를 제대로 쥐고, 혹시라도 마을 쪽에서 튀어나올지 모를 적들을 경계했다.
마을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죽은 듯 고요했다.
‘뭐지?’
조심스레 마을로 다가갈수록, 군터는 기묘한 느낌에 빠져 들어갔다.
한 걸음씩 떼놓는 발걸음이 무겁고, 오한이 온 듯 몸이 떨리며 땀이 흘렀다. 어느 정도 더 갔을 때는 갑작스레 와락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왜?’
그 순간, 그는 우뚝 멈춰 섰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더 이상 저곳에 가까이 가면 안 된다는 본능적인 감각.
“왜 그러십니까?”
뒤따르던 부하가 혹여 적이 있나 싶어 눈을 날카롭게 떴다가 아무리 둘러봐도 적이 보이지 않자 의아해하며 다가왔다.
“…….”
“대장님?”
“…아무것도 아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뗐다. 본능의 외침을 애써 외면하고 창검을 고쳐 쥐었다. 서늘한 쇠의 감촉에 뭉개지려던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잔뜩 굳은 얼굴로, 군터는 불길함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
“이건…….”
마을에 들어서고서야 왜 이다지도 조용했는지 알 수 있었다.
건물로 가려진 마을 안쪽에는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다. 그 수가 족히 백은 가뿐히 넘어 보였다.
“죄다 시체뿐입니다!”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을에 먼저 들어선 병사들이 여기저기서 보고했다. 사람의 것 뿐 아니라 말의 시체도 있었다. 언제 죽었는지는 모르나, 희한하게도 시체들은 조금도 썩지 않았다. 심지어 시체에서 응당 나야 할 냄새도 없었다.
“…….”
군터는 시체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는 느릿하게 걸었다.
마을 중앙, 다른 건물들보다 더 높은 건축물.바로 그곳에서 느껴졌다. 마을에 들어서고서야 확실히 알았다.
‘무언가 있다.’
기현상 그 자체인 이 마을조차 신경 쓸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 끔찍한 두려움을 자아내는, 상상할 수도 없는 불길한 무언가가.
“대장님! 이 시체들 정말 이상합니다. 마치 조금 전까지 살아 있었던 것 같이…….”
살라스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묵묵히 걸어 건물 사이의 골목길을 지나, 탁 트인 마을 중앙에 도달했다.
그러자 보이는 건축물 하나.
초라한 건물들 사이에 유독 홀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높은 제단.
[r...delavuka...]
바로 그 위에 있었다.
주위의 모든 것을 물들일 것만 같은 시커먼 안개. 그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추측할 수도 없는, 거대한 무언가의 형상.
[delkam…sarutei…ra]
군터는 그것을 보자마자 돌덩이처럼 굳었다.
[lakashana…latul]
어둠이 꿈틀거렸다.
세상이 통째로 느려진 것 같았다.
군터는 그것이 자신을 봤다고 느꼈다. 아니, 확신했다. 그 순간, 그는 반사적으로 창을 들었다. 그러나 창을 쥔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크윽!”
아아아아...
시커먼 연기에 감싸인 해골들이 어느새 그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검게 물든 뼈들이 발을, 다리를, 허리를, 가슴을, 팔을 끌어안고 있었다. 뾰족한 손가락뼈가 전신의 살들을 파고들었다.
[hatum! harangga!]
거대한 어둠이 밀려왔다. 그것이 지나간 세상은 모두 어둠에 잠겼다.
‘움직여! 움직여! 움직여!’
“으아아아!”
[hatum!]
팔에 엉겨붙었던 해골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빛살이 된 창검이 검은 파도를 찔렀다.
푸하악!
창날이 어둠을 갈랐다. 검게 물들었던 세상이 다시 제 색을 찾았다.
“으, 으으윽!”
동시에 군터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폭풍에 휩싸였다.
좌절. 분노. 공포.
결코 감당할 수 없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절망의 홍수에서 군터는 자기 자신마저 놓아버렸다.
“대장님!”
흐릿해져가는 세상 속에서, 살라스의 목소리가 멀리서 듣는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