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적나라한 비난과 추궁에 차원창세신 코아도 지지 않고 대꾸를 했다.
“저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현자계열은 다른 계열에게 밀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점이라는 회색 사장님께서 어딘가에 처박히셔서 쓰지도 못할 ‘제로 원’이라는 가상세계 만들기에 열중하시다니 이해가 안 가는군요.
게다가 지금 쓰시는 이 몸도 무영창이 아니라면 쓸만한 고유권능이나 기능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솔직히 대실망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시 어깨를 주무르는 차원창세신 코아는 은근한 어조로 말한다.
“그러니 현자들이 어디 가서 안 맞고 다닐 정도로 고유권능을 하나 만들어서 푸시죠.
고민하기 귀찮으시면 창조신장급이라는 실버 나이트의 소환권능은 어떻습니까?
전부가 아니라도 일부라도 푸시면 서열이 팍팍 오르겠던데요.”
분명 이기기는 했다.
하지만, 골드 나이트의 신체에서 무영창으로 무한대로 쏟아내는 권능과 마도 덕분에 피부가 몽땅 벗겨지는 타격을 받았기에 얕보지 않았다.
오히려 아부할 정도로 탐이 났다.
‘무영창으로 무한 연사하는 신기가 생기는 셈이다.
놓칠 수는 없지.
받을 수 있다면 어떤 의뢰라도 한다.’
그런데 회색의 절대자는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혀부터 찬다.
“쯧! 너는 차원권능을 쓰니 실버 나이트의 구현 정도는 견디겠지.
하지만 다른 멍청이 현자들은 실버는 고사하고, 브론즈 나이트를 하나라도 불러내려는 순간 머리가 터져 죽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말을 끊은 회색의 절대자는 가는 한숨을 쉬었다.
“휴우! 현자는 힘을 가져서는 안 된다.
무식하고 멍청한 주제에 힘만 센 녀석들은 적당한 혼란만 일으키다가 제풀에 나가떨어진다.
세계의 정체를 풀어주는 순기능을 하지.
그러나, 강한 주제에 똑똑하기까지 하면 세계 자체가 뒤집힌다.
현자들에게 강한 힘을 줄 수 없는 이유다.”
이마를 손으로 누르는 모습을 보니 나름대로 고충이 있는 듯 착잡한 목소리였다.
“지금 현자들은 내가 특별히 견제할 필요도 없다.
워낙 똑똑하니 목숨을 건 시련이나 험악한 수련을 알아서 피해서 약해진다.
네 말대로 전투를 피하다가 방구석 폐인이나 학자가 되겠지.”
거기까지 말한 회색의 절대자는 허공을 응시하면서 추가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아주 가끔 머리가 좋은 주제에 전장에서 미친 듯이 날뛰면서 기적적으로 강해지는 돌연변이가 나타난다.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운 그런 돌연변이들은 최악의 환란을 일으켜 왔다.
세계의 개혁을 거부하면서 아예 뒤집어엎고, 새로 시작하려 한다.
기존의 세계에 살던 평범한 존재들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다.
세계의 붕괴를 막으려면 이들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세계의 절반을 희생시켜서라도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그대로 고개를 뒤로 접혀서 차원창세신 코아를 회색빛 눈동자로 노려보면서 말한다.
“이제까지는 흑염의 절대자가 대표적이었다.
그런데 이제 하나 더 추가해야겠군.
자연발생한 흑염의 절대자와는 달리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돌연변이를 말이다.
너는 그런 목적으로 키워진 이계 진리대리 회색현재(異界 眞理代理 灰色現在) 차원창세신 코아다.
부정하겠는가?”
“!!!”
현자의 승부는 진실게임과 비슷하게 서로 대화하면서 접촉하여 상대방의 정체와 약점을 폭로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치명타를 때리는 회색의 절대자였다.
“네가 어떻게 살았는지 이상하게 흐릿하다.
여기에 여러 개로 중첩되면서 흐름까지 갈라진다.
그러나, 이 호칭만은 가장 확실하다.
어떠냐?
이제 패배를 인정하겠는가?”
“….”
정체가 명확하게 들통났는데도 태연한 표정인 차원창세신 코아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후후! 제가 그런 직위를 가졌다고 해서 무슨 상관입니까?
그리고, 무슨 돌연변이요?
저는 출세와 생존을 위해서 사는 아주 평범한 창조신입니다.
지금은 황금 사장님과 임시 계약해서 회색 사장님을 모시러 온 일개 직원입니다.
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진실이군.”
신체접촉으로 정보를 읽어내서 얻은 나름대로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내심 실망한 회색의 절대자였다.
‘이계(異界)가 어딘지를 모르겠다.
진리대리(眞理代理)가 무슨 명칭이며 심지어 회색현재(灰色現在)가 어떤 의미인지도 알 도리가 없다.
호칭만으로는 정보파악에 한계가 크다.
이러면 추가공격을 할 수가 없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정보행성 이데아의 분석력이나 권능조차 어느 정도 막아내는 보안체계가 차원창세신 코아에게 갖추어져 있었다.
더구나, 보안체계의 위치가 모호하여 주변 정보는 모두 파악했는데 핵심정보에 접근을 못 하는 것이다.
‘정신 방어벽이 더는 무너지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보안체계이기에 나를 이렇게 막을 수가 있지?
위치조차 특정할 수 없다니?
이제 신체정보로는 얻을 수 있는 자료가 이게 끝이군.
더 볼 것도 없겠어.’
그렇게 내심 대화를 끝내려고 할 때 차원창세신 코아는 피식 웃으면서 말한다.
“풋! 얼굴의 눈 부위에 쓰고 계신 검은 상자는 무엇입니까?
투구치고는 너무 비효율적이군요.”
“!?”
지금 회색의 절대자는 누가 보아도 아무것도 없는 빈 얼굴이기에 틀린 말이었다.
그러나, 본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꿰뚫어 보았다는 뜻이기에 섬뜩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본체의 모습을 읽힌 회색의 절대자는 경악했다.
‘이놈이 도대체 어떻게 나를 보았지?
이 녀석 정도의 분석력이나 차원권능으로는 정보행성 이데아의 방화벽을 뚫을 수 없다.’
절대계에 진짜 몸을 내보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마치 정보행성 이데아의 핵심에 있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니 매우 놀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감정을 표현하지 않은 채 대답한다.
“후후! 정말 보았느냐?
대단하구나.
그 검은 상자는 영상장치다.
속에 화면이 있어서 영화를 보지.”
“푸훗! 눈을 가리고 혼자서 보는 영화라니 아주 고상하시군요.
야한 쪽을 좋아하시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전투 중에 영화를 볼 여유가 없으실 것이니 저는 이 황금 나이트의 조종장치로 보았습니다.
마치 가상 조종장치 같던데요.”
“후후후후! 현자의 정점인 내가 그런 원시적인 도구를 사용할 리가 있나?
지금처럼 신령으로 직접 빙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하하하하! 그렇다면 벗으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다.”“!!!”
실제로 가상 조종장치를 제거하고 있었다.
진짜 정보행성 이데아를 뛰어넘어서 본체를 보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 회색의 절대자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려고 한다.
‘정보행성 이데아에 불법침입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가장 핵심에 있는 나를 볼 수 있나?
역시 이놈에게는 꺼림칙한 무엇인가가 있다.’
이제 마음을 놓거나 무시할 상대가 아니라는 경각심이 생긴다.
그래서, 서로 웃으면서 대화를 하는데 서서히 살기와 투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차원창세신 코아는 더욱 부드럽게 어깨를 안마하면서 묻는다.
“회색의 고유권능이라는 ‘제로 원’이란 가상세계는 정말 아직 쓸모가 없습니까?
무영창을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 나이트의 소환이 다른 존재에게는 정말 불가능인가요?”
“후후! 이미 말했지 않았느냐?
아무 소용이 없다.
특히 데이터 나이트는 창조자인 내가 아니면 구현이나 운영이 힘들어.”
“하하하하! 그런 불완전한 세계를 잘도 고유권능으로 만드셨군요.
아주 믿기가 힘듭니다.”
“현자이면서 힘에 집착하다가 연산력이 부족해진 멍청한 놈들이 큰 문제이지.
그런데 너는 확실히 다르구나.
조금 무리하면 황금 나이트까지 조정할 수 있겠어.
아주 위험해.”
싸늘한 살기를 보이면서 이제는 고개를 뒤로 완전히 돌린 회색의 절대자였다.
차원창세신 코아도 회색의 절대자에 차가운 미소를 보냈다.
씨이이이!
서로의 진실과 거짓을 파악하는 현자의 승부가 끝나려 하고 있었다.
차원창세신 코아가 어깨를 주무르던 손에서 신력과 마력이 집중되고, 그걸 쳐다보는 회색의 절대자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당장 맞붙을 기세였는데 갑자기 차원창세신 코아의 신체가 순간 황금빛으로 흐릿해졌다.
그러면서 외친다.
“방금 제공하신 정보는 전부 거짓입니다!
‘제로 원’의 가상의 세계는 정기와 창조력만 있으면 바로 현실에 구현됩니다.
서로 다른 물리법칙을 가졌기에 일시적인 잠식이라는 형식을 취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잠식된 영역에서는 그야말로 창조주에 동등한 권능과 마도를 휘두를 수 있습니다.”
“너!?”
차원창세신 코아의 흐릿해짐은 차원권능의 초장거리 도약이었다.
그런데 회색의 절대자조차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발동속도였다.
파아아아아-! 파아아아아!
차원 통로를 만들기 위한 차원 문을 열지도 않은 상태로 도약해 버린다.
덕분에 회색의 절대자가 무영창으로 펼친 차원 결계가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빠져나가 버린다.
“빠르다!
어떻게 차원권능을 이런 속도로 발휘할 수 있지?”
방금은 무영창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발현속도였다.
미처 저지하지 못한 회색의 절대자의 귀로 웃음이 섞인 목소리가 전해진다.
“일시적인 잠식이라는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세계를 단번에 ‘제로 원’으로 삼켜야 합니다.
그런데 절대계를 전부 삼킬 수 없어서 더욱 키우고 있으시군요.
푸하하하! 원래의 세계를 다른 세계로 순간적으로 집어삼켜서 자신만의 세계로 바꾼다.
그야말로 현자의 정점다우신 배포와 고유권능입니다.
한 수 배우고 갑니다!”
“어떻게!”
드러나서는 안 될 비밀을 들은 회색의 절대자는 다급하게 추적을 하려 했다.
우웅! 우웅!
그런데 방금 본 차원권능으로 추가로 개선해도 속도가 잘 나오지 않았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정한 그대로 인스톨 하는데도 위력이 또 안 나온다!
이번에는 무엇으로 속도를 빠르게 한 것인가?”
세계폭탄 코아의 강화비결을 생각하면 보나 마나 자신의 존재를 위태롭게 하는 제약을 걸어서 강화했음은 분명했다.
그걸 바로 알아낼 수는 없었기에 당황해하는 회색의 절대자의 귀로 메아리와 같은 흐릿한 음성이 전해져온다.
“제공하신 정보의 거짓을 밝혔으니 현자의 승부는 제가 이겼습니다.
황금세력의 본부로 가십시오.
추가로 주신 정말 좋은 자료와 귀중한 정보도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역시 현자계열의 정점!
회색 사장님이 최고입니다.”
“!!!”
갑자기 튀어나온 찬사와 감사에 회색의 절대자는 다급하게 극비자료를 확인했다.
그리고, 눈앞이 까맣게 변할 지경으로 놀랐다.
“이…이이!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십중심의 자료까지 복사해갔느냐!
도대체 비상신호가 왜 안 울린 것이냐?”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골드 나이트의 신체를 통해서 차원창세신 코아가 정식으로 접속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관리자의 권한까지 획득하여 그동안 파악해놓은 십중심에 대한 모든 정보를 열람하고 복사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외부접속이 가능하지?
더구나 나 이외에 정보행성 이데아의 관리자 권한을 가진 존재가 있다니?
이건 불가능해!
하지만, 불법 침입으로는 내 정보 방호벽이 절대로 뚫릴 리가 없다.”
정보행성 이데아의 보안장치가 바로 ‘제로 원’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아홉 개의 골드 나이트를 주축으로 모든 데이터 나이트가 방호벽이 되어서 정보행성 이데아의 정보를 수호한다.
불법 침입을 하려면 이들을 모두 부수어야 해.’
그런데 아무런 흔적도 없이 돌파되었으니 이렇게 기겁하는 일은 당연했다.
골드 나이트를 불러내서 확인해도 이상이 없자 아무리 생각해도 정식 접속 외에는 답이 없었다.
하도 다급해서 차원 문을 강제로 열고서 소리를 쳐보았다.
“거기 서라! 차원창세신 코아!
어떻게 정보행성 이데아의 보안장치를 돌파했는지 자백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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