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정기가 되살아난 은하계만 삼켜도 황금 청혈일족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청혈일족 전부를 복구하기에는 은하계 몇 개는 너무 부족했다.
“후후후후! 온전하게 뺏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해보시게.
나의 차원권능으로 싸우다 불리해지면 지지세력만 챙겨서 다른 세계로 떠나면 그만이지.
내 휘하에 들어온 신족도 그러기를 바라는군.
너무 황폐해서 자신들만으로는 감당하기가 힘들다고 아우성이지.
자기 고향을 버리고 가자고 요청하다니 참 나약한 것들이야.”
“….”
자신들이 아는 어떤 신족도 정기가 없는 상태에서 저 정도로 은하계를 복구할 수 없었다.
그러니 당연한 반응인데 차근차근 설득해간다.
“다시 말하는데 내가 직접 지배할 생각은 조금도 없네.
세계의 주인이신 창조주님을 모시는 빛의 신족인 내가 그럴 리가 있나?
신족은 관리자이지 지배자가 아니지.
아무리 주인이 없다고 해도 소유권을 주장하지는 않지.
그렇게 했다가는 아무리 유능하고 강해도 창조주님에게 끝장이 나니 말이야.”
“….”
아무런 대답은 없지만, 투기와 살기가 많이 사라진 모습을 확인한 신황 차원창세신 코아는 거침이 없었다.
“난 사업가라서 직접 지배할 생각은 없네.
행성 개발과 거래로도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는데 뭐하러 귀찮게 골치 아픈 지성체 관리까지 할까?
은하계는 지금처럼 그대들이 지배하고, 나는 행성개발을 통해서 판매수익이나 생산된 정기의 일정 지분을 가져가겠네.
내가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는 일손이 많이 필요해서이지.
그 외에도 의뢰를 받아서 일해주면 후한 보상을 약속하겠네.
분명히 말하건대 서로의 이득이 될 것이네.”
창조력이 강한 신족이 행성을 개발하여 원래 인간이었던 초월자들에게 판매하여 관리시키면 굉장히 이상적인 협조관계였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신뢰가 우선해야 했다.
이런 협력관계는 신족이 직접 지배하려 하거나 초월자들이 대가를 지급하지 않으면 바로 파탄이 나기 마련이었다.
“그걸 우리보고 어떻게 믿으란 거지?”
“네가 그럴 능력이 있는가?”
“창조신 혼자서 무슨 수로 이 세계의 행성을 전부 재개발하겠다는 뜻이냐?”
그 반론에 신황 차원창세신 코아의 입술은 더욱 진한 미소를 지었다.
“나의 창조력을 의심하나?
직접 증거를 보면 되지 않나.”
차원창세신 코아의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이 튕기면서 정기동전을 하늘로 날린다.
화면은 날려진 정기동전은 빙글빙글 돌면서 누군가에게 향한다.
“약속한 대가다.
좋은 정보였다.”
튕-! 합-!
굵은 쇠사슬로 전신이 구속되어있던 황금 곤충인간이 얼마나 급한지 그대로 입으로 받아서 삼켜버리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거기에는 은하계를 지배하는 지배자급 청혈일족들이 열 명이나 묶여있었다.
“저…저건! 살아있었구나.”
다른 청혈일족이 소식이 끊어졌던 동료의 모습에 기뻐하는데 신황 차원창세신 코아는 가벼운 어조로 설명을 이어간다.
“은하계를 점령한 지배자급 초월자답게 내 정제소에서도 용케 버티고 살아나왔더군.
기특해서 기회를 주기로 했지.”
“뭐라고! 그들 전부를 죽였느냐?”
“감히! 이게 무슨 짓이냐!”
열 개의 은하계를 지배하고 있던 청혈일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파악한 모두가 분통을 터트리려고 할 때 차원창세신 코아는 오히려 되묻는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이성이 없는 벌레 파괴신들이 나를 잡아먹겠다고 덤벼드는데 당해주란 말인가?
당연히 반격해야 하지 않나?
그러다가 생긴 전리품을 재활용하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
실로 할 말이 없는 답변에 어이가 없어졌다.
그리고, 분노를 터트릴 수 없는 상황이 바로 이어졌다.
정기동전을 먹은 황금 청혈일족의 외골격이 떨어지면서 서서히 변화하고 있던 것이다.
두두두두! 두두두둑!
곤충의 외피가 떨어지면서 드러나는 피부와 모습은 원래의 아름다운 초월자의 형상으로 변한다.
“오오-! 이럴 수가?”
장구한 세월을 들여서 치료해야 가능한 변화가 일순간에 이루어지자 눈동자가 커진 황금 청혈일족의 곤충인간들이었다.
“지배자의 본성이 된 파란 피는 어쩌지 못하지만, 나머지는 치료할 수 있었지.
단순한 의뢰 보수인 낙수효과만이 아니라 지금처럼 일정 부분 재투자를 통한 분수효과도 약속하지.
나와 협력한다면 본모습만이 아니라 상상 이상의 부귀를 얻을 것이네.
어찌하겠나?”
곤충인간이 변화의 한계인 황금 청혈일족은 본래의 초월자 모습으로 변한 동족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머리카락과 함께 눈부신 여체의 모습이 나타나자 긴 한숨을 쉬었다.
“하아. 확실하군.”
“바로 돌아갈 수 있어.”
잔 다르크 천사가 알몸으로 쓰러진 여초월자에게 로브를 입혀주고서 원탁의 의자에 앉혔다.
신황 차원창세신 코아는 아직 구속된 아홉 명의 곤충인간 포로들에게 묻는다.
“청혈일족이든 누구든 나의 제안은 항상 똑같다.
내게 도움을 준다면 나 역시 돕겠다.”
참으로 온화한 말투였는데 듣고 있는 아홉 명의 황금 청혈일족은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다.
벌레 파괴신이 되었으나 은하계를 지배하던 고위 초월자들을 모두 정제소라는 처리시설로 보내서 정기로 환원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숨기지도 않았다.
끼이이이이-!
카카카카카-!
지금도 용자동맹이라 불리는 기계신 군단에 의해서 끌려온 청혈일족들은 모두 정제소에 처넣어져서 분쇄되는 소리가 요란했다.
혼수상태로 정제소에 처넣어졌다가 강력한 생체장갑 덕분에 겨우 살아나온 그들에게 바로 내민 조건은 지극히 황당했다.
‘우리보고 야생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동족을 사냥하라고?’
‘순순히 협조하면 지배층의 자리를 내주지만 끝까지 거부한다면 직접 씹어먹어 준다고 말했다.’
‘이 미친 창조신은 도대체 누구냐?’
겁 없이 덤비다가 그야말로 먼지가 되도록 두들겨 맞아서 가장 먼저 정보를 제공한 배신자가 본래 초월자 모습으로 변해서 원탁의 주신 자리에 앉혀져 있으니 기가 막혔다.
거기에 이런 꼴을 다른 청혈일족이 보고 있자 울화가 치솟는다.
“우….”
열이 받은 한 황금 청혈일족이 소리치려다가 신황 차원창세신 코아의 광기 어린 검은 불길이 타오르는 눈동자를 보고서 멈추었다.
도대체 얼마의 살생과 전투를 반복해야 얻을 수 있을지 모르는 지독한 투기와 살기에 이미 압도당하지 오래였다.
‘이 미친 창조신은 실제로 우리를 뜯어먹고도 남는다.’
중앙신계의 정제소가 화면에 그대로 비추어진다.
다른 황금 청혈일족에게 보란 듯이 벌레 파괴신들을 정제소에 처넣어서 순수한 정기로 바꾸고, 엄청난 크기의 행성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치는 이유를 숨기지도 않고 모두에게 공개한다.
“외계의 초월자는 푸른 피를 가지게 되었으니 편의상 청혈일족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제가 확인해보니 정기가 소멸한 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정기를 가진 개체는 바로 청혈일족입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세계를 구원하는 방법입니다.”
동족을 사냥해서 행성에 비료로 주겠다는 끔찍한 계획은 마치 브리핑하듯이 다른 청혈일족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다른 황금 청혈일족의 반응은 어이가 없었다.
“효율성은 어떻소?”
같은 초월자 동자가 죽어 나가는데 심각한 어조로 세부내용을 묻기 시작한 것이다.
적의가 사라진 질문에 현자로서 설명 본능이 발동된 신황 차원창세신 코아는 상세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위 개체 열을 잡아서 처리만 잘하면 행성 하나는 개발할 정기가 나옵니다.
계산을 해보니 이성이 소멸한 개체를 잡아다가 중앙신계를 통해 처리하면 이 세계를 되살릴만한 정기와 행성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습니다.
준비는 다 되어있습니다.
보시지요.”
신황 차원창세신 코아는 황금 청혈일족에게 중앙신계와 개조행성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놀라운 구조의 중앙신계다.”
“정기생산에 특화되어있군.”
“으음! 이러면 잘하면 가능하겠군.”
일반 행성에서 커다랗게 자라나서 중앙신계로 뻗은 세계수를 보자 바로 질문이 쏟아졌다.
“저 세계수는 어떻게 정기도 없는데 잘 자란 것이오?”
“저걸 우리에게 팔 수 없소?”
지성체 수준의 정기는 아니지만 생활하기에 충분한 정기를 무한정 생산하는 세계수는 귀한 보물이었다.
그러니 우주수로 보일 정도로 커다랗게 자란 세계수를 탐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황 차원창세신 코아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서 말한다.
“후우우우! 저의 특제 세계수입니다.
필요하시다면 묘목이나 종자는 공짜로 드릴 수 있는데 어지간한 창조력으로는 성장이 힘듭니다.
여기에 파괴신 직전의 초월자가 무슨 수로 세계수의 정기를 고위 정신체가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정련할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숨겨놓은 창조신이라도 있으신지요?”
“으윽!”
완벽한 존댓말인데 처음의 협박보다 더욱 아프게 심장을 찌른다.
실제로 세계수의 정기의 정련은 고위 창조신정도의 창조력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했고, 그들을 전멸시킨 것이 바로 자신들이었다.
“고객님들. 세계수를 손에 넣는 순간 이성을 잃고 먹으려고 덤빌 부하들을 전부 처단하실 각오가 아니라면 최종 가공품을 받으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세계수의 정기의 생산품은 싸게 드리지요.”
“알겠소.”
이제 상품을 소개하는 기업가와 손님이 된 모습에 덤볐다가 잡혀버린 황금 청혈일족의 마음속은 터질 것만 같았다.
‘이 자식들아! 다른 세계의 침략자와 지금 뭐하는 거야?’
‘어서 막아!
여기 세력이 더 커지면 감당하지 못한다.’
‘어서 우리를 도와줘!’
크게 소리를 쳤다가는 정말 먹힐 것 같아서 열심히 눈치를 보내는데 모두 외면하고 있었다.
오히려 경멸의 기색이 역력했다.
‘멍청이 자식들! 빨리 죽어버려라.’
‘겨우 신황 한 명을 상대로 이게 무슨 수치냐?’
‘비밀정보까지 털어놓은 배신자들 같으니라고!’
아무리 보아도 패배자는 상종하지 않겠다는 그런 분위기였다.
구속된 황금 청혈일족은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우리가 약한 것이 아니야!
이 신황이 너무 강하다고!’
‘너희라고 다를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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