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평생을 전장에서 구른 총 제독이었기에 이런 종류의 기운에 감지능력이 아주 우수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가 하늘을 가릴 듯이 땅에서 치솟는 거대한 거인들의 모습에 기겁한다.
“흐어억! 저거 뭐야?”
지옥이니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란 심정을 다스리고 잘 보니 프롬 여제님의 명령으로 회수하여 어딘가로 보낸 제국과 연합의 인형 병기들이었다.
“에잉! 구식 인형 병기잖아?
전투기와 전투함에 밀려서 의식이나 제식이 아니면 쓸모가 없는 고철 주제에 놀라게 하고 있어.”
우주시대에 들어서서 우주 전함들이 원거리에서 쏘는 함포전으로 전쟁은 진화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근접전이 주가 되는 인형병기는 현재의 전쟁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평가를 할 정도로 비효율적인 체계였다.
‘건설과 맞물려서 잠시 부흥했지만 이제 한물이 간 무기체계다.
이걸 모으신다기에 어디다 쓰시려고 했나 의아했더니 전부 지옥에 와 있었구나.’
그런데 지옥에서 본 인형 병기의 모습은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갈 정도로 대단했다.
무기를 든 인형 병기가 병기를 휘두르고 걸을 때마다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일그러진다.
구구구구궁-! 우우우웅-!
황금빛이 찬란한 인형 병기를 선두로 어떤 전투함대로도 상상도 못 할 위세를 보여 주면서 대열을 갖추어 간다.
움직임만으로 단숨에 주변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인형 병기들의 엄청난 전투력의 정체를 확인한 총 제독은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초능력 증폭?”
초능력자 자체만으로 강력한데 거기에 인형병기를 조합했으면 우주전함이라도 안심할 수 없는 전력이다.
‘저 인형 병기들을 어떻게 개조했는지 모르지만, 초능력자들을 인형병기에 태워 초능력 강화에 성공한 모양이다.
그럼 상황이 달라.’
그런 생각대로 기세만으로 대지를 쪼개고 하늘을 뒤엎는 어마어마한 초능력을 발휘하는 황금빛의 인형 병기군단은 진군을 시작한다.
구구구구구궁-!
그들이 몰려가는 곳에는 검은빛의 인형 병기들이 중구난방으로 서 있었다.
총 제독은 그들의 정체도 바로 알아보았다.
“저것들은 또 뭐야?
연합의 고물들이잖아?”
연합에서 회수한 인형 병기들이 검은색으로 색칠이 되어 있는데 초능력으로 발휘되는 기체는 없었다.
대신에 엄청난 중화기로 완전무장을 한 상태였다.
검은 인형 병기들의 총구들이 정면을 향하자 황금빛 인형 병기의 선두에서 열두 개의 검을 뽑아낸 검의 주신의 영웅왕이 질주하면서 외치고 있었다.
“전군 돌진! 어떻게든 영웅왕을 회수하라!”
검의 주신은 이제 범죄신이 아니다.
아이언의 중앙신계의 주력이 될 영웅동맹의 훈련 교관의 신분을 받고 신계까지 약속받은 것이다.
‘나에게는 이제 신계 주신으로서 영광의 길만이 남았다.
이제 유일한 오점은 용자동맹에게 황당하게 빼앗긴 영웅왕이다.’
여기에 최고위 창조신이신 위대한 신계 주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용자동맹과 사자왕 가이의 존재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온전한 초월자도 아닌 개조인간 주제에 영웅왕을 감히 용자왕으로 만들었다.
당장 회수해야 하는데 사자왕 가이가 이끄는 용자동맹이 만만치 않다.’
개조 인간들이라서 기계신체의 제어력이 신족보다 위라서 영웅왕을 동원하면 바로 빼앗긴다.
용자왕 가이도 만만치 않고, 이미 영웅왕 세대를 탈취당해서 혼자서는 안되었다.
‘용자왕이 있는 용자동맹의 전력은 무시할 수가 없다.’
창조신의 공격조차 튕겨내는 용자왕을 주신으로 상대할 수 없으니 남은 방법은 대군을 동원한 소모전이었다.
그 점에서 영웅동맹이 있는 검의 주신은 자신이 있었다.
‘어차피 인간이다!
계속 몰아붙이다 보면 정신력에 한계를 보일 것이다.
물론 우리 쪽도 지치겠지만, 방지하기 위해서 보상도 확실히 걸었다.’
그 보상은 낙제생들에게는 당연히 합격이었고, 영웅동맹의 후보생들에게는 영웅왕의 지급이었다.
“낙제생 신분에서 반드시 벗어난다!”
“반드시 탈취해서 지옥을 탈출하겠다.”
“영웅왕은 내 것이다.”
막대한 보상 덕분에 사기와 투기가 넘치는 영웅동맹에게 용자동맹은 절박함으로 맞붙었다.
가만히 있어도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품어내는 용자왕 덕분에 악령들이 귀찮게 하지는 않지만, 아무것도 없는 지옥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 문명이 가져다준 수많은 쾌락에 익숙해진 그들에게 무미건조한 지옥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아이언이 걸어준 불사(不死) 때문에 죽지는 않지만 아무런 낙이 없다.’
‘우리가 유일하게 지옥을 벗어나는 방법이 바로 용자왕의 획득이다.’
그러니 영웅왕을 되찾으려는 영웅동맹과의 전투를 마다할 리가 없었다.
여기에 아이언이 지급해준 인형병기를 굉장한 과학 문명을 바탕으로 개조해서 영웅동맹의 초능력에도 대응이 가능하게 되었으니 할 만한 전투였다.
초능력을 주로 사용하는 영웅동맹과 거대화한 총화기를 운용하는 용자동맹의 격돌은 지옥에서 이미 일상이었다.
우우우우우우우-! 꽈꽈꽈꽈꽈-!
그렇게 벌어진 인형 병기들의 전투를 정신없이 쳐다보던 총 제독의 시야에 무엇인가가 잡혔다.
하늘을 가릴 지경으로 쏟아지는 용자동맹이 쏘아댄 미사일과 포탄들이었다.
“헉! 유탄이다!”
평범한 인간이니 스치기만 해도 죽음은 확정이었다.
보조인격을 맡은 하급 천족과 마족으로서는 저런 위력의 물리 공격은 막을 수 없다.
“도망쳐야 한다!”
“저들의 공격은 우리로는 못 막아!”
전투상황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천족과 마족은 총 제독의 겨드랑이를 양손으로 붙잡고서 그대로 날아올랐다.
‘영웅동맹과 용자동맹은 지옥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마력을 흡수했다.’
‘그래서 아무런 초능력이 없는 개조 인간들의 물리 공격조차 서서히 물리법칙을 벗어나기 시작하고 있어.’
중앙 신계가 걱정할 정도로 전력이 급상승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천족과 마족의 손에 들려서 도주하는 총 제독의 눈은 기계 병기를 쏘아대는 용자동맹과 초능력과 권능으로 대응하는 영웅동맹의 전투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 저들의 모습이 흐릿해진다.
‘젊어졌는데 왜 이렇게 시야가 흐려?
그리고, 천국의 빨간 문과 지옥의 파란 문이 보인다.’
알고 보니 눈에 어느새 흘린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리고 간절한 바람으로 생긴 환상이었음을 깨닫고 눈물을 손등으로 비빈 총 제독은 나직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시바! 초능력자와 기계 병기의 전쟁인가?
여기가 지옥이 맞기는 하구나.”
총 제독의 어린 시절에 초능력자와 인간의 치열한 전쟁이 있었다.
그것은 각성할 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못하여 제정신이 아닌 초능력자와 정규군대의 전투였다.
‘모든 행성에서 성년에 갑자기 각성하여 날뛰는 강력한 초능력자들이 발생했다.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기계 병기로 대응한 군대의 전투로 엉망진창이 되어갔었지.’
폭주한 초능력자는 일반 병사로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도심에 큰 피해를 예상하면서도 대형 기계 병기를 어쩔 수 없이 투입했는데 그걸로도 부족하면 도시를 폭격으로 지워야만 했다.
‘마지막에는 당연히 군대가 이겼다.
하지만, 강력한 초능력자를 주변 피해를 줄이고 제압할 방법이 없었어.
그래서 수많은 시민을 희생시켜야 했지.“
대부분의 각성자는 인구가 밀집된 도시에서 생겨났고, 기계 병기와 격전 중에 발생하는 피해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그렇게라도 겨우 제압하면 또 누군가 각성을 해서 미쳐 날뛴다.
전력이 약화 된 군대는 더욱 강력한 기계 병기를 사용해서 처단했지.
지독한 악순환이었어.’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민간인의 보호는 꿈도 못 꾸는 일이었다.
더구나 그 당시에는 초능력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누가 각성하여 미쳐 날뛸지를 모르고 예방할 방법도 알지 못했어.
어떤 시민이 언제 초능력자로 각성할지 모르니 누구도 믿지 못했지.
발전된 행성이면 모를까 개발 중인 행성에서는 치명적인 피해였다.’
그렇게 개발 행성의 모든 경제와 사회는 처참하게 망가져 갔다.
도시에 있는 대부분의 생산시설이 파괴되고, 가장 중요한 인적자원이 심각한 피해를 받은 것이다.
정상적인 생산과 경제활동이 무너지고 최소한의 배급만 이루어지게 되었다.
‘진짜 지옥이었어.
고아가 늘어났고, 굶어 죽는 사람들이 도로에 넘쳐났다.’
무엇보다 언제 초능력자와 군대의 전투용 기계들이 전투를 벌일지 몰라서 항상 불안에 떠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삶이었다.
그렇게 초능력자와 전투 기계의 전투로 발생한 수많은 고아 중 하나로서 힘겹게 자란 총 제독이었다.
그런 그에게 지금 보이는 초능력과 병기로 싸우는 인형 병기들의 전투가 너무나 괴로웠다.
그리고 프롬 여제에게 구원을 받던 순간이 생각났다.
‘고대문명의 후계자라는 강대한 초능력과 과학력을 겸비한 존재들이 나타나서 행성을 통제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 그런 혼란은 끝없이 이어졌지.
나도 프롬 여제님에게 거두어지지 않았다면 굶어 죽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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