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5권
가진 모든 것을 현세계 신족에게 넘겨주었지만, 이것만은 주지 않았다.
이미 명령권을 잃은 신기였고 기념품에 지나지 않았지만, 손에서 놓을 수가 없던 것이다.
가끔 이것을 만지면서 추억이라는 것은 정말로 좋은 감정이라고 생각하면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주변 상황은 달랐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저렇게 유서 깊은 신족의 보물을 도박에 걸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화면 저편에는 그런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당장 가지고 싸워야 할 전투용 신기를 제외한 신기와 보물들을 신계관리주신과 원로들이 전부 건다.
자신들이 걸었던 신기들이 또 도박판에 올라오자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고유권능이 포함된 신기가 신계의 다른 고위신의 손에 들어가면 분석될 우려가 있다.’
‘이렇게 되면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
연회장에 참석했던 모두가 아이언의 말대로 전투용 신기를 제외하고 전부를 탈탈 털어서 걸었다.
정말 마지막 판이라면 손해를 복구할 최후의 기회였다.
“어어? 이게 아닌데?”
흑염 도적단이 도착했기에 사태를 어느 정도 진정시키려고 올라왔던 총사령관은 당황했다.
영웅왕의 상대를 하라면 못할 것도 없지만 지금 흑염 도적단이 도착해서 여기를 살피고 있었다.
‘전력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위험한 기색을 풀풀 풍기는 아이언과 관여하지 않으려던 자신의 등을 떠밀어 넣은 신계관리주신들이 더 난리였다.
“꼭 이기십시오!”
“지면 내려오지 못합니다.”
“이것들아!”
모처럼 화가 나서 뭐라고 외치려고 하는데 상급 창조신의 위엄이 담긴 목소리가 울렸다.
“잠깐!”
장내의 분위기가 일순 가라앉는다.
곤경에서 벗어날 기회를 잡은 총사령관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신계 주신님답군.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어.
흑염 도적단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방위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이제 무시당했다고 느꼈는지 서서히 살기와 투기가 강해지는 흑염 도적단이었다.
타락한 영웅신 오십 명이라는 무시무시한 전력을 생각하면 당장 신계에 비상을 걸고 방어태세로 전환할 때였다.
‘지금 이런 도박을 할 판국이 아닌데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하지만 신계 주신님이 나선 이상 전투 준비를 할 수 있다.’
신계 주신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제 상석에 있는 아이언을 올려보면서 말했다.
“영웅왕이 아이언님의 기계 분신이면 이건 불공평합니다.
아이언님의 가호를 받고 싸우는 상황이 아닙니까?
이러면 신계 지원을 총사령관에게 집중해야 공평합니다.”
적이 눈앞에 와 있다.
그런데 신계 주신이 신계의 총사령관에게 도박판에서 더 치열하게 싸우게 지원을 해야 한다는 기가 막힌 소리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싸움을 말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제정신이 아니야.’
척 보니 도박에서 어떻게든 이기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번 도박들로 가장 많이 잃은 것이 바로 신계 주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탁자를 부러트릴 정도로 쌓인 보물과 신기의 절반이 바로 신계 주신의 소유다.’
가지고 있던 비상금을 모두 잃은 상급 창조신의 눈에는 아이언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이글거리는 황금빛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최후의 승부에 걸맞은 전투를 위해서 최대한의 지원을 해야 합니다!”
“...”
주변의 반응도 열광적이었다.
“맞다!”
“옮소!”
어디에도 이 도박판을 접자는 이성적인 말이 나오지 않자 총사령관의 속으로 나직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시바! 누가 최후냐?
종족전쟁에서도 살아남은 내가 이런 도박에서 죽을 것 같으냐?’
신계 주신까지 저렇게 미쳐있으니 이건 아무래도 피할 수 없는 전투가 될 것 같았다.
‘모두가 아이언의 어떤 권능에 당해서 제정신이 아니다.’
자세한 분석은 무리였지만 아마도 투기를 강제로 끌어올리는 광역권능으로 보였다.
‘아이언의 권능에 영향을 받으면 투기가 올라가면서 전투력을 강화하는 대신 이성이 흔들린다.
힘든 전투를 앞두고 있기에 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아서 침묵했는데 후회막급이네.’
모두 취해있는데 자신만 멀쩡한 꼴이니 분위기가 영 적응이 안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해주는 자신의 고유권능이 이렇게 부담스러울지는 상상도 못 했던 총사령관이었다.
그리고 아이언의 답변이 나왔다.
“나의 가호와 신계의 지원을 같은 수준으로 생각하느냐?
좋아! 허락한다!
신계 지배층의 비상금이 전부 걸린 최종전에 어울리는 전투를 보여라.”
“우와아아아아아-!”
주변 고위신들의 열광적인 환호와 함께 총사령관에게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강력한 지원이 걸린다.
위이이이잉-!
신족에게 부여될 신계의 가호가 모여서 총사령관 개인에게 부여된 것이다.
처음 받아보는 전력지원에 총사령관은 기분이야 날아갈 듯이 좋고 힘이 넘쳤다.
하지만 영웅왕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런 기분이 싹 사라졌다.
쿠웅-! 쿠웅-!
신족의 대지를 울리면서 거대한 기계신이 접근해 온다.
‘조종자도 없는데 존재감이 대단하다.’
직접 상대하고 있는 총사령관으로서는 어이가 없을 정도의 위압감이 밀려온다.
‘신계의 가호가 집중된 지금도 저 기계 분신의 능력 측정이 안 된다.
저게 도대체 무슨 괴물이냐?
아무리 최상급 창조신의 기계 분신이라고 하지만 너무 한 것 아냐?’
아이언의 기계 분신이 저 정도면 도대체 본인은 어느 정도인지 생각만 해도 오싹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마치 자신들에게 관심을 달라고 주장하듯이 흑염 도적단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구우우우우웅-!
노골적인 투기와 살기가 몰려오자 총사령관은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상황은 통제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영웅동맹의 주신 중 가장 강력한 기세를 품어내던 존재가 영웅왕의 조종석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쿠쿠쿠쿠쿠쿠쿵-!
그러자 영웅왕의 기세가 날카롭게 변한다.
영웅동맹의 초월자들이 임시 조종하는 것과는 격이 다른 투기와 권능을 품어내는 영웅왕이었다.
신기까지 구현하면서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워야 함을 느꼈다.
‘이런 제길! 아무리 보아도 지금 제정신들이 아니야!’
지배층의 거의 전 재산이 걸린 승부에서 졌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예상조차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다만 끝없는 의문만이 생각이 났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판이냐?
아이언은 무슨 생각이야?’
그 생각은 흑염 세력도 똑같이 떠올리고 있었다.
이미 오십 개의 신계를 쳐서 중앙핵을 빼앗은 자신들을 이렇게 무시하는 신계는 처음이었다.
흑염 세력은 서서히 열이 받아서 나직하게 의지를 교환한다.
‘감히 우리를 무시하는데 그냥 칠까?’
‘정문 외의 다른 지역은 거의 무방비다.’
‘저기에 최정예가 결집이 되었는지 다른 곳은 병력만 많았지 별것 아니다.’
병력은 다른 곳이 더 많지만 지금 도박에 열중하고 있는 고위신들에 비해서 비교조차 하기 힘든 약한 투신만이 있던 것이다.
즉 정문만 피하면 중앙핵의 탈취는 식은 죽 먹기로 보였다.
그런데 근원이 가느다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후우우! 소용없다.
여기도 중앙핵이 없다.
그게 아니라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군.”
“...”
중앙핵이 없으면 신계는 바로 죽고 소멸을 시작한다.
그런데 없다면 이렇게 무사할 리가 없는데 가장 직감이 뛰어난 근원의 말이니 부정할 수 없었다.
근원은 자신들을 곤경에 처하게 했던 영웅동맹의 지휘 기체인 영웅왕이 중급 창조신과 전투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모두 여기서 모두 기다려라.
내가 언질을 주면 모두 후퇴해.”
“어딜 혼자 가려고?”
근원은 정문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저 아이언이 나를 부르고 있다.
마치 우리의 약점을 찌르는 것처럼 지독한 대처다.
이대로는 세력화는 꿈이다.
그러니 도박을 해야 할 것 같다.”
근원의 시선은 아까부터 자신들을 주시하던 아이언에게 향한다.
‘처음부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어.
차원권능의 은신조차 꿰뚫어 보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저 동전이다.’
아이언의 손바닥 위에는 심상치 않은 권능을 가진 것이 분명한 무지갯빛을 내뿜는 동전이 있었다.
‘저게 흑염의 직감을 뒤흔들고 있다.
저 동전은 흑염의 절대적인 직감을 혼란에 몰아넣고 있는 무엇인가다.
직접 보자 확신이 선다.’
영웅황제의 투기 소용돌이에서 도망치는 순간 흑염 권능이 보여주었던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그때는 갑자기 불에 타올라서 녹는 황금 동전이 보여서 이유를 몰랐는데 이제 확실하다.
흑염의 직감을 되찾으려면 저걸 어떻게든 처리해야 해.’
아이언의 손바닥 위의 동전은 여전히 앞면이었다.
손바닥이 펼친 방향을 보아서는 아이언이 일부러 근원에게 보여준 것이 분명했다.
확실하게 서로 표정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간 근원은 모두에게 들리게 외쳤다.
“제안대로 정기는 없지만, 신들의 권능이 담겨있는 신계의 중앙핵을 하나 걸겠소.
대신에 그 동전을 걸어주시오.
그리고 이 도박을 하는 대신 우리에게 그 권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었으면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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