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이 자리에서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주신은 지금 자신뿐이었다.
비틀거리며 날아가는 근두운을 따라잡기만 하면 끝이었다.
“서라! 지나신족의 원숭이 자식아!”
치우의 화신체 군세가 추적을 시작하자 발각된 사실을 눈치챈 손오공은 고개만 힘겹게 들어서 외친다.
“이 꽉 막힌 반도의 절반 짜리 신왕아!
처음부터 왜 나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
너의 일족을 잡아먹은 것은 내가 아니란 말이다!”
황제가 군고(軍鼓)와 음부경(陰符經)을 사용해서 천계의 군대를 미친 좀비로 만들어서 치우의 군대를 먹어버린 사실은 이제는 알고 있었다.
“분명히 비난받을만한 범죄행위다.
그러나, 내가 한 일이 아니야!
황제에게 가서 따지란 말이야!”
황제의 업보가 같은 중화신족이라고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방해를 놓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치우의 분노가 가득한 외침이 대답으로 들려온다.
“비열한 수법으로 나를 쓰러트린 황제는 아시아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음부경(陰符經)의 악명이 두려워 중화신족으로 이름을 바꾸고 모든 것을 은폐했지.
과거든 현재든 지나신족이 저지른 일이다.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책임을 회피하려 하다니 그러고도 네가 신왕이냐?
그런 오명을 자랑스럽게 말하며 신왕으로서 가장 큰 은혜를 누린 주제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허-!”
치우를 대답을 들은 순간 손오공의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고위신이 될수록 평판이 중요하고, 과거의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손오공이었다.
‘역사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며 살아가는 모두를 구속하는가?
그리고, 지배층이 된 이상 일족 전부를 책임져야 한단 말이지.’
신족이 지은 죄는 영원히 기억되며 두고두고 발목을 잡는다는 점이 너무나 무겁게 다가왔다.
입은 겨우 회복했으나 헤라클레스에게 무릎을 한 대 맞은 타격이 너무나 엄청나서 일어설 수도 없는 손오공은 중화신족의 도전자로서 결정을 내린다.
“황…황제. 네가 뿌린 씨다.
스스로 거두어라.”
손오공의 의지는 중화신족의 주신전에 명확하게 전달되었다.
그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파악한 옥황상제와 삼황오제는 모두 침묵했다.
“….”
“….”
“….”
상황은 명확했다.
‘여섯 명의 권능을 흡수한 손오공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와 보강할 수 있는 시간이다.’
‘헤라클레스가 환인에게 저격당하여서 쓰러진 이상 치우의 추격을 막아줄 존재가 필요하다.’
‘승리를 눈앞에 둔 치우의 관심을 돌릴만한 존재는 황제밖에 없다.’
당사자인 황제는 손오공을 거의 따라잡은 치우와 화신체 군세를 핏발이 선 눈으로 노려보았다.
‘어리석은 반도의 신왕 치우여! 왜 나와 일족을 그렇게 증오하는가?
그건 일족의 명운을 건 전쟁이었다!’
수십 번의 전면전쟁과 소탕전을 겪으면서 쌓인 악감정은 상대 신족을 전멸시키지 않는 한 풀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 군고(軍鼓)와 음부경(陰符經)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네놈의 미친 도깨비 군대에 지나신족은 전부 학살되었단 말이다.
패배는 곧 멸족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너도 나처럼 이길 방법이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면서 왜 나만을 비난하는가?’
그렇게 생각하려 해도 미친 좀비로 변한 자신의 군대가 치우의 군대를 먹어치우는 끔찍한 광경을 생각하면 변명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전쟁이라고 해도 신족이 신족을 먹게 한 사실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대죄였다.
‘하하. 그때 벌어졌던 학살과 참상을 은폐하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
선정을 베풀다가 일족의 이름을 바꾸면서 조기 은퇴까지 했었다.
그런데 설마 치우와 배달신족이 부활해서 이렇게 고발할 줄이야.’
지나신족을 중화신족으로 개명할 정도로 찬란한 번영의 시대를 열었던 황제에게 그만큼의 어둠이 있었다.
‘발전에는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결국에는 그 일이 내 발목을 잡는구나.
피할 수 없겠어.’
황제의 얼굴이 급속하게 어두워졌다.
‘손오공이 바라는 방법은 내가 나서서 백만 분신술의 군대로 치우를 저지해달라는 것이다.’
일단 발동은 시켜주지만, 분신을 유지하는 역할로 치우가 증오하는 황제를 지목했다.
‘내가 가면 치우는 오로지 나만을 추격한다.
그런데 치우는 신체로 가도 이길 수 없는 적이다.
신령으로 분신에 강림한 상태라면 처참하게 당하겠지.’
신황 차원창세신 코아의 불사불멸의 권능이 걸려서 부활한다고 해도 주신 이상의 고위신이기에 고통과 타격은 엄청날 것이 당연했다.
‘내가 생각해도 다른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구나.’
실로 신왕다운 승리를 위한 냉정한 방법이지만 황제는 치우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할 것이다.
그러니 차마 참전을 강요하거나 말조차 하지 못하는 옥황상제와 다른 삼황오제를 둘러본 황제는 금빛 용포를 전신갑옷으로 바꾸면서 일어선다.
“좋아! 중화신족이 나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가겠다.”
“오! 과연 황제!”
황제의 참전 결정이 내려졌다.
승인을 통보받은 손오공은 떨리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듯이 잡아당겼다.
우지지지지직!
백만 분신술의 제물이 될 머리카락이 삼 분의 일이 한꺼번에 뜯겨 나온다.
지독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손오공은 정신을 집중해서 법술을 완성해간다.
‘크으으으으으! 아파-!
그러나, 황제를 소환하기 위해서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하다.
병력까지 만들어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해.’
육도윤회 투기장에 오기 전이라면 전부를 바쳐도 부족했겠지만, 지금은 삼 분의 일만 있으면 되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리고, 치우는 마침내 손오공을 따라잡는다.
손오공이 엄청난 타격을 받아서 느려진 근두운은 치우의 진격속도를 이길 수가 없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화신체 군세가 돌진하는 소리와 진동이 바로 뒤까지 느껴지고, 치우의 손에 들린 신기의 반짝이는 빛이 손오공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치우는 손오공이 대량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자 비웃음을 보냈다.
“카핫-! 인제 와서 겨우 분신술이냐?
그게 마지막 수단이면 이제 죽을 시간이다!
지나신족의 신왕 손오공! ”
우우우우웅! 우우웅!
치우와 화신체들의 신기가 일제히 투척 되려는 순간 손오공은 겨우 회복된 오른손을 옆으로 휘두르면서 외쳤다.
“백만분신술(百萬分身術)! 신해전술(神海戰術)! 황제소환(黃帝召喚)!”
증오하는 숙적의 이름에 경악한 치우는 신기 투척을 멈추었다.
“뭣이! 황제를 불렀다고?”
저 멀리 투척 된 대량의 머리카락의 절반이 뭉치면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다.
그리고, 각각의 머리카락은 분신들로 바뀌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 파파파파파파파파-!
순식간에 화려한 황제의 관과 전신갑옷을 입은 황제와 백만이 넘는 천족의 군대가 나타난다.
황제의 모습을 본 순간 치우는 손오공의 존재와 육도윤회 투기장의 승부 자체를 잊었다.
“진짜구나! 황제-!”
신체는 손오공이 만든 분신이었으나 신령은 분명 황제였다.
철컹-! 철컹-!
화신체와 똑같이 머리를 소머리 투구로 완전히 가리고 짐승처럼 외치면서 달려든다.
“쿠와아아아! 이 악질 곰 대가리! 이번에는 내가 잘근잘근 씹어먹어 주마!”
“짐을 곰 대가리라고 부르지 마라!
아직도 부족 시대인 줄 아는가!”
과거 아시아를 양분하고 싸웠던 곰부족과 소부족이 있었다.
그들의 신앙을 받은 지나신족의 신왕은 곰 대가리로 불렸고, 배달신족의 신왕은 소 대가리로 불렸다.
그리고, 야만의 시대에서 처절하게 자웅을 겨루었던 두 신왕이 지금 다시 격돌하고 있었다.
분신으로 소환된 황제였지만 태세는 만전이었다.
‘분신으로 만든 소환인데도 놀라운 완성도다.
제천왕 손오공의 힘이 그만큼 올랐다는 증거겠지.’
자신이 한 일이 있으니 패배하면 반드시 먹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황제도 전력의 전투준비를 취한다.
철컹-!
황제의 관이 전신갑옷의 투구로 바뀌었는데 곰의 머리였다.
“망할 소 대가리! 그때 못한 결판을 보자!”
치우가 황제를 곰 대가리란 부족장으로 부르듯이 치우를 소 대가리로 부른다.
그리고, 신해전술(神海戰術)로 만들어진 황제의 천족의 군대가 치우의 화신체 군세를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고위신의 존재감에도 끄덕하지 않게 사기를 올리는 군고(軍鼓)가 전장에 메아리치고, 발(?)의 태양이 치우의 풍백우사(風伯雨師)의 안개를 거둔다.
둥둥둥둥-! 화르르르르-!
안개가 걷히자 미친 소들이 날뛰듯이 돌진해오는 치우와 화신체 군세가 신해전술(神海戰術)의 군대와 충돌한다.
꽈꽈꽈꽈꽝-!
황제의 군대가 치우의 화신체 군세와 충돌하자 거대한 폭풍에 휘말리듯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흩날리고 발굽에 밟혀서 으깨진다.
피와 육편에 젖은 치우의 광기 서린 목소리가 황제의 귀를 울렸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바로 이것이다!
나는 산산조각이 나서 죽어있는 동안 이때만을 기다렸다!”
치우의 투기와 살기에 군고(軍鼓)로 사기가 보강된 군대마저 주춤하면서 물러나려 한다.
구구구구구구구구-!
한번 사기가 꺾인 천족 군대는 치우와 화신체 군세를 저지할 수가 없었다.
기세를 탄 치우는 황제의 군대를 날려버리면서 외친다.
“너의 군대가 또 겁에 질린 허수아비가 되었구나.
뭐하느냐?
어서 음부경(陰符經)을 써라.”
진영이 마구 돌파당하는데 황제는 음부경(陰符經)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저 멀리 멀어지는 손오공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건 내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승부가 아니다.
손오공이 회복할 시간만 끌면 된다.’
미쳐 날뛰는 치우가 근접해서 왔지만, 그때처럼 두려움은 없었다.
설사 자신이 여기서 패배한다고 해도 이겨줄 손오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는 평온하기까지 했다.
‘이성을 잃고서 벌였던 실수는 한 번으로 충분해.’
천족조차 좀비로 만드는 음부경(陰符經)을 사용하여 배달신족의 군대를 전부 먹어치운 범죄를 지우기 위해서 황제는 자신의 군대도 처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내 죄의 벌을 받는구나.’
여기에 좀비에서 겨우 되돌아온 천족조차 같이 생매장을 시키라고 명령했던 기억은 황제조차 죄악감에 시달리게 하였다.
‘막대한 희생을 치른 역사 수정작업이 모두 밝혀졌다.
치우를 이기기만 하면 모두 해결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어.
차라리 정면승부를 해야 했다.’
생매장을 시행한 부하까지 처단했던 그때의 아픈 기억을 떠올린 황제는 이를 악물고서 천족의 군대를 이끌고, 치우의 화신체 군세와 정면으로 충돌해갔다.
황제가 최전선에 서자 치우에게 겁을 먹고 도주하려던 천족의 군대도 필사적인 기세로 바뀌어서 달려든다.
구구구구구구구구구궁-!
그는 음부경(陰符經)을 선택하면서 포기했던 치우와의 전면전을 지금 벌일 작정이었다.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