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이야기 중간에 불려온 디스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투기를 깨운 덕에 가장 큰 압박을 받고 있으니 일단은 무조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언 정도의 존재에게 지금처럼 가호를 받을 수 있다면 절반의 재물을 바쳐도 아까운 일이 아니다.
‘아이언님에게 필요한 것이 재물 자체가 아닌 거기에 담긴 마력인 이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잠깐 보여주는 셈이다.
그리고 보호까지 해주실 것이니 더 많이 당당하게 거둘 수 있겠어.’
이건 거의 공짜였다.
허나 아이언과 연관되었으니 좋은 일만은 발생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혹시라도 회개라던가 개심 어쩌고 하면서 바치는 뇌물의 양과 수준이 떨어지면 나에 대한 모독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저항 세력에게 뇌물을 먹은 사실을 들켜서 징계를 먹거나 직위를 잃으면 당장 지옥의 악령으로 만들어준다.
더 많이 해 먹되 절대로 걸리지 말란 소리다.”
열심히 손익계산을 하면서 좋아하던 고위관리들이 순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축 늘어졌다.
지금 직위로는 저 정도 뇌물의 소화도 아슬아슬한데 더 바치려면 무조건 승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죽어라 일해야 했다.
“...”
“...”
수없이 지옥의 악령들과 빙의를 한 자신들만큼 그들의 처참한 상황을 잘 아는 존재가 없었다.
약자나 패배자에 대한 동정심 따위는 없지만, 자신들이 지옥이 악령이 된다고 생각하니 이제 측은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분명하게 선을 그은 아이언은 아예 정확하게 지침을 내려주었다.
“지금은 약하지만 강해져서 나중에 출세한다.
이것이 악당동맹의 유일한 가치가 된다.
거기에는 선도 악도 없다.
오로지 힘과 부귀만이 존재한다.”
아이언은 마신왕에서 창조신으로 되돌아오면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외친다.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가졌으면서 노력하라고 거들먹거리는 영웅동맹은 너희의 적이다.
또한, 운 좋게 힘을 얻었다고 자신이 강자임을 잊고 약자 편에 서서 정의를 외치며 분탕만 치는 용자동맹은 너희의 원수가 된다.
그 외에는 내게 걸리적거리면 전부 처단하라.”
“?!”
자신들이 알기에는 영웅동맹과 용자동맹은 모두 아이언의 직속세력이었다.
그런데 같은 소속이 된 악당동맹인 자신들에게 이 둘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멸망시키라는 소리로 들렸다.
이해가 전혀 되지 않지만, 일단은 우렁차게 대답하는 악당동맹이었다.
“알겠습니다!”
“능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마신왕의 신격까지 본 이상 절대복종 이외에는 답이 없었다.
‘더구나 영웅황제 소속인 크림 백작과 초능력자들에게는 빚이 있지.’
‘개조 인간으로 구성된 용자동맹에게 지옥에서 지독하게 당했으니 망설일 이유도 없다.’
이 모든 것을 꾸민 아직 마신왕의 신격이 남아있는 아이언의 싸늘한 말이 울린다.
“나의 부하든 적이든 상관없다.
내 구역에서 정기만 소모하고 생산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약한 놈들은 지성체와 정신체를 구분하지 말고 싹 죽여버려서 청소해.
은하계의 제초제.
이게 악당동맹인 너희 일이다.”
“...”
“...”
지성체를 잡초로 취급하면서 제거하는 극약의 역할을 하라니 얼마의 생명을 죽여야 할지 모른다.
저항세력과 거래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뭔가 엄청난 악의 조직에 떨어져 버린 것을 실감한 고위관리들이었다.
‘은하제국이 나태하지 않게 저항세력을 뒤에서 육성하고 발전에 반대하는 세력도 없애야 하는가?’
‘이러면 우리는 은하계의 진정한 흑막이 된다.’
이런 일을 당당하게 시키면서 자신들 위에 군림하는 아이언이 얼마나 잔혹한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면 지옥조차 들지 못하고 바로 소멸할 죄를 쌓게 되겠지.’
고위관리들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없었다.
다만 암담한 미래만이 보일 뿐이다.
‘신은 원래 지옥에서 천국으로 구원을 해주지 않나?’
‘왜 더 악랄한 일을 하라고 몰아붙이는 거냐?’
신을 정체 모를 존재라고 왜곡하고 종교를 아예 금지했기에 더욱 알 수 없다.
‘신에 대해서 더 알아야 한다.’
‘정보가 너무 없어.’
‘연구해야 해.’
나중에 큰 재산이 될지 몰라서 몰래 숨겨놓았던 과거 종교의 경전들을 전부 꺼내어서 연구해야 할 필요성까지 느끼는 고위관리들이었다.
그리고 아이언은 완전히 마신왕의 신격을 갈무리하고 천족과 마족을 주시하면서 말했다.
“악당동맹의 소속원들에게 현실의 위기감을 잘 심어 줘라.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막중하니 너희의 역할이 크다.”
누구 말이라고 거역할 것인가?
그대로 이마를 더욱 땅에 박으면서 크게 외친다.
“알겠사옵니다.”
“위대하신 신계 주신에게 영광이 있으라.”
그렇게 악당동맹까지 만들어낸 아이언은 고개를 들어서 허공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자신이 새롭게 그려낸 미래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둥-!
영웅동맹의 황금빛 장갑이 빛나는 영웅왕 수십 기가 검은 장갑의 용자왕 수십 기에 돌진하고 있었다.
맨 앞에 전신에 빛의 검을 솟게 해서 고슴도치처럼 보이는 검의 주신의 영웅왕이 질주하면서 외친다.
“용자동맹은 당장 영웅왕들을 반납하라!
그건 위대하신 신계 주신님의 분신!
너희와 같은 신계에 이바지하지 않는 반항아들이 몰아서는 안 되는 보물이다!”
네 기체부터 당장 내놓으란 말이다! 사자왕 건-!”
이제 완전히 사자 인간 형태의 갑옷이 된 용자왕을 가진 사자왕 건은 질린듯한 표정으로 상대해간다.
“영웅왕이 아닌 용자왕이다!
능력이 부족해서 빼앗겼다면 포기하란 말이다!”
“이제 우리도 개조 인간보다 기계신의 조종능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말을 듣지 않으면 힘으로 전부 회수한다!”
검의 주신의 영웅왕이 수백 발의 빛의 검을 사자왕 건의 용자왕에게 퍼부었다.
사자왕 건은 그걸 모두 장갑의 경사면으로 흘리면서 대응을 하고 갑옷 중앙의 사자 머리가 포효한다.
두 명을 따르던 용자왕과 영웅왕들이 충돌을 하고 있었다.
투가가가가가강-! 꽈드드드드득-!
창조신의 일반공격조차 튕겨내는 무적의 장갑을 가진 기체이기에 잔재주 따위는 펼치지 않는다.
단지 서로의 투기와 권능을 전력으로 발휘하면서 치명타를 노리는 한 치도 밀리지 않는 접전이 벌어졌다.
‘기체의 성능은 같다.
‘이제 조종기술도 엇비슷하다.’
다만 영웅왕은 이십 대이지만 용자왕은 삼십 대라서 용자동맹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용자동맹이 많다고 해도 권능의 차이가 커서 일방적인 우세는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전투는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
“끈질긴 영웅왕 놈들!
도대체 어디까지 쫓아오는 것이냐!”
“모든 영웅왕을 회수하기 전까지 우리는 너희의 추적을 포기하지 않는다!”“지금 급하단 말이다!
너희를 상대할 시간이 없다!”
두 세력이 싸우고 있는 동안 한참 떨어진 곳의 행성 하나가 종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무서운 마력을 품어내는 수백만 명의 악령들이 행성에 사는 지성체 전부를 죽이고 정기를 회수하는 중이었다.
무수한 지성체들이 악령들에게 당하면서 외치는 비명을 감지한 용자동맹은 다급해졌다.
“이 악당동맹 놈들! 멈추지 못해!’
‘거기 사는 지성체 모두가 죄인이 아니란 말이다!”
“무고한 자들이 훨씬 많다!”
아이언은 저 행성의 모든 지성체의 처분 결정을 내렸다.
사유는 행성을 오염시켜서 회복 불가능으로 몰아넣은 죄였다.
오십억이 넘는 지성체를 죽여서 정기를 회수하는 일이기에 당연히 논란이 컸다.
그러나 아이언은 물러서지 않았다.
‘나 은하유성(銀河流星) 아이언은 신계 주신으로서 합법한 결정을 내렸고 명예 대공으로서 경고했다.
그 모든 것을 무시한 저 별의 지성체들 모두를 정기회수 처분을 한다.’
이미 창조신으로서 신계를 완벽히 장악하고 있기에 정신체들의 반발은 없었다.
그리고 은하제국의 명예 대공으로서 찬성파는 프롬 여제에게 관리를 맡기고 반대파는 악당동맹을 동원해서 철저하게 설득해 버린다.
그렇게 모든 의사를 하나로 모았으나 군대는 움직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제국의 군대가 한 행성의 지성체를 몰살시키라는 명령을 제정신으로 따를 리가 없었다.
프롬 여제가 직접 명령해도 거부할 태세였기에 아이언은 자신의 직속세력을 움직였다.
직접 나서면 순식간이겠지만, 은하제국은 지성체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지침은 스스로에게도 유효했다.
‘모든 동맹의 맹주로서 명령한다.
나는 결정했으니 이번 일도 각자의 가치에 따라서 움직여라.
구원도 심판도 또한 개입도 너희의 자유다.’
그 말에 동맹 중에서 가장 전력이 약해서 지옥의 악령 보충이 절실한 악당동맹이 환호하며 몰려간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막대한 재화가 들어가는 행성 정화를 거부했다가 정말 모두 몰살이라는 최종통보를 받은 저 행성 지성체들의 간절한 구원요청을 받은 용자동맹도 움직였다.
제국의 함대보다 더욱 지독한 악당동맹의 위험성을 너무나 잘 알기에 다급했다.
“막을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살린다.”
“멈춰라!”
제국의 함대가 몰려가도 일반인은 대부분은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언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악당동맹의 손아귀에서는 생존자는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드디어 지옥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용자동맹을 영웅동맹은 그냥 두지 않았다.
“드디어 정당하게 싸울 기회가 왔다.”
“용자동맹에게 넘어간 영웅왕을 전력으로 되찾는다.”
용자왕이 되어버린 영웅왕의 회수는 이미 영웅동맹의 숙원이 된 지 오래였다.
무엇보다 주신들로서는 이번 아이언의 조치는 정당했고 그걸 방해하려는 용자동맹은 용서할 수 없는 반역자였다.
“행성이 지성체보다 중요하다!”
“저 극악한 범죄자들을 왜 도운단 말인가!”
“아직도 지성체 수준의 사고만 가졌는가?”“가고 싶으면 영웅왕을 전부 내놓고 가라!”“이 피도 눈물도 없는 신족!”
그렇게 영웅동맹 영웅왕과 용자동맹의 용자왕이 격전을 벌이고 있을 때 행성의 정기회수는 시작되고 있었다.
거대한 마력 폭풍우를 휘감은 채 상공에 떠 있는 디스와 고위관리들은 지옥의 악령들을 행성에 풀어 놓고 웃고 있었다.
“크크크크! 별 전체가 이 어리석은 것들 때문에 오염으로 다 죽어간다.
덕분에 크게 한몫 잡겠어.”
“후후후후! 은하유성(銀河流星) 아이언님의 재산이 손상이 가는데 선악의 구분은 무의미하지.”
인간에게 완벽한 관리인 성인(聖人)의 흉내는 못 할 노릇이었다.
악당동맹이 되어서 진정한 악당으로 낙인찍혀서 기분은 더러웠지만, 이익은 이처럼 무궁했다.
더구나 낮에는 은하제국을 좌우하는 고위관리로서 쌓인 스트레스를 밤에 이렇게 풀 수 있으니 더욱 좋았다.
“영웅동맹이나 용자동맹과는 격이 다른 신속한 조치야말로 악당동맹의 존재 이유다.”
“모두 죽여서 정기를 추출하고 영혼은 지옥으로 보내라.”
“정기와 영혼은 원래 소유자인 그분께 드리고 물질은 우리가 챙긴다.”
악령에게 빙의 당해 순식간에 육체를 빼앗기고 죽은 지성체들은 비명조차 지를 수가 없었다.
악령에게 육체를 빼앗기고 죽자마자 영혼이 바로 지옥으로 빨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수억의 생명이 순식간에 사라져갔지만 불쌍하게 여기는 악당동맹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지옥은 밤에는 자신들의 영역이었고 쉬는 집이었으며 저들은 세력의 일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어가는 모든 지성체가 들을 수 있게 크게 외쳤다.
“은하유성(銀河流星) 아이언님의 자비는 한 번의 경고로 끝났다.
오염을 유발하는 모든 행위를 중지하고 별을 되살리라는 경고를 무시했다.
너희는 모두 정기로 바뀌어 이 별을 원상태로 회복시키는데 사용될 것이다.”
행성의 정기회수 처분은 이미 결정되었지만 비밀이었다.
지성체들이 받은 충격을 생각해서 불행한 사고로 행성의 지성체가 몰살되었다고 전파될 것이지만 이런 공개를 꺼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행성에 사실을 기억한 지성체나 기록한 저장매체를 단 하나도 남기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파파파파-!
그런데 행성 여기저기서 악령에게 저항하는 군대가 보인다.
초월자를 육성하기 위해서 이능의 기술들이 풀렸으니 악령들의 대응도 어느 정도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지옥에서 엄선한 악령들의 수준은 가끔 나타나는 원령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잠시 발을 묶을 정도였고 바로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그러나 이들이 끈질기게 버티는 이유가 있었다.
희망은 있었다.
“용자동맹은 아직인가?”
“용자님들은 언제 오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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