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저절로 침음성이 흘러나온다.
이건 창조주에 대한 십중심의 반역이 코앞이라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너무 빠른 것이 아닌가?”
“가장 뒤로 빼던 내가 합류했지 않아?
거기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니 너처럼 뭔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무슨 계획인가?”
“푸후후후! 그냥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데 무슨 계획이 있다고 그러는지 몰라.
하여간 너무 생각이 많은 것도 병이라니까.”
그 말에 검편은 거신족의 여신들이 조심스럽게 따르는 술잔을 마시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바로 네가 합류했기 때문이다.
최강의 권능인 황금과 최고의 신체인 흑염이 합심하면 다른 십중심이 연합해도 어쩌지를 못한다.’
최고의 권능인 황금과 최강의 신체인 흑염의 조합은 십중심에서도 최고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신족 출신의 네 명이 합심해도 막을 수 없을 정도였기에 그들의 다급한 심정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막을 수 있는 조합은 바람과 회색 정도인가?
그러나, 그들은 자기 앞가림도 벅차지.’
바람은 초월자로서 정점으로 흑염에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육체를 가졌던 지성체 시절의 기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서 아들을 얻어서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바람은 초월자로서 너무 강해져서 지성체는 물론이고, 정신체로도 후계를 만들 수 없다.
자신의 대에서 가문을 닫을 수는 절대로 없다고 반려를 찾아서 떠돌고 있지.
절대계가 어떻게 되든 일단 가문의 유지가 먼저라고 선언했다.’
회색은 더욱 심했다.
‘영원체조차 봉인할 수 있는 현자로서 정점인 그에게는 현실 따위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절대계에서 거두어들인 모든 지식의 집합체인 정보행성 이데아를 지키는데 전력을 다할 뿐이지.’
귀찮다면서 접근 자체를 막고 있을 정도였다.
‘회색이 설치한 정보행성 이데아 주변에 깔린 함정이나 봉인, 결계는 십중심조차 위협할 정도다.
그걸 뚫고서 만나면 운명조차 바꿀 수 있는 굉장한 조언을 해준다.
하지만, 항상 독설이라서 까다롭기 짝이 없다.’
이렇게 바람과 회색은 자신의 사정과 관심에만 집중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이제까지 절대계의 운명에 개입한 적도 없고, 그럴 의도조차 없었다.
‘얼마든지 일족을 만들 수 있으면서 조직조차 만든 적이 없다.
그런 자들이 합심해서 황금과 흑염에게 대립할 리가 없지.’
상황이 이러니 창조주와 원활한 관계를 원하는 대신(大神)의 고뇌가 손에 잡힐 듯했다.
자신도 이러면 어쩔 수 없이 황금세력에 가세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 검편은 표정이 불편해진다.
‘십중심의 연합은 황금의 절대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런데도 너무 진행이 빠르지 않은가?
내일이라도 반란을 시작할 기세다.
이것도 그 차원창세신 코아 때문인가?’
자신의 박쥐의 검의 전력전개를 계약을 위해서 몸으로 받아보겠다며 무모하게 덤비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그런데 흑염이 술을 가득 채운 잔을 들어서 검편에게 내밀었다.
“어차피 할 반란이라면 모여서 빨리 끝내자.
주변이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본격적으로 나서자 이거야.
반역을 끝낸 다음에 누가 진짜 최강인지 우열을 가리면 좋지 않겠어?
솔직히 우리에게는 반역보다 주변 정리가 더 귀찮아.”
“그것이 더 좋겠군.”
검편도 이해했다.
흑염의 말대로 창조주에 대한 반역은 아무런 부담이 없었고, 십중심들의 개인 사정과 알력이 더 큰 문제였다.
‘어차피 십중심을 막을 힘이 창조주와 신족, 마신족에게 없는 이상 성공할 수밖에 없는 반역이다.’
검편도 절대계에 적극 개입을 막고 있는 개인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바로 반역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렇게 두 명이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마시기 시작하자 옆에 시중을 들던 여신들은 바쁘게 새로운 술과 안주를 내놓는다.
이상할 정도로 편안한 손님들이지만, 이들이 굉장히 중요한 존재는 확실했기에 정성을 다하는 중이었다.
무엇보다 역사 깊은 술집을 개조할 수 없다고 버티던 술집사장의 목을 잘라버린 무시무시한 창조신이 뒤를 봐주고 있기에 더욱 그러했다.
‘사장님의 목은 오늘은 잘 붙어 있니?’
‘아직은 무사해.’
처음 보는 존재가 갑자기 나타나서 지하를 대대적으로 개조하겠다는데 술집의 사장이 찬성할 리가 없다.
당연히 못 하겠다고 말하자마자 머리가 잘려서 하늘로 치솟았다.
그런데 놀랄 일은 그다음부터다.
‘목을 자르면 당연히 죽어야 하는데 생생하게 살려놓았어.’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머리에서 신령의 분리가 안 되는 마도 봉인의 일종이었다.
그제야 상대의 무서움을 깨달은 술집사장이 뭐든지 하겠다고 울며불며 사정하자 다시 붙여는 주었다.
‘그런데 원한을 품거나, 다른 마음을 먹으면 바로 다시 떨어지게 하여 버렸어.
‘아직도 가끔 떨어진다고 해.
아침마다 침실에서 비명이 울려.
좋지 않은 꿈을 꾸나 봐.’
‘꿈도 잘 꾸셔야지.’
꿈조차 허용하지 않으면서 개심만 하면 바로 붙게 만들어놓았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 끔찍한 제약을 벗어나려면 거신족 최고의 술집이 되면 풀린다고 하니 열심히 일하는 중이시지.’
‘다른 도시에 분점을 낸다는 것을 보니 그것도 아닌가 봐.’
그렇게 차원창세신 코아의 손길이 닿은 술집에서 검편과 흑염이 술자리를 벌이고 있을 때 검편의 본성에서는 변동이 일어났다.
본성만이 아니라 주변 행성까지 차원권능으로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차원창세신 코아는 화면을 보면서 길게 한숨을 쉬었다.
“휴우우우! 하여간 저런 부류는 누가 지배자가 되어도 하는 짓이 변함이 없어.”
거기에는 수백 명의 고위신들이 모여서 밀담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목이 안 잘린 구 지배층들이었고, 내용은 물론 차원창세신 코아에 대한 타도계획이 주류였다.
“이 기회에 한몫 잡을 것이지 발목을 잡겠다고?”
십중심 외에는 현재 절대계에 적이 없는 차원창세신 코아의 입장으로서는 가소로울 뿐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중심에는 한 명의 흑발의 여신이 있다.
검편의 반려였다.
“또 거기 계시면 안 되지요.
검편 사모님.
저는 검편이 아닙니다.
과거에 당한 일이 많아서 그냥은 안 넘어갑니다.
이렇게 됩니다.”
스산한 살기가 가득한 차원창세신 코아의 목소리가 주신전을 울린다.
그리고, 화면 너머의 모든 고위신의 목에서 동시에 피가 품어지면서 그대로 허공으로 떠올랐다.
파파파파파파-!
순식간에 피로 뒤덮인 화면에서 목을 잃은 신체가 그대로 아공간에 수납된다.
홀로 무사하게 남은 검편의 반려가 주변에 뿌려진 피를 뒤집어쓰고, 경악의 표정을 짖는 모습을 보면서 가볍게 손가락을 휘저었다.
우우우우웅-!
그대로 차원의 문을 열어서 검편의 반려를 강제 소환한다.
언제 자신에게 공간이동이 걸렸는지도 모를 정도로 신속한 발동이기에 저항을 못 한 그녀는 그대로 차원창세신 코아의 영광의 자리 앞으로 끌려왔다.
털썩!
검편의 반려에게 이제까지 대화를 나누던 수백 명의 고위신이 눈앞에서 목이 날아가고, 그 피를 뒤집어쓴 충격은 확실히 컸다.
검편의 반려로서 실제 전쟁에 참전해본 적이 없는 그녀로서는 큰 충격이었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차원창세신 코아는 주변에 차원결계를 쳐서 안을 못 보게 하면서 묻는다.
“왜 자꾸 이러십니까?
오늘만 지나면 검편 사장님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일족의 절대자가 되십니다.
반려이신 사모님도 대리가 되어서 실질적인 이인자가 되는데 왜 반역자들의 편에 서십니까?
조사를 해보니 검편 사장님이 계실 때도 그러셨더군요.”
“….”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그래서 차원창세신 코아는 손에서 마력의 손톱을 뽑아낸다.
파아아아아-!
“아군의 발목 잡기는 아주 질색입니다.
이 정도면 많이 봐 드린 셈이니 저들과 똑같이 목을 날려드리지요.
검편님이 돌아오시면 바로 붙여드리겠습니다.”
십중심의 반려인데도 목을 날려버리겠다는 선언이었다.
탁자에서 아직도 일족을 위해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파악을 못 한 구 지배층들의 머리가 깜짝 놀란다.
그렇게 무서운 살기와 함께 목에 마력의 손톱이 대어지자 그녀의 입이 가늘게 어떤 단어를 내뱉는다.
“나…나는 검편의 장식품이 아니다.”
“….”
이건 예상외의 답변이었기에 차원창세신 코아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동작을 멈추었다.
검편의 반려는 그동안의 감정을 분출했다.
“그대도 나를 검편의 반려라고만 하지 이름조차 부르지 않는가!
왜 내가 그런 의미가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나는 자유와 자립….”
“그건 안됩니다.”
거기까지 들은 차원창세신 코아의 마력의 손톱이 그대로 그녀의 머리를 지나간다.
싹!
그 순간 검편의 반려의 말이 뚝 멈춘다.
그리고, 서서히 앞으로 쓰러졌다.
그걸 바라보는 허공에 떠 있는 머리들은 너무나 놀란다.
마력의 손톱으로 검편 반려의 목을 친 순간 차원결계는 풀려서 본성의 모두가 볼 수 있는 상태였다.
‘진짜 했다!’
‘이럴 수가? 저 창조신은 십중심의 분노가 두렵지 않은가?’
검편이 감옥행성에 갇혀있어도 누구도 감히 반려나 부하를 건들지 못한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면 검편의 분노가 얼마나 크고, 반드시 처단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창조신은 전혀 개의치 않고, 단지 검편에게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목을 쳐버린 것이다.
투우욱!
바닥에 쓰러진 그녀의 목은 잘리거나 피가 솟구치지도 않는다.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 그녀에게 차원창세신 코아는 준엄하게
말한다.
“절대계를 좌지우지하는 권력과 세력을 가진 검편의 반려이면서 반대되는 개념인 자유와 자립을 원한다니 참으로 어리석군요.
십중심의 반려가 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한다는 수많은 여신에게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보아하니 아가씨로 곱게 자라서 이렇게 되신 모양이니 현실을 확실히 깨닫게 해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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