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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35화 (35/1,064)

<-- 흉조 -->

병사를 따라 막시밀리언이 있는 사령부로 향했다.

“부르셨습니까.”

“오, 왔나. 거기 앉게.”

막시밀리언은 커다란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쳐 놓고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깃펜으로 지도 위에 무언가를 표시하고 있었는데, 군터는 거기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어차피 알아야 할 내용이라면 막시밀리언이 어련히 알려줄 것이므로.

“아직도 여전한가?”

“송구합니다.”

“아니야. 탓하려는 게 아닐세. 탓을 하려면 자네 말고 그 속 좁은 놈들을 불러야지.”

군터 기병대가 오테론에 온 지도 벌써 반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기병대 사이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었다. 군터 기병대의 거의 전부가 아쿼러즈인 것이 문제였다.

“그라메인 대장에게 내 그리도 누누이 일렀건만.”

오테론의 기병대장인 그라메인은 500기 기병의 지휘관이다. 물론 휘하의 기병들은 그의 지휘를 받으면서 동시에 세 개 천인대에 소속되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대규모 기병 임무가 있을 때는 기병대장인 그의 밑으로 집결하게 되어 있는 만큼, 기병대에서 그의 영향력은 상당히 크다 할 수 있었다.

“그 양반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모른 체 하는 것인지. 뭐가 됐든 참 한심하군.”

평소 오만한 태도로 일관하는 그라메인을 떠올리고는 끌끌 혀를 차는 막시밀리언.

그라메인은 엄밀히 따지자면 백인대장이었다. 하지만 천인대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 백인대이며, 따로 오테론 성의 기병대장이라는 직책도 가지고 있는 만큼 비록 천인장 만큼은 아니나 그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졌다 할 수 있다. 때문인지 그는 유난히도 거들먹거렸다. 아마도 그의 직속 휘하 기병 백을 제외하면 오테론 내에서 그를 좋아하는 이는 찾기 힘들 것이다.

“차차,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 그 수밖에는 없겠지.”

사실 이는 군터가 자초한 면이 컸다. 다른 곳도 아니고 초원민족과 칼을 맞대는 이곳에 아쿼러즈들을 잔뜩 끌고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쿼러즈들로 이루어진 기병대는 그런 불이익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들은 신설 기병대였지만 기존에 몇 년씩 복무한 부대보다 나았다. 간간이 기병대 간에 훈련을 진행하면 늘 빼어난 성적을 보이는 것이 그 증명이었다.

어쩌면 다른 기병대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이유 중에는 그런 까닭도 포함되어 있을지 모른다.

“자네를 오라 한 이유는 다름 아니라, 일을 하나 시키려 함이네.”

“하명하십시오.”

드디어 본론인가. 막시밀리언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닷새 전에 사비토랑에서 상단이 습격을 받았다고 하네. 인근을 돌던 순찰대가 흔적을 발견하면서 알게 된 모양이야.”

사비토랑이라면 오테론에서는 남쪽으로 사나흘 정도 떨어진 곳이다. 흔히 오테론 인근이라고 하는 지역에 간당간당하게 포함 되는.

“아마 도적놈들의 소행이겠지. 자네도 알다시피 여기저기서 도적놈들이 극성이지 않은가. 아무튼 일이 벌어진 곳이 우리 관할이라고 우리더러 해결하라는 모양이야. 보통 같으면 대충 수색만 좀 하고 넘기면 될 일이지만, 재수 없게도 그 상단 주인이 살마드에서 방귀깨나 뀌는 관리의 친척이라더군.”

보통 같이 하는 방식은 물 건너갔다는 이야기다. 제대로 된 성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아마 그 관리라는 자가 여러모로 귀찮게 굴겠지. 방귀깨나 뀐다는 것이 어느 정도나 된다는 건지는 모르지만 귀찮은 일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자네가 좀 나서줬으면 좋겠어. 어차피 그 관리도 사촌이 살아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을 테니까 크게 무리할 일은 없을 것이야. 일단 어떤 놈들인지 부터 확인하고, 별 것 아닌 규모라면 자네 선에서 처리해도 좋네.”

“알겠습니다.”

막시밀리언이 끈으로 묶인 두루마리를 건넸다.

“앞서 그 근방을 수색한 순찰대가 쓴 보고서네. 내 보기엔 별 거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챙겨가도록 하게.”

“예.”

*

두두두!

100여 기의 기병이 한 데 모여 달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인근에 있던 짐승들은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에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아니, 이레 전에 일어난 일을 우리더러 어떻게 해결하라는 겁니까? 이미 오래 전에 다 내빼고 남았을 시간 아닙니까.”

프레드릭이 푸념조로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살라스가 말을 받았다. 그는 프레드릭과 나란히 말을 몰고 있었는데, 이는 살라스는 군터 기병대의 십인장 중 한 명이기 때문이었다.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엉?”

“듣자하니 습격 받은 상단은 백 명이 넘는 규모였다고 합니다. 값나가는 물건들을 싣고 가는 중이었다니 당연히 호위 병력도 상당수 있었겠지요. 그런 무리를 습격할 정도의 도적떼라면 못해도 그 배는 되는 수였다고 생각해야 할 겁니다.”

“그 말대로다.”

둘의 시선이 군터에게 향했다.

“그 정도의 수라면 본거지 없이 떠돌아다니는 약탈자의 수준을 한참 넘었다. 분명 어딘가에 본거지가 있을 테고, 그만한 수가 움직일 때는 원행은 하지 않는 법이지.”

“오오! 그렇다면 놈들의 본거지가 그 근방에 있을 거라는 말이군요.”

“그럴 거라고 추정하고서 바삐 움직이고 있는 거다. 혹여 놈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버릴지도 모르니까.”

“이야. 대장님이 다시 보이네요. 감탄했습니다.”

“…….”

당연히, 이것은 군터의 생각이 아니었다. 막시밀리언의 추측이었다. 하지만 모처럼 부하 앞에서 머리로 체면을 세운 차에 괜한 말을 더해서 부하의 존경심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머리도 제법 쓰는군.’

프레드릭이 이쪽을 새삼스럽게 보았다면, 군터는 살라스를 다시 보았다.

‘아니, 그러고 보면 저 녀석은 원래 그랬던가.’

너무도 빠르게 부대에 적응하고, 어린 나이에도 실력으로 당당히 십인장 자리까지 따내는 모습들을 보면서 살라스를 뛰어난 군인으로만 보았다. 하지만 살라스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면(지금도 그렇지만), 배운 티를 팍팍 내는 샌님 과였다. 머리를 좀 쓸 줄 안다고 해서 놀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마 군터 기병대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이는 살라스가 아닐까?

‘다 가진 녀석이군.’

이런 부류의 인간을 아주 질색하는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로크가 이 녀석을 다시 본다면 아마 “그때 그냥 구해주지 말지 그랬냐.” 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

“이랴!”

배를 세게 한 번 차자 말이 씩씩거리며 더 달려 나갔다. 자연스레 뒤쪽의 부하들도 기를 쓰고 따라붙었다. 뒤에서 우는 소리들이 들렸지만 무시했다.

세찬 바람을 맞는 얼굴에 시원한 미소가 걸렸다.

*

“여기다.”

지도에 표시된 위치에 도착했다.

과연 부서진 마차며 파리 날리는 뼛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며칠 전에 짐승들이 먼저 다녀간 모양이었다.

“이제 여길 중심으로 수색을 시작하면 되는 겁니까?”

“아니. 아직.”

“예?”

“…….”

군터는 몸을 낮추고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한 구석에서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며칠 사이에 비가 오지는 않았나 보군. 아직 흐릿하게나마 흔적이 남아 있다. 모두 흩어져서 말발굽 자국을 찾아라.”

“옛!”

주의 깊게 살피지 않는다면 눈치 채지 못했을 정도로 흐릿했다. 며칠이 흐르기도 했고, 그 동안 바람이나 들짐승들에 의해 사라진 것도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아있는 몇몇 흔적들을 토대로 한다면, 적어도 도적들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알 수 있을 터. 그렇다면 추적은 거기서부터 시작 된다.

“찾았습니다!”

“이쪽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명령을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병사들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골치 아프군.”

흔적은 두 방향에서 발견 됐다. 두 곳에서 나온 흔적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는 곧, 도적들이 온 방향과 간 방향이 다르다는 뜻이다.

“계획적이군요. 상단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덮친 겁니다.”살라스가 말했다.

“네 말이 맞다.”

골치 아프게 됐다. 상단이 이동하는 길목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은, 우연히 발견하고 습격한 것이 아니라 미리 그들이 올 줄 알고 계획을 짰다는 것.

머리가 지끈거렸다. 놈들은 단순한 도적떼가 아니란 말인가? 아니, 그런 것은 상관없다. 단순하건 단순하지 않건, 도적놈들이라면 베어 죽이면 그뿐이다. 다만 문제 되는 것은, 계획적으로 습격을 가했다면 도망치던 것도 계획적으로 하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살라스. 어떻게 생각하느냐.”

딱히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살라스는 군터의 말뜻을 짐작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근거는?”

“수레며 마차가 너무 적습니다. 게다가 뼈는 많은데, 쇠붙이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확실히 살라스의 말대로다.

백 명이 넘는 규모의 상단이라고 했다. 상단이라고 하면 팔 물건이, 즉 상품이 있었을 것인데 아무리 상품이 귀중품 위주였다지만 박살난 마차나 수레의 잔재를 보면 적어도 너무 적었다. 게다가 인원이 인원인 만큼 호위도 수십이었을 텐데, 그들이 가지고 있던 병장기며 숙식을 할 때 쓰는 도구 등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막시밀리언이 전해준 수색대의 보고서는 지금 이 광경을 그대로 말하고 있었다. 그들이 왔을 때부터 쭉 이런 상태였다는 뜻이다.

“가까운 곳에 있겠군.”

“나름대로 은밀한 곳이겠지요.”

“산인가?”

“유력한 후보지겠군요.”

군터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움직인다! 놈들은 멀리 가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몸 상태가 별로 안 좋네요. 글도 몸 상태 따라가는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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