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
팟! 휘이이이! 휘이이잉!
새로운 향에 일제히 불이 붙으면서 연기가 자욱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위패 앞에서 마치 작은 사람의 형상처럼 형태를 만들면서 일렁거린다.
후이이이이! 우우웅!
일대 회색의 절대자의 눈에도 일백 명이 넘는 작은 인간의 형상이 위패들 앞에서 가부좌하는 자세가 똑똑하게 보였다.
당했다는 낭패의 표정이 떠올랐다.
“이런? 설마?”
위패에는 바람가의 선조들의 영혼들이 모셔져 있었다.
물론 초월자가 아닌 인간의 영혼들이다.
‘저들은 인간으로 죽었으나 지옥이나 천국에 가지 않고 위패에 남아서 후손들을 지킨다.’
환생조차 거부하고, 오로지 가문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서 위패에 머문 귀신이 된 것이다.
‘존재를 최소화해서 영겁의 시간을 버티고 있다.
겨우 생각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도지.’
그래서 저들의 모습은 바람가의 직계 외에는 보기 힘든데 이렇게 뚜렷한 모습을 보이게 하니 놀라운 일이었다.
‘저 향 탓인가?
귀신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하는가?
이놈은 별걸 다 만들 수 있군.’
겨우 바람가의 역사를 가지고, 이런 신기를 만들었다니 어이가 없기는 했다.
그리고, 바람의 절대자의 등 뒤에 있는 파멸유혼검이 소리를 토해내자 안색이 무섭게 굳어간다.
“반.드.시.지.켜.라.
가.문.의.영.광.을.위.하.여.”
목검의 떨림은 수백 명이 합창하듯이 지르는 목소리와 같았다.
위패 앞에 연기로 형상을 드러낸 바람가의 조상들이 일제히 입을 움직이는 모습을 흩어본 바람의 절대자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한다.
“이래서 안 되겠군요.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
바람의 절대자가 바람가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한 조상들을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대 회색의 절대자는 이를 부득 갈면서 위패들과 파멸유혼검을 노려보았다.
‘으득! 가문 때문에 죽지도 못하는 망령들이 끝까지 발목을 잡는구나.’
영원히 사는 정신체에게 조상이 중요할 리가 없었다.
더구나, 초월자도 못 된 귀신들 주제에 이렇게 십중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정상으로 보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바람의 절대자에게는 이들이 조상이기 전에 자신을 키워주면서 가르쳐준 전부였다.
‘이들이 가문의 대를 반드시 이어야 한다고 압박을 주니 바람의 절대자가 꼼짝도 못 하지.
바람의 절대자에게만은 숨기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
자신이 만들어 놓았던 십중심에 대한 분석자료가 차원창세신 코아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은 다른 십중심들에게는 알려주었다.
그들의 분노는 컸지만, 제한적이었다.
‘그들은 개인신상자료 정도로 알고 있지.
각자 자신의 권능에 대한 자부심이 크니 겉으로 보아서는 익힐 수 없다고 생각한 탓이다.
그러나, 내가 권능을 대부분 분석해놓았음을 알면 절대계가 뒤집힌다.’
책의 탑 형태로 분석해놓은 자료를 자격이 있는 존재가 보면 어느 정도 익힐 수가 있었다.
그럼 아무리 자신이라고 해도 무사할 수 없기에 숨긴 일대 회색의 절대자는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관찰로 파악한 다른 십중심과는 달리 바람의 절대자의 자료는 서로 연구해서 만들었기에 거의 원본 수준이다.
내가 실수로 유출 시켰다는 사실을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바람의 절대자가 분노하여 정보행성 이데아로 달려오는 모습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황금의 불변(不變)은 대책이라도 세울 수 있는데 일백팔대를 내려오면서 확장하고 발전해온 바람가의 오의는 분석조차 벅찰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역할이 있으니 죽이지는 않겠지만, 다시는 얼굴을 들 수 없다.’
한참 고민하던 일대 바람의 절대자는 사정을 털어놓았다.
“내가 차원창세신 코아와 현자의 승부를 겨루다가 십중심의 자료를 복사당했네.
암호는 걸어놓았지만, 연구자료라서 그렇게 높은 수준이 아니야.
차원창세신 코아가 완전히 풀기 전에 회수하던가 없애야 해.”
“!!!”
그 말에 입을 딱 벌린 바람의 절대자는 믿을 수 없다는 시선을 일대 회색의 절대자에게 보낸다.
자신이 대화하고 있는 상대가 진짜 본인인지 의심스러워하는 눈빛에 헛기침만 한다.
“험! 험!”
솔직히 자신도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잠시 화면과 차원창세신 코아를 번갈아 바라보던 바람의 절대자는 주먹을 쥐고서 일어선다.
“없애야겠군요.”
바람의 절대자는 불안정하면서 살기가 넘치는 오의들을 완성 시키기 위해서 회색의 절대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와중에 가지고 있던 분석자료들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잘 알기에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위패들과 파멸유혼검이 떨리면서 음성을 만들어낸다.
“바.람.가.의.혈.족.이.아.니.면.습.득.은.불.가.능.하.다.”
바람가는 일대전승(一代傳乘)도 아닌 독자전승(獨子傳乘)의 가문이다.
그 이유는 워낙 오의의 습득이 어렵고 힘들기에 바람가의 혈족이 아니면 불가능한 탓이었다.
“안.죽.고.익.힐.수.있.다.면.해.봐.라.”
가문의 오의와 혈족에 대한 자부심이 철철 넘치는 단언이었다.
“너.는.저.자.를.지.켜.라.
가.문.이.먼.저.다”
이 발언에 일대 회색의 절대자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 망령들아! 가문이 먼저가 아니야!
절대계가 무너질 수가 있단 말이야.”
그러자 차원창세신 코아가 만든 향의 수천 개가 동시에 뽑히면서 각자의 향로에 박혀서 일제히 타오른다.
그리고, 이제 안개처럼 자욱해진 향 연기 속에서 바람의 절대자와 너무나 비슷한 모습의 인영들이 드러난다.
“이게 우리의 답이다.”
그들은 경악한 표정의 일대 회색의 절대자의 화면을 지나쳐서 차원창세신 코아에게 향했다.
샤아아아아!
바람의 절대자의 파멸유혼검이 스스로 허공에 떠올라서 그들의 뒤를 따른다.
그리고, 차원창세신 코아에게 걸린 전신파도격(全身波濤擊)을 제거한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다!
온몸을 두들겨 패는 목검의 연타 속에서 터지기 직전이었던 신체가 안정을 되찾아간다.
너무 익숙한 타격에 어리둥절해진 차원창세신 코아의 주변을 둘러싸고서 그들이 외친다.
“우리가 너를 도울 것이니 너도 우리를 도우라.”
그 말과 동시에 향 연기가 약해지자 그들의 모습도 흐릿해진다.
다급하게 위패로 돌아가는 그들은 일대 회색의 절대자에게 다짐을 받듯이 외쳤다.
“세계가 멸망할지라도 가문과 후손이 우선이다!
빨리 가문의 대를 이어라.”
명령조였는데도 바람의 절대자는 아무런 불만을 표하지 않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가문을 모든 것을 희생한 조상님들은 충분히 이러시는 명분과 이유가 있다.’
멀쩡해진 차원창세신 코아와 묵묵히 새로운 향을 갈아가는 바람의 절대자는 쳐다본 일대 회색의 절대자는 완전히 일이 망쳤음을 알고서 분통을 터트렸다.
“이이! 도둑놈! 이번에 살았다고 방심하지 마라.
너를 끝장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복사해간 자료를 반환한 후에 기억 제거를 받아들인다면 용서해주마.”
우둑! 우둑!
전신파도격(全身波濤擊)의 여파를 벗어난 차원창세신 코아는 몸을 풀면서 일어나 외쳤다.
“젠장! 현자의 승부에서 정당하게 획득한 자료를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맙시다.
쪼잔한 영감!”
“뭐야! 후환이 두렵지 않으냐?
겨우 도망에 특화된 그 정도 힘으로 감히 내게 덤벼!”
분노가 폭발한 일대 회색의 절대자에게 차원창세신 코아는 더욱 기세를 올려서 당당하게 외쳤다.
“차원 문조차 생략할 수 있는 차원권능을 가진 내가 도주하면 어떻게 잡을 것인데?
일격에 나를 죽일 수 있는 지금의 바람의 절대자님을 제외하면 절대로 없어.
이것도 내가 기습을 허용하거나, 자기 발로 찾아가야 하지.
그런데 이런 일이 아니면 내가 근처에라도 갈까?”
“이이!”
솔직히 맞는 말이었기에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진 일대 회색의 절대자였다.
“직접 와서 일격에 죽여보시던가?
그런 권능과 마도, 오의가 현자계열에 있다면 나도 알고 싶다 이거야!”
“내가 못 할 것 같으냐?”
“못하니 현자계열이 맨 밑바닥이잖아?”
“만들어서라도 죽여주마.”
“제발 좀 해봐!
아무런 업적도 안 남겼으면서 무슨 현자의 정점이야?
이 방구석 폐인!”
“잡탕 현자 주제에 어디서 입을 놀려!”
그렇게 서로 욕설이 터져 나오기 직전까지 가자 바람의 절대자는 긴 한숨을 쉬면서 말렸다.
“후우! 그만해라.
사이안님도 참으십시오.”
바람의 절대자의 만류에 재빨리 공손한 표정과 자세로 돌아온 차원창세신 코아였다.
“옛! 어르신.”
그 꼴을 본 일대 회색의 절대자는 신음하면서 연락을 끊었다.
“으으! 간사한 도둑놈.
나는 나중에 연락하지.
저 녀석이 허튼짓을 못 하게 관리를 부탁하네.”
십중심 분석자료의 암호를 더는 풀지 못하게 감시하라는 뜻이었다.
의미를 파악한 바람의 절대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부탁하겠네.
그리고, 빨리 가문의 대를 이어줄 반려를 찾기를 기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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