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신자라면 환영하는 기준이겠지만 무신론자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편협한 기준이었다.
분위기가 차가워지는 분위기를 읽은 아이언은 어느새 빈 주전자에 세계수의 잎과 수액을 넣고 다시 차를 끓였다.
보글보글! 쪼르르르르르-!
순식간에 끓은 세계수 차를 다시 잔에 가득 채우고 아이언은 가볍게 말했다.
“믿으면 천국이고 안 믿으면 지옥이다.
지성체들에게는 자유 의지와 이성이 있으니 어지간한 문명 이상이 되면 반론을 당하고 무너지기 딱 좋은 기준입니다.
더구나 너무나 명확한 기준이라서 종교재판이나 전쟁의 명분으로 악용을 당하더군요.
지성체들이 서로의 욕망의 충족을 위한 전쟁을 하면서 신을 핑계로 하면 이것만큼 모독도 없겠지요.
그래서 신족은 다음 과정으로 넘어갑니다.”
은하계의 별의 모양이 변한다.
화아아아아-!
소용돌이의 모양에서 원으로 응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거대한 빛의 별이 된 은하를 보면서 아이언은 낭랑하게 말한다.
“하나의 행성에 사는 인구를 최대한 늘리고 규모를 키워서 자연스럽게 정기를 확보한다.
지성체들의 기준으로 보면 기업을 키워서 걷는 세금으로 운영한다고 할까요?
이렇게 되면 관리가 많이 들어가는 개인의 신앙심은 별다른 문제가 안 되지요.
주된 기원인 병의 치료와 기아는 행성의 자연환경 개선과 높아진 문명으로 처리가 되니까요.
무엇보다 수백 배로 늘어난 인구를 가진 행성에서 뽑아낸 정기의 양이 압도적 많아요.
정제만 잘하면 이쪽이 더 좋지요.”
에메랄드 공주는 뭔가 알 것 같으면서 이해하기 힘든 설명이었다.
그러나 제국을 다스려왔던 프롬 여제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었다.
‘수백억의 국민에게 세금을 일일이 걷는 것보다는 소수의 귀족과 기업에게 한꺼번에 받는 편이 더 좋다.
징수과정에서 문제도 적고 조율도 편하다는 뜻이군.’
프롬 여제가 잘 이해하고 있다고 파악한 아이언은 느긋하게 대화를 이어간다.
“하나의 행성에 일백억 정도가 되면 이제 관리 중점은 지성체의 신앙이 아니라 좋은 환경을 가진 행성이지요.
그래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간 신족에게 별의 파괴는 용서할 수 없는 중죄가 됩니다.
급격한 인구감소를 부르는 전쟁이나 치명적인 오염과 파괴만 하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놔둔답니다.”
여기까지는 이해한 프롬 여제였다.
그러나 아이언이 무엇을 바라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 단순히 은하제국의 인구가 일천조 이상이 되기만을 바라시는가요?”
이것이 정말 의문이었다.
“일조의 신성제국에서 거두어들이는 정기보다 일천조의 은하제국이 더 많아요.
그러니 제 의도를 의심할 필요는 없어요.”
거기까지 들은 에메랄드 공주는 참지 못하고 반론을 이야기했다.
“엄청난 시간이 걸릴 텐데요.
아무리 출산을 장려하고 양육환경을 좋게 해도 일천 배로 늘리려면 적어도 일백 년 이상 걸려요.
그런데 그런 말을 믿으라고 하시나요?”
하나의 행성에 인구를 본성처럼 일백억으로 늘리고 일천조의 총인구로 만든다.
‘그렇게만 된다면 제국은 지금과는 엄청난 수준으로 발달할 것이다.’
인구가 많을수록 경제 규모가 커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다른 은하계까지 점령할 수 있는 진정한 은하제국이 될지 모른다.
이건 평생이 걸려도 달성할지 모르는 원대한 목표야.’
일반적인 관리들이 이야기했다면 비웃음을 당할 일이다.
하지만 아이언은 웃으면서 말한다.
“겨우 일백 년이잖아요?
신족에게는 순식간이에요.”
“...”
그제야 앞의 아이언이 인간이 아닌 창조신이라는 사실을 다시 자각한 에메랄드 공주였다.
초월자가 되어 노화가 없어진 프롬 여제도 이제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목표를 가지셨다면 저희와 은하제국은 아이언님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어요.”
프롬 여제답지 않은 지극히 공손한 말투에 옆의 에메랄드 공주는 놀랐다.
너무 놀라서 의지를 보낼 정도였다.
‘어머니? 갑자기 왜 그러세요.’
‘은하제국의 규모를 일천 배로 늘리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는 창조신이라면 어떻게든 잡아야 할 상대다.
너도 앞으로 언행을 조심하도록 해라.’
그 말에 연인을 아이언에게 잡혀있기에 반발하려 했으나 프롬 여제는 용납하지 않는다.
‘고대문명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벌써 잊었구나.’
‘...’
고대문명은 신족의 지배권과 불로불사를 탐내서 반역을 일으켰다가 철저하게 토벌당했다.
‘고위 주신에게 문명 전체가 사라지고 후계자 일부만 살아남았다.
그런데 아이언은 그 이상의 최고위 창조신이다.
승산은 없다.’
지배층으로서 명분도 약했다.
현재 인류의 대부분은 다른 은하계에서 데려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후계자인 프롬 여제도 이방인이었다.
‘더구나 고대문명처럼 은하를 통일한 은하제국을 신족이 위험하다고 보고 토벌할 가능성도 있단다.’
은하를 통일하면서 가장 걱정하던 문제였다.
신족에게 도전할 만큼 발전한 지성체의 문명이 과거에 반역의 전과가 있다면 가만둘 리가 없었다.
어떤 수단을 써와야 정상인데 신족의 활동은 조용하고 통일 이후에 오히려 더욱 은밀해지고 있었다.
‘은하제국에 대한 신족의 견제를 막고 있는 것은 아마도 아이언님이겠지.’
신족의 최고위 창조신이 은하계에 있는 이상 다른 신족의 개입은 원천 차단된다.
그리고 신계 주신이 은하제국의 부흥을 바란다면 지금 신족의 침묵은 설명이 되었다.
‘누가 우리 편인지 깊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아이언님에게 절대로 무례를 범하지 마라.’
처음으로 에메랄드 공주와의 의지 대화에서 아이언에게 자연스럽게 존칭을 썼다는 사실을 프롬 여제는 몰랐다.
그리고 경계를 풀고 아이언이 따라준 세계수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렇게 차를 입에 머금은 순간 놀라고 말았다.
“흐음?”
입속에서 엄청난 정기의 파도가 퍼져나간다.
세계수의 정기를 농축한 차는 초월자가 되고 나서 정기를 보충한 적도 없던 프롬 여제에게는 더없이 짜릿한 경험이었다.
부르르르-!
쾌감에 몸이 떨릴 정도로 맛도 있었는데 더 좋은 점이 있었다.
‘이 차의 생성과 제조과정이 읽히지 않는다.’
뭔가를 먹거나 마실 때마다 그렇게나 자신을 괴롭히던 분석권능이 발휘되지 않았다.
프롬 여제가 차를 마시고 몸을 떨자 왜 여왕이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사태의 원인을 파악한 아이언이었다.
‘역시 과학자답게 분석에 관한 꽤 강한 권능을 얻었군.
권능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폭주하여 인지와 감각이 영향을 받았어.
아마도 가만히 있어도 주변의 모든 것이 파악될 거야.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지.’
해결책은 있었다.
상위 권능에 하위권능은 통하지 않는다.
즉 상위 권능은 하위권능을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세계수를 창조하는 내 차원권능을 분석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분석하려다가 계속 막히니 다른데 신경을 쓸 수가 없다.
세계수의 차를 상복하면 프롬 여제의 권능 폭주는 서서히 잦아들 것이다.’
물었다.
“이 차를 조금 드릴까요?”
“...”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앞으로의 관계를 생각하면 당연히 거절해야 하지만, 프롬 여제는 자신의 분석권능을 통제하는 해답을 얻은 느낌이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부탁드리겠어요.
항상 감사합니다.”
“이 정도로 감사하실 필요는 없어요.”
절세의 미소년의 모습으로 하는 부드러운 아이언의 위로에 얼굴이 살짝 상기된 프롬 여제였다.
‘고대문명에서 후계자로 선택되고 긴 동면을 깨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 받는 보호와 안도감이구나.’
프롬 여제와 아이언의 분위기가 아주 부드러워지자 당연히 굉장히 마음이 복잡한 에메랄드 공주였다.
하지만 도저히 끼어들어 훼방을 놀 상황이 아니었다.
“힘드실 때는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제 유모가 되실 분이니 당연합니다.”
그리고 아이언은 그녀도 잊지 않았다.
아공간에서 하나의 서류를 꺼내서 넘겨준다.
“이건 크롬 공주가 부탁한 우주 해적의 신상정보입니다.
영웅동맹의 후보생으로서 잘 있어요.
성적은 나쁘지만요.”
그 말에 다급하게 서류를 본 에메랄드 공주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사진과 함께 맨 앞장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낙제, 재교육.’
당연히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아이언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설명해주었다.
“영웅동맹의 후보생들은 신계의 조력을 받고도 초월자 진화에 실패하면 낙제랍니다.
그럼 지옥에서 재수련을 받게 하고 있어요.”
지옥에서 수련이란 말에 얼굴이 창백해진 에메랄드 공주였다.
그러자 아이언은 안심을 시키려고 추가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성체로는 제가 걸어놓은 불사(不死)의 권능을 벗어날 수 없어요.
그러니 당신의 연인이 죽거나 소멸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요.”
어떤 경우에도 안 죽게 권능을 걸어놓았다니 거짓이 아니라면 안심이 된다.
‘그런데 왜 하필 장소가 지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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