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쓸데없는 요구를 하거나 안 찍어주면 한바탕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선선히 해주자 손오공은 놀랐다.
꾸우우욱-!
너무 쉽게 두 개의 인장이 찍힌다.
그리고, 덕담도 들었다.
“힘을 내시게. 순천대성(順天大聖) 손오공.
우리는 줄기에서의 건투를 기대하고 있네.”
“응! 어!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지만, 웃으면서 하는 응원에 욕을 할 만큼 막 나가지 않은 손오공이었다.
그렇게 손오공을 떠나보낸 외눈박이 주신은 피식 웃었다.
“킬킬킬킬킬킬! 역시 행성신이로다.
저런 성향이니 신황님을 직접 만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모르는군.”
경지가 높은 고위 존재일수록 괴팍하기가 짝이 없다.
거슬리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는데 저런 천둥벌거숭이가 올라가면 두들겨 맞고서 쫓겨나는 꼴이 눈에 선했다.
“저 정도의 눈치로는 안 되지.
안돼!
필요하면 눈 하나 정도는 뽑는 나 정도는 되어야지.
하하하하하하!”
한참을 웃어가던 외눈박이 수장은 아쉬운 눈빛으로 하늘을 가득 채우고 빛나는 중앙 신계를 쳐다본다.
“설마 신황님께서 승자를 신왕으로 삼고, 패배자들을 그 부하로 주실 줄이야.
이러면 개조 행성의 개척은 젊은이들의 몫이 되는가?
내가 조금만 젊고 가진 것이 적었어도 도전을 해볼 텐데 너무나 아깝구나.”
황금의 고리에 휘감긴 열 개의 개조 행성이 빛나면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세계수 끝에 이어진 줄기를 열 명의 투신이 내달린다.
각 일족에서 최고의 투신으로서 선발된 강자들이었다.
본의 아니게 그들의 선두에 선 손오공은 투덜거리면서도 전력으로 오르고 있었다.
통행증에 모든 수장의 인증을 받았지만, 저들도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제길! 소문이 나 버렸다.”
대박이 난 가게에 바퀴벌레처럼 달라붙는 비슷한 가게들처럼 손오공이 신황님을 직접 뵈러 간다는 소문이 나자마자 저들도 질 수 없다고 따라나선 것이다.
최강의 투신으로 선출되기 이전부터 안하무인이었던 이들의 출전에 각 수장이 쌍수를 들고서 환영했음은 당연했다.
“가라! 가!
가서 일족의 이름을 드높여라.”
“어서 가!
필요한 것은 몽땅 들고 가도 좋다.”
처음으로 일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가장 앞서가는 손오공을 따르는 그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서로를 인지하고서는 최대한 따라잡으려 하는데도 좁혀지지 않는 것이다.
“원숭이라서 나무를 오르는 것이 빠르군.”
“대단한 신체 능력이다.”
“제멋대로 설치고 다닐 만해.”
자신들은 날고 손오공은 줄기를 손과 발로 타고 오르는데도 간격이 가까워지지 않는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그래 보았자 행성신!
우주에 가까워지면 나를 이길 수 없다.”
자신보다 순발력이 좋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기에 더욱 속도를 높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안면이 생긴 서로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영창을 시작한다.
“신력전력개방!”
“병렬신력연결!”
개조 행성의 신계 주신을 노리는 경쟁자이지만 행성신에게는 질 수가 없었다.
힘을 합친 아홉 개의 신력의 빛이 하늘로 쏘아지는 화살처럼 솟아오른다.
슈하하하하-! 파파파파파파파파파-!
힘을 합쳐서 단숨에 손오공을 앞질러서 나아가는 아홉 명의 투신들의 기세는 줄기를 뒤흔들 정도였다.
행성 외부에서는 근두운을 사용할 수 없어서 직접 기어올랐던 손오공으로서는 어이가 없는 사태였다.
“저 자식들은 또 뭐야?
어디서 튀어나왔어?”
이랑진군이 최강의 투신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전혀 뒤지지 않는 강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정체는 줄기를 방호하던 영웅신과 후계들에서 밝혀졌다.
“어이! 사촌 형제! 영구감옥에서 나온 것을 축하해.”
“결국에는 너를 풀어주셨구나.
아버님과 일족은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수장들의 혈족 중에서 특출나게 강했으나 넘치는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사고를 쳐서 갇힌 존재들이었다.
수장들이 직접 가둔 그들의 힘은 후계에 육박했고, 풀어줄 명분도 생겼으니 당연한 조치이기도 했다.
그러나, 막 풀려난 그들의 눈빛을 싸늘하기만 했다.
‘나를 풀어주는 대가로 당연히 전쟁터로 보내리라 생각은 했다.
그런데 이런 큰 보상과 기회가 있는 곳에 보내다니?’
‘무슨 생각이냐?’
일반 행성 일만 배가 넘는 행성의 신계 주신이 되면 자신을 가둔 일족 따위는 가뿐하게 지려 밟을 수 있는 세력을 만들 수 있다.
패배하면 부하가 되는 문제가 있으나 그것은 승자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제한사항이 아니었다.
오히려 누가 승자가 될지 모르니 서로를 될 수 있는 대로 적대하지 않으려 했다.
어차피 이번 도전자는 신황 차원창세신 코아의 강제력으로 하나의 세력이 된다는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내가 갇힐 때 모른 척하고서 인제 와서 친한 척을 하지 마라.
통행증은 여기 있다.”
수장의 혈족이 냉랭하게 통행증을 넘겨주고 통과하려는데 영웅신들은 그냥 보내지 않았다.
패배해서 개조 행성의 신계 주신이 못 되고 부하가 되어도 앞으로 떨어질 떡고물이 엄청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를 이 골칫덩어리에게 주시다니 수장께서는 무슨 생각이시지?’
‘내가 조금만 직위가 낮아도 도전을 할 텐데 말이야.’
‘하다못해 일족의 위치만 보장해 주셔도 도전한다.’
수중의 쌈짓돈 같은 신족의 지배층 지위를 포기하기는 힘들지만, 눈앞에 황금산이 있다면 버릴 만했다.
‘출전명령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일단 참고서 선부터 다시 잇는다.’
혈족 도전자는 성격이야 어떻든 능력은 탁월해서 약간의 친분을 유지했다.
기본적으로 쌓아놓은 은혜가 빛을 발한다.
“어어! 내가 감옥에 사식도 많이 넣어주었잖아?
맛있게 잘 먹었었다고 감사편지도 썼으면서 벌써 모른 척할 셈이야?”
물론 당하는 처지에서는 짜증이 나는 일이었다.
“이런 제길! 그게 언제 일인데 들춰?
모두 토해주라?”
“그거 말고 나중에 잘되면 갚아줘.
너 혼자서는 절대로 저 개조 행성을 소화 못 시켜.
그러니 공짜는 아니고 도울 기회만 주면 돼.
우리 같이 잘 살자.”
개조 행성을 쳐다보면서 바라보는 옛 친구의 말에 일순 말문이 막힌 그는 성질을 부리면서 떠났다.
이미 이런 협박 비슷한 청탁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놈들! 조금 사정이 나아지니 여기저기서 기어 나오는구나.”
수장이나 지배층은 승자의 부하가 된다는 제약에 몸을 뺏지만, 하위신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개조 행성을 개척하면서 힘들겠지만 떨어질 막대한 정기를 노리고 지금처럼 선을 대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후계와 가까운 친형제인 직계일수록 심했다.
후계는 일족의 미래를 위해서 확실한 확답을 받고자 했다.
영구감옥에서 이번 신계 주신 결정전에 참전하는 대가로 꺼내진 수장의 직계는 분통을 터트렸다.
“젠장! 무능한 교관들을 몇 번 때렸다고 나를 감옥에 가둔 것이 누구요?
그런데 부모와 일족의 은혜를 잊지 말라니 이게 무슨 개소리요? 형님.”
“교관들이 명문 가문이 아니고, 안 죽었으면 가두지 않았다.
그들을 부활시키는데 막대한 정기가 들어갔고, 아버님이 직접 사죄를 하셔야 했다.
황족의 정통 직계인 널 보호하려고 참으로 많은 것을 양보하셨지.”
후계의 냉정한 사실 표현에 직계는 할 말을 잃었으나 감정은 많이 남아있었다.
“젠장! 내가 잘못했다고 칩시다.
그렇지만 무기징역은 심했지 않소.
그 이후로 아예 찾아오지 않았소이다.
모른 척할 때는 언제이고 아직 얻지도 못한 개조 행성의 개발권리 우선권을 계약하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자신의 앞에 놓인 계약서에는 개조 행성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일족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당연히 거부하려는데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네가 있던 곳이 정말 감옥이라고 생각하느냐?
너를 위해서 특별히 만들어낸 수련공간이었다.
과거에 네가 주신이 되기까지 투자된 정기는 수백 명의 고위 투신을 양산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투자가 과연 아버님의 허락이 없이 승인될 수 있다고 보느냐?
너에게 살해당한 교관들 가문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는 찾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왜 몰라?”
“쳇! 알겠소이다.
누가 후계 아니라고 할까 봐서 이렇게 준비를 철저히 해놓으셨소?”
다른 범죄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원을 받은 것은 모두 사실이기에 혀를 찬 직계는 계약서에 사인하고서 넘겨준다.
후계는 드디어 받아낸 계약서를 일족에게 보내고 귀중한 정보를 준다.
“이 위에는 우리의 선조신들이 신황님에 의해서 부활해 계신다.
그분들이 힘을 합쳐서 신족의 통과를 막고 있다.
절대로 무력으로 뚫으려 하지 말고 예의를 다해서 통과해야 한다.”
“예?”
선조신은 태조신이라고 불리는데 이 행성 개척 초기의 투신들이었다.
과다한 정기소모를 줄이기 위해서 스스로 신체를 포기하거나, 혹은 반란으로 사라진 존재들이 줄기 최상층부에서 버티고 있다는 뜻이었다.
‘거대한 행성신과 맞서기 위해서 거인신의 신체를 선택한 그들은 제압이 끝나자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나의 일족은 막대한 정기를 소모만 하면서 물러나지 않으려는 태조신들을 무력으로 퇴치했다.’
반란에 가장 앞장선 것이 수장이었으니 그들의 자식인 직계들을 용서할 리가 없었다.
더구나, 태조신들은 어설픈 주신은 어쩌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다.
위에 인지를 집중해 보니 하나 둘도 아니었다.
“형…형님. 저 혼자서 가라는 것은 아니죠?
같이 가실 것이죠?”
“괜찮다.
후계인 나도 죽이지는 않으셨다.
그분들은 분노하고 계시나 신족의 안위까지 잊으신 것이 아니다.
일족은 이미 너를 통과시킬 준비는 하고 있다.”
태조신들의 강력함을 잘 아는 직계가 당황해하자 착잡한 표정을 지은 후계는 수정구를 꺼내어서 던져주었다.
“이것은 아버님이 보내시는 사죄의 전언이다.
이걸 보여드리면 최소한 너를 막지는 않으실 것이다.
부디 신왕이 되어다오.”
신왕의 부하보다 신왕이 줄 수 있는 권리가 더 많으니 당연한 바램이었다.
수정구를 꽉 움켜쥔 직계는 힘차게 대답했다.
“예! 반드시 신왕이 되겠습니다.”
“너의 뒤에는 아버님과 우리 일족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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