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차호(次湖)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에 진리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쯧쯧! 너의 선조들이 무능해서 못 잡은 것이 아니다.
원래 그런 존재들이지.
그런데 역시 흑염 군단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되는가?
영웅신이자 범죄신이었던 그들은 흑염 군단이 되었어도 감화가 전혀 안 되는구나.
압도적인 폭력과 절대적인 직감으로 완벽한 통제를 하던 흑염의 절대자가 사라진 그들은 흑염의 본능에 먹혀서 결국에는 파괴신이 된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허공에 아공간이 열리면서 커다란 상자가 하나 나타난다.
“이제 기회와 시험은 끝났다.
흑염 세력은 원래의 운명대로 모두 칭호로 바꾸어 강제로 봉사하게 하겠다.
그런데 너와는 절대로 싸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걸 이용해서 흑염 군단을 전장으로 끌어내서 끝장을 내라.”
삼 미터가 넘는 커다란 검붉은 상자가 심상치 않은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스으으으으-!
‘호오? 이거 엄청 으스스한 투기와 살기인데?
영원체인 나를 위협할만한 물건은 거의 없는데 도대체 뭘 까?’
차호는 선물을 받은 어린애처럼 두근거리면서 상자를 벗기자 엄청난 크기의 양날 도끼가 위용을 드러낸다.
영원체조차 불태울 정도로 뜨거운 열기와 파괴력이 전해지는 엄청난 절대기였다.
“이…이것은 뭐죠?”
과연 기세에 어울리는 설명이 따라온다.
“흑염 군단의 군단장이었던 일대 흑염의 절대자가 직접 사용하던 절대기 파호톤이다.
흑염 군단의 광기를 어느 정도 억누르며 지휘할 수 있는 지휘용 절대기이기도 하지.
살겠다는 본능만 남아서 폭주하기 시작한 흑염 권능을 억눌러야 하는 그들은 이 절대기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와아-! 절대기에 광전사의 정화나 다름없는 흑염 본능까지 통제하는 지휘 기능도 있었어요?”
“그렇다.
일대 흑염의 절대자의 완력을 견딜 수 있는 신기는 원래 없었다.
하지만, 차원창세신 코아가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다시 나온 차원창세신 코아의 이름에 차호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헤에? 이런 다중 기능의 절대기조차 만들 정도면 굉장히 유능하기는 했군요.”
“착각이다.
흑염 권능을 버티는 신기를 만들어 준 것은 분명 차원창세신 코아가 맞다.
그런데 흑염 군단의 지휘용 절대 신기로 진화시킨 것은 루카 에일레스가 한 일이다.”
진리는 다시 확인하듯이 강조한다.
“흑염 군단의 지휘부(指揮斧)이기도 한 이 파호톤은 흑염 본능을 권능으로 구현하여 분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귀중한 절대기이다.
이것이 있는데도 아직 흑염 일족을 만들 정도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없어지면 수백억 년이 추가로 들어갈지 모른다.
흑염 군단을 외계로 놓치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예! 걱정하지 마세요.
잘 쓰고 돌려드릴게요.”
확실히 대답은 하나 장난기가 섞인 대답에 준엄한 진리의 경고가 들려온다.
“만약 흑염 군단을 처리하지 못하고, 파호톤을 빼앗기는 날이면 회수할 때까지 절대계에서 추방한다.
그리고, 본가에 복귀 금지다.그게 싫으면 정해놓은 혼처와 당장 결혼해서 후손을 낳아야 할 것이다.
너의 반려로 내정된 아이가 결심을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해라.”
“….”
그 말에 더없이 창백해진 차호(次湖)는 더듬거리면서 대답했다.
“거…거신족 반려는 너무해요!
그것도 가장 큰 행성 거신족이잖아요?
그런데 상대를 어떻게 해요?”
자신의 반려 후보가 결정되었다고 들떠서 나갔다가 정말 말 그대로 위성 크기의 거신족 여신이 나와서 기겁해버린 차호(次湖)였다.
‘이거야말로 마음대로 상대를 선택할 수 없는 명문가의 비애야.’
차호(次湖)의 투정에 진리의 대답은 단호했다.
“차원권능을 익힌 너의 상대는 그 아이밖에 없다.
다른 여성은 너를 절대로 감당할 수 없어서 후손이 태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너와 그 아이 사이에서는 분명히 절대계의 역사를 다시 쓸 최고의 후손이 태어날 것이다.”
차원권능으로 인하여 워낙 자신이 특이해졌기에 이 말이 진실임을 잘 아는 차호(次湖)는 반항을 바로 포기했다.
“어휴! 알겠어요.
실패하면 바로 후손을 보고 찾아오도록 하지요.
약속할게요.”
“그럼 잘 마무리 지어라.
필요하면 얼마든지 도움을 요청하라.”
“예.”
진리와의 통신이 끝나자 흑염 군단을 지휘하는 절대부(絶代斧)인 파호톤을 조심스럽게 손에 쥐면서 차원권능을 집중했다.
신기에 담긴 기억을 읽으려는 것이다.
‘어디 보자.
너는 어떤 힘을 숨기고 있니?’
워낙 오래된 일이라서 잡음이 울렸으나, 차원권능으로 곧 선명한 영상이 떠오른다.
파지지지직!
처음에 떠오른 상대는 회색의 로브를 쓴 창조신이었다.
그는 파호톤을 양손으로 들어 올려 누군가에게 보이면서 은근한 어조로 협상하고 있었다.
“이제 흑염 군단의 군단장이 되셨으니 언제까지 맨주먹에 알몸으로 싸울 수는 없습니다.
부하들의 복장도 당연히 주변의 시선과 체면이 있으니 막 입힐 수는 없지요.
쓸만한 절대기와 갑옷이 대량으로 필요하시지요?
그런데 일반 신기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흑염 권능의 불길에 전부 재가 되어버릴 테니까요.
그래서 여기 제가 준비해 두었습니다.”
일천 벌의 검붉은 갑옷과 신기가 아공간에서 나타난다.
놀라운 신기의 품질을 파악한 삼 미터가 넘는 근육질 거인과 영웅신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그 말대로 흑염 권능이 너무 강해서 버티는 신기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 고민이었는데 바로 해소된 것이다.
“카하하하하하! 이건 흑염 군단을 위한 특제 신기입니다.
사소한 문제가 있는데 아주! 무척! 어마어마! 엄청나게 비쌉니다.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보급품처럼 공짜로 못 드립니다.
귀한 원재료부터 시작해서 반란 직전이다 보니 요즘 저의 인건비가 끝장나게 올랐거든요.
지금 저를 보시면 알겠지만 무척 곤란할 정도로 청탁과 부탁이 들어옵니다.”
양손을 펼친 차원창세신 코아의 옆에는 마치 비서처럼 화려한 복장을 한 여마신왕들이 따르고 있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영웅신들의 눈이 몽롱하게 풀릴 정도로 매혹적인 서큐버스 여마신왕들이었다.
그들을 마치 자신의 여자들처럼 어깨동무하는 모습에 어떤 상황인지 바로 짐작이 갔다.
‘소마(笑魔)가 이들을 붙여주었단 말이지?
크게 투자하는군.’
그녀들이 소마(笑魔)가 딸처럼 애지중지하던 비장의 전력임을 파악한 흑염의 절대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보인다.
요즘 아주 잘 나간다는 소문도 들었다.”
“이 비싼 걸 어떻게 사시렵니까?
설마 지금처럼 대충 입고서 출정식에 나서실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부하들의 입장도 생각하셔야지요.
흑염 사장님.”
“젠장! 내 사정을 너무 잘 아는구나.”
흑염의 절대자가 염원하던 흑염 군단을 만들고 보니 정말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특히 전신 갑옷과 신기가 가장 문제였다.
‘내 흑염 권능에 강화된 영웅신들에게 일반적인 신기는 버틸 수가 없다.
잘못하면 모두가 진짜 발가벗고, 맨손으로 싸워야 할 판국이다.
나 혼자면 모를까 집단으로 그러면 완전히 미친놈들로 소문이 날 것이니 그럴 수는 없다.’
착용하지 않았는데도 강대한 신력과 존재감을 풍기는 신기와 전신 갑옷에 영웅신들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모습을 보니 포기할 수도 없어 보였다.
‘이건 반드시 얻어야 한다.
그런데 이 녀석이 도대체 뭘 원하기에 이렇게 노골적이야.’
현 상황에서 포기할 수 없는 물건을 내놓고, 강매하려 하니 기가 막힌 표정이 된 흑염의 절대자였다.
이 정도로 준비를 해왔으면 직감으로 파악해도 결과는 보나마나이니 직설적으로 묻는다.
“뭘 바라느냐?
참고로 내 전 재산은 주머니 속의 동전 몇 개다.
정기도 영역도 없어.”
이제야 거래할 준비가 끝났음을 안 차원창세신 코아는 거침없이 용건을 이야기한다.
“정기는 사업으로 벌면 됩니다.
요즘같은 시대에 골치 아픈 영역을 가져서 뭐합니까?
사업이 최고입니다.”
“그래! 너 잘나서 잘 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간단하게 말해라.”
“흑염 사장님은 이제부터 권능에 관해서 공부를 시작하십시오.
흑염 권능을 완전히 분석하여 저에게 자료를 넘기시면 됩니다.”
“응?”
흑염 권능을 분석해서 넘겨달라는 뜻밖의 제안에 흑염의 절대자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지만, 차원창세신 코아로서는 가장 다급한 일이었다.
‘약하면 사라진다는 이유 없는 심각한 위기감이 몰려오고 있다.
그런데 빠르게 강해질 방법이 없다.
바람가의 오의를 추가로 배우려니 목숨의 여벌이 없다.
십중심의 고유 오의 중에서 그나마 가장 만만한 것이 흑염 권능인데 이것도 글렀다.
워낙 상식을 초월한 신체 능력과 직감을 기반으로 해서 회색의 절대자도 거의 포기했어.
흑염 책 탑의 분석자료조차 눈을 가리고, 여기저기 더듬는 수준이라서 진짜 못 알아먹겠다.
역시 본인이 직접 분석해야 해.’
차원창세신 코아가 속으로 투덜거리는 동안에 흑염의 절대자는 인상을 확 구기면서 묻는다.
“나보고 공부를 하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현명해지면 직감이 약해져서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지?
지금 상황에서 내가 약해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면서 그러는 것이냐?”
“잘 알고 있습니다.”
십중심의 정예세력이 속속 집결하는 상황이다.
그동안 숨겨놓았던 워낙 강자들이 많아서 영웅신의 집단인 흑염 군단도 가호를 내려주는 흑염의 절대자가 약해지면 단숨에 뒤로 밀릴 판국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책은 있습니다.
흑염 권능의 분석을 완료하여 전수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넘기시고, 관련 기억을 싹 지우면 되지 않습니까?
이미 한번 해보셨다면서요?”
확실한 대책이기는 한데 들어가는 수고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허어? 공부하고 기억을 지워?
남의 일이라고 너 참 쉽게 말한다.
네가 아니었으면 이미 박살을 내놓았다.”
“원래 객관적인 해답이 거슬리는 법입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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