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하도 충격을 받아서 멍해진 시작에게 천연덕스럽게 설명을 늘어놓은 차원창세신 코아였다.
“아무런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성체도 오를 수 있게 세계수의 줄기는 열어놓았습니다.
전 관대하니까요.”
“….”
지금 바다는 죽지 않으며 무한 부활하는 신들과 인류가 보기에 거대한 괴물인 행성신들이 전쟁을 벌이는 장소였다.
그런 곳을 뚫고서 세계수에 도착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기회는 확실히 부여한 것이다.
불신의 표정이 역력한 시작에게 차원창세신 코아는 확신에 가득 찬 어조로 말한다.
“지성체의 힘을 무시하시면 안 됩니다.
상급 창조신인 저 역시 인간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으십시오.
만물의 영장이라 말하며 행성의 지배자로서 자처한다면 이 정도는 쉬운 일이지요.
인류는 충분히 자력으로 신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시작님의 충실한 기반이 될 것입니다.”
바뀐 화면에는 고위신이 부른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여서 바다로 떨어지는 무수한 번개들과 거기에 맞서서 울부짖으며 브레스를 쏘는 산 같은 괴물들이 넘실거리는 바다를 비춘다.
‘세계수의 그늘에서는 무슨 수를 써도 죽지 않는다고 하니 불가능은 아니야.
그러나, 어디를 봐도 인간이 끼어들 구석이 없는 살벌한 전장인데 어떻게 하라는 거야.’
약속대로 인류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으니 서서히 골치가 아파지는 시작은 속으로 중얼거린다.
‘인류를 안 믿어도 돼요.
창조주도 부담이 되니 그냥 조용히 있으면 안 되나요?’
부활시킨 신들과 행성신들을 다시 죽이고, 자기 대신에 아무나 한 명을 뽑아서 행성관리를 맡기라는 말만은 차마 할 수 없는 시작이었다.
하늘에는 거대한 행성들이 이미 열 개나 환경조성이 완료되어가고 있었다.
저 행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으니 그렇게 요청했다가는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 것이다.
‘정말 아무에게나 행성관리를 떠맡길 수도 있어.’
그런데,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경고 방송이 시작된다.
“국민 여러분. 큰일이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급하지 감정표현을 숨기지 못한 아나운서가 빠르게 속보를 읽어간다.
“동무국이 핵무기의 사용을 결정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공격목표는 태평양의 거대 나무입니다.
모든 나라가 반대했으나 언제나처럼 강행할 기세입니다.
방사능 낙진이 우려되므로 외출을 삼가시고, 방송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일단 공격선포를 생방송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화면에 훈장을 주렁주렁 매달은 군복을 입은 노인이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연설하고 있었다.
지독한 독재자로 유명한 동무국의 대통령이었다.
암에 걸려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알려졌었는데 건장한 모습으로 서류를 보면서 낭독한다.
“위대한 우리나라는 신으로 속이면서 우주를 봉쇄한 외계인들에게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최후의 한 명까지 결사의 각오로 싸워 이길 것이다.”
그와 동시에 트럭에 실려있던 핵미사일들이 일제히 발사되는 광경이 방영된다.
“침략자에게 불벼락을 내려주겠다!
괴물들이 넘치는 바다는 불바다로 변해라.”
구구구구구궁-!
광기까지 느껴지는 연설과 함께 위성화면이 발사된 핵미사일들을 뒤쫓는다.
성층권을 돌파하여 세계수로 내려꽂히는 미사일들의 궤적은 시작에게 더없는 충격을 주었다.
“핵전쟁!!!”
말로만 듣던 진짜 핵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차원창세신 코아는 다른 의미로 감탄하고 있었다.
“호오? 여기도 진짜 겁 없는 미친 나라가 있군요.
이러면 일이 쉬워지지요.”
발사된 중형 핵미사일의 숫자는 열이 넘었다.
그 정도 위력이면 핵겨울이 와서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는데 전혀 개의치 않은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시작에게 차원창세신 코아는 달래듯이 말했다.
“시작님. 물리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성체의 과학 문명은 결코 정신체의 권능을 이길 수 없습니다.
좋은 기회이니 직접 보여드리지요.”
핵미사일들이 세계수에 명중하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폭발과 버섯구름이 솟는다.
꽈꽈꽈꽈꽈꽈꽈꽈꽝-!
핵폭발로 발생하는 막대한 전자파로 화면이 나가서 잡음만이 울린다.
드드드드드-!
얼마나 강력한 폭발인지 진동이 행성 반대편에 지진처럼 울릴 지경이었다.
위성화면은 곧 복구되면서 세계수 대신에 하늘 높이 치솟는 버섯구름을 보여준다.
화면 속에 다시 나타난 독재자는 내심 초조했던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소리 높여 웃었다.
“우하하하하하! 보아라!
이것이 내 나라와 인류의 진정한 힘이다!
신으로 속이는 외계인 따위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모두 끝까지 싸우자.”
승리를 확신하며 전투를 선동하는 그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핵폭발의 버섯구름이 화면을 거꾸로 돌리듯이 사그라지는 것이다.
사사사사사사사-! 슈슈슈슈슈슈-!
폭발 속에서 다시 나타난 세계수는 잎새 하나 다치지 않은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치열하게 싸우던 신과 행성신들은 잠시 하늘을 쳐다보다가 다시 서로의 목숨을 노렸다.
그들이 쳐다본 하늘에는 분명 폭발했던 핵미사일들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모습이 비쳐진다.
“히이이이이익!”
핵폭발이 취소되고, 파괴되었던 미사일이 원상복귀가 되어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심장을 움켜쥔 독재자가 신음할 때 뇌리로 의지가 울린다.
‘아주 잘했다.
이걸로 너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인 핵무기가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구나.
지금까지는 너의 공이 가장 크다.
원하는 대로 신계에 누군가 도착하기 전까지 인간의 서열 맨 앞에 세워주리라.
인류의 왕이 되고 싶다면 그만큼의 공적을 새우라.’
‘인간의 왕!?’
그 말을 듣고 의문과 안도를 동시에 느낀 독재자는 깨달았다.
왜 자신이 모두가 말리는데, 핵무기를 사용할 결심을 하고 밀어붙였으며 무엇을 바랬는지 말이다.
행성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강대한 외계인에 대한 두려움도 컸지만, 인류를 대표한 저항자로서 최후를 맡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허어억! 죽음을 앞둔 내게 이런 권력욕이 있었나?
분명 핵무기를 안 통할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는데 실낱같은 가능성에 걸었다.
그 이유가 독재자가 아닌 인류의 대표자로서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고 싶은 이유였는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머릿속으로 전해진 인류의 가장 상위 서열에 임명하겠다는 말에 가끔 멈추려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복잡한 얼굴을 한 독재자가 화면에서 사라지면서 쏘아진 핵미사일이 다시 되돌아와 트럭 위에 장착되는 모습을 끝으로 긴급 방송은 끝났다.
“놀라셨을 시청자 여러분께 사과드리며, 곧 전문가의 분석방송을 보내겠습니다.”
창백해진 표정의 아나운서와 함께 정황 설명을 하는 텔레비전 화면의 소리를 줄인 차원창세신 코아는 정중한 목소리로 보고한다.
“이제 아시겠지요.
현실을 조정하는 권능을 가진 신에게는 과학 문명을 신봉하는 지성체는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인류가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지금처럼 원상복귀를 시키면서 평화롭게 대응하겠습니다.
만약 제가 부활시킨 신과 행성신에게 죽는 인류나 재산피해가 있다면 전부 보상할 터이니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다음의 단계도 아무런 피해가 없을 것이니 마음 편안하게 평범한 생활을 즐겨주십시오.”
“….”
차원창세신 코아의 권능이 핵무기의 폭발조차 무시한다면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부활까지 이렇게 마음대로 시킬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평범한 여고생인 시작도 알았기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맡겨주십시오.
저는 반드시 시작님을 외계의 창조주로 올릴 것입니다.”
차원창세신 코아가 외계에 온 첫날에 신계와 천국과 함께 신들이 전부 부활하면서 행성이 봉쇄되었다.
둘째 날에 인류의 일부가 저항하여 핵전쟁이 일어났다가 무효화 되었다.
행성의 인류는 이 일로 인하여 혼란의 도가니였으나 셋째 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세계수에서 넘쳐흐르기 시작한 정기가 세계 각지로 퍼지면서 모든 인류에게도 신의 축복이 내려진 것이다.
잠을 자고 일어난 모든 인류는 자신의 육체와 정신의 변화에 깜짝 놀랐다.
“내가 초능력자가 되었어!”
세계수의 정기는 신에게 권능을 발휘할 자원이면서 인류에게는 초능력을 발휘하게 해준다.
그리고, 전 세계에 끊이지 않고 방송되고 있는 신과 행성신의 전투는 상상력을 자극하여 초능력을 개방시켰다.
“우와! 내가 난다! 날아!”
초능력자로 변한 인간들로 인하여 사회는 온통 난장판이 된다.
여기저기서 힘을 주체하지 못해 싸우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나 힘 졸라세!
모두 고개 숙여!”
“육체계는 입 다물어라!
내가 바로 자연계다!”
“자연계는 투기 앞에 무력하다!
진정한 최강인 나의 힘을 봐라!”
“번개 발-! 불 주먹-!”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초능력자들이 넘쳐났다.
차원창세신 코아의 지원으로 이미 창조권능까지 습득한 시작은 이제 포기한 얼굴로 등교하고 있었다.
도착한 학교의 학생들도 자신의 초능력을 자랑하며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아! 이제 나도 몰라.’
사태를 수습할 교사들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엉망진창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초능력을 이용한 범죄나 살인은 벌어지지 않았다.
초능력의 각성과 함께 보내진 차원창세신 코아의 의지 때문이었다.
“선인은 천국이고, 죄인은 지옥이다.”
달에 나타난 천국처럼 지옥도 모든 인류에게 똑똑히 보여진다.
푸하하하하하하-!
핵미사일을 발사한 나라의 국경을 둘러싸고, 검은 암흑이 치솟으면서 하늘에 지옥이라고 글자가 새겨진다.
위성 사진으로는 행성 표면에 검은 구멍이 난 것처럼 보이는 내부 광경을 지켜본 인류의 지배층은 할 말을 잃었다.
“….”
“….”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핵무기 발사를 명령한 독재자가 머리에 뿔을 달고, 박쥐의 날개에 꼬리가 난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던 것이다.
누가 봐도 전형적인 악마의 모습을 한 독재자는 머리를 양손으로 움켜쥐면서 절망하고 있었다.
“이…이건 아닙니다!
핵무기가 쓸모없다는 사실을 빠르게 파악하게 한 공로로 가장 상위 서열의 인간으로 만들어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전 악마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 앞에는 빛의 날개를 휘날리는 차원창세신 코아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후후! 여기 행성의 신화에 가장 상위의 인간이 염라대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렇게 해주었다.
지옥의 염라대왕만큼 상위의 인간이 있는가?”
“그렇지만 악마로 만드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호오? 내 관대한 조치에 불만이 있다고?
창조신에게 감히 핵무기를 쏜 주제에 말은 잘한다.
이런 처분이 얼마나 자비로운지 모르는구나.
염라대왕이 불만이면 신족의 규정대로 해주랴?”
“…아니요.”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