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더는 대화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일대 회색의 절대자는 시선을 돌리고, 흑염 정석을 펼친다.
팟! 움찔!
표지를 묵묵히 넘기는 모습을 본 차원창세신 코아는 찔린 표정을 지었다.
‘윽! 입문 조건이 황당했었지.’
자기한테 불똥이 튈 수 있기에 바로 인사를 하면서 차원권능으로 빠져나갈 준비를 한다.
“그럼 출정식 때 뵙겠습니다.”
“….”
일대 회색의 절대자는 이제 무시하기로 했는지 아무 반응이 없자 차원 문을 열어서 그대로 이동했다.
그렇게 잠시 고요를 찾은 신전의 알현실은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들려왔다.
사라라라!
몇 장을 빠르게 읽던 회색의 절대자의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부르르르르!
책 내용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몇 번이나 확인한다.
그리고, 입에서 분노로 떨리는 음성이 나왔다.
“이이이-! 흑염 권능의 입문 조건이 영웅신의 열 배 이상의 신체 능력과 그 이상의 정신 능력이라고?
그보다 약하면 투기에 심장이 터지는 것은 당연하니 익히지 말라니?
이걸 말이라고 적어놨느냐?
절대계에 그 정도 존재가 몇이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입문 조건에 기가 막힌 회색의 절대자는 자신도 모르게 책의 양쪽을 잡았다.
그러나, 막대한 대가를 주고 얻은 흑염 정석을 폐기할 수 없어서 꾹 참고서 다시 읽기 시작했다.
“으음!”
입문을 넘어선 중반부는 절묘하기 짝이 없는 투기를 운용하여 신체를 강화하는 방법이었다.
‘흑염 권능은 폭발할 위험이 없다면 어떤 오의도 따라갈 수 없는 신체 능력 증폭을 보인다.
이런 원리였군.’
상세한 설명에 감탄한 회색의 절대자는 정신없이 내용에 빠져들었다.
그런 그의 몸 주위에 검은 불길이 치솟아 오른다.
화르르르르르-! 후우우우웅-!
방금 차원창세신 코아가 보였던 흑염 권능보다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분명히 흑염의 정석이 맞다.
이걸 손에 넣다니 믿을 수가 없군.”
은은한 검은 불길이 일렁이는 눈빛으로 자신의 신체의 근육이 약동하는 모습을 흩어본 회색의 절대자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틀렸다.
이 신체로도 이렇게 많이 제약이 걸리다니?
흑염 권능으로 증폭된 신체를 통제하는데 연산력이 엄청나게 들어가서 권능을 사용할 수가 없다.
이러면 현자계열의 능력은 전혀 못 쓰겠군.”
단숨에 흑염 권능의 장단점을 파악한 회색의 절대자는 어이가 없었다.
“광전사 주제에 입문하는데 현자의 정신 능력과 연산력이 필요하다니 어처구니가 없구나.
최고위 현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광전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잖아?
그걸 억지로 시키지 않는 한 누가 하겠는가?
내가 익혀도 머리를 쓰는 대신에 힘만 내세우는 저런 멍청이가 될 것 같은데 말이야.
현자라면 반드시 거부하겠군.”
미래의 절대계 최고의 현자였던 이대 흑염의 절대자가 겪었던 운명이었다.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한 일대 회색의 절대자는 흑염 책 탑에 그대로 던져넣었다.
“일단 봉인이다.
참고만 해야겠어.”
흑염 정석을 받아들인 책 탑의 쇠사슬이 한층 더 굵어진다.
좌르르르르-!
그렇게 흑염 정석의 처리를 끝낸 회색의 절대자는 이상함을 깨닫는다.
흑염 권능을 사용하면 권능을 사용할 수 없는데 엄청난 연산력이 필요한 차원권능을 불가사의한 수준까지 익힌 차원창세신 코아의 존재였다.
“차원창세신 코아는 어떻게 흑염 권능을 익히고도 차원권능을 사용하는 것이지?
정보행성 이데아를 통한 절대계 최강의 분석능력조차 차원창세신 코아의 신령 방호벽이 튕겨냈다.
루카 에일레스처럼 돌연변이인가?
신체 능력이 아닌 정신 능력에 특화되어 있는가?
어느 쪽도 가능성이 있어.”
정신 방호벽과 충돌하며 얻은 단편적인 정보로 차원창세신 코아가 어떤 존재인지 유추하기 시작한 일대 회색의 절대자의 표정은 심각하기 짝이 없었다.
분석 불가로 판정이 되는 것이다.
“이 정도의 창조신을 절대계와 우리가 언제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중용을 해야하나 십중심의 반란을 돕는 정확한 목적을 모르겠으니 추방을 하기는 해야 한다.
아깝구나.”
신족 출신의 십중심들이 차원창세신 코아의 추방을 결정하면서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이유를 확실히 느낀 회색의 절대자였다.
그리고, 영웅신의 열 배라는 말도 안 되는 입문 조건에 화를 낼까 봐서 서둘러 빠져나온 차원창세신 코아는 다음 방문지로 향한다.
바람의 절대자 한진호의 개인 신전이었다.
끼이이이이잇!
거대한 위패 모양의 개인 신전의 대문을 열고서 들어간 차원창세신 코아의 눈에 가부좌한 바람의 절대자의 등이 보였다.
그의 앞에는 여전히 백여 개가 넘는 위패가 있었고, 향이 끝없이 타오른다.
“어르신. 제가 돌아왔습니다.”
“….”
깊은 명상에 빠진 모양인지 대답은 없었다.
대신에 벽면의 위패들이 진동한다.
후우우우우웅! 화아아아아아!
향로의 연기가 위패 사이를 지날 때마다 투기가 진동했다.
자욱한 향 연기 속에서 바람의 절대자와 일백 명이 넘는 무사의 그림자가 전투하는 모습을 확인한 차원창세신 코아는 그 뒤에 조용히 앉아서 지켜보았다.
‘마음으로 전투하는 심상 전투인가?
조상의 영령이 도우니 심령 전투로군.’
영혼들이 조종하는 환상의 전투능력이 놀라울 정도였다.
단지 연기로 만들어진 환영들이 보이는 결투에 불과한데도 눈이 따라갈 수 없이 빨랐다.
구구구구구궁! 가가가가가강!
위패들의 진동이 거세질수록 백 명이 넘는 바람가 조상들의 환영이 강해지며 홀로 싸우는 바람의 절대자의 환영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그러나, 최강의 초월자라는 사실을 증명하듯이 하나둘 쓰러트려 간다.
과득! 퍽! 으적!
모든 공간을 휘몰아치는 목검에 의해서 조상들의 영혼이 만든 환영이 전부 쓰러진다.
후우우우우-!
이제 홀로 남은 바람의 절대자의 연기 환영이 신체의 코로 흡입되는 것으로 끝났다.
그와 동시에 가공할만한 죽음의 기운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사사사사사사사사(死死死死死死死死)!
어지간한 정신체는 접촉만으로 죽여버릴 만한 죽음의 기운이었으나, 차원창세신 코아는 태연하게 받아내었다.
“제가 맞습니다.
어르신.”
죽음의 기운에도 멀쩡한 차원창세신 코아를 확인한 바람의 절대자는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왔느냐?
유감스럽게도 이제 나도 너를 지켜줄 수가 없구나.
주변의 반대가 너무 심하다.
그러니 안전하기를 원하면 황금 세력을 떠나도록 해라.
추적은 막아주겠다.”
“상관없습니다.
제 목숨은 제가 알아서 챙기겠습니다.”
“후! 십중심들에게 보이는 그런 무모한 태도가 가장 문제였다.”
바람의 절대자가 서서히 몸을 돌려서 자신을 쳐다보자 차원창세신 코아는 아공간 속에서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그것은 검붉은 표지로 만들어진 또 다른 흑염의 정석이었다.
“흑염의 절대자가 저술한 흑염의 정석입니다.
원본은 회색의 절대자에게 갔습니다.
이건 제가 만든 사본입니다만 보여드리러 왔습니다.”
“….”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둥둥 떠서 다가오는 흑염 정석을 지켜본 바람의 절대자는 한마디만 했다.
“난 이걸 살 정기가 없다.”
위력만 따지면 바람가의 오의를 능가하는 절대계 최강의 파괴력을 가진 흑염 권능이었다.
그런 절대 권능을 제대로 익힐 수 있는 흑염 정석에도 바람의 절대자가 별 관심이 없다.
차원창세신 코아는 역시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더욱 깊숙이 숙이며 말한다.
“바람가 오의를 익히게 해주신 어르신께 제가 어찌 대가를 바랍니까?
단지 보아주시고, 감상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좋다.”
바람의 절대자도 흑염 정석의 유혹을 완전히 뿌리치기는 힘든지 눈앞에 떠 있는 책을 잡고서 빠르게 읽어간다.
파라라라라라라!
일대 회색의 절대자와는 달리 영웅신의 열 배라는 입문 조건에도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혼잣말을 한다.
“흑염 권능이 겨우 열 배만 필요하다니?
뜻밖에 문턱이 낮군.
이러면 위력이 줄어들 텐데?
어쩔 수 없이 줄였나?”
같은 투기계열의 십중심으로서 어느 정도 흑염 권능을 파악하고 있는지 거침없는 이해였다.
단숨에 흑염 정석을 읽어가는 바람의 절대자의 기세가 변한다.
폭탄이 연달아서 폭발하는 굉음이 신체 전부에 울린 것이다.
구궁! 구구구구구구구구궁!
바람의 절대자를 휘감던 투명한 죽음의 기운이 일순 사라지고, 검은 불길에 휩싸인 투신의 환영이 나타났다.
“왓!?”
일대 흑염의 절대자와 비견될만한 수준의 흑염 권능을 감지한 차원창세신 코아가 놀라는 그 순간이었다.
사사사사사사사사(死死死死死死死死)!
바람의 절대자가 생성한 흑염 권능이 죽음의 기운에 제압당해서 순식간에 사라져간다.
탁!
흑염 정석의 마지막 장을 덮은 바람의 절대자는 다시 돌려주면서 말한다.
“역시 위력은 좋다.
그러나, 너무 흉포하고 강력하다.
나조차 정점에 이룰 수 없고, 다른 존재는 중간 단계조차 어려운 파괴의 권능이로구나.
완벽히 익힐 수 있는 존재는 루카 에일레스 본인밖에 없을 것이다.
이건 계승과 발전을 전제로 하는 무가(武家)인 바람가와는 맞지 않는다.
가지고 가거라.”
흑염 권능을 완벽하게 익힐 수 없다고 말은 하지만, 단지 흑염 정석을 읽는 것만으로 일대 흑염의 절대자와 비등한 흑염 권능을 보인 바람의 절대자였다.
바람가 마도신의 오리진과 엄청난 대련을 하면서 겨우 몸으로 익혀낸 차원창세신 코아는 경이로울 수밖에 없었다.
‘십중심의 고유권능조차 가능하다면 바로 익혀낸다.
이게 십중심의 재능인가?’
죽음의 기운으로 흑염 권능을 완벽하게 제거한 바람의 절대자는 심유한 눈빛으로 고개를 숙인 차원창세신 코아를 쳐다보았다.
“네가 가져온 흑염 정석은 절대계에 다시 없을 보물이다.
내용 자체만 보면 놀라운 투기제어와 신체조작이었다.
아주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무엇을 바라느냐?”
그 짧은 사이에 날뛰려던 흑염 권능을 모두 제거하고, 본래의 안정된 존재감을 되찾아버린다.
왜 십중심이 절대계의 보물인지 다시금 깨달은 차원창세신 코아는 허리를 숙이면서 외치듯이 말한다.
“투기는 초월자의 근본입니다.
그중 최강은 바로 바람가이며 바람의 절대자입니다.”
“아부는 그만하고, 용건만 말해라.
될 수 있는 대로 들어주마.”
머쓱해진 차원창세신 코아는 바로 요청을 한다.
“바람가의 오의를 죽음의 기운이 아닌 흑염 권능을 기반으로 익힐 수 있게 개조해서 하나만 전수해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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