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밤에 죽어도 낮에는 되살아나는 재생의 축복을 받은 발할라의 전사들이 돌진한다.
신에게 부활의 가호를 받을 정도로 용사인 그들에게 거인족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개미떼처럼 몰려오는 발할라의 전사들에게 로키는 흉흉한 살기를 뿜어낸다.
혼자라면 모를까 모든 거인족과 자식들이 있는 이상 인간족의 용사들은 아무런 위협이 안 되는 것이다.
“신족의 주신 자리에 올랐던 나를 상대로 발키리와 발할라의 전사만 보내다니 가소롭다!”
거대한 신체를 드러낸 이상 권능이나 마법이 필요가 없었다.
거인신들이 각자의 무기를 쥐고서 발키리와 발할라의 전사들을 뭉개간다.
“토르! 그 망할 자식을 데려와!”
꽈꽈꽝-!
산보다 거대한 행성신의 신체와 하늘을 뒤흔드는 신의 권능과 군대가 충돌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된 인류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하늘에 그려진 영상이 아닌 멀리 보이는 국경선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신이시다.”
“진짜 괴수가 있었어?”
그나마 계속 하늘 영상으로 보고 있던 장면이라서 폭주하거나 미치는 인류가 없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그리고, 불난 산에서 도주하는 야생동물과 같은 군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국경수비대였다.
“군…군대가 도망친다.”
“국경선이 무너졌어.”
“전쟁인가?”
“반대쪽도 도주하니 그건 아니야.”
국경을 지키던 정예 군대라도 개인화기는 물론이고, 미사일조차 박히지 않는 강력한 신체와 권능, 크기를 가진 행성신에게는 무력했다.
몇몇 기계화 부대가 덤볐다가 분노한 행성신들에게 초토화된 이후에는 전력으로 후퇴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인간의 군대가 사라진 국경선에는 본격적으로 신족과 행성신들의 사투가 벌어졌다.
구구구구궁! 구궁!
아무리 멀리 있어도 은은한 진동이 느껴지는 격전에 벌벌 떨던 인류는 초능력을 사용해서 스스로 보호하기 시작한다.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의 격돌까지 직시한 이상 더는 판타지 같은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족과 행성신의 대륙 격돌이 인류의 각성을 일깨우고 있을 때 세계수의 줄기 외부에서도 격전이 벌어졌다.
쿠궁! 파지지지지지직!
수십 킬로미터가 넘는 쇠몽둥이가 투명한 줄기 주변에서 휘둘러지며 사방에서 작렬하는 번개와 날아오는 망치를 튕겨낸다.
후우우우우우우-! 따당!
간단한 짐승 가죽의 옷을 입고서 번개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근육질 거인이 몇 번이나 망치를 날렸으나 길어진 쇠몽둥이에 허무하게 튕겨나서 되돌아온다.
결국에는 분노하여 소리쳤다.
“네가 그 빌어먹을 돌 원숭이냐!
소문대로 요리조리 잘 피하고 용케도 막는구나!
정정당당하게 싸우지 못할까!”
여의봉을 한껏 늘려서 나르는 망치를 튕겨낸 손오공은 상대를 비웃었다.
“카카카카카! 뇌신 주제에 망치만 유명한 무뇌아가 내게 뭐래?”
손오공은 여유롭게 상대하는 듯했지만, 마음속은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
‘파리로 변해서 줄기를 몰래 오르다가 저 투신이 던진 망치에 납작해질 뻔했다.’
이제까지 신족들을 변신술로 농락했던 손오공으로서는 엄청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감각이다.
망치와 번개 외에 특별한 권능이 있는 것은 아닌데 전투기술이나 인지에 빈틈이 전혀 없어.’
투척용 전투 망치의 손잡이 구멍에 손가락을 걸고서 빙빙 돌리고 있는 모습은 야만족 양아치 같은 모습이나 속은 완벽한 투신이었다.
‘이 자식이 토르야?
야만족 근육 남이 뇌속성을 가진 투신 중에 최강이라더니 역시 만만치가 않네.
설마 영웅신인가?’
일반적인 투신과는 격이 다른 영웅신의 존재감이 물밀 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더구나 신기의 질에서도 밀렸다.
몇 번 충돌했는데 최대한 크기를 키운 여의봉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저 전투 망치는 여의봉보다 신격이 상위다.
정면으로 충돌하면 부서진다.’
동해 용왕의 보물이 주신의 신기보다 강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면에서 밀려서 궁지에 빠진 손오공에게 토르는 다시 묠니르를 던지면서 외쳤다.
“신왕들의 통합된 허락이 없이는 누구도 달의 신전에 올라가지 못한다.
그만 촐싹대고 사라져라!”
“쳇! 자기 혼자서 못 먹으면 남도 못 먹는다 이거냐?
그럼 훔쳐라도 먹겠다!”
빛살처럼 날아오는 전투 망치는 유도와 회수기능이 있어서 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의봉을 풍차처럼 돌려서 막아낸다.
투하하하하-! 따땅! 붕붕붕-! 후우우우웅!
전투 망치가 회전하는 여의봉과 수십 차례 충돌하다가 주인에게 돌아간다.
잘못 부딪치면 여의봉만이 아니라 겨우 부활한 신체까지 박살이 날 것 같기에 다시 거리를 벌리면서 묻는다.
“너는 신황 자리를 안 노리냐?
밑에서는 행성신들과 전쟁 중이다.
영웅신인 네가 이렇게 줄기에서 대기 중이면 이거 다른 생각이 있는 것 아니야?”
토르는 자랑하는 묠니르를 더욱 빠르게 돌리면서 되받아쳤다.
“훗! 모두가 너 같은 줄 아는가?
신황은 신족 모두가 인정하는 합당한 권위와 권능이 없으면 감당하지 못할 짐이다.
최소한 각 일족의 수장인 신왕들만이 자격이 있다.
우리는 아무리 전투를 해도 안 죽어서 결판이 안 나니 혼란할 때 기회만 보는 약삭빠른 도둑놈들이 못 올라가게 막고 있을 뿐이다.”
“우리?”
“그래! 우리다!”
그렇게 말한 토르가 위를 쳐다보면서 말한다.
“인드라! 아직 멀었나?
벌써 이렇게 파리가 낀다.
당장 발동시켜!”
“이제 다 되었다.”
그 말과 함께 엄청난 천둥소리가 울리고 번개가 치기 시작한다.
우르르르르르르릉! 번쩍! 번쩍!
줄기로 올라가는 구역에 번쩍이는 번개의 그물이 깔린다.
번개가 연속으로 치는 와중에 찬란한 황금 갑옷을 입고서 금강저를 든 남신이 나오면서 신언으로 선언한다.
“베다신족의 신왕으로서 선언한다.
인드라망이 완성된 이상 어떤 신도 올라갈 수 없다.”
다른 신족의 신왕이자 영웅신의 등장에 손오공도 낭패라는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각 신족의 주신들이 서로의 우열이 확실히 정해질 때까지 줄기를 지키기 위해서 최강의 투신만을 골라서 여기에 배치했다는 뜻이었다.
“쳇! 또 뇌신이냐?
전쟁 중인데 최고 사령관들이 전부 어디로 갔나 했더니 모두 여기 있었구나.
행성신들의 침공은 신경 쓸 가치도 없다 이거냐?”
광역 탐지망인 인드라망이 깔리자 줄기의 여기저기서 투신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당연하지!”
“부활의 가호와 세계수가 있는 이상 어차피 행성신들과의 전투는 몸풀기에 지나지 않아.”
“행성신들은 우주로 나갈수록 신족의 상대가 될 수 없다.
행성의 저항력이 없다면 가소로울 뿐이다.”
“여기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곳이다.”
손오공은 모습을 드러내는 투신들을 보면서 신음했다.
‘으윽! 모두 영웅신이다!’
그제야 상황을 눈치를 챘다.
‘줄기를 먼저 올라가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우다 승부를 내지 못한 각 신족의 영웅신들이 그대로 길목을 막아버린 상황이구나.’
자연스럽게 파수꾼이 된 그들은 하늘의 달을 올려다보면서 말한다.
“신계에 계신 차원창세신 코아님께서 창조신인 이상 신족 외의 신황을 용서하실 리가 없지.”
“우리는 주신님 중에서 신황으로서 한 명이 뽑히기를 기다리면 된다.”
“너 같은 불순분자의 접근을 막으면서 말이다.”
인드라 외에도 너무나 익숙하고 유명한 투신들이 한마디를 하면서 서서히 포위망을 구축하면서 모여든다.
뇌신의 결계를 친 이후에 처음 온 불청객을 분쇄하겠다는 의지가 넘실거렸다.
‘안 좋네.
몰래 통과하기는 글렀다.’
각 신족의 최정예 영웅신이라서 하나도 상대하기 벅찬데 이렇게 한꺼번에 덤비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토르나 다른 영웅신들은 손오공을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토르가 이런 높은 장소에 파리가 올라오다니 뭔가 이상해서 묠니르를 던지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통과시켜 줄뻔했다.’
‘원숭이가 신황이 될 뻔하다니? 이건 신족의 수치다!’
‘용서할 것 같으냐?’
‘신족 수장들의 책임추궁을 떠나서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줄기 위에도 대기하고 있는 전력이 있으니 달의 신계에 도착할 수는 없겠지만, 자존심 문제인 것이다.
몇 번 싸워서 손오공이 만만치 않음을 파악한 토르가 살기를 뿜어내면서 이번에는 망치와 함께 달려들었다.
“네 머리와 신체가 굉장한 돌이라는데 내 망치에 어디 얼마나 견디나 보자!”
“그런 짧은 망치로 가능하겠나?”
속도라면 최고인 뇌신답게 기겁할 정도의 속도로 달려드는 모습에 여의봉을 급히 휘두르는 손오공이었는데 뒤에 이어지는 광경에 어이가 없어졌다.
“네 목을 줄기 앞에 걸어놓겠다.”
“갈기갈기 찢어주지!”
슈아아아아아아-!
자존심으로 먹고서는 영웅신이자 대표 투신으로서 자부심은 어디다 버렸는지 모두 한꺼번에 덤벼들고 있었다.
“이! 이봐! 이거 너무 하잖아!
너희 영웅신이잖아?
일 대 일이 기본 아니냐?”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못된 원숭이야! 행성신 주제에 고위신이 되었다고 거들먹거리던 꼴이 너무 보기 싫었던 판이다.”
“허락 없이 기어든 벌레가 네가 처음이니 여기서 절대로 못 도망간다!”
“천방지축에 제멋대로인 손오공의 시체를 전시하면 여기 방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른 신족의 영역까지 가서 설치던 손오공의 평소 행실이 문제였다.
“여기서 이 자식의 머리를 돌려 따야 우리가 편하다!”
“그렇지 않아도 행성신 원숭이 골 요리의 맛이 궁금했었다!”
살벌하기 짝이 영웅신들의 협박과 기세에 몸서리친 손오공이 필사적으로 도주했다.
“쉑-! 본보기냐?”
뒤를 추격하면서 공격을 퍼부었던 영웅신들은 손오공이 줄기를 벗어나자 추격을 중지하고서 한마음으로 외쳤다.
“뇌는 놓고 가라-! 원숭아!”
“유명한 골 요리 맛을 좀 보자!”
“저 빌어먹을 자식들이!”
자신의 요리재료 취급에 발끈했으나 영웅신들의 신기와 권능에 수없이 난타를 당하니 금강석과 같던 신체도 무력했다.
중첩된 치명타를 못 이기고, 몇 번이나 죽었다가 부활의 권능으로 겨우 살아난 손오공은 이를 갈면서 중화신족의 신계로 돌아간다.
“제길! 두고 보자!”
만신창이 패잔병이 되어서 별수 없이 신계에 복귀하여 개인신전에서 치료한다.
그런데 줄기를 지키는 영웅신들에게 손오공의 불법침입을 보고받은 옥황상제은 격노하여 삿대질하면서 전장으로 쫓아내려 했다.
“이이! 그새 또 사고를 쳤는가?
그리고, 투신이면서 싸우다 도주하다니?
신계의 최고 무장이자 부처인 제천대성(齊天大聖)으로서 부끄럽지 않나?”
“아아! 할 말 없게 이럴 때만 그렇게 부르네.
영웅신들이 떼로 몰려드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알현실에 주저앉은 손오공에게 모든 관리신들이 한마음으로 외치는데 질려버릴 지경이었다.
“자칭 제천대성(齊天大聖)답게 행동하시오!”
“이미 출전한 이랑진군이 육마왕에게 막혀서 원군을 요청하고 있으니 빨리 가시오.”
이랑진군이 이끄는 천군과 육마왕이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과 권능으로 전투광경을 직접 본 손오공으로서는 가기 싫은 것이 당연했다.
지극히 곤란한 얼굴로 진심으로 말한다.
“순천대성(順天大聖)으로 칭호를 바꾸고 거기는 안 가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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