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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하게 변한 전사는 이제껏 상대해온 그 어떤 적보다도 더 까다로운 상대였다.

명백히 인간을 넘어선 힘에, 이족보행을 하면서도 네 발로 뛰는 짐승마냥 매우 민첩했다. 게다가 피부도 나무껍질을 몇 겹이나 씌워놓은 것처럼 단단하여 어지간한 공격이 아니면 제대로 된 상처를 낼 수 없었다.

“으음!”

크게 휘두른 발톱을 튕겨내고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힘의 차이가 있다. 아주 못 견뎌낼 정도는 아니지만 어지간한 짐승들과도 맨손으로 겨루어 이길 자신이 있는 군터로서는 힘에서 밀린다는 것은 매우 낯선 경험이었다.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데다 힘까지 강하다. 거기에 멍청한 짐승과는 달리 지능적으로 움직인다. 눈이 돌아간 것 같은 지금도 제법 영악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러한 악조건들 속에서도 비등하게 형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적의 무기인 양 발톱보다 그가 쥔 창검이 월등히 길다는 것과, 발톱을 휘둘러대는 전사의 움직임이 비교적 뻣뻣했기 때문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건가.’

종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숫제 다른 몸뚱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그런 완전히 다른 몸뚱이로 칼이 아닌 발톱이라는, 역시 다른 무기를 들고 싸우는 셈이다. 무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몸이 변한다는 것은 큰 문제다. 힘이 더 세지고, 더 빨라져도 적응을 못하면 별무소용일 터.

‘조금이라도 더 익숙해지기 전에 끝내야 한다. 결판을 낸다면 기회는 한 번뿐.’

그의 집중력이 최고조로 달했다. 뜨겁던 머리가 한 순간에 차게 식었다. 계속해서 신경 쓰이던 부하들의 목소리도 지웠다. 세상에 오직 자기 자신과 눈에 보이는 적 하나만을 두었다.

전사의 움직임, 숨소리, 번들거리는 노란 눈동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전사의 숨결에 동조하며 들썩이던 가슴을 가라앉혔다.

한 순간.

전사가 팔을 뒤로 젖히고 달려드는 그 순간.

군터는 지금까지처럼 견제키 위해 창을 찌르지 않고 오히려 창대를 짧게 움켜잡은 채 몸을 먼저 밀었다.

당황한 적이 황급히 팔을 휘둘렀다. 군터는 짧게 쥔 창검을 검처럼 휘둘렀다. 창날이 전사의 팔을 갈랐다. 엉성하게 휘두른 팔이 길게 베이며 피가 튀었으나 휘두른 팔의 발톱은 그러고도 기세는 죽지 않아 그대로 군터의 얼굴을 긁었다. 군터가 황급히 머리를 옆으로 틀었지만 두 줄기 혈선이 그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후끈한 열기가 얼굴을 가로질렀다.

군터는 이를 악 물며 한 발 앞으로 더 뻗었다. 그러면서 팔꿈치로 전사의 턱을 후렸다. 덩치가 커지면서 턱 관절도 변했는지 턱을 쳤는데 무슨 두꺼운 나무를 때린 것 같은 감촉이었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는지 거대한 몸이 일순 덜컥 멈췄다.

군터는 재빨리 몸을 돌리며 검창을 두 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내찔렀다.

푸욱!

기다란 검창의 날이 손 한 마디 정도 파고들었다.

“으아아아아!”

있는 힘껏 힘을 주며 창대를 밀었다. 점점 창검이 깊게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크르르륵!”

전사가 비틀대며 뒷걸음질 쳤다. 군터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앞으로 달렸다. 뒤로 물러나는 전사와 쫓는 군터의 추격전이 몇 발자국 이어졌다.

“크아아아!”

전사가 뒷걸음질을 포기했다. 대신 부들거리는 손을 들어올렸다. 샛노란 두 눈에는 고통과 분노가 똘똘 뭉쳐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과 같은 광기는 없었다. 고통을 느끼면서도 상대를 끝낼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이성이 돌아온 상태였다.

군터 역시 급변한 공기를 느꼈다.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다.

‘이런!’

황급히 창대를 놓고 빠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발톱이 도끼처럼 내려왔다.

콰직!

“크아아아악!”

떨어져 내리던 발톱이 다시 위로 올라갔다. 묵직한 화살이 손목을 뚫은 채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었다.

“군터! 피하게!”

몸을 빼고 나오니 막혔던 귀가 열렸다.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렸다. 고함소리, 비명 소리들.

“전진!”

“밀어붙여라! 이동경로를 차단해! 창수 앞으로!”

열 명의 병사와 그를 포위한 이십 여 기병이 전부였던 전장에 어느새 백 명은 되어 보이는 병사들이 더 들어와 있었다.

“하압!”

한 사내가 검을 빼들고 달려들었다. 코르넬이었다. 전사가 창검에 몸이 꿰인 채로 힘겹게 응수하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괜찮은가?”

“…아. 대장님.”

막시밀리언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군터는 그제야 자신이 반쯤 주저앉아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막시밀리언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킨 그는 어찌된 영문인지 물으려다가 곧장 그게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최대한 빨리 온다고 했는데도 아슬아슬했군. 급한 대로 쏘긴 했지만 빗나가면 어찌하나 걱정했다네.”

그의 손에는 제법 큼직한 석궁이 들려 있었다. 그러니 막시밀리언이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는 거다. 물론 까딱 잘못했으면 뒤통수에 석궁 화살을 맞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건 전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제 목숨을 구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나저나…저 괴물은 뭔가?”

전사는 끊임없이 뒤로 물러나면서도 간간이 반격을 하며 크르넬을 긴장케 하고 있었다. 사람 키보다도 더 기다란 창검이 몸뚱이에 박힌 채로도 여전한 흉험함을 뿜어내는 전사는 그 누가보기에도 영락없는 괴물이었다.

“멀쩡한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변하더군요. 주술의 일종인 것 같기도 합니다만…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주술이라. 뭔지는 모르겠지만…척 보기에도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군.”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 이유는 크르넬이 좀처럼 전사를 압도하지 못하는 데 있었다. 밀어붙이고는 있었지만 결판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크게 한 번 들어갈 때마다 전사가 위협적으로 받아치는 탓이었다. 한 칼을 먹이려면 필히 어디 한 군데는 긁혀야 한다는 것인데, 한 번 긁히면 단순히 따끔한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상태를 보면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도 저만한 힘이라. 크르넬이 무리하지 않는 탓도 있기는 하나…정말 괴물이로군. 저게 정말 사람이란 말인가?”

막시밀리언이 감탄인지 경악인지 모를 탄식을 흘렸다.

“밀어내라!”

그 와중에 다른 쪽의 상황도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굳게 진형을 갖춘 채 압박해 나가니 기동력 좋은 초원의 기마들도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그저 병사들을 피해 움직이기만 하고 있었다.

“막시밀리언 백인장! 저 괴물은 뭔가?”

또 다른 백인장 파드라스가 다가와 물었다. 그는 코르넬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덩치 큰 괴인을 보고 어지간히 놀랐는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모르겠습니다. 저게 뭐든 간에, 일단 잡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지. 이제 정리도 끝나가니…어엇?!”

이제 모든 것이 무난하게 흘러갈 거라 생각했던 바로 그때였다. 코르넬의 검이 전사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움찔한 전사는 크게 울부짖으며 허벅지만한 굵기의 팔을 휘둘러 코르넬을 떨쳐냈다. 그리곤 꾸준히 그를 괴롭게 만들었던 창검을 단박에 뽑아냈다. 기다란 창검이 쑥 빠져나오며 그의 가슴팍에서 핏줄기가 솟았다.

“크아아아아아악!”

전사는 비명 같은 포효를 지르며 신경질적으로 창검을 내던졌다.

그때였다. 뿔뿔이 흩어졌던 기마 두 기가 그의 곁을 지났다.

“대장! 빨리!”

“으윽!”

내뻗은 손을 전사가 움켜잡았다. 말에 올랐을 때 그의 몸은 원래의 평범한 사람의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놓치지 마라!”

파드라스가 병사들을 움직였다. 하지만 달아나는 기병을 보병이 어찌 따라잡을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도망치는 적의 뒤에서 창을 던지거나, 몇 안 되는 궁병이 활을 쏘는 것뿐이었다.

“활!”

보다 못한 군터가 열심히 활을 쏘던 궁병 중 하나에게 달려가 활을 뺏어들었다.

“후우.”

뜨끈한 핏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 턱 끝에 대롱대롱 걸렸다. 따끔함과 가려움이 정신을 흐트러지게 만들었다. 군터는 입술을 씹으며 점점 멀어지는 말의 위를 조준했다.

슈웅!

빠르게 쏘아져나간 화살이 전사의 등에 적중했다. 크게 흔들리며 낙마하려는 그를 같이 말 탄 부하가 붙들었다.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그들은 끝내 작은 점이 되어 사라져갔다.

군터가 안타깝게 혀를 찼다.

‘조금 낮았다. 차라리 말의 다리를 노려야 했던 것인가.’

노린다고 해도 지금 상태로 맞출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기에, 그는 자신을 경탄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는 병사에게 활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들판 위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자신의 창검을 주워들었다.

“…….”

그렇게 칼이며 발톱 같은 것과 부딪쳐댔는데도 창검의 날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전보다도 더 날카롭게 벼려진 것 같았다.

특이한 점은 또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불그스름한 선 같은 것이 장식처럼 창대를 감싸고 있었다.

‘벌써 이 정도라니.’

군터는 이 변화 자체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다만 그는 이런 변화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일어났다는 데 놀랐다.

피먹이 천.

그것은 이제는 사라진 그의 부족을 상징하는 주술이었다.

피먹이 천을 두른 무기는 적의 피를 흡수하여 무기의 예기와 절삭력을 보완, 회복시켜 준다. 주인의 손에 들린 ‘피먹이 무기’는 적의 피가 마르지 않는 한 언제까지고 결코 부러지거나 무뎌지지 않는 최고의 무기로 남는다.

다만 그 효능이라는 것이 차츰차츰 쌓여가는 식이라, 적 한 두 명을 베어 죽였다고 하여 바로 신병이기처럼 되지는 않는다. 그 축적의 정도는 문양으로 나타나는데, 무기를 감싸는 붉은 선이 선명해질수록 완성에 가까워졌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의 검창은 첫 실전에서 단 한 명을 상대로 약간 피 맛을 본 것 밖에 없는데도 벌써 흐릿하게나마 문양이 나타났다.

‘확연하게 날이 섰다. 상대가 특별했다는 건가.’

하긴, 정말 아찔할 정도로 강한 상대였다. 그만큼 위험하기도 했다. 그런 것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빠르게 주술이 발동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싶었다.

잠시 어두컴컴한 저 너머를 보던 그는 몸을 돌려 부하들에게 갔다.

“대장. 그 괴물은 대체 뭡니까?”

프레드릭과 부하들은 모두 무사했다. 그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느냐 같은 소리는 하지 않았다. 원군이 도착해 여유가 생기면서 보았던 것이다. 짐승 같이 포효하던 시커먼 괴인을.

“글쎄. 나도 참 궁금하군.”

군터가 말했다.

“괜찮은 겁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냐! 딱 봐도 안 괜찮아 보이시잖아.”

“좀 쉬십쇼. 우리가 할 일은 이제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별로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다만 발톱이 얼굴을 긁으면서 얼굴이 피범벅이 된 탓에,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상태가 매우 안 좋아 보였나 보다.

군터는 사양 않고 초소의 벽에 누워 눈을 감았다.

실제로 크게 다친 곳은 없지만 온 몸이 삐걱 거렸던 것이다. 꼭 베이고 찢겨야만 힘든 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