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차원권능의 발동을 방해하지 못한 최상급 창조신들이 멍하게 있자 최고위 창조신도 마음이 급해졌다.
‘이건 내 실수다.’
직접 시험해 보니 아이언이 제시한 방책은 시간이 걸리지만 아무런 위험도 없고 확실했다.
그런데 진행 과정에서 이런 어이없는 실수로 인하여 망친다면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대로라면 다른 최고위 창조신들을 볼 면목이 없다.
특히 열 받으면 막 나가는 아이언에게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른다.’
자신을 탄핵했다고 주변의 상급 창조신을 하극상으로 때려죽였는데 같은 최고위 창조신이라고 봐줄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실수를 만회해야 한다.
장거리 공간이동의 도착지점을 계산하자.’
장거리 공간이동에는 반드시 공간에 흔적이 남기에 어느 정도 도착지점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곧 놀라고 말았다.
‘이럴 수가 있나?
추격을 할 수 없다!’
얼마나 자연스러운 공간이동이었는지 권능이 발동되었다는 사실조차 믿기지 않을 정도로 주변은 깨끗했다.
다급하게 조력자를 호출한다.
“신계 자아! 방금 흑염 도적단의 공간이동 도착점을 확인하라.
불가능하면 방향이라도 추정해!”
직접 연동하고 있는 주변의 신계 자아를 불러서 확인하려고 했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역시 불가능한 모양이구나.
그 짧은 시간에 얼마나 멀리 간 거냐?’
한참 후에 신계 자아가 보고를 해온다.
“탐지가 가능한 영역 밖입니다.”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역시 신계의 탐지가 가능한 항성계를 뛰어넘었구나.
항성계 이상의 영역을 도약했는데 흔적조차 없으니 누구라도 추적은 불가능하다.’
일단 멀리 도주를 했으니 다른 조에게 알려서 중앙 신계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초장거리 공간이동을 방해하지 못했으니 아무 소득 없이 다시 시작해야 할 판국이다.
‘내 실수로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을 소모하게 하지 못했다.’
물론 자신의 실태를 알릴 생각은 없었다.
‘실수는 숨겨야 하겠지.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
이렇게 어설프게 접근하면 바로 도주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으니 다른 조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이 되니 비록 현세계의 정기로 만든 신체로 완전부활을 앞둔 흑염 세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어떻게 고유세계를 찾았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왜 이렇게 눈에 띄게 접근해 와서 쉽게 도망을 치게 하는지 이해가 전혀 가지 않았다.
가장 타당성이 있는 예상은 바로 나왔다.
“차원권능의 기동력 상실을 노리나?”
“설마? 그럼 이렇게 곱게 보내면 안 된다.”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은 열 명이나 있었다.
“이 정도는 서로 돌아가면서 발동하면 지칠 일이 없다.”
“그럼 뭘 노리는 거야?
고위 창조신들을 엄청나게 동원해서 말이야?”
스물여섯 쌍의 빛의 날개를 가진 창조신들을 이미 오백 명을 넘게 확인한 흑염 세력도 나름대로 긴장하고 있었다.
‘본래의 신체를 잃어서 영웅신의 저력이 약화가 되었다.’
‘벅찬 상대가 많이 보이는군.’
특히 대열의 맨 뒤에 있는 가장 호화로운 복장을 하고 누구보다 거대한 빛의 날개를 휘날리는 창조신은 굉장히 강했다.
다만 저렇게 찬란한 복장은 도저히 전투에 나온 모습이 아니었다.
“전장에서 저런 눈에 띄는 꼴을 하다니 제정신이냐?”
“병신같지만 강하다.”
성장용 유리관 속에서 순조롭게 성장 중인 흑염 세력은 새롭게 나타난 강적들에 관해서 토론을 벌인다.
“저 병신들은 아무리 보아도 현세계 최고위 창조신들이다.”
“지금 우리와 신격 차이가 현격해.”
“그럼 공격과 방어가 잘 안 될 거야.”
“그럼 다수가 몰려들어서 쳐야겠군.”
새롭게 나타난 강적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는데 두목인 근원은 다른 분야에서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다.
‘신족이 우리의 고유세계를 정확히 탐지할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을 갖추었다.
역시 지배종족의 저력은 무시를 못 해.’
새로 만든 신체가 완전히 성장할 때까지 숨어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쉽게 찾아낼 수 있다면 위기였다.
더구나 흑염권능의 직감도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아이언에게 신체를 잃어서 잔류하고 있던 흑염권능의 가호가 많이 소실되어 버렸다.’
그래서 정확한 예측은 없지만, 사태가 악화하고 있음은 분명했다.
‘저렇게 어설프게 나오면 포위당하기 전에 도주하면 끝이지만 굉장히 불길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된 원인은 장기간의 체류였다.
아이언에게 죽임을 당해서 부활하느라 시간이 걸리고 있기도 하지만 한곳에서 너무 많이 턴 것이다.
‘이 은하계에 너무 오래 있었다.
부활하면 바로 다른 먼 은하계로 가야 한다.
무엇보다 여기는 아이언의 은하계와 너무 가까워.
탄핵 때문에 잠시 떠났다고 하지만 언제 또 올지 몰라.’
괴물과 같은 아이언과는 다시는 마주하기 싫었기에 내린 근원의 결정이었다.
그리고 말을 꺼낸 근원의 의견에 다른 존재들도 모두 동의했다.
“좋다! 빨리 이 지긋지긋한 은하계를 떠나자고!”
“그 괴물이 현세계 초월자의 영웅신 은하유성(銀河流星) 아이언이라고 했던가?
꼴도 보기 싫다!”
근원은 다른 흑염 세력도 자신처럼 아이언에게 치를 떨고 있음을 알았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투기로 강화된 완력도 문제다.
하지만 승승장구하고 있는 영웅신을 바라보는 기분이 뭐라 할 수 없이 더럽기는 하지.’
타락한 영웅신이지만 자신들에게도 저렇게 빛나는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저렇게 기세를 탄 영웅신을 이길 방법이 없다는 사실도 너무나 잘 알았다.
“잘 나가는 영웅신을 만나서 정말 지독했다.”
“이제 우리가 영웅의 위업을 위한 희생물인가?”
“제길! 정말 가장 밑바닥에 다시 떨어졌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주는군.”
아이언이 최고위 창조신까지 바로 되었다고 하던데 그게 자신들을 죽이고 얻은 직위라니 생각만 해도 속이 뒤틀리고 있었다.
확실한 대책은 있었다.
“다신 안 보면 된다.”
“현세계는 넓고 털 신계도 많아.”
“아주 멀리 가자.”
흑염세력은 아예 현세계 반대편으로 가려고 결심을 했다.
이렇게 흑염 세력과 정식 토벌단의 소득이 없는 몇 번의 접촉이 끝나자 창조신계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최고위 창조신들이 고유세계 탐색에 익숙해지는지 발견 시간은 점점 빨라진다.
‘그런데 그 이후의 경황 보고가 전혀 없어.’
‘아이언의 전략의 핵심은 고유세계의 탐지가 아니고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을 극도로 소모하게 해 정기고갈로 몰아넣어 기동력을 뺏는 것이다.’
‘이러면 모두 실패로군.’
차원권능을 방해하지 못한다면 쓸데없는 시간과 전력 낭비이다.
그래서 우주신들은 토벌 중간보고서를 세밀하게 읽고서 바로 문제점을 발견했다.
“쯧쯧! 찾으면 뭐하나?
이래서 방해를 못 하고 있군.”
“접근을 눈치를 채고 먼저 도망을 치나?”
“권능발동속도가 너무 빨라서 차원권능의 발동을 전혀 막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이러면 소모는 고사하고 경각심만 높여놓았겠군.”
최고위 창조신들이라고 해도 계속되는 실책에 평안을 유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화상통신으로 보면 얼굴빛이 좋지 못하고 각자 보낸 토벌 보고서를 조사해보고 바로 알게 된 일이었다.
‘자신들의 실책에 대해서는 전부 입을 다물고 있다.’
‘보나 마나 전투가 아닌 산책하는 기분으로 한 모양이군.’
‘고유세계를 찾아내도 차원권능을 방해하지 못하면 끝이 안 난다.’
우주신들은 사태를 파악하고 이마에 주름을 잔뜩 잡고 앉아있는 창조신장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
최고위 창조신 이상의 전력이 없는 창조신계에 해결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직접 움직일 수 없는 창조신장의 인상이 더욱 일그러졌다.
‘아이언의 흑염 도적단 토벌방식은 분명 완벽하다.
그런데 실행하고 있는 최고위 창조신들의 실전경험 부족으로 진행이 안 되고 있다.’
브라이트가 복귀하면 자신이 직접 나설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도 권능이 전투보다 관리에 집중되어 있으니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방법은 있었다.
아주 비싸고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지만 확실한 해결책이었다.
“최고위 창조신 아이언에게 연락을 해서 사정을 알리고 조치하라고 하라.”
“예?”
우주신들이 당황해서 되묻는다.
그러나 창조신은 이마의 주름을 펴면서 말했다.
“영웅신이니 이 일도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
우주신들이 황당해서 입을 벌렸지만, 창조신장의 입장에서는 무책임하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었다.
‘창조신장으로서 여기저기 얽혀있는 나와 다르게 아이언은 혼자라서 자유롭다.’
요즘은 무슨 어려운 일만 벌어지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존재가 아이언이다.
이제 아이언을 투입하면 아무리 문제가 커져도 해결되리라는 믿음이 섞여 있었다.
‘왜 브라이트가 영웅신인 아이언을 중용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신족의 지배자로서 극도로 유능한 영웅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는 창조신장이었다.
그런데 명령을 들은 우주신들은 멈칫거렸다.
정식 토벌단의 한심한 실태를 연락받은 아이언이 어떻게 나올지 보이는 것이다.
‘이거 분명 곱게는 안 넘어간다.’
‘모두 두들겨 맞을 텐데?’
이제까지 벌인 일을 보면 최고위 창조신이고 뭐고 전원을 가만히 둘리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맞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아이언은 공짜로는 절대로 일을 안 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옆에서 돕고 있던 고위 관리신들도 기겁을 하면서 만류했다.
더 정기를 빼앗겼다가는 정말 월급도 못 줄 판국이었다.
“또 엄청난 대가를 요구해올 것입니다.”
“다른 고위 창조신들이 아주 싫어할 것입니다.”
아이언은 유아신이지만, 어리석지 않았다.
이번 사태로 다른 고위 창조신들과 완전히 척을 질지도 모르니 많은 대가를 요구하는 모습이 바로 보였다.
하지만 창조신장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더 나빠질 관계가 있던가?
정기만 아니면 이번 일의 대가는 될 수 있는 대로 전부 조치해준다고 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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