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걷힌 차원 결계 너머로 방금 일을 보고서 눈동자가 커질 대로 커진 용신제와 고위 용신족들을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좌아아아아아!
이들은 용신족의 희망이 될 황녀를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전투태세를 완전히 갖추었다.
하지만, 온몸이 정체 모를 위기를 느껴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들에게 빈 술병을 던지면서 명령한다.
“술 두 병과 안주를 추가로 가져와라.
먹을 만 하구나.”
그제야 그들의 몸과 입이 움직였다.
“옛! 어르신!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자신들도 모르게 빈 병을 공손하게 받아들고서 외친 용신제와 고위 용신족들은 모두 도망치듯이 대전에서 물러났다.
그들에게 시선을 거둔 바람의 절대자는 차원창세신 코아가 채워 놓았던 술잔을 잡아간다.
그 순간 분명히 죽어있던 차원창세신 코아의 입이 힘겹게 움직인다.
“제…제 겁니다.”
완전한 생명으로 부활한 것이다.
이렇게 빨리 되살아날 줄 몰라서 살짝 놀란 바람의 절대자는 차원창세신 코아의 술잔에서 손을 떼었다.
“목숨이 세 개라는 말이 사실이었구나.
그런데 나의 투기가 불러온 죽음까지 한 번으로 끝냈는가?
너에게 그런 완벽한 목숨을 내린 영원체가 누구인지 정말 보고 싶을 정도로 대단하다.”
바람가 마도신의 오리진에게 받은 완벽한 생명이 전신파도격(全身波濤擊)에 의해서 하나 사라졌다.
그리고, 진짜 돌아버릴 만한 사실을 파악한다.
‘어떤 미친 자식이 내 완전한 생명을 허락도 없이 사용했다.’
완전한 생명 세 개 중 하나는 이대 흑염의 절대자와 복수전을 벌였던 미래 회색을 위해서 사용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 분명히 남아있어야 할 두 개 중 하나가 증발해 있었다.
‘누구야?
미래의 미친 회색인가?
아니면 아이언이냐?
누구이든 용서하지 않겠다.’
완전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해야 했던 이대 흑염의 절대자의 토벌과정을 생각하면 미칠 노릇이었다.
그렇게 절반 정도 눈이 돌아간 차원창세신 코아에게 바람의 절대자가 혀를 차면서 경고한다.
“쯧! 목숨이 여러 개라서 아직도 여유가 있느냐?
집중하라.
이제 내가 투기를 집중시킨 과정을 그대로 하여 죽음의 기운을 수습해서 신체 외부로 방출하라.
그러면 오의 전수는 끝난다.”
심장을 파고들어서 전신으로 퍼진 죽음의 기운을 자력으로 회수하라는 말이었다.
말도 안 된다고 항의하고 싶지만, 이미 그럴 여력이 없었다.
또 죽음의 기운이 발동되고 있었다.
“커허! 허헉!”
차원권능이 아까 보였던 투기를 모으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한다.
당연히 거슬리려는 죽음의 기운을 흑염권능이 악착같이 발버둥을 치면서 끌어내면서 모은다.
화아아아아!
이 과정에서 못 견디고, 소멸하려는 신체의 붕괴를 황금의 불변(不變)이 막아내면서 파란 보호막이 유출을 방지한다.
그리고, 죽어가는 신체를 근원의 생명력이 치유한다.
우지직! 두두두둑-!
그동안 익혀왔던 모든 생존에 관련된 권능이 총동원되어서 바람의 절대자의 죽음의 기운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렇게 전력으로 잠시는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죽음과 소멸의 개념이 없는 영원체조차 죽여버리는 바람의 절대자의 살기(殺氣)는 수준이 달랐다.
드드드드득! 슈아아아!
황금의 불변(不變)이 머물었던 뼈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근육이 녹아내리면서 파란 방어막을 녹이기 시작한다.
차원권능의 창조력과 흑염권능의 강화력이 죽음의 기운에 밀려난다.
‘커어어억! 역시 실패다.
이대로는 죽는다.’
목숨의 여벌도 없다.
이제 죽으면 진짜로 끝이며 진리가 말한 죽기보다 더한 꼴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차원창세신 코아의 마음은 공포에 물들어간다.
그리고, 죽기 직전의 주마등처럼 자신이 겪어왔던 과거가 생각이 났다.
파파파파파파파파!
‘대공동에서 하이엘프 제국과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사투를 벌였던 유년기.’
‘진리에게 차원권능을 받아서 신이 되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던 소년기.’
‘마침내 마도신이 되었으나 받아주는 신계가 없어서 용병신으로 떠돌던 청년기.’
‘출세의 희망을 버리고, 은거하려고 돌아왔던 고향에서 신계에 토벌당할 뻔했다가 신계 주신이 되어버린 성년기.’
‘수많은 명문일족의 견제와 순수한 신족 부하들의 반항에 힘겨워하던 신계의 생활.’
‘바람가 차원의 오리진과 이대 회색의 절대자의 충돌에 말려들어서 현세계에서 만신창이로 떨어진 신령.’
‘유모들의 비협조와 희박한 정기밀도로 영양실조에 허덕이다 어이없게 마신황제와 공멸했던 비참한 결말.’
어디에도 내세울 수 없는 힘겨웠던 삶이었다.
그리고, 지금 역시 그러했다.
‘진리님에게 도움을 받아서 다시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지금은 바람가의 오의를 욕심내서 익히려 했다가 죽어가는가?’
이렇게 끝내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된다면 어떤 벌을 받아도 마음의 고통만큼 심할 것 같지 않았다.
‘도…도와줘!
너무나 억울해서 이렇게 끝날 수는 없어.’
그러나, 여기는 일천억 년이나 떨어진 절대계의 과거였다.
바람의 절대자의 살기(殺氣)에 죽어가는 이상 누구도 도와줄 수 없고, 그럴 존재도 없었다.
유일하게 살려줄 수 있는 바람의 절대자는 술잔을 기울이면서 결과만 기다릴 뿐이었다.
‘이런 최후는 농담도 아니야!
나는 진리님의 은혜에 아직 아무것도 대가를 지급하지 못했단 말이다.
진리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도와달란 말이다.’
진리의 자랑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오래는 살고 싶었다.
그것 하나만이라도 이루려고 수많은 생존권능을 만들어왔다.
‘이제까지의 삶의 과정에서 최후에 믿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내 미래와 과거가 힘을 합치면 이 오의를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정보행성 코아에 연결되어있는 이대 회색의 절대자와 은하유성 아이언의 존재를 어렴풋이 확신했기에 비상구조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다.
오히려 자기 일은 알아서 하라는 핀잔 섞인 메시지만 미래인 이대 회색의 절대자에게 날아올 뿐이었다.
그리고, 연결이 지독하게 흐릿한 은하유성 아이언에게는 물음표만 찍혀온다.
‘이 미친 자식들아! 돕기 싫으면 너희가 쓴 내 완전한 생명의 대가라도 내놔라!
그건 온전한 나의 것이다.
내가 이 꼴이 되기 전에 이루었던 흐름을 너희는 따라간 것뿐이다.
내 생명을 갚으란 말이다!’
그 말에 정보행성 코아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이대 회색의 절대자의 한숨이 서린 메시지가 전달된다.
‘하아. 이 미친 과거 자식.
바람의 절대자의 죽음의 기운을 전부 몸에 담고서 살아남기를 바라는가?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그러나, 완전한 생명의 획득은 분명 너의 공적이 맞다.
내가 하나 사용했으니 이번만은 전력으로 도와주지.
그러나, 그래 보았자 거기는 일천억 년의 과거다.
정보행성 코아를 통한다고 해도 죽음의 기운이 불러오는 필사(必死)의 확률을 팔 할 정도 깎을 뿐이다.
잔류 죽음의 기운의 제어는 너에게 달려있다.
나머지 이 할로도 너는 반드시 죽으니 전력으로 발버둥을 쳐라.’
정보행성 코아에게서 위성포처럼 회색의 거대한 빛기둥이 방출되면서 차원창세신 코아의 신령을 곧바로 친다.
투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일천조의 신력이 담긴 회색의 권능이다.
압도적인 신력의 차이로 순간적으로 바람의 절대자의 죽음의 기운을 신체에서 씻어내면서 원래 퍼져 나왔던 심장에 몰아넣었다.
막 녹아내리려던 차원창세신 코아의 신체가 다시 원상 복구되고, 심장에 죽음의 기운이 응축되자 바람의 절대자는 감탄했다.
“호오? 내 죽음의 기운을 제어했다.
역시 숨겨둔 힘이 있었구나.
그렇지 않았다면 감히 십중심에게 덤벼들 리는 없겠지.
대단해.”
바람가가 대대로 계승하고, 강화해온 죽음의 기운을 받고도 이렇게 끈질기게 버티는 존재는 영원체 외에는 본 적이 없었기에 나온 찬사였다.
‘그러나, 조금 부족하군.’
죽음의 기운을 심장에 몰아넣은 회색권능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제 다시 퍼져나가려는 죽음의 기운을 황금빛의 회오리가 휘감기 시작한다.
구구구구구구구구궁!
심장을 맹렬한 기세로 휘감은 투기의 소용돌이는 놀라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황금의 불변(不變)이 담겨있었다.
“그렇게 막아내는가?”
황금의 절대자의 후계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거의 완벽한 황금권능이었다.
죽음의 기운이 어쩌지 못하는 존재는 두 명 중 하나의 권능이 찬란하게 빛나면서 죽음의 기운을 심장에서 압축시켜간다.
기기기기기기기기기-!
황금 투기의 회오리로 바늘처럼 가늘어진 죽음의 기운이 요동친다.
주인이 아닌 다른 존재의 통제를 거부하는 본능적인 발동이었으나, 더한 흉성을 가진 권능이 이빨을 드러낸다.
위협적인 사냥감이 약해지자 전력을 드러낸 흑염권능이었다.
크르르르르르르르!
회복된 신체에서 미쳐 날뛰면서 덮쳐들려는 맹수의 울부짖음이 울린다.
마치 전신 갑옷처럼 검은 불길이 신체 전부를 덮으면서 유형화된다.
그리고, 이형의 야수를 만들어간다.
꽈지지지지지직!
마치 용신족이 인간형태로 변화한 것처럼 용의 비닐처럼 단단한 피부와 머리, 날개가 추가된다.
그리고, 무수한 마수의 특성이 나타나서 흑염권능이 만들어낸 투기 갑옷에 더해진다.
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차원창세신 코아의 신체를 감싸면서 점점 특정한 갑옷의 형상을 잃어가는 투기의 갑옷은 구형의 알의 형태로 바뀌었다.
수많은 마수의 머리가 서로를 물어뜯고 싸우는 모양의 알껍데기를 바라본 바람의 절대자는 이번에야말로 경악했다.
“이건 흑염의 절대자 루카 에일레스님이 인증전에서 보여준 완결의 마수(完結의 魔獸)의 초기형태?
도대체 너는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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