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터-13화 (13/1,064)

<-- 인연 -->

오테론은 성의 이름이다. 또한 도시이며 자그마한 지역의 이름이기도 하다. 경사진 언덕 위에 세워진 성을 중심으로 닷새 거리에 있는 지역을 뭉뚱그려 오테론이라고 불렀다.

본래 오테론은 초원민족의 땅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제국군이 깃발을 세운지 40년이 채 안 된 곳이었고 오테론 성 역시 그때 세워진 것이었다.

제국은 변변한 마을 하나 없던 오테론에 주민이전 작업을 통해서 마을을 세우고 도시를 세웠다. 완성된 도시에는 군대를 주둔했고, 작금에 이르러 오테론은 제국이 의도했던 대로 바크렌과 갈색초원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내고 있었다.

두두두!

고지대에 우뚝 선 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무렵. 말발굽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정지!”

전방에서 족히 수백은 되어 보이는 기마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대로 짓밟고 지나갈듯 달려오던 그들은 말 위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가 되어서야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막시밀리언 백인대인가?”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물었다. 막시밀리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라메인 대장이십니까?”

“음? 날 아는가?”

“오테론의 기마대장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핫! 아부라도 기분은 좋구만! 자이론님은 성 안에 계시네. 들어가 뵙게나.”

움직인다 싶었더니 어느새 저 멀리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사라져가고 있었다. 한 덩어리가 되어 나아가는 기마대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병사들의 선망 어린 시선이 멀어져가는 기마대의 뒤를 쫓았다.

“자! 다시 가자!”

막시밀리언이 주의를 환기시키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

“어우. 무슨 바람이.”

프레드릭이 모포로 몸을 둘둘 싸맸다. 누군가 그에게 덩치 값 못한다고 핀잔이라도 줄 법도 하건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프레드릭 뿐 아니라 다른 병사들도 모두 비슷한 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으! 죽겠다 죽겠어.”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안 움직이는 거 아니야?”

그 소리를 듣고 있던 군터가 피식 웃었다. 그는 병사들처럼 모포를 끌어안고 있지 않았다. 문을 뚫고 들어오는 칼바람은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예에?”

“지금은 바람만 불고 있지. 조금만 지나면 얼마간 비가 내리기 시작할 거다. 그 후에는 눈이 내리겠지. 그때가 되면 지금이 좋았었다고 생각하게 될 거다.”

“으으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구만.”

신기한 일이다. 초원의 접경지대를 기점으로 기후가 너무도 다르다. 그래서 혹자들은 갈색초원을 저주받은 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땅.

하지만 이곳에도 대를 이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혹독한 바람을 피해 초원 여기저기를 누빈다. 때로는 양을 키우고 말을 키우는 유목민이 되어, 때로는 잔혹한 약탈자가 되어.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다. 겨울은 금방 오니까.”

“글쎄요. 얼어 뒈지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등불이 흔들렸다. 밤이 늦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추위에 모두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나저나 너무 좁아터진 거 아닙니까? 감방보다도 더 좁은 것 같은데요.”

“대신 쥐새끼는 안 돌아다니지.”

“그렇기는 합니다만…….”

“게다가, 이렇게 좁기 때문에 체온으로 몸을 녹일 수 있는 거다. 너희 하나하나가 이 등불 같은 일을 하는 거지.”

병사들은 그것 참 징그러운 등불이라며 웃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들은 벌레처럼 몸을 웅크린 채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힘겹게 눈을 떴다.

*

초원에 주둔하는 제국군의 군비는 전체를 10으로 둔다면 보병이 6. 기병이 4였다.

탁 트인 지형이 대다수인 초원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기동력이 최우선이다. 모두가 기병인 초원민족을 상대로는 적을 쫓으려고 해도 기병, 도망치려고 해도 기병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정찰을 하려고 해도 마찬가지.

보병은 오직 성을 비롯한 각 요충지에 주둔하며 지키는 용도로만 쓰인다. 막시밀리언 백인대의 상위 부대인 자이론 천인대가 바로 이 경우에 속했다.

“아무래도 바로 작전에 투입될 정도는 안 되겠지.”

막시밀리언이 고개를 숙였다.

“예. 부끄럽습니다만…급조한 부대이다 보니.”

“이해하네. 한 달 동안은 성에 머물며 훈련을 진행하는 걸로 하세나. 투트니 백인대를 붙여주지.”

“감사합니다.”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백인대 하나를 통째로, 그것도 한 달 동안이나 붙여주겠다는 것은 상당한 배려였다. 막시밀리언은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투트니는 경험이 많은 친구야. 병사들도 병사지만, 자네도 지휘관으로서 좋은 배움의 기회를 갖는다 생각하게.”

“예. 감사합니다.”

반백의 장년인. 천인장 자이론은 성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예고도 없이 불어온 세찬 바람에 검고 흰 그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한 달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야. 특히 무언가를 배우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지.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군. 초원이 심상치 않아.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네. 사방으로 정찰병을 띄우고, 다른 지역들과도 소식을 교환하고 있네만 특별히 들어오는 것이 없어. 사령관께서도 고민이 크시지.”

“…….”

“최선을 다해주기 바라네. 내가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예.”

*

성에 들어온 다음날부터 교육이 시작됐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여라.”

투트니 백인대는 막시밀리언 백인대의 거의 모든 인원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너희가 이제부터 써야 할 무기는 딱 세 개다. 창, 방패, 그리고 창이다.”

정확히는 장창과 방패, 그리고 투창을 이름이었다. 투트니 백인대의 선임 십인장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사내는 능숙하게 장창을 한 손에 쥐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방패를 들었다. 몸통의 반을 가릴 만큼 면적이 큰 원형 방패였다.

“멀리서 다가오는 적에게 이 창을 던진다. 화살 같은 것은 방패로 막고, 가까이에서는 이렇게 찌르는 거다. 알겠나?”

“왜 그런 거요? 멀리 떨어진 적에게는 활을 쏘는 것이 더 나을 텐데.”

“좋은 질문이다. 그거야 우리가 활을 쏴서 그놈들을 맞출 확률보다 그놈들이 우리 대갈통을 뚫어버릴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지.”

그가 창대 끝부분으로 단상을 찍었다. 쿵! 하는 소리에 추위에 벌벌 떨던 병사들이 번쩍 정신을 차렸다.

“잘 들어라. 놈들은 모두 기마술에 능숙하다. 지금에야 그냥 그러려니 생각하겠지만 직접 너희들의 눈으로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놈들은 말 위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마상궁술은 놈들의 주특기지. 전속력으로 말을 달리면서 쏘는 화살이 너희가 몇 번이나 숨을 가다듬고 쏘는 화살보다 더 정확하다. 놈들을 상대할 때 너희의 목숨은 모가지 위에 달린 무거운 물건이 아니야. 바로 이 방패다. 방패를 놓치는 순간 죽었다고 생각해라.”

병사들이 다소 얼떨떨해 하는 것과 달리, 군터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말은 모두 틀림이 없었다.

제국의 군대는 점령하고 지키는 데 능하다. 반면 초원의 부족은 기동에 능하다. 저 선임 십인장의 말대로 말 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초원민족의 최대 강점이며, 기마궁술은 그 꽃이라 할 수 있었다. 빠른 속도로 말을 달리며 원하는 목표를 맞출 수 있다는 점은 야전에서 최고의 장점이었다.

“그러니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이 방패를 쓰는 법에 익숙해야져야 한다.”

어느새 선임 십인장의 설명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곧 그의 설명이 끝이 나자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됐다.

“10인 1조는 기본이다! 정면에서 오는 화살만 막고 옆에서 오는 화살에는 속살을 내줄 셈이야!”

“계속 돌아! 한 방향만 보고 있다가 뒤통수 꿰일 일 있나!”

“한 발! 한 발! 이 머저리 같은 자식! 네놈만 먼저 튀어나가면 틈이 생기잖아! 뒈지려면 혼자 뒈지란 말이다!”

투트니 백인대의 교육은 엄격했다. 급조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 엄선하여 뽑은 막시밀리언 백인대의 병사들인데도 투트니 백인대의 병사들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쩔쩔매기 바빴다. 그것은 투트니 백인대의 병사들이 그들보다 더 강하거나 험악해서라기보다는, 기세 싸움에서 형편없이 밀린 탓이 컸다.

아무리 살마드에서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녔다고 해도, 초원의 칼바람을 맞으며 생사의 고투를 몇 번씩이나 이겨내 온 역전의 용사들과는 비할 수 없었다. 그들이 도끼눈을 뜨면 살벌한 살기가 흘렀으며, 내뱉는 욕설 한 마디에는 짐승의 포효처럼 잔뜩 날이 서 있었다.

“그쪽 형씨는…능숙하구만. 혹시 전에도 초원에서 복무한 적이 있소?”

“아니. 처음인데.”

“흐음…그럼 뭐야, 그…흔히 말하는 무재(武才)같은 건가? 쯧! 재수 없구만.”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대는 들짐승마냥 돌아다니던 투트니 백인대의 한 십인장은 자유자재로 방패를 움직이는 군터를 보곤 사뭇 놀란 눈으로 혀를 찼다. 구령에 맞추어 움직이는 방패는 급소를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손에 쥔 창은 언제든 내지를 수 있게끔 하고 있었으니, 흠결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형씨는 말할 것도 없고…다른 녀석들도 헤매고는 있지만, 그래도 괜찮은 편이군.’

자신보다 머리 한 개 반은 더 큰 군터를 올려다보던 그는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저기서 욕을 처먹으며 자세를 수정하기 바쁜 놈들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열심히 따라오려고 하는 의지가 보였다. 또 헤맨다고는 해도 정도 이상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구만.’

같은 천인대 소속이다. 함께 임무를 나갈 일도 적지 않을 터였다. 어깨를 맞대고 싸울 동료라면 최대한 그 몫을 다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야 자신들이 살 확률도 더 높아질 테니까 말이다. 지금 이렇게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데는 명령을 받은 것도 받은 것이지만, 이 새내기들이 조금이라도 더 든든한 동료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발! 발! 그렇게 어정쩡하게 있다가 급하게 달리게 될 경우에는 어떻게 할 셈이냐! 앙?! 반 발자국 뒤떨어지면 허벅지가 날아가고 한 발자국 뒤떨어지면 모가지가 날아간다! 언제 어디서든 달려 나갈 수 있도록! 응?!”

허벅지를 걷어차인 병사가 욕지거리를 뱉으면서 자세를 고쳤다. 그 사이 그에게 쏟아졌던 욕은 그의 뒤쪽으로 옮겨갔다.

“방패 들어 방패! 목은 지키고 머리통은 내어 주시겠다? 네 돌대가리가 아무리 단단해도 날카로운 쇠붙이까지 튕겨낼 수 있을까! 응?!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힘들지 싶은데, 네가 생각은 어떠냐 돌대가리! 네 대가리가 단단할까 야만인 놈들의 창, 화살이 더 날카로울까!”

그는 눈에 띄는 모든 잘못된 점에 아낌없이 욕을 내뱉었다. 부디 자신의 고함 하나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모자란 놈들의 목숨을 부지시켜주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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