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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2화 (2/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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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납작 엎드리고 귀를 땅에 댔다.

희미한 진동이 느껴진다. 힘껏 땅을 내리찍는 말발굽이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졌다. 저 멀리서 희미하게 말들의 투레질, 그 위에 탄 사내들의 거친 고함 소리까지.

‘많군.’

적어도 열. 어쩌면 스물 이상. 그것도 기마만. 일단 들리는 건 그 정도지만 그 외에 얼마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뒤떨어져 오는 놈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군터는 땅에서 귀를 떼고 몸을 일으켰다.

굳은 얼굴을 한 로크가 물었다.

“어때?”

“기마만 스물 이상. 더 있을 수도 있고.”

“마적(馬賊)놈들인가?”

“멍청하게 길을 잃은 순찰대가 아니라면.”

“젠장! 정말 이번에는 정말 시작부터 끝까지 왕창 꼬였어! 왕창 꼬여서는 도통 풀릴 생각을 하는구만.”

로크가 꼬질꼬질한 머리카락을 거칠게 헝클었다. 뒤에서 눈치를 보던 선임병이 다가왔다.

“저…무슨 일입니까?”

“전방에서 신원미상의 기마가 접근중이다. 아마도 마적들이겠지.”

대표로 나섰던 선임병을 비롯해 그 뒤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병사들이 모두 묘한 얼굴이 되었다. 그들은 고개를 빼고 전방을 살폈으나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혹여 다른 방향인가 싶어 사방을 둘러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역시 마적은커녕 지나가는 들짐승 하나 볼 수 없었다.

그때 로크가 평소의 가벼운 모습은 간 데 없는 진중한 목소리로 외쳤다.

“로크 십인대! 모두 전투태세를 갖춰라! 징발한 녀석들은 뒤로 빼!”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당황하면서도 바쁘게 움직였다.

“저…대장님. 저희는?”

한 병사가 와 물었다. 군터 십인대의 선임병이었다. 군터는 즉답 대신 뒤편의 대원들을 훑어보았다.

‘쯧!’

그리고 혀를 찼다. 별로 기대는 안 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하나같이 겁에 질려 돌덩이처럼 굳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은 힘이 빠졌다.

“뒤로 물러나라.”

“예? 그럼…….”

감정을 숨길 수 없었는지 화색이 드러난 얼굴로 망설이는 척을 한다. 군터는 귀찮다는 듯, 턱짓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징발한 인원을 맡아라.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혹시라도 적이 다가오면 그들을 지켜.”

“옙!”

군터 십인대의 병사들이 우렁차게 답하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빼서 징발 인원과 함께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어이. 이건 뭐야?”

로크가 와 따지듯 말했다.

“있어봐야 방해만 되는 놈들, 차라리 없는 게 낫지. 걱정하지 마라. 나 혼자서 열 명 이상 몫은 충분히 할 테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이쪽 입장도 좀 생각해 달라고. 봐라. 다들 입이 튀어나왔잖아.”

아닌 게 아니라, 군터 십인대가 뒤로 빠지기 시작하니 로크 십인대 병사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누구는 마음을 다잡으면서 창을 고쳐 쥐고 있는데 누구는 아예 저 멀리 도망쳐버릴 것처럼 계속 뒤로 빠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뭣하면 너희도 빠져있어. 도적놈들 따위,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그렇다고 뭘 또 그렇게까지.”

싸늘한 말투에 로크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군터는 아랑곳 않고 양 손에 각기 창 한 자루와 활을 쥔 채 앞으로 나섰다. 그 즈음 말발굽이 만든 흙먼지가 저 멀리서 피어올랐다.

수십 발자국을 걸어갔을 때. 군터는 창을 바닥에 내리 찍어 세우고 활에 살을 걸었다. 도적들의 모습은 자그마한 점으로만 보였다. 군터의 눈에 그 정도였으니 뒤쪽에 있는 로크와 다른 병사들에게는 흙먼지 밖에 보이지 않으리라.

‘이 정도면 되겠군.’

가진 활이 조금 더 좋은 것이었다면 이보다 멀리서도 쏠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군부에서 지급되는 물품이라는 것은 질이 죄다 쓰레기에 가깝다. 먹을 것부터 시작해 전투에서 목숨 줄이나 다름없는 병장기도 그러하다. 지금 그가 가진 활도 역시 하품이라 할 만한 물건이었다.

“흠.”

군터는 대강 거리를 가늠하고는 시위를 당겼다. 궁신이 부러질 듯 휘었다. 투둑 거리는 심상치 않은 소리도 들렸다.

“…….”

숨을 골랐다.

잠깐의 조준. 그리고 터지는 날카로운 파공음.

피잉!

화살이 쏘아져 나감과 동시에 피어오르던 흙먼지가 주춤했다. 달려오던 도적떼가 멈춰 선 것이다. 군터의 눈에는 그 이유가 보였다.

놈들 중 한 명이 쓰러졌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슬쩍 입매를 비틀고서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화살이 거의 쉬지 않고 연달아 쏘아져 나갔다. 신기에 가까운 속사(速射)였다. 군터는 숨 몇 번 쉴 동안의 짧은 시간에 열 세 발의 화살을 쏘았고, 그 중 11대가 명중했으며 7명을 낙마시켰다. 계속 이어질 것 같던 연사가 멈춘 것은 등 뒤에 맨 화살통에 더 이상 남은 화살이 없어서였다.

그는 제 할 일을 다 한 활을 내던지고 꽂아 놓았던 창을 뽑아들었다. 여전히 도적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머저리들은 아직도 그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군터는 그런 도적들을 비웃으며 입을 떼었다.

“이쪽이다! 버러지 같은 도적놈들아!”

힘껏 소리를 지르니 목소리가 멀리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진을 짜고 군터의 뒤를 따라오던 로크와 병사들이 대번에 인상을 구기며 귀를 틀어막을 정도였다. 멀찍한 곳에 떨어져 있던 도적들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엉뚱한 곳을 두리번거리던 그들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 소란스런 모습에 정련함 따위는 없었다.

군터는 창을 휘휘 돌리며 느긋하게 걸었다. 앞에서는 말을 탄 도적 십 수 명이 달려들고 있고, 그 너머엔 말을 탄 세 명의 마적들이 멈춰있었다. 두꺼운 줄로 줄줄이 묶인 열 명 남짓한 사람들과 함께.

‘이미 어디 한 군데 털어먹은 건가.’

아마도 약탈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고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거리던 것일지도 모르지.

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내딛는 발걸음이 한결 더 가벼워졌다.

사람이 희미한 점으로 보일 만큼 멀찍했던 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땅을 찍는 말발굽 소리가 점차 거칠게 귓전을 두들겼다.

부웅!

아래로 늘어뜨렸던 창을 가볍게 빙글빙글 돌렸다. 창이 한 바퀴 돌 때마다 전면에서 덤벼드는 말위의 도적이 또렷하게 보였다.

선두의 마적이 요란한 기합을 내질렀다. 군터는 고개를 슬쩍 젖혀 떨어지는 칼날을 피했다. 동시에 왼 손에 든 창을 내질러 마적의 목을 꿰뚫었다. 그리고 관통한 그대로, 기세를 몰아 뒤따라오던 또 다른 마적의 몸통을 찔렀다.

카앙!

하지만 사람 하나를 매단 채여서 그런지, 창은 처음과 같은 힘과 속도를 잃었다. 상대는 기겁을 하면서도 칼로 창을 쳐냈다. 하지만 예상했던 바였다. 군터는 허공에 손을 뻗었다. 떨어져 내리던, 처음 목을 찔린 마적이 흘린 칼이 기다렸다는 듯 손 안에 들어왔다. 창을 놓고 몸을 한 바퀴 돌린 군터가 힘껏 칼을 휘둘렀다. 거친 칼날이 말의 옆구리를 가르고 지나갔다.

히히힝!

“으아악!”

말의 구슬픈 비명 뒤에 사람의 비명이 섞여 흘렀다. 군터는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앞서 달려오던 둘을 해치웠다 하나 그 뒤에는 아직도 십 수 명의 마적들이 질주해오고 있었다. 그 흉맹한 기세 앞에서 그는 한 없이 위태로워보였다. 금방이라도 말발굽에 밟히고 칼날에 베여 처참히 나뒹굴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군터의 몸이, 칼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몸이 손에 쥔 칼과 하나가 된 것 같았다. 눈으로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로 빠른 움직임.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거센 물결이 이는 것 같은 모습.

“크아악!”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마적들이 군터와 부딪쳤다.

창칼이 날아들었다. 좌에서, 우에서, 심지어는 그냥 말머리로 치고 지나가려는 양 정면에서 덤벼들었다.

군터는 팔을 굽혔다. 칼을 가슴께에 붙여 들고서 거침없이 몸을 움직였다. 창대를 가르고, 칼을 쥔 팔을 잘라냈다.

신경 써야 할 것은 날붙이들만이 아니었다. 잔뜩 흥분한 채 짓밟으려 드는 말들 역시 위협적이었다. 군터는 말과 말의 틈 사이를 파고들었다. 전열을 촘촘하게 유지하는 정규 기마대였다면 어림없는 시도였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유용했다. 상대는 정규병이 아닌 조잡한 마적떼였으니까.

찰나의 교전. 인마(人馬)의 무리는 순식간에 스쳐지나갔다.

“지금이다! 찔러!”

군터를 지나친 마적들이 뒤로 돌기 위해 속도를 늦추며 멈춰 섰을 때, 뒤편 수풀에 엎드려 숨어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창을 찔렀다.

“말을 노려!”

로크가 고함치며 가장 앞으로 나섰다.

“뭐, 뭐야?!”

“이 새끼들, 바크렌 병사들이야!”

도적들은 혼란에 빠졌다. 기습을 당한 것도 당한 것이지만, 미친놈 하나 잡는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가 느닷없이 정규군과 맞닥뜨리게 된 데서 오는 당혹감 때문이었다.

‘한심하군.’

로크와 그의 병사들은 착실히 말부터 찔러 쓰러뜨렸다. 마적들은 자기들끼리 엉켜 제대로 반격도 못했다.

‘저만하면 됐다.’

굳이 저기에 합류하여 한 손 거들 필요는 없으리라. 군터는 로크 쪽 대신 반대편, 구릉 위쪽을 보았다. 몇몇 마적들이 줄줄이 묶은 포로들을 데리고 대기 중이었는데, 뜻밖의 상황에 당황했는지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군터가 땅을 박찼다. 그리고 조금 전 도적들에게 낼 때보다도 더 크게, 목청껏 외쳤다.

“거기! 시체마냥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보시오!”

처음에 그들은 자신들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르고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곧 그들 중 한 명이 대뜸 손을 묶은 줄을 잡고 힘껏 잡아당겼을 때, 그리하여 말이 일순 흔들리고 덩달아 그 위의 도적까지 휘청거렸을 때. 시체처럼 힘없이 있던 그들은 저마다 그들을 묶은 줄을 손에 쥐고 잡아당겼다.

“이, 이놈들이?!”

도적들이 당황하여 무기를 휘둘렀다. 몇몇 사람들이 거기에 상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러나 그들이 더 이상 쓰러지기 전에 군터가 군데군데 이 빠진 칼을 휘두르며 나타났다.

*

“죽은 놈은 없고…부상이 넷인가.”

그나마도 중상자는 없고 가볍게 베인 수준의 경상자뿐이다. 반면 마적들은 도망친 녀석 없이 죽은 놈만 열일곱에 금방 숨이 끊어질 녀석이 다섯이다. 그야말로 대승.

“커헉!”

‘금방 숨이 끊어질 녀석’ 중에 하나가 방금 숨이 끊어졌다. 놈의 목줄을 딴 병사는 손도끼를 퍽퍽 내리쳐 마저 목뼈를 끊었다. 그런 작업을 거의 모든 병사들이 나누어 하고 있었다. 죽은 놈은 조용히 목이 끊어졌고 죽지 않은 놈은 비명을 지르다 끊어졌다.

“반반 할까?”

로크가 물었다.

“나야 나쁠 것 없지. 근데 괜찮겠냐?”

말하며 군터는 턱짓으로 목 따기에 한창인 로크의 병사들을 가리켰다.

“누가 뭐라고 하겠어. 네가 처리한 녀석만 아홉인데. 저 초롱초롱한 눈들 좀 봐라. 네가 밤에 손목 잡고 끌어도 몇 명 정도는 고분고분할걸?”

“주절대는 게 피곤해졌으면 그냥 혓바닥을 뽑아달라고 말을 해. 언제든지 해줄 테니.”

“웁! 사양하지. 뭐 아무튼 그래. 내 부하들은 불만 없을 거야.”

군터는 가장 먼저, 그것도 홀로 말을 달려오는 도적들과 싸웠다. 로크의 명령에 따라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병사들은 그 전까지만 해도 두려움에 질려 있었으나 군터의 싸움을 보고 용기와 투지를 얻었다. 그런 그들이 공적을 반반으로 가른다 해서 군터에게 불만을 가질 리는 없었다. 그것은 지금도 그를 경외의 눈으로 흘깃거리는 병사들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뭐, 네 쪽 애들한테는 있을 수도 있겠다마는.”

“그런 건 상관없어.”

군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코웃음 쳤다.

“좀 신경 써라. 말단 병사였던 시절은 옛적에 끝났잖아. 십인장이 됐으면 부하들도 신경 쓰고 챙겨야지.”

“누굴?”

군터 십인대의 병사들은 ‘전리품 수거’의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징발 인원, 도적들로부터 구출한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그들은 질린 표정 반, 부러운 표정 반으로 로크 십인대의 병사들을 보고 있었다.

“한 게 없다면 바랄 것도 없지. 당연한 일이야.”

“저치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

“그럴지도. 그래도 상관없어.”

“어쩌려고 그래? 계속 이렇게 담 쌓고 지낼 거야?”

“그건 내가 아니라 제놈들 손에 달린 거지.”

“한참 어린 상관한테 숙이기가 쉽겠어?”

십인대의 병사들은 대개 30대 중반 이상이었다. 20대 후반도 한 명 있었지만 40대 중반도 한 명 있었다. 그런데 상관이랍시고 온 십인대장은 갓 스물이 된 파릇파릇한 애송이이니, 군대가 나이순으로 돌아가는 조직은 아니라 한들 아무래도 고깝게 볼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상관이 아쿼러즈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 처음 얼굴을 봤을 때부터 그랬다. 힘을 보여준 뒤로는 고분고분하지만, 속으로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뭐, 상관없다. 비루한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따위는.

“그 역시 제 놈들 사정일 뿐이야.”

솔직한 심정으로는 오히려 우스웠다.

“마음에 안 들어도 어떻게든 맞춰가야지. 다 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너라면 어떨 것 같아? 저런 놈들을 믿고 전장에 나갈 수 있을 것 같나?”

막힘없이 술술 말하던 로크가 처음으로 뜸을 들였다.

“우리가 전장에 나갈 일은 없잖아?”

“글쎄.”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로크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말 않고 몸을 일으켜 그의 부하들에게 향했다.

“무슨 일이지?”

로크가 자리를 뜨고 잠시 후, 한 소년이 다가왔다. 꾀죄죄한 몰골에 악취까지 풍기는 그 소년은 마적들에게 잡혀 있다가 구출된 포로들 중 하나였다.

“은인께 감사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언젠가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소년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이 소년의 몰골과는 어울리지 않게 꽤나 기품 있어 보였다.

“낯간지럽군. 이렇게 인사까지 받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아뇨. 은인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겁니다. 응당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도리겠으나 당장 저희의 상황이 궁핍하여 그리 하지 못하는 것이 송구할 뿐입니다.”

소년과 말을 나누는데 이상하게 점점 속이 답답해졌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곧 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소년의 말투와 행동거지의 문제였다. 특히 소년이 구사하는 말투는 그에게 영 익숙하지 않은 것들뿐이었다.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어휘 같은 것들 하나하나가 너무나 낯설어서 몸에 받지 않는 음식마냥 속에 하나씩 얹히는 느낌이었다.

군터는 슬쩍 소년에게 출신을 물었다. 소년은 곧잘 답해주었다.

소년의 아비는 낙향한 관리라고 했다. 바크렌의 관료였던 아비에게 소년은 어렸을 적부터 글과 예법 등을 배웠다고. 보아하니 제법 엄하게 배우며 자란 모양이었다.

“고향 마을은?”

“…없습니다. 이제는.”

소년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군터는 더 묻지 않았다. 소년의 고향에 대해서도, 그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살마드까지는 데려다 주겠다.”

소년도, 다른 실향민들도 거기서부터는 홀로서야 하리라.

걱정은 되지 않았다. 살마드에 도착하고 나면 다시 못 볼 사이여서가 아니라, 그의 부름에 가장 먼저 줄을 잡아당겼던 소년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이 살아있어. 저놈들보다 훨씬 낫군.’

볼썽사납게 널브러져 있는 병사들을 흘겨보았다. 시체의 그것마냥 칙칙하다. 반면 금방 보았던 소년의 눈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단순히 나이가 어려서, 세상의 떼를 덜 타서라고 보기에는 그 차이가 너무나 크다.

“은인의 존함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존함?”

“아…그, 은인의 이름 말입니다.”

순간 얼굴이 뜨끈해졌다. 착각인지는 몰라도 소년 역시 그런 것처럼 보였다. 괜히 헛기침이 나왔다..

“군터다.”

“제 이름은 살라스입니다. 꼭 기억해주십시오.”

언젠가 꼭 은혜를 갚겠다며 몇 차례나 반복한 살라스는 가서 쉬라는 말을 세 번째 했을 때에야 돌아갔다.

‘거 참……. 피곤한 녀석이군.’

배웠다는 인간들은 다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저 살라스라는 녀석이 유별난 것일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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