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가장 동전의 움직임이 둔한 영구동면도 올바른 정답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이지?’
그녀로서는 도대체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직접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반항적인 눈빛으로 시선을 돌린 에메랄드 여왕의 얼굴을 본 아이언은 피식 웃으면서 말한다.
“후후후후후. 명예대공(名譽大公)은 여왕을 돕기만 할 뿐 결정을 강요하지 않는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알려주고 흐름을 읽는 동전까지 주었었으니 은하제국(銀河帝國)을 통치하는 여왕답게 더 좋은 방안을 찾아서 결정하세요.
그러나 이렇게 도왔는데도 또 문제가 생기면 이번에는 공짜가 아니에요.”
허공에서 에메랄드색의 가방을 하나 꺼낸 아이언은 에메랄드 여왕에게 던져주었다.
우웅! 둥실!
조금 전에는 권능이 담긴 동전을 주더니 이번에는 가방이었다.
허공에 붕붕 떠서 여왕의 앞에 도착한 가방은 자연스럽게 열리고, 거기에는 투명한 관이 달린 빈 모유병과 투명한 원통관, 투명한 구슬들이 들어있다.
번쩍!
대모(大母) 마하에게 받은 수유용품을 각 유모에게 맞게 재조정한 신기가 휘황찬란 에메랄드빛을 품어낸다.
그렇지만 정체를 알 리 없는 에메랄드 여왕에게 아이언은 조용히 말한다.
“명심하세요.
명예대공(名譽大公)은 여왕의 요청이 없으면 은하제국의 일에 나서지 않습니다.
부탁을 받고 나서면 대가 없이 돕지만, 만약 여왕의 잘못으로 다시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면 어리석음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번의 일이 잘못되어 다시 제가 나서게 되면 그걸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으로 하지요.
이 방침에 동의하면 가지고 가세요.”
에메랄드 여왕은 이 가방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또 다른 도움을 약속하는 아이언이 넘겨준 가방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명예대공(名譽大公)으로서 개입 입장을 명확히 정한 내용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어머니가 왜 아이언을 중시하는지 알겠다.
방금 말이 사실이라면 최고의 정치적 파트너다.’
권력에 욕심내거나 누리지도 않으면서 엄청난 능력을 갖춘 명예대공(名譽大公)은 여왕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였다.
‘하지만 이번만은 전적으로 따를 수가 없다.
아이언이 언제든지 우주 해적단을 처단할 수 있는 이상 어떻게든 나의 선에서 해결을 해야 해.’
두 번은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가방을 잡는다.
차차착착!
딱딱한 표정으로 가방을 손에 쥐자 가방은 그대로 작아지면서 팔찌처럼 그녀의 손목에 채워졌다.
큰 가방이 보석 팔찌로 변하는 기적을 보았지만, 신들의 물건이니 그러려니 생각한 에메랄드 여왕은 바로 알현실을 떠났다.
구구구구구구구궁-!
바로 본성의 우주함대를 몰고서, 다시 출발하는 모습을 보는 아이언은 나직하게 말했다.
“흐음! 함대를 지배하는 초능력과 아주 용감해서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 너무 무모해서 불안하군요.
저게 뭔지 알고 받아들이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
육아 경험이 있는 프롬 여제는 아이언이 준 가방의 내용물을 보고 수유를 하기 위한 착유기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막지 않았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처녀인 저 아이가 착유기를 알 리가 없다.
그런데 무엇인지도 모르고 수락을 하다니?
실패의 대가가 무엇인지도 모르지 않는가?
아직 경솔하구나.’
하지만, 에메랄드 여왕을 안 좋게 보던 아이언이 본성의 대함대를 단번에 지배하는 모습을 보고 인식이 바뀌었음은 알고 있다.
그래서, 지켜보는 쪽으로 마음을 정리한다.
‘처녀에게 착유기를 주고 준비를 하라 했으니 이게 무슨 뜻인가?
드디어 유모로 만들 생각인가?’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아 있는 아이언에게서 아주 약간의 악의도 느껴지지 않으니 일단은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커다란 아이언의 웃음소리가 알현실을 울린다.
“카하하하! 뭐 이번에 인간의 감정에 호되게 당하고 나면 조금은 신중해지겠지요.
문제의 근원인 우주 해적단을 소멸시키는 방식이 아주 편하겠지만, 이 정도의 효과를 볼 수 있다면 많이 남는 장사예요.”
“….”
너무 심한 장난기가 걱정되기는 했다.
그리고 어느새 아이언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동전탑을 쳐다보았다.
우우우우웅-!
아직 초능력자인 에메랄드는 보지 못했지만, 열 개의 동전이 한꺼번에 나왔다.
하나는 에메랄드 여왕에게 보내고 나머지 아홉 개의 동전은 아이언의 운명을 계산하던 중이었다.
오른쪽 손등 위에 앞면으로 뉘어서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동전탑은 아까부터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가진 의미는 참으로 컸다.
‘이제 지성체의 일로는 어지간해서는 내 흐름이 변동되지 않는군.
그럼 은하제국(銀河帝國)의 일은 여왕에게 맡겨도 괜찮겠지.
조금 민감하게 감시만 하자.’
그 말과 함께 아홉 개의 동전이 일제히 일어나서 옆면으로 세워진 동전탑이 된다.
그리고 아이언은 등을 프롬 여제에게 기대어서 뒷머리에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느끼면서 물었다.
“신계의 생활은 어떤가요?”
자신의 젖가슴 사이에 아이언의 머리가 파고들어 왔지만, 프롬 여제는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살짝 껴안았다.
그 모습은 냉정하고 위엄이 찬 여제의 모습이 아니라 정말 아이를 기르는 유모처럼 보인다.
아이언의 높은 직위와 배려도 그렇지만 모습이 절세의 미소년이라서 경계심을 완화한 덕이 컸다.
“인간 세상과 관점만 다를지 거의 같더군요.
오히려 단순하기까지 했어요.”
은하제국의 여제로서 신계에 대한 솔직한 감상이고 평가였다.
그녀가 파악한 중앙 신계는 인간의 나라로 치면 마치 작은 도시 국가 정도로 체제가 단순한 것이었다.
그 말에 아이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한다.
“잘 보셨어요.
지성체는 초능력자나 개조 인간을 제외하면 개인의 무력이 거의 비슷하지요.
육체를 가진 이상 제약이 많기에 아무리 강해도 군대나 함대라면 처리할 수가 있죠.
하지만, 정신체는 등급에 따라서 권능과 세력이 너무나 차이가 나서 약자의 군세는 큰 의미가 없어요.”
주신은 하위신이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다.
창조신 정도가 되면 아무리 하위신의 수가 많아도 제압이 가능할 정도로 격차가 커져서 조직의 규모조차 의미조차 없어진다.
“강한 권능을 가진 고위 정신체를 하위 정신체가 아무리 힘을 모아도 이길 수는 없어요.
그래서 신족은 모두 신력과 권능을 높여서 승급하려고 최선을 다하죠.”
물론 모두가 성장이 한계에 봉착하여 능력이 거의 고착된다면 그다음부터는 정치가 개입한다.
“권능과 힘을 키우는 일이 신의 삶의 전부라고 할까요?
다만 영원히 살고 세력도 중요하기에 명분을 중시하는 편이예요.”
그러나 이런 정치도 아이언과 같은 강력한 영웅신이 나타난다면 거의 무의미하다.
육체로 인하여 수명과 완력의 한계가 있는 인간의 영웅과는 달리 영웅신의 능력은 끝없이 발전하기 때문이다.
‘영웅신은 단련하기 나름이지만 제약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지.’
그 점에서 현세계의 신체로 재구성한 흑염 세력의 타락한 영웅신의 성장도 무시를 못 할 것으로 보였다.
‘절대계의 강고한 신체를 잃었지만, 영웅신의 저력을 완전히 되찾았을 것이다.’
자신의 상대가 될 리는 없지만, 다른 존재들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원래 흐름과는 완전히 틀어졌으니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니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흑염 세력에 대한 준비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나와 세력이 더 강해지면 되는 일이지.’
그래서 아공간에서 프롬 여제용으로 준비한 수유 기구가 달린 은색의 가방을 꺼냈다.
“이걸 드릴 테니 준비를 해보세요.”
“….”
직접 수유를 할 각오까지 했는데 이런 기구를 넘겨주니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는 프롬 여제였다.
아이언은 일단은 고맙게 받은 프롬 여제를 한번 뒤돌아보고 그대로 다리 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본성 바로 옆에 가져다 놓은 은하유성 수련행성(銀河流星 修練行星)을 쳐다본다.
바늘 기둥의 끝에 세계수가 뒤덮인 별을 본 순간 손등 위에서 미동도 하지 않던 동전탑이 이상 현상을 보인다.
“!!!”
팽! 파파파파파파파-!
아까 에메랄드 여왕의 손아귀에서 돌던 속도와는 엄청난 고속으로 회전을 시작한다.
이 정도의 움직임은 거의 사형선고와 같다는 사실을 바벨의 동전탑의 권능을 직접 만든 아이언은 너무나 잘 알았다.
“하-! 지금 저걸로 신체 강화를 시도하면 내가 죽는다 이거냐?”
뒤에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하는 프롬 여제가 듣지 못하게 작게 중얼거린 아이언은 시선을 수련행성으로 다시 향한다.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
보는 순간 변화가 확실히 느껴진다.
수많은 송곳에 의해서 수많은 구멍이 뚫려서 겨우 길러낸 영웅신의 신체를 잃고서 처참한 죽음을 맞는 미래가 그려진 것이다.
“큭!”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준비를 더 하거나 송곳을 원래의 망치로 바꾸면 쉽게 통과할 수 있음을 아는 아이언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한 번 어렵다고 물러서면 두 번도 쉽다.
수련의 강도와 위험을 생각하면 절대로 한계를 넘을 수 없다.”
스스로 바늘 기둥 정도의 물리 공격은 견딜 수 없다는 제한을 두는 일도 되기에 약화할 수 없었다.
목표가 원대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어떤 공격이나 권능에도 불변(不變)인 황금의 신체,
그리고 흑염이 가진 절대의 완력이다.
그 정도가 아니면 앞으로 유상전생(有償轉生)의 흐름의 조정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정보행성(情報行星) 코아가 유상전생(有償轉生)의 내용과 제약을 전부 알려주었다.
과거를 비틀어서 현재의 자신을 강화하려면 큰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기에 큰 충격은 없었다.
‘세계를 이기지 못하면 오히려 먹힌다니?
바람가 궁극의 금기라고 하더니 반작용도 엄청나군.
다만 각오를 다질 뿐이다.’
더 생각하지 않고, 지금 당장 도전을 하기로 한다.
그래서 대모(大母) 마하에게 받은 모유를 한꺼번에 삼켜버렸다.
꿀꺽! 꿀꺽!
원래 망치 형태의 수련 도구에 있던 안전장치가 수련행성에는 아예 없었다.
실패하면 겨우 여기까지 만들어낸 영웅신의 신체를 잃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행성의 중앙에서 수많은 바늘 기둥에 꿰뚫린다.
그러고 나서 스스로 신체를 강화해서 밀어내지 못하면 아무리 나라도 마지막이다.’
아무리 사정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해야 하니 굉장한 타격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목표를 생각하면 이것도 약했다.
“이 정도의 시련에 도전하지 않으면 황금의 불변(不變)에 도달할 수 없다.
열려라! 수련행성(修練行星)!
나는 황금의 불변(不變)의 신체와 흑염의 절대의 완력으로 현세계를 능가해 보일 것이다.”
아이언의 명령에 따라서 수련행성이 반응한다.
구구구구구구구-!
한곳에 모여서 행성을 이루던 수많은 바늘 기둥이 서서히 벌어지면서 몇 배로 부피가 커진다.
그리고 장엄한 의지를 토해냈다.
‘도전자는 반드시 유언을 남기십시오.
수련행성은 어떤 안전 보장도 하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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