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몇 장의 자료가 없다가 마지막에 몇 줄이 적혀있었다.
“결국에는 혼자서 싸워서 이겼다.
개인의 힘만으로 진정한 ‘파워 오브 엠블렘’이 된 것이다.
그 후 그 앞에서 강자의 자격을 이야기하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밑도 끝도 없이 승리했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 이상의 내용이 없자 차원창세신 코아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진리의 부친이신 일대 바람의 절대자 한진호님께서 일대 회색의 절대자가 비밀자료조차 남기지 못할 결투나 전쟁을 벌였다는 뜻인가?
상대가 대체 누구지?’
아무리 생각해도 십중심조차 숨겨야 할 정도로 심각한 승부가 무엇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시선이 저절로 백색으로 빛나는 바람의 책 탑으로 갔지만, 더 깊숙한 자료를 파악하려 하면 많은 시간이 걸리기에 이 정도에서 접어야 했다.
‘아주 심각한 싸움은 아니겠지.
대충 성향을 파악했으니 이제 실질적으로 움직이자.’
마지막으로 남은 바람의 절대자 한진호의 합류를 위해서 준비를 시작하는 차원창세신 코아는 저절로 긴장이 되었다.
‘한진호님은 성향에 전해지는 자료로는 굉장히 신사적이고, 평화적이란 평가였으니 큰 문제는 없다.
합류의 대가로 진리님을 낳은 영원체가 누구인지 알려만 드리면 끝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차원창세신 코아가 걱정하는 것은 일대 회색의 절대자의 움직임이었다.
‘십중심의 자료를 빼앗긴 일로 노발대발하고 있을 그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할 수가 없다.
분명 훼방을 놓으려 하겠지.’
미래 이대 회색의 절대자가 자료를 챙기면서 전력의 차원권능으로 도망치는 순간에도 끝까지 방해하면서 따라붙으려는 끈질긴 모습이 생각이 난다.
‘윽! 현자의 승부에 져서 자료를 넘겼으면 그냥 넘어가지.
역시 현자의 정점답게 되게 쪼잔하네.
그렇다고 절대로 돌려줄 수는 없다.’
어느 한쪽이 대범한 척하거나 돌려주기에는 워낙 귀중한 자료들이니 문제였다.
그리고, 이상하게 임무 완료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이 밀려오고 있다.
‘유상전생에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의 제약이 분명히 있다.
괜히 금기가 아닐 거야.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이 자료들은 나의 확실한 구명줄이 되어 줄 것이다.
십중심을 만들 수 있는 권능에 대한 명확한 자료라면 세계조차 주겠다는 영원체도 있을 테니 말이야.’
이렇게 차원창세신 코아는 바람의 절대자의 설득 준비와 구명책 준비를 마무리 지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일대 회색의 절대자는 바람의 절대자 한진호와 한창 영상통화 중이었다.
바람의 절대자 한진호는 일체의 장식이 없는 흰 수련복에 검은 허리띠를 두르고, 태극천검과 파멸유혼검을 교차해서 등에 메고 있는 흑발의 청년이었다.
그는 수백 개의 위패와 향이 피어오르는 바람가의 조상을 모신 사당에서 가부좌를 한 채로 일대 회색의 절대자와 대화 중이었다.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회색의 절대자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선언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겠는데 저에게는 후계가 아직 없습니다.
그러니 대가 끊길 수 있는 위험한 일에 나서지 못합니다.
가문의 대를 최우선으로 이어야 하는 저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으십니까?”
회색의 절대자가 갑자기 황금세력이 연결해놓은 직통 영상전화를 사용하니 넘어갔다는 사실을 단정하면서 하는 일방적인 거절이었다.
‘정신체들의 기준에서 창조주의 반란에 동참은 절대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큰 위험한 일이다.
힘의 크기를 생각하면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로 당할 수도 있다.
그럼 후계를 만들지 못한다.
나의 대에서 바람가가 끝난다.’
그것은 독자전승(獨子傳乘)으로서 백팔대나 이어져 내려온 가문의 가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대죄였다.
그러니 나태해진 창조주로부터 세계를 구한다는 명분도 바람가를 계승할 후계를 반드시 만들어 하는 바람의 절대자를 흔들지 못했다.
그리고, 일대 회색의 절대자는 바람의 절대자 한진호의 말대로 왜 가문의 계승이 최우선인지 잘 알기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도 분명히 알아!
그래서, 합류가 아닌 다른 용무 때문에 연락했네.”
일대 회색의 절대자가 다른 십중심에게는 거의 반말이나 욕설이지만, 바람의 절대자에게는 나름대로 예절을 지켜서 말한다.
그만큼 바람의 절대자가 가진 힘과 권위는 막대한 것이었다.
“차원창세신 코아가 합류를 설득해보겠다고 거기로 찾아갈 거네.
말이 안 통하면 무슨 수단 방법이든지 쓰겠지.”
그 말에 바람의 절대자는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내 차례인가?
아무리 혼자 살아간다고 하지만, 십중심이기에 나름대로 정보망이 있다.’
그는 다른 십중심들이 어떻게 합류를 당했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저에게는 지켜야 할 영역이나 세력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반드시 처단해야 할 원수나 경쟁자도 없습니다.
제게 있는 것이라고는 언제든지 옮길 수 있는 이 사당과 연무장이 있는 작은 집뿐입니다.
반드시 지켜야 할 정보행성 이데아와 같은 보물도 없는 저를 어떻게 설득한다는 겁니까?”
정확한 물음에 일순 말문이 막힌 회색의 절대자였지만, 속에서 치솟는 대답을 삼켰다.
‘차원권능을 가진 그 녀석이라면 거기 있는 조상의 위패부터 전부 훔쳐내서 도망친 후에 협박하려 했겠지.’
바람의 절대자가 조상의 위패를 소중히 여긴다는 점을 모르는 존재는 없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알려주면 분명 저 사당과 위패를 다 챙겨서 정처 없이 떠돌겠지.
그가 파워 오브 엠블렘으로서 나서야 할 상황이 올 때까지 연락이 안 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정보행성 이데아라는 근거지가 필요한 자신과는 달리 바람의 절대자에게는 정말로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 황금세력에 포함되어서 창조주의 반란을 완성해야 할 이유가 생긴 회색의 절대자는 마지막 남은 한 명이 기약이 없는 방랑을 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시험이네.
차원창세신 코아를 ‘파워 오브 엠블렘’으로서 판정해주게.”
일대 회색의 절대자의 요청에 바람의 절대자는 진중한 어조로 되묻는다.
“차원창세신 코아를 제가 강자인지 직접 판단해달란 말씀이신가요?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를 저에게 죽여서 지성체로 만드실 작정이십니까?”
이 말에 회색의 절대자의 진득한 살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온다.
생각만 해도 열이 받는다는 표정으로 단호하게 외쳤다.
“솔직히 말하면 죽이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말소시켜주면 좋겠네.
신령과 존재했던 기록까지 전부 말이지!”
지독한 살의가 어린 요구였다.
‘일대 회색의 절대자는 정보행성 코아의 가짜와 은신처가 차원창세신 코아에게 파괴가 되어서 황금세력에 들어갔다고 들었다.
그걸로는 너무나 원한이 강하다.
그 외에 무슨 일이 있나?’
회색의 절대자의 뒤를 바라보니 다른 십중심들도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차원창세신 코아가 황금세력이 아니었나?
이게 무슨 일인가?’
그가 활약한 덕분에 십중심의 집결이 거의 완료되면서 세력도 엄청나게 강화되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오랫동안 대립하거나 외면하던 십중심을 하나로 모았으니 누가 보아도 엄청난 공훈인데 이상한 반응이었다.
‘차원창세신 코아가 너무 컸나 보군.
절대계의 흐름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십중심의 합류를 해내서 업무 능력만은 십중심 이상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덕분에 아주 곤란한 모양이군.
그래도 이런 대처는 너무 심하다.’
십중심이란 존재가 대놓고 부하의 살인청부를 하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후훗! 지금 이야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쓸데없는 황금세력의 정치싸움은 사절입니다.”
상대가 같은 십중심이며 최고의 현자라는 회색의 절대자라고 해도 이런 요구를 들어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책임질 세력도 영역도 없는 이상 현자의 도움은 필요가 없다.
나는 후계를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해.’
너무나 강해졌기에 후계를 낳아줄 반려를 구할 수 없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야 했다.
그런데 회색의 절대자가 제안해온다.
“잠깐! 대가가 있네.”
그 말에 더욱 불쾌해진 바람의 절대자는 단호하게 잘랐다.
“저는 무사(武士)이지 암살자나 살인청부업자가 아닙니다.
마음에 안 들거나 다루기 버거운 부하의 처단은 직접 하십시오.
이만 끊겠습니다.”
“그…그게 아니야!”
일대 회색의 절대자가 뭐라 설명하려 했지만, 간단하게 통신을 끊어버린 한진호는 다시 위패의 향에 불을 붙여간다.
자욱하게 오르는 향 연기 속에서 다시 지그시 눈을 감은 한진호의 사색은 얼마 이어지지 못했다.
띠리리리리링!
일대 회색의 절대자가 십중심의 회선으로 다시 영상통화를 연결해 온 것이다.
‘역시 끈질기군.’
상대하기가 싫어진 바람의 절대자는 눈을 감은 채 연락을 다시 끊으려고 한다.
그런데 회색의 절대자의 다급한 음성이 울렸다.
“내가 할 수 없으니까 이러네.
다른 십중심들이 같이 나서도 힘들어.”
“!?”
그 말에 놀란 한진호는 놀라 눈을 크게 뜨면서 묻는다.
“십중심이 다수가 덤벼도 못 이길 정도로 차원창세신 코아가 강합니까?
그럼 하겠습니다.
이제 의미가 퇴색했으나, ‘파워 오브 엠블렘’으로서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 말을 듣자 이번에는 아주 곤란한 표정이 된 회색의 절대자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 도둑놈에게 그렇게까지 잘해줄 필요는 없네.
강하다기보다는 도망을 아주 잘 쳐서 문제이니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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