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 오브 서바이버-1294화 (1,205/2,000)

34권 35권

휴가 행성명단 공문의 끝에 마치 보란 듯이 매우 큰 글씨로 세금미납 행성명단이라고 기재해놓았으니 놓칠 수가 없었다.

사자왕 가이의 중얼거림에 마지막 항목을 다시 읽어본 거대 용자왕들의 금속 얼굴도 미묘하게 일그러진다.

‘세금미납 행성이라고?

그럼 이건 은하제국의 명예 대공으로서의 일인가?’

‘용자동맹의 휴가 행성이 왜 세금미납 행성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리를 그곳으로 보내야 할 이유가 있나?’

용자왕을 얻어서 불사불멸(不死不滅)의 기계신체로 신계에 속해있으니 이미 지성체의 나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게 된지 오래였다.

그러나, 어느 정도 감을 잡은 사자왕 가이는 신계 자아에 묻는다.

“신계 자아! 영웅동맹의 휴가 행성도 우리와 같은가?”

사자왕 가이는 휴가권을 독점으로 받은 이번 일로 확실하게 용자동맹의 대표로서 중앙 신계의 지배층이 되었다.

그래서, 말투에는 주신을 능가하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더구나 용자동맹을 영웅동맹과 동등하게 대하라는 아이언의 지시를 받은 신계 자아였다.

사자왕 가이가 영웅동맹의 총교두이자 이제 행성 신계 주신이 될 검의 주신과 동격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즉각적으로 정보를 제공한다.

“그렇습니다. 사자왕 가이님.

그 외의 행성으로 떠난 일부의 영웅동맹의 낙제생들은 바로 재조정 되었습니다.”

“….”

예상대로의 답변에 사자왕 가이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내가 모르는 쪽에서 뭔가가 벌어지고 있다.’

단순한 휴가가 아니라 여러 가지를 노리고 시킨 일임을 깨달은 거대 사자왕 가이의 금속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아이언은 뭘 시킬 때마다 하나만 노리고 시키지 않아서 의도를 파악하느라 골치가 아플 지경이다.

직접 가서 물어보면 대답은 해주겠지.

그러나, 일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상위자가 알려주는 만큼만 알고 충실하게 일하는 것이 오래 사는 지름길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프롬 여제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언의 모습을 생각하고 돌아가는 사태를 짐작해낸다.

신계 회의에서 은하제국이 급속한 통일로 통합이 힘들다는 상황에 대해서 많이 들었으니 추리를 할 수 있었다.

‘그런 건가?

하긴 지금의 우리는 이렇게밖에 쓸데가 없지.’

사자왕 가이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세금미납 행성이라는 항목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어떤 의도인지 숨기려 했다 하면 절대로 기재를 할 필요가 없는 내용이다.

역시 내 짐작이 확실한 것 같군.’

지금 생각대로라면 세금미납 행성에서는 아이언이 말한 사고의 범위가 확 넓어졌음을 인식한다.

그래서, 일반 용자와 아직도 머리를 박고 있는 낙제생들을 내려다보면서 말한다.

“우리 개조 인간은 어차피 가족도 친구도 거의 없다.

그러니 어디를 가도 지옥과 같은 황무지만 아니라면 상관은 없겠지?

혼자 다닐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바로 우렁찬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습니다!”

혼자 책임을 지는 대신 권한을 독점한 사자왕 가이가 열을 받으면 절대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절감했다.

그래서 아주 절박한 대답이었다.

용자왕들도 동감하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간의 휴가라도 나갈 수 있다면 이게 당연한 반응이지.’

아무것도 없는 지옥에서 악령과 정체 모를 함대에 시달리고 있는 용자동맹이다.

지옥과 비슷한 황무지 행성이 아니고 자그마한 도시만 있어도 대만족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자왕 가이는 휴가 행성명단을 복사해서 모든 일반 용자들에게 보냈다.

“여기에서 휴가를 원하는 행성을 적어서 제출하라.

단 한 곳도 빠지거나 몰려서는 안 된다.

균등하게 배분하라.”

조건이 달렸지만, 일단은 휴가 허락이었다.

드디어 지옥에서 벗어나게 된 일반 용자들이 환호를 지르면서 기뻐하는 순간 사자왕 가이는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일반 용자 혼자서는 안된다.

최소한 다섯 이상의 낙제생들을 대동하고 같이 움직여라.”

“!?”

용자왕이 보증을 서라 했으니 자신들은 완전히 틀렸다고 낙심하던 낙제생들의 얼굴에 희열이 스쳤다.

이 사고뭉치들을 데리고 다녀야 할 일반 용자들은 난감한 표정이 되지만, 생각을 좋게 고친다.

‘일단은 나가자.’

‘지옥을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무엇을 못할까?’

용자동맹이 나름대로 이 지침을 받아들인 사실을 확인한 사자왕 가이는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철의 요새가 완전히 원상복귀가 되기 이전에 휴가는 없다.

전원 움직여라”

“!”

그 말에 낙제생들도 모두 일어서서 부리나케 수리에 달려들었다.

일반기체의 물질 변환장치가 완전히 가동되면서 요새수복이 가속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용자왕들이 묻는다.

“가이. 이건 통상적인 휴가가 아닌 모양이군.”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아이언과 오랜 시간을 직설적으로 대화하고 많이 두들겨 맞은 사자왕 가이는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으로 보여서 한 질문이었다.

과연 사자왕 가이는 간단하게 대답을 해준다.

“행성들이 은하제국의 통제를 바라게 하고 싶은 모양이다.

확실하지 않지만 그런 것 같다.”

여전히 모호한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접촉이 많았던 사자왕 가이라고 해도 아이언의 내심을 완벽하게 짐작할 수는 없었다.

‘은하계의 정신체를 전부 지배하는 중앙 신계의 신계 주신의 생각을 용자가 정확히 알 리는 없지.’

다만 용자동맹의 일반 용자와 낙제생들이 은하제국에 유입되면 당연히 발생할 혼란으로 유추할 뿐이었다.

‘아무리 일반 용자와 낙제생들로 조를 짜도 똑같은 놈들이지.

분명히 각 행성의 전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대혼란이 일어난다.’

십만 명의 개조인간 용병이 은하제국에서 일으킬 문제를 생각만 해도 욕설이 저절로 나왔다.

‘휴우우우우우! 젠장! 빌어먹을!’

아이언이 무슨 생각으로 용자동맹에게도 휴가를 주었는지 생각만 해도 속이 뒤틀렸다.

‘아무리 충성을 맹세하지 않고, 자유를 선택했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 하잖아?

조용한 연못에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 역할이라니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여왕의 말을 안 듣고 세금을 안 내는 행성을 뒤에서 혼내주는 역할이었다.

‘그것도 지시를 받아서가 아니다.

존재하는 자체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니 명령 한 줄도 없다.

이게 말이 돼?

가서 따지고 싶지만….’

항의를 듣고 아이언이 피식 웃으면서 주먹부터 날리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또 행성을 도는 위성이 된 신세가 자신의 귀로 아이언이 빈정거리는 음성이 울린다.

‘풋! 내가 가서 사고를 치라고 직접 지시를 했느냐?

용자동맹의 성향은 원래 그런 범죄적이고 반항적이어서 존재 자체가 민폐다.

그런 주제에 나보고 어쩌라고?’

이런 상황이 되면 또 할 말이 없어진다.

‘사고를 치라고 등을 떠민 적은 실제로 없기는 하다.

전부 우리가 자초하고 있지.’

사자왕 가이도 아이언에 지옥에 강제로 끌려온 원망도 이미 많이 희석된 지 오래였다.

‘내가 의뢰를 받고 아이언을 잡으려 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지옥에서 소멸이 되어도 할 말이 없지.’

더구나 아이언은 제국과 연합의 귀족이자 지배층인 초능력자와 동등한 지원을 해주었다.

지성체 시절에는 상상도 못 할 과분한 대우였다.

‘영웅동맹과 차별대우라도 하면 불만이라도 키워보겠다.

그런데 똑같은 지원과 환경에서도 우리만 이런 꼴이니 할 말이 없구나.’

이제 자신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용자동맹의 대표로서 모든 책임을 져야 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사자왕 가이는 벌써 올라오기 시작한 휴가요청서를 몽땅 찢어버릴까 고민을 시작한다.

‘끄응! 내가 앓느니 죽지.’

한편 영웅동맹의 낙제생들은 모두 천국에 집결하여 최후 점검을 받고 있었다.

그들이 모인 장소는 천국의 중심에 세워진 거대한 신전이었고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영웅동맹 주신전’

용자동맹은 지옥에 철의 요새를 만들었을 때 영웅동맹은 천국에 주신전을 세울 수 있었다.

같은 예산이 집행되기에 용자동맹의 특별예산에 동의한 검의 주신이었다.

그는 황금빛의 화려한 장갑과 다섯 개의 검을 등에 메고 있는 검신의 모습으로 변한 거대 영웅왕의 머리에 앉아 있다.

그 옆에는 아직 기신일체(機神一體)를 하지 않아서 아무 장식이 없는 황금갑옷을 입은 거대 영웅왕들이 늘어서 있다.

그 위에도 열세 쌍의 빛의 날개를 휘날리는 주신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발생된 신계의 신력과 권능으로 증폭된 파동이 천국에 메아리쳤다.

후우우우우우우웅-!

아이언은 직속세력인 영웅동맹에 천국에 전용 주신전을 사용하게 허락하였고, 이 주신전 내부라면 그들의 성장과 능력은 극대화된다.

갑자기 휴가라고 해서 두근거리며 천국에 올라왔던 크림 백작과 초능력자들은 모두 압도되어 버린다.

‘으윽! 이게 무슨 기세인가?’

‘쳐다보기조차 힘들다!’

천국에 세워진 영웅동맹의 전용 신계와 영웅왕과 일체화된 주신들의 강력한 존재감은 지옥에서 용자왕과 싸울 때와는 비교도 안 되었다.

무심한 시선으로 영웅왕의 머리 위에서 낙제생들을 내려다보는 주신들의 뒤로 일만 명의 영웅동맹의 초월자들이 대기한다.

서서히 각자의 능력에 맞추어 변화하기 시작한 각자의 기체를 소환하여 한 쌍의 투기의 날개를 휘날리면서 전투대기 중이었다.

그 위압감에 자신들도 모르게 그 앞에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짜고 한쪽 무릎을 꿇은 크림 백작과 초능력자들이었다.

그러자, 영혼을 뒤흔드는 신의 음성이 들린다.

“독신자가 휴가를 갈 수 있는 행성은 이곳들이다.”

아이언이 내려준 휴가 행성명단을 그대로 각자에게 보내준다.

아이언이 보증을 서라는 단서가 있었지만, 주신들은 영웅동맹의 낙제생들에 의해 지성체들의 행성이 어떻게 되든 별 상관이 없었다.

창조력이 강한 신족이면서 전용 주신전까지 가지게 된 그들에게는 피해복구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어차피 지성체가 아닌가?

재생하고 부활시키면 된다.’

‘얼마를 파괴하고 죽이든지 상관없다.’

지금 주신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아이언이 은하제국의 명예 대공으로서 위엄을 보이라는 명령의 수행이었다.

‘아이언님이 가호하시는 은하제국의 통합에 반대하는 지성체의 제압이다.’

‘아무리 과학 문명이 높아져도 정신체의 권능 앞에는 무력하다.’

‘아주 작은 놀이에 불과하겠군.’

하지만, 얕보지는 않고 모든 전력을 집중시켰다.

어지간한 중앙 신계는 멸망시킬 수 있는 영웅동맹의 일만 명의 초월자들과 기체의 기본을 이 은하계의 물질문명이 만들어내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은하계 전역에 흩어진 고도 물질문명의 행성제압을 앞둔 상황이다.

‘큰 전력이 되지 못하는 낙제생들의 휴가는 아무런 관심사가 될 수 없지.’

아이언의 명령과 지침을 상기한 주신들은 낙제생들의 휴가에 관한 관심을 끊고 아주 짧게 말했다.

“잘 다녀와라.”

아무런 지침도 내리지 않는다.

지옥에서 수련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무언의 허락이기도 했다.

하지만, 크림 백작과 초능력자들은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압박을 받았다.

‘우리의 휴가에 영웅왕님들이 보증을 하셨다고 했는데 이런 무심한 반응인가?’

낙제생들의 휴가에 보증을 선 주신들이 지침을 내려줄 때와 같이 출발 직전에도 아무런 주의나 경고조차 없자 소름이 오싹 밀려온다.

‘휴가를 가서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지 아무런 상관없다는 무관심이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주신 정도의 고위 정신체들에게 지성체의 생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은 이제 잘 알고 있는 초능력자였다.

더구나 나름대로 지배층이었기에 문제를 일으킨 피지배층을 어떻게 냉혹하게 처리하는지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휴가지침이 내려왔을 때 알아서 조율했다.

‘휴가를 가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큰 문제가 될만한 인원은 자체적으로 제외했다.’

‘지옥의 주둔지에 극소수가 남아있지.’

‘이들도 주변과 원한을 샀거나 범죄를 저질러서 돌아가면 바로 체포되어 사형이니 큰 반대는 없었다.’

‘일단 지옥의 주둔지 자체가 아쉬운 점이 하나도 없지.’

똑같은 물자를 지원받았지만, 그들이 보기에 난민촌과 다름없는 용자동맹의 철의 요새와는 격이 다를 정도로 잘 꾸며놓았다.

그래도, 지옥에 머물게 되는 셈인데 위에서 아무런 통제가 없으며 언제든지 가고 싶으면 가라니 굉장히 원활한 진행이었다.

‘오히려 주둔지는 자기들이 지키고 있을 테니 상부의 분위기 파악이나 해달라고 손을 흔들었지.’

‘으윽! 역시 천국의 영웅동맹은 이런 분위기였어.’

총교두인 검의 주신이나 다른 주신들은 물론이고, 일반 영웅들조차 바늘 끝도 안 들어갈 정도로 삼엄한 분위기였다.

이들은 아이언의 직접 명령을 받았으니 공을 세워서 승급하자고 모두가 벼르고 있었다.

‘영웅왕이 다섯에 일반기체로 무장한 영웅들이 일만 명인가?’

‘이런 전력이면 은하제국은 순식간에 제압당한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인정사정없이 우리도 처분하겠지.’

검의 주신들이 왜 자신들이 낙제생들의 휴가 보증을 서야 하냐고 분노하면서 사고를 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을 하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런데 완전한 무관심이다.

이런 상위자가 문제가 발생하면 얼마나 냉정한지 잘 아니 스스로 단속하게 된다.

‘지금 사고를 칠 여력도 없다.’

‘빨리 돌아가서 가문의 관리를 해야 한다.

강력한 초능력자인 자신들의 힘으로 유지되던 가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부재가 길었으니 가업에 문제가 안 생겼을 리가 없어서 마음이 급해진다.

모두가 더욱 조심하자고 생각하면서 우렁차게 대답한다.

“예!”

그렇게 은하제국에 초능력자들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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