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 오브 서바이버-1786화 (1,696/2,000)

34권 35권

자신의 행동과 중앙신계의 반응, 거기에 어떤 용자왕이 나설지 환인이 모두 읽고서 준비했음을 깨달은 치우는 분통을 터트리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일단은 안심이 되는 것이다.

“크으으으-!”

“일단 치료하시면서 이야기를 하시죠.”

그렇게 치우가 정문을 겨우 통과했다가 바로 쫓겨나고 정문 경비가 두 배로 강화되는 광경을 본 모든 신족은 확실히 깨닫는다.

‘오로지 정면돌파 외에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신가?’

‘이렇게 명분을 따지시니 과연 빛의 신황다운 조치로군.’

도전자들은 일단 다른 도전자가 먼저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에 안도했으나 정면승부로는 도저히 이길 방법이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리고, 갈수록 직위가 높아지면서 막대한 의무를 요구하는 신족들의 행동도 가장 큰 문제였다.

강제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천막신전에 살게 된 신족들이 아예 앞에서 시위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도전자님들은 어서 돌파해라!”

“천막이 아닌 신전에서 살고 싶다!”

“우리는 유랑신족이 아니다.”

개조행성의 신왕이 탄생한다면 천막 처벌을 풀어준다고 하니 도전자를 압박하는 것이다.

사자왕이 혼자 지킬 때도 몇 번을 도전해도 실패했는데 거상왕(巨象王)이 추가되어서 용자왕이 두 대가 되었으니 거의 동시에 똑같은 결론에 다다른다.

‘이제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모두 모여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어서 중앙신계의 정문 지역에 열 명의 도전자가 급조한 천막신전에서 원탁을 사이에 두고 만나게 된다.

그리고, 각자가 끌고 온 투신과 전신들이 세운 무수한 천막신전들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이제 완전히 닫힌 정문 앞에서 팔짱을 끼고 신족 진형을 쳐다보는 사자왕과 거상왕(巨象王)의 기세는 살벌한 투기의 바람을 부른다.

휘이이이이이-!

기계신으로는 믿을 수 없는 강대한 투기에 집결한 모든 신족이 긴장하면서 대치하는 중이었다.

급조 천막 주신전 안에는 거상왕(巨象王)의 상아 돌진공격에 몸이 으스러졌던 치우가 환단신족과 환인의 적극 지원으로 겨우 회복해서 앉아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엄청난 통증이 남아있는 신체를 추스르면서 말했다.

“싸워야 할 적이 강대하니 힘을 합쳐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과거의 원수를 믿겠나?

특히 배신과 이간질이 주특기인 지나신족을 믿을 수 없다.

별 쓸모는 없겠지만 확실한 서약이 필요하다.”

이제 육마왕만이 아니라 이랑진군과 주신급 천장들까지 거느리고 올라온 중화신족의 손오공을 노려본 치우는 백지 권능계약서를 꺼냈다.

“연판장을 작성한다.

정문을 돌파하여 신왕이 결정될 때까지 서로 협력하겠다는 권능계약서를 써라.

이걸 어기는 놈은 투기장에서 가장 먼저 탈락시킨다.”

일단 정문을 통과해서 투기장에 도착해서 결판을 내자는 치우의 말에 백지계약서를 쳐다본 손오공은 추가로 발언했다.

“투기장에서 누가 신왕이 되어도 과거의 원한으로 사적인 복수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포함되면 하겠다.”

사자왕의 장갑 도색을 처음으로 벗기고 자국을 남긴 환인이 치우와 동맹을 맺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여기에 구차하다고 쫓겨났으나 정문을 일단 통과했던 치우의 위력도 확인했으니 혹시 모를 위협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도전자들은 바로 동의했지만, 치우는 콧방귀부터 뀌었다.

“흥-! 지나신족의 도전자는 신왕이 될 자신이 없어지셨나?

내가 그걸 받아들일 것 같아?”

어쩌다 보니 중화신족의 회담 대표가 되어버린 손오공은 인상을 쓰면서 경고했다.

“지나신족은 케케묵은 과거의 이름이다.

대륙을 제패한 지금은 중화신족이다.

반도와 경제적인 동맹 관계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자꾸 도발하는가?

지금이 네가 살던 야만의 시대라고 착각하지 마라.”

“그래 보았자 대륙을 놓고 끝없이 싸웠던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내가 되살아났으니 또 전쟁해야 하겠지.”

치우의 뒤에 있던 부활한 주신급 화신체들이 신기의 손잡이를 움켜잡았지만, 손오공은 웃어주었다.

“하하-! 과거를 잊지 못하는 옹졸한 반도의 반쪽짜리 신왕이여.

그렇게 전쟁을 하고 싶은가?

전력의 차이는 알고 있나?”

주신급의 고위신이 귀했던 과거라면 모를까 수많은 고대신이 모두 부활한 중화신족으로서는 치우가 더는 큰 위협이 아니었다.

“설사 정면대결을 해도 십삼억이 넘는 신도를 가진 중화신족을 겨우 이천오백만의 신도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정기는 충분한가?”

중앙신계의 정문돌파가 급선무인 손오공은 자꾸 도발을 해오는 치우를 상대하기도 싫었지만, 지시를 받았으니 은근한 어조로 조건을 제시한다.

“너의 능력은 인정받았다.

그러니, 환단신족의 신왕처럼 옥황상제님의 사위가 되어라.

중화신족의 부마가 된다면 앞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 말에 정말 황당한 표정이 된 치우는 환인을 노려보면서 물었다.

“네가 정말 그랬냐?

지나신족의 데릴사위가 되었느냐?”

갑자기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왔으나 이미 예상한 환인은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적의 수가 너무 많으니 아무리 이겨도 끝나지 않는 전쟁이 지긋지긋했습니다.

고민하다가 옥황상제님의 황녀와 결혼해서 장인어른으로 모셨습니다.

가장 강력했던 중화신족과 혼인동맹을 맺은 덕분에 아주 평화롭게 살았지요.

뭐하러 그렇게 수천 번을 치열하게 싸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뭐야? 장인어른?

다른 신족을 반려로 받아들여?

단일민족의 장점을 버렸다고?”

“이제 국제화 시대인데 뭘 그렇게 화내십니까?

사위가 장인에게 예를 다하는 것은 수치가 아닙니다.”

중화신족과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환단신족의 신왕이면서 옥황상제의 부마가 된 사실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지 환인은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파리가 천 리를 가려면 천리마의 궁둥이에 찰싹 붙는 것이 쉽게 아주 멀리 가는 방법입니다.

말 몇 마디와 고개를 잠시 숙이는 것으로 참 많이 벌었습니다.

추가선물도 많이 주니 조공도 할 만했습니다.”

“이 망할 후손 놈! 넌 자존심도 없느냐?

전쟁을 포기했다면 뭐하러 그렇게 수련을 열심히 했느냐?”

그 말에 다른 도전자들도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도전자 중에서 사자왕의 장갑에 흠집을 낸 존재는 환인이 유일하다.’

‘이렇게 강력한 궁신이 거의 무명인 점이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다.’

그러자 환인은 다른 신족의 신왕들이 벌떼처럼 몰려와 따졌을 때 내놓았던 대답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궁술은 저의 유일한 취미였습니다.

뭔가를 수련하려 하면 부하들은 이 평화로운 시기에 전쟁하실 의도냐고 벌떼처럼 달려들어 반대합니다.

옥황상제 장인어른과 황녀 마누라도 위험하니 무기는 절대 들어선 안 되다며 말을 타는 것조차 싫어했지요.

오로지 경전과 책을 읽으면서 세계의 도리를 찾으라고 하더군요.”

그 대답에 손오공은 조금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군사훈련 금지와 독서 강요는 위협이 되는 다른 신족의 전력을 약화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심심하면 혼자서 할 수 있고 표적지만 있으면 되는 궁술만 익혔습니다.

그러다니 보니 세상의 도리를 활과 화살에 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되었는데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

다른 신족의 도전자들은 자신도 경전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대답이었다.

몰래 전쟁 준비를 한 것이 아니라 혼자 취미생활을 하다가 올라간 경지라는데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옥황상제의 첫 번째 부마이며 모범적인 동맹인 환단신족의 신왕인 환인을 오래 추궁하기에는 긁어 부스럼인 손오공은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

“환인 부마님의 궁술이 왜 높은지는 상관이 없소.

누가 신왕이 되어도 사적인 감정으로 움직이거나 배신하면 집중적으로 공격하기로 권능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합시다.”

다른 도전자들이 동의하면서 백지계약서에 내용을 써내려갔다.

자신의 명줄까지 잡아놓은 카르마 동맹 계약서가 작성되어가는 모습을 본 치우는 약간 안도하면서 미래의 이야기를 꺼낸다.

“이제 저 철 인형들부터 어떻게 할지 논의하지.

일단 일 대 일의 전투는 포기한다.

주신의 일반공격이 아예 안 통해.”

이미 몇 번이나 도전했던 다른 도전자들도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수많은 법술과 자랑스럽게 선보인 백만 분신이 무참하게 분쇄를 당한 손오공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단 환인 부마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저 철 인형을 물리치실 방법이 있으십니까?”

자신은 법술로 어떤 공격을 해도 도색조차 못 벗겼는데 겨우 투기의 화살로서 흠집을 낸 환인의 궁 실력은 놀라웠다.

‘아마도 순수한 무기술의 경지라면 주신과 신왕 중에서 가장 높을 것이다.’

이것은 다른 도전자들도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누구도 손대지 못한 저 기계신을 상처입혔다.’

‘그것도 특별한 신기가 아닌 순수한 투기와 놀라운 궁술의 경지로 보인 위력이다.’

능글맞은 장사꾼이라고만 생각했던 사위의 뜻밖의 능력에 놀란 옥황상제였다.

그래서 손오공에게 이랑진군과 고위천장들을 추가로 보내면서 절대로 도발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기도 했다.

‘다른 주신과 신왕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경이롭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 법술 금고아의 신뢰 제약으로 누구보다 더 많이 평판을 신경을 써야 하는 손오공도 특별히 존댓말을 했다.

환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한다.

“흠흠. 투전승불(鬪戰勝佛) 손오공님께서는 옥황상제님의 동생으로 정식으로 인정받으셨으니 제게 말을 놓으셔도 됩니다.

중화신족 황족 호적에도 올라가셨던데 그럼 이제 한 가족이 아니겠습니까?

서열로 보면 오히려 제가 고개를 숙여야지요.”

“하하. 환인 부마님과 문제를 일으켰다가는 호적에서 바로 파버린다고 합니다.

저는 이것이 편하니 부디 말을 놓으십시오.

그리고, 이제 투전승불(鬪戰勝佛)이 아닌 제천왕(齊天王)입니다.

그렇게 불러주십시오.”

“호오? 중화신족에서 드디어 신왕이 추가로 나왔군요.

축하드립니다.”

“부끄럽습니다.”

스스로 소개한 대로 손오공의 현재 위치는 옥황상제의 아우이자 군부의 총사령관인 제천왕(齊天王)이었다.

법술 금고아가 강제하는 일족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 죽도록 노력하여 평판이 개선되고, 개조행성의 선점을 위한 특별조치로 서서히 원래 자신의 위치를 찾은 것이다.

천마(天馬)를 관리하는 하위관리가 되었다가 불만을 품고서 깡패처럼 날뛰던 손오공의 과거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환인은 잠시 고민했다.

‘제천왕(齊天王)이라니?

이런 상황에서 참으로 의미가 깊으며 위험한 호칭이로군.’

손오공은 현재 신황님이 하사하는 개조행성의 신왕이 되기 위한 도전자다.

그런데 감히 제천왕(齊天王)의 호칭을 붙이다니 환인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제압해야 할 하늘이 신황님이라고 나중에 공격받을 수 있다.

아직도 일족에게 견제를 받고 있나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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