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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26화 (26/1,064)

<-- 베브로스의 난 -->

울벤트가 분통을 터뜨렸다.

“뭐가 중앙군이고 뭐가 황군이란 말이냐! 겁쟁이 같은 작자들!”

산지라 추격이 어렵다며 시기를 다 보내고 늘쩡거린 로탄이나, 추격하려는 자신을 은연중에 말리던 카리비온이나 못마땅하기는 다 마찬가지였다.

‘그런 졸장부들과 무슨 일을 함께 하겠는가!’

눈에 불을 켠 울벤트는 도주한 적군의 흔적을 쫓았다. 말을 탄 그와 그의 친위병들이 앞장 서 길을 열었고, 보군이 그 뒤를 따랐다.

“저기 있다! 놓치지 마라!”

부지런하게 움직인 끝에 마침내 도주하는 적을 발견한 울벤트는 그대로 군을 몰았다.

*

“너무 서두르고 있습니다. 자칫 적의 매복이라도 있다면…….”

막시밀리언의 말을 들은 자이론은 대답 대신 한숨을 쉬었다.

“매복이라…그럴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머뭇댈 수는 없어. 사령관은 울벤트 리에론 공이고, 그는 추격명령을 내렸다. 그렇다면 따를 수밖에 없지. 다만 자네의 말에도 일리는 있으니, 주변 경계를 철저히 하며 움직이도록 하세.”

“…알겠습니다.”

주의를 기울이기로 했으나 변한 것은 없었다. 막시밀리언은 자신의 부대로 돌아와 수하 십인장들을 불러 모았다.

“적의 매복이 있을지 모르니 주위 경계를 강화한다.”

“옛!”

“군터. 자네는 남게.”

“예?”

“자네는 내 옆에 있게. 여차하면 자네가 길을 열어야할지 모르니.”

“예.”

군터는 길을 연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묻지 않았다. 명령이 있으니 따르면 그뿐이다. 그가 아는 막시밀리언은 허튼 명령을 내릴 자가 아니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닙니까?”

얼마간 바쁘게 산길을 올랐을 때, 옆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프레드릭이 속삭이듯 물었다. 딴에는 남들 귀에 안 들리게 말한다고 한 것이었겠으나, 공교롭게도 막시밀리언이 그 말을 듣고야 말았다.

“무리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걱정이지.”

“아…죄, 죄송합…….”

“죄송할 것 없다. 나도 너와 생각이 같다. 곧 무슨 일이 생겨도 크게 생길 것 같으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거라.”

“그…준비…라시면?”

막시밀리언이 막 입을 떼려던 찰나.

“매복이다!”

전방에서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함성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달려갈 준비! 막시밀리언 백인대는 나를 따르라!”

막시밀리언이 뛰어나가자 군터도 즉각 그의 뒤를 따랐다.

*

갑작스레 길목에 바위와 나무들이 굴러 떨어졌다. 달려 나가던 병력이 발이 묶이고 한데 뭉쳐 멈춰 섰을 때 양 옆의 고지에서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런!”

울벤트는 함정에 빠진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하지만 그가 제대로 후회할 틈도 없이 화살이 쏟아졌다. 진형을 갖추지도 못하고 어지럽게 늘어서 있던 병사들이 속절없이 쓰러져갔다.

“후퇴! 후퇴하라!”

방패로 머리를 가리고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양 옆에서 경사를 타고 내려오는 반군들이 길을 막아섰다.

“퇴로가 막혔습니다!”

울벤트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가 사납게 이를 갈았다.

“돌파한다! 밀어 붙여라!”

하지만 일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혼란에 빠진 병사들은 제대로 통제되지 않았고, 기세등등한 반군의 칼날 앞에 맥을 추지 못했다.

체력 문제가 가장 컸다. 가뜩이나 원행으로 체력이 고갈 된 상태였던 데다, 바로 전날 잠을 설치고 험한 산길을 주파하기까지 했다. 체력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사기까지 꺾이니 그야말로 오합지졸들이 따로 없었다.

“크아악!”

길을 막아선 반군의 수는 수백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수백의 반군은 일당백이라도 된 마냥 살마드 군을 무자비하게 유린했다. 어설프게 진형을 갖춘 전열이 삽시간에 무너졌다. 반군은 점점 군의 중앙에 있는 울벤트에게 가까워져왔다.

“으으으……! 무엇 하느냐! 놈들을 막아라!”

밀어 붙이라는 명령은 어느새 막으라는 것으로 바뀌었다. 수세에 몰린 살마드군은 가로막힌 길목으로 밀려갔다.

‘이런 바보 같은! 설마 내가 이런 곳에서…….’

독기와 살기가 이글거리던 눈이 공포에 젖어갔다. 울벤트는 서서히 자신의 최후를 직감했다. 검을 쥔 손이 떨리고, 깨문 입술에서는 피가 흘렀다.

‘어차피 막다른 길이라면…차라리 명예롭게 맞서겠다!’

울벤트가 그를 호위하는 수하들을 젖히고 앞으로 나섰다.

“내가 길을 열겠다! 모두 나를 따르라!”

그렇게 외친 그가 말의 배를 차려던 순간.

“코르넬! 군터! 길을 열어라!”

“예엣!”

점점 다가오던 반군의 뒤편에서 소요가 일었다. 멀리 있던 울벤트도 한 눈에 알아챌 수 있을 만큼 큰 소란이었다.

*

“코르넬! 군터! 길을 열어라!”

막시밀리언이 외쳤다.

“예엣!”

그가 외친 순간, 군터는 뒤따르던 막시밀리언을 재끼고 선두로 앞서 나갔다.

반군들이 두텁게 늘어선 것이 보였다. 후방에서의 접근을 눈치 채고 상당수가 돌아서고 있었다.

‘돌파한다.’

임무는 길을 여는 것이다. 가로막는 적을 물리치지만, 반드시 죽일 필요는 없다. 살수를 펴는데 집중하기보다 더 빠르고 더 강하게 달려 나가는 데 집중한다.

쾅!

막아서는 적을 그대로 쳐냈다. 창대에 옆머리를 두들겨 맞은 적이 붕 떠서 날아갔다.

“하아앗!”

코르넬이 뒤따라 붙었다. 그리고 그 뒤를 스무 명의 병사들이 받쳤다.

“멈추지 마라!”

막시밀리언의 목소리.

군터는 다리에 힘을 줬다. 좌우에서 떨어지는 칼날을 피하고, 흘리며 창을 휘둘렀다. 그가 걷는 걸음마다 길이 되고, 그 길에서 적들은 밀려났다.

“이야아!”

머리 옆에서 칼날이 뚝 떨어져 내렸다. 뒤늦게 그것을 보았을 때 피하기 힘들다는 것을 직감했다.

카앙!

하지만 그 칼날이 마저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코르넬의 검이 칼을 튕겨냈다.

“계속 가!”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말대로 발을 멈추지 않았다.

숱한 피로 목욕을 하고, 십여 개의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을 때, 더 이상 앞을 가로막는 적이 없음을 알았다.

멍청하게 눈을 뜬 아군을 확인한 군터는 창대 끝으로 땅을 찍었다. 멈춰선 그의 뒤로 막시밀리언 백인대가 속속들이 빠져나왔다.

“사령관님!”

붉은 머리가 된 막시밀리언이 숨을 헐떡이며 울벤트를 찾았다.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울벤트는 막시밀리언을 보고 멍한 얼굴이 되었다.

“자네는……?”

“자이론 천인대 소속 백인대장 막시밀리언입니다! 속히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저희

가 길을 열겠습니다!”

“오오! 이 빚은 잊지 않겠다! 좋아! 맡기겠네!”

“옛!”

고개 숙인 막시밀리언의 입가에 순간적으로 미소가 어렸다. 그를 보지 못한 울벤트는 여전히 감격한 얼굴로 주인 잃은 말에 오르는 막시밀리언을 보았다.

막시밀리언은 자신의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는 점점 더 불어나는 반군을 보며 계산을 거듭하고 있었다.

‘아찔하군.’

반군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대로 가면 길을 뚫고 온 보람도 없이 개죽음을 맞게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 편이다.’

얼핏 보면 형세는 절망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쪽에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하나는 분투하며 오고 있을 자이론 천인대. 그리고 또 하나는 후방에 남겨졌던 말레이드의 3천 정병이다.

‘카리비안 하야신이라면 틀림없이 온다. 울벤트 리에론이 달갑지 않겠지만 그가 죽었을 때 벌어질 일을 생각지 않을 수 없을 테니.’

버티는가. 뚫고 나가는가.

결단을 내린 막시밀리언이 대뜸 고개를 돌렸다.

“고수(鼓手)는 북을 쳐라! 있는 힘껏!”

“옛?!”

잠시 멍해 있던 고수는 재차 명령하자 모르겠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북을 쳤다.

둥-! 둥-! 둥-!

“백 명으로도 뚫은 길이다! 무기만 똑바로 쥔다면 이제와 다시 뚫지 못할 이유가 없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북 소리에 섞여 기슭을 울렸다.

*

둥-! 둥-! 둥-!

“호오…….”

산길을 오르던 카리비온이 고개를 들었다. 덤덤하던 얼굴에 약간의 호기심과 감탄이 떠올랐다.

“더 서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무도 느긋한 그의 모습에 뒤따르던 모그로프가 기어이 한 마디를 뱉었다.

“지금 와서 왜 이런 낭패를 보았는가. 다 마음만 앞서서 서두르다가 자초한 일 아닌가.”

“정말 사령관이 죽도록 내버려두실 참입니까.”

모그로프는 타박하듯 던진 말이었겠지만, 실은 정말 그것이 카리비온의 속내였다.

울벤트 리에론이 죽는다면 확실히 곤란해질 일이 많다. 사령관이 죽은 것이고, 리에론 가의 직계가 죽은 것이니 승리한다 해도 책임소지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는 그런 다소간의 책임보다 병사들의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아끼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무능한 지휘관이 만 명의 적보다도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런 전장에서 귀중한 황군을 헛되이 잃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널리고 널린 지방군과 엄선하여 기른 중앙군은 다르다. 그런 귀중한 군대를 무능한 지휘관의 지휘로 낭비할 수는 없다.

때문에 그는 최대한 책임을 피하도록 하되, 가급적 울벤트가 죽을 확률을 높이는 쪽으로 움직였다. 무리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게 하고도 울벤트가 산다면 그건 그의 명줄이 질긴 것으로 여기면 되리라.

둥-! 둥-! 둥-!

하지만 지금 산 전체를 울리는 이 북소리는 어떠한가. 마치 자신은 여기에 있다는 듯 외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이 외침은 부름인가, 아니면 고함인가.

확실한 것은, 이 부름이 그의 마음에 약간의 감흥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그의 심경은 살짝 비틀렸다.

“부르고 있으니 가지 않을 도리가 없군.”

“예?”

카리비온은 모그로프의 의문을 무시하고 병사들에게 외쳤다.

“쉴 만큼 쉬었다, 그렇지 않은가!”

“옛!”

“이제부터는 달린다! 사령관이 위기에 빠졌다! 이제부터 우리는 사령관을 구하고 반군을 쓸어버린다! 무지렁이 오합지졸들에게 황군의 힘을 보여라!”

“황제 폐하를 위하여!”

잠잠하던 군기가 일순간 치솟았다. 병사 한 명 한 명이 발하는 투기가 한데 모여 피부를 쩌릿하게 자극했다.

카리비온은 싱긋 웃었다. 그리고 칼을 뻗어 북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가리켰다.

“간다! 적을 섬멸하기 전까지 멈추지 말라!”

“와아아아-!”

*

“와아아아-!”

몰려드는 반군을 맞아 맞서 싸우길 얼마간.

천둥소리와 같은 함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밀려들던 반군이 멈춰 서고, 맞서 싸우던 바크렌 군도 움찔했다.

그것은 흡사 파도와도 같았다.

앞선 기병 수십여 기와 그 뒤를 따르는 갈색 물결은 그대로 반군의 뒤를 덮쳤고, 멈추지 않으며 전진했다. 반군의 대열이 무너지는 속도는 갈색 물결이 밀려드는 속도와 같았다. 선두에서 달리는 기병은 단 한 번도 멈춰 서지 않았다. 함성은 그치지 않았고, 어느덧 힘차게 울리던 북소리가 잦아들었다.

“사령관. 무사하십니까.”

핏물이 묻은 검을 털어내며, 카리비온이 천천히 말을 몰아 울벤트의 앞에 섰다. 울벤트는 처음 막시밀리언이 포위를 뚫고 앞에 왔을 때보다도 더 멍한 얼굴이 되었다.

“카리비온…공.”“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이제부터는 저희가 맡지요. 오늘 내로 토벌을 마무리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여러 감정으로 말문이 막힌 울벤트는 입만 뻥끗했다. 그리고 카리비온은 그런 그의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추격하라!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울벤트의 목을 노리던 반군은 어느새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고 있었다. 경사진 언덕을 허겁지겁 오르는 뒷모습에서 이전과 같은 계략의 냄새는 전혀 풍기지 않았다.

*

“…이런.”

추격군은 이끌던 천인장 모그로프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잠시 말을 잃었다가 조용히 혀를 찼다.

“어처구니가 없군. 이런 곳에다 성을 지었단 말인가.”

산중 언덕.

가파르게 경사진 고지에 웬 성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돌덩이들을 되는 대로 모아 쌓아올린 것 같은 조잡한 모양새였고, 성벽도 그리 높지는 않았으나…그래도 성은 성이었다.

추격을 끝끝내 피한 잔당들이 좁게 열린 성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성벽 위에는 제각각의 복장을 한, 다양한 나이대의 남녀들이 활을 조준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피곤해지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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