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초능력은 없지만 감이 좋아서 천족과 마족의 존재를 이미 눈치를 채고 대화까지 해왔다.
마족의 조언대로 따라서 승승장구해왔지만, 천족에게는 조금의 고마움도 느끼지 않았다.
“네 말대로 하면 호구 소리를 듣고 무시당하면서 망하니까 그렇지.
그런데 왜 내가 지옥에 온 거야?
나만큼 제국과 인류를 위해서 이바지한 관리가 어디에 있다고?”
제국의 산적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발전으로 이끈 공로로 바닥에서 제국의 최상층까지 올라선 고위관리였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초능력자와 기계 귀족들을 제외하고는 최고로 인정받았고 그들이 갑자기 사라지자 명실상부한 제국의 지배층이 될 정도였다.
물론 겁도 없이 날뛰던 경쟁자 몇몇을 몰래 처리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누구나 하는 일이었다.
“내게 어느 정도 잘못이 있다 할지라도 공으로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
자신 덕분에 살아난 제국의 시민이 수백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다짜고짜 지옥이라니 이럴 수는 없었다.
중년 천족은 진정 안타까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떤 선행을 해도 악행 자체를 삭제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 말이 진심이 아니길 빌지.”
“역시 넌 말이 안 통해!
마족은 어디 갔어?”
그나마 도움이 되는 마족을 찾았는데 천족은 길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일단 상부에 사정하려고 갔네.
그래도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으니 무시를 할 수가 없더군.”
보조인격으로 살면서 주인격과 대화가 가능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거의 길러온 것과 마찬가지이니 아무리 마족이라도 외면을 할 수가 없었다.
고위관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지옥에서도 사정하면 통해?”
지옥에서도 돈만 있으면 편하게 살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중년 천족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허공에서 내려왔다.
“대가를 지급하면 어느 정도는 통한다네.”
“대가? 돈?”
“우리는 정기로 내면 조금은 편의를 봐주지.
그래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곳으로 데려올 수 있었지만, 아직 위험하니 몸을 감추게.
발각되면 굉장히 문제가 커질 수 있어.”
“안전? 위험? 말을 줄여?”
고위관리는 순수한 두뇌의 힘만으로 제국의 최고 지배층이 될 정도로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몇 마디 대화로 지금 상황을 파악하고 감정을 추슬렀다.
‘여기가 정말 지옥이면 천족과 마족의 도움이 없으면 끝장이다.’
그때 은은한 진동이 울리기 시작한다.
둥둥! 쿠쿵!
무엇인가 거대한 물체들이 충돌하거나 폭발하는 소리였다.
중년 천족은 당황해서 주변을 살펴보다 암울한 얼굴이 되었다.
지성체들은 볼 수 없는 지평선 저 너머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여파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허어억! 설마 여기까지 퍼지려나?”
천족과 마족으로서는 이 고위관리가 대화가 되는 상대이면서 제국의 최고 지배층이라서 막대한 정기를 생산하는 보물창고였다.
갑자기 잠이 들면 지옥으로 보내라는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따랐지만 어떻게든 최대한 오래 살게 해야 했다.
그런데 무엇인가 날라오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해서 외쳤다.
전쟁터에서 퉁겨져 나오는 것이 무엇이든 유익할 수는 없었다.
“위험하니 빨리 엎드려!”
“!”
위험이란 말에 고위관리는 반사적으로 몸을 바닥에 던졌다.
‘어린 시절부터 천족과 마족의 말을 듣고서 손해를 본 적은 없었다.’
특히 위험경고를 어기면 바로 심각한 피해를 보았기에 이제는 조건반사였다.
철퍼덕-!
고위관리가 운동 부족으로 슬슬 지방이 늘어나는 몸이 바닥에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땅에 붙는다.
그리고 중년 천족도 재빨리 엎드리고 은신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지금 전쟁터에서 이쪽으로 날아오는 파편은 거대 기계신이다.’
그리고 그 정체를 이제 모든 천족과 마족은 알고 있었다.
신계 주신의 기계 분신이기도 하니 모를 수가 없었다.
“영웅동맹의 영웅왕?
도대체 누가 저렇게 만든 거야?”
영웅왕은 창조신과 비견될 정도로 강대한 기계신이라고 들었다.
‘더구나 지금 한참 난동을 피우고 있는 흑염 도적단조차 파괴하지 못한 엄청난 방어력까지 갖추었다고 했다.’
그런데 무적이라는 장갑이 파괴되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 그을리고 조약돌처럼 퉁겨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푸하하하하하하-! 꽈꽈꽈꽈꽈꽈꽝-!
그런데 날려지고 있는 영웅왕을 따라서 거의 같은 크기의 기계 거신이 움직인다.
날려진 영웅왕의 금색이었던 반면에 추적하는 기계 거신의 색깔은 검었다.
그리고 금발의 갈기를 휘날리면서 공중에서 주먹과 발로 연타를 쏟아부었다.
쿠쿵-! 쿵! 꽝-!
영웅왕의 장갑은 흠집이나 금조차 가지 않는다.
그러나 탑승한 검의 주신의 분노가 금속 얼굴에 가감 없이 드러났다.
“사자왕 건! 날뛰지 마라!
그리고 영웅왕을 되돌려받겠다.”
처음에는 영웅동맹의 영웅왕들은 기세 좋게 중재를 나섰다.
‘설마 아이언님이 용자동맹의 개조 인간들에게도 영웅왕에게 탑승할 자격을 부여했을 줄이야!
일단은 부하이니 당연한 일인가?’
제어력이 더 뛰어나면 영웅왕이 조종자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엄청난 실수였다.
방금 일어난 일이 검의 주신의 회상에 떠오른다.
번쩍!
갑자기 나타나서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는 영웅왕들을 흘린 듯이 보던 사자왕 건에게 영웅왕 중 하나가 눈에서 빛을 품으면서 반응했다.
‘분명 익숙하지 않은 기계신의 조종이라고 난감해했던 주신의 기체였다.’
그리고 황금색의 기체가 검게 변화하는 모습을 본 검의 주신은 그제야 신계 주신의 말이 이해가 갔다.
‘무능한 강자들을 용자동맹의 먹이로 던져줄 것이다.’
인제 보니 영웅동맹에게는 능력과 자격이 없으면 영웅왕을 빼앗긴다는 의미였다.
지극히 냉정한 조치에 소름이 오른 검의 주신이 다급하게 외쳤다.
“기계신체의 제어가 완벽하지 않으면 물러서라.
잘못하면 용자동맹에게 영웅왕의 통제를 빼앗긴다!”
영웅동맹의 주신들이 경악하여 막기도 전에 영웅왕이 타고 있던 주신을 방출하고 그대로 사자왕 건을 받아들인다.
그제야 임시 사용자라는 의미를 모두 알게 되었다.
‘정식으로 영웅왕을 허가받은 것은 검의 주신뿐이다.’
‘그 외의 임시 사용자는 모두 언제든지 빼앗길 수 있다는 뜻인가?’
영웅왕을 빼앗긴 주신은 실제로 가장 조종을 잘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웅왕을 처음 탄 검의 주신은 마치 자신의 신체처럼 자유롭게 다루면서 다른 영웅왕들을 압도한다.
이런 결과가 나오니 검의 주신의 정식 인증이 단순한 내기에서 이긴 공적이 아니라 기계신의 제어능력을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검의 주신이기 전에 신계에 소속된 기계신 군단의 조종 교관이었다.
이런 기계신체의 조종은 권능에 속한다.’
‘그래서 영웅왕을 주신 것이로군.’
사태를 분석 완료한 검의 주신의 명령이 떨어졌다.
“나 이외는 모두 물러나!
개조 인간과 기계신체의 제어력을 겨루면 당연히 진다.”
그 말에 임시 사용자인 주신들이 모두 도망치듯이 천국으로 돌아간다.
정말 몇몇 영웅왕들이 다른 개조 인간들에게 추가로 반응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제길! 모처럼 쉽게 힘을 얻었다고 기뻐했더니!”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이 없어.”
영웅왕들과 감응하기 시작했던 몇몇 개조 인간들이 아쉬움의 탄성과 분노의 소리를 질렀다.
“이런! 뭔지 모르지만 조금만 더하면 될 것 같았는데 놓쳤다!”
“저 인형 병기는 도대체 뭐지?”
“마치 영혼과 몸 전체가 흡수되는 느낌이야.”
신족에 대한 정보는 얻었어도 후보생이기에 극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최소한 자신들이 지금 다시 오지 못할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만은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웅왕의 탈취를 성공한 사자왕 건이 동화되는 모습을 부러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영웅왕과 동조를 시작한 사자왕 건은 강화된 기계신체를 통해 전해지는 수치를 잴 수 없는 성능에 더없는 환희에 차 있었다.
“이것이 힘! 그리고 바로 정의!”
용자동맹 후보생들의 영웅왕 제어권 탈취 시도에 위기감을 느낀 주신들이 모두 물러났다.
그리고 유일하게 남은 검의 주신은 이를 부득 갈았다.
영웅동맹의 가장 중요한 전력 중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으득! 이런 실수를 하다니!”
영웅왕은 정확히 일백대가 있었다.
아이언이 용자동맹에게 영웅왕의 조종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알려주지 않은 탓이라고 변명할 수도 없었다.
영웅왕의 조종사가 되기 위한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주신의 기체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비이! 비잉-! 빙!
그리고 검의 주신의 영웅왕에게도 일만이 넘는 용자동맹의 후보생들의 계속된 탈취 시도가 이어졌다.
영웅왕이 미약하지만, 연속적으로 반응하고 있는데 검의 주신은 코웃음을 쳤다.
“푸훗! 까불지 마라.
나는 기계신을 다루는 신계 일족의 기대주이면서 신계 기계화 부대의 교관이기도 했다.
너희가 기계 몸을 얻어서 이룬 기신일체(機神一體)의 경지 따위는 성인신 이전에 끝냈다.
그것도 순수한 수련으로 이룬 경지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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