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죄인의 신분이 되었다가 천축행 이후에 복귀하여 아무런 진급도 하지 못한 처지라서 당연히 그럴 생각인 사제들은 겸연쩍은 얼굴을 했다.
그렇게 사제들을 갈구면서 대충 재생된 육마왕의 전력을 파악한 손오공은 여의봉을 어깨에 메고서 일어섰다.
“으싸! 모두 전성기 이상이로군.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니야.
그럼 가볼까?”
“힘내십시오! 사형!”
“저희는 열심히 응원하면서 보고서를 근사하게 작성하겠습니다!”
“그래.
그거라도 잘해라.”
행성신 저항군을 때려잡을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은 태도인 사제들을 보면서 씁쓸하게 웃는 손오공이었다.
‘쯧쯧! 역시 행성신인 나는 중화신족과 융화가 잘 안 돼.
행성신 저항군을 완전히 분쇄한 공으로 금고아의 통제는 풀렸지만, 이제 돌아갈 곳이 없기에 안심하고 해준 조치였다.
부처로서 직위가 아무리 높아지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무 데나 쓰기 좋은 용병일 뿐이로군.
천계에 제천대성부(齊天大聖府)라는 거대한 군부까지 가지고 있지만, 관리신을 제외하고는 천병이 없는 허울 좋은 조직이었다.
신족은 아무도 자신의 밑으로 오지 않기 때문이다.
‘행성신인 나는 절대로 일족의 신왕이나 신황이 될 수 없어.
혹시나 이 가혹한 운명을 벗어날까 하고서 줄기를 타고 강대한 창조신이 기다리는 신계로 가려고 했지.
그런데 산전수전을 다 겪은 교활한 주신들은 역시 대비를 해놓았다.’
신황으로의 출셋길이 각 일족의 영웅신들에 의해서 막혀버렸으니 이제 방법은 하나였다.
‘누구보다 잘 싸워서 차원창세신 코아님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목표가 정해졌으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신족의 형태를 벗어던지고, 행성신의 신체를 되찾는다.
세계수 덕분에 정기가 무한하니 삼십 킬로미터가 넘는 돌 원숭이의 본체를 드러낸 손오공의 위용은 달에서도 잘 보일 정도였다.
여의봉까지 최대한 키운 손오공은 일제히 자신에게 몰려오는 육마왕에게 돌진했다.
“으라차차차! 제천대성(齊天大聖) 손오공 나가신다!”
차원창세신 코아는 슬슬 돌아가기 시작한 천족의 신계 관리의 감독과 행성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동시에 확인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투신원형(鬪神原型)의 하나답게 잘 싸우는군.
쓸만해.”
행성신의 본체를 완전히 드러낸 육마왕과 손오공의 혈투는 나름 좋은 구경거리였으나 행성 인류에게는 재앙이었다.
수 킬로미터가 넘는 괴수들의 치열한 전투는 국지적인 지진과 해일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쏴아아아아아-! 구구구구구궁!
해변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보는 인간들의 표정은 더없이 창백해졌다.
“또 쓰나미다!”
“무슨 해일이 매일 일어나!”
단숨에 해변 도시를 쓸어버릴 정도로 거대한 쓰나미였다.
우우우우우웅-! 드드드드-!
그런데 모두의 몸에서 각기 다른 빛이 일어나면서 초능력 방어벽을 세운다.
초능력의 집단발동이었다.
“이제는 안 당한다.”
“우리의 마을은 우리가 지킨다.”
군대나 정부에도 초능력자가 있지만, 전 국토에서 벌어지는 해일을 감당하기는 힘들기에 생겨난 초능력 자경단이었다.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초능력을 가진 몇 명이 나서서 이끌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인류가 행성신과 신족의 전투 여파를 스스로 이겨내는 모습을 본 차원창세신 코아는 피식 웃으면서 말한다.
“후훗! 지배층이 무능하면 국민이 유능해진다고 하던가?
어떻게든 따라오기는 하는군.”
다시 열린 수백 개의 차원문이 과거의 흐름을 관통한다.
“그럼 다음 단계로 간다.”
우우우우웅-! 우우우웅-!
다시 시체 바꿔치기로 과거의 인물들을 부활시킨 차원창세신 코아는 바로 관련 지식을 주입하고서 말했다.
“가라!
너희의 힘으로 인류의 사회를 뒤흔들고, 위기감을 불러일으켜라!
너희 정부가 끝까지 세계수로 돌격하지 않겠다면 내전도 허락하겠다.”
그러자 염소 콧수염을 단 유럽계 중년인이 오른손으로 앞으로 뻗으면서 외친다.
“하일! 코아!”
주변에 있던 인물들도 상황을 파악하고, 다급하게 일어나서 앞다투어 복종의 의사를 표시했다.
게릴라 복장이 가장 많은 다양한 그들에게 차원창세신 코아는 개인화기와 탄약, 식량이 마구 쏟아지는 가방을 던져주면서 말한다.
“원하는 만큼 써서 혁명군을 만들어라.”
시작이 있는 나라만 평화로우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판단한 차원창세신 코아였다.
그래서 시작의 나라만 제외한 채 유명했던 혁명가를 전부 부활시켜서 물자를 지원해주고서 세계에 뿌려버렸다.
“가서 자기 나라만 다시 뒤집어 엎어버려!”
“체-!”
군복에 베레모를 쓴 혁명가가 경례하면서 사라지는 모습을 본 차원창세신 코아는 행성 전체의 모형을 만들어서 화면에 비추었다.
“분탕 종자들은 저들로 되었다.
그럼 다른 종자들의 상태를 확인해 보자.
세계수의 상태는 최상이고, 신족과 행성신들도 좋군.
바다를 막았으니 지성체들의 통행이 힘든 지형은 손을 좀 봐야겠어.”
가볍게 손가락으로 모형 지구를 긋자 바다에서 땅이 솟구치면서 대륙과 대륙을 연결한다.
달에서 보면 가벼운 색깔 변화이지만, 행성 전체로 보면 대격변이었다.
세계수를 둘러싼 대륙들이 하나로 이어지고 있었다.
구구구구구구궁! 드드드드드-!
물속에서 엄청난 크기의 통로가 떠오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아나운서는 이제 놀라지도 않는다.
바다에는 대륙과 같은 크기의 나라가 자라고, 옆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보다 수십 배는 큰 삼십 킬로미터가 넘는 돌 원숭이가 수 킬로미터의 괴수들과 격전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바다가 조금 땅이 되었다고 이상한 일이 아니지.’
담담한 목소리로 대본을 읽어간다.
“아침 뉴스입니다.
신계와 관련된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지금 각 대륙을 연결하는 바닷길이 생겼습니다.
언제나처럼 차원창세신 코아님의 기적인 것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인류의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하니 안심하십시오.”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부지런히 일하는 임시 천사들로 인하여 누가 이런 일을 했는지 금방 파악했기에 주의사항만을 전달한다.
“굉장한 넓이의 통로로 모든 대륙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자동차로도 이동할 수 있으나 전문가들의 의견으로는 아직 지표가 안정화되지 않았습니다.
민간인들의 출입은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서 현재 군대가 출동 중입니다.”
대륙을 연결하는 통로는 엄청난 가치가 있다.
그래서, 각국의 군대가 새로 생긴 통로를 최대한 많이 점령하기 위해서 전진하는 중이었다.
화아아아아아아! 구우우우웅!
그러나, 하늘을 새까맣게 채우면서 다가오는 신족과 바다에서 상륙하는 행성신을 보고서 모두 도망치는 광경을 비춘다.
이제 포기한 얼굴이 된 아나운서는 기계적인 어조로 말한다.
“보시다시피 군대의 통제는 불가능합니다.
행성신님과 신님들이 통로의 소유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격돌하고 계십니다.
주변에 지진과 해일경보가 발령 중이니 근처에 사시는 주민은 주의하시고 쓰나미가 일어나면 힘을 합쳐서 막아주시기 바랍니다.”
행성신들이 보기에 흉측한 괴수들인데 깍듯하게 존칭을 쓴다.
거대 괴수들이 행성신이며 원래 이 행성의 주인이라는 사실은 천사들에 의해서 이미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물론 인류 지배층의 격렬한 반발이 있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 행성의 주인은 인류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괴수에게 우선권이 있다니요?”
행성 주인에서 갑자기 세입자가 되어버렸으니 각자 국교로 삼은 주신들에게 간청했으나 매정한 대답이 돌아온다.
“너희 인류가 번성한 지는 일만 년도 안 되었으나 행성신은 행성의 탄생부터 존재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영역은 보호해줄 테니 빨리 세계수로 올라갈 전력부터 갖추라.”
차원창세신 코아가 세계수로 오르지 않는 인류에게 과거 인물들을 부활시켜서 마구 쏟아붓는 조치를 본 신족의 수장들도 마음이 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러다가 신족에게 화살이 돌려지면 큰일이다.’
‘소멸한 선조신을 부활시켜서 투입할지를 몰라.’
직접 겪어보니 부활과 재생을 주관하는 창조신의 창조력은 정말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특히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골육상전의 전쟁을 저질렀던 수장들일수록 다급했다.
‘이러다가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부활하시는 날이면 올림푸스 일족은 완전히 무너진다.
내 거기부터 자르려고 할지도 몰라.
신족도 어서 올라갈 대표자를 정해야 돼.’
그렇게 신족은 인류에게 선을 명확하게 그었고, 행성신들의 크기도 감당이 안 되는데 수도 헤아릴 수 없는 무리까지 본 인류의 군대는 침묵하고 있는 상태였다.
핵무기도 안 통하는 존재들에게 전면전쟁을 거는 어리석은 지도자는 아직은 없었기에 큰 충돌은 없었다.
군대가 도주하는 한심한 모습을 끈 아나운서는 피곤한 얼굴로 말을 이어간다.
“다음은 세계수의 소식입니다.
표류 종족의 이미르씨가 현재 오십 킬로미터를 돌파하여 나무 중간지점에 기지를 건설한 공로로 종족들의 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천사들과의 축하 인터뷰에서 어서 달의 신계에 도착하여 개조 행성의 개발을 시작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셨습니다.
달의 신계에서는 화답하듯이 개조 행성에 세계수를 심고 줄기로 연결하였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아나운서가 개조 행성들에서 세계수가 자라나서 달의 신계로 연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달에 열 개가 넘는 개조 행성의 줄기가 연결되는 모습은 이제 특이하지도 않았다.
“개조 행성의 개발권을 얻기 위한 표류 종족의 도전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각 정부의 신속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절대계에서 돌아온 지 겨우 열흘 정도가 지났는데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의 시작은 이질감을 애써 무시하면서 뉴스를 지켜본다.
“다음은 지옥 소식입니다.
현재 사형이 확정되어서 지옥으로 공간 이동된 사형수는 총 일만 오천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하루 열 명 정도가 사형의 선고 후 공간 이동되었으나 현재는 갈수록 숫자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덕분에 사형을 받을만한 흉악한 범죄자가 사라졌으며 범죄율도 급감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나온 듣기 좋은 소식에 시작은 눈을 빛내면서 쳐다봤다.
‘도움이 되기는 하는구나.’
아나운서는 과거의 범죄율에 비해서 극단적으로 하향된 현재의 범죄율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추가한다.
“법정에서 판결이 선고되었지만, 지옥으로 공간이동이 되지 않은 피의자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어진 정밀한 재조사에서 무죄로 판결되는 사태가 많아집니다.
그러자 사법부와 경찰에 대한 심각한 불신이 야기되며 이럴 바에는 차라리 신에게 판결을 맡기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 이 논란에 대해서 특별히 인터뷰를 해주신 염라대왕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죽기 직전에 인류의 영웅이 되고 싶어서 세계수에 핵무기를 날렸다가 나라와 국민이 지옥으로 변하게 해버린 동무국의 독재자가 화면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악마가 되었으면서도 묘하게 쾌활한 얼굴에 정장 차림이었고, 머리 옆에 돋아난 커다란 악마의 뿔에는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까지 했다.
그리고, 한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마이크를 대면서 신호를 주자 화면을 향해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부터 한다.
“웰컴 투 헬!
동무 지옥의 염라대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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